최진석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저명한 철학자로, 도가 철학과 중국 철학사에 대한 깊은 지식과 연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은 최진석 교수님에 대한 정보입니다:
- 생년월일: 1959년 1월 13일 (음력)
- 나이: 2024년 기준으로 65세
- 고향: 전라남도 함평
- 학력:
- 서강대학교 철학과 학사 및 석사
-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에서 도가철학 박사
- 전공: 중국 철학사, 중국 도가철학
- 주요 강의:
- EBS 인문학 특강에서 '현대철학자 노자' 강의 시리즈
- 다양한 인문학 강연 및 방송 출연
최진석 교수님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시며,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도가 철학과 인문학의 가치를 전파하고 계십니다.
최진석 교수님은 중국 철학사와 중국 도가철학을 전공하셨으며, 특히 도가 철학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 철학사: 중국의 다양한 철학적 사상과 그 역사적 발전에 대한 연구
- 중국 도가철학: 도가 사상과 그 철학적 원리, 특히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해석
최진석 교수님은 서강대학교 및 카이스트의 철학과 석학으로 재직하시면서, 이 분야의 연구와 학문적 기여를 통해 많은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또한, 교수님은 여러 저서와 논문을 통해 도가 철학의 현대적 의미와 적용에 대해 탐구하고 계십니다.
연구분야 및 실적
경력
1996년 9월 - 1998년 2월 미국 하버드 대학 엔칭연구소 Visiting Scholar
1998년 3월 -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2004년 3월 - 2004년 2월 캐나다 University of Toronto, Department East asian Studies, Visiting Scholar
학회활동 및 기타
한국철학회, 철학연구회, 한국도가철학회, 도교문화학회, 도교학회
주요 논문
"郭象對“性”的解釋及其在中國哲學史上的意義" <중국철학사>(중국) 2006년 8월 29일
욕망: 선진 철학을 읽는 또 하나의 창 <철학연구> 제69집, 2005년 5월 31일
송명이학의 성립과 도교 <도교문화연구> 제15집, 2001년 11월 30일
노자와 유가 사이: 곽점 초간 출토 이후 <동양철학> 제15집, 2001년 9월 20일
도가 철학의 자연주의와 현대 환경문제에의 시사점 <철학> 별책5권, 2000년 10월 10일
사회적 맥락에서 본 노자의 철학 <철학연구> 제44집, 1999년 5월 25일
「미국의 동아시아 독법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유학 읽기에 대하여 -」, 『유교사상연구』, 한국유교학회, 2008.
「장자 : 지식과 놀이」,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회, 2010.
「공자의 직(直)」, 『범한철학』, 범한철학회, 2011
「중국 사유의 현상성 - 선진철학에서의 두 유형을 중심으로 -」, 『철학논집』, 철학연구소, 2014.
저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소나무출판사, 2001년 12월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 齊魯書社, 2013.
『인간이 그리는 무늬』, 소나무, 2013.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소나무, 2013.
『나는 누구인가』(공저), 21세기북스, 2014.
최진석 교수의 관점을 알 수 있는 기사
최진석
1959년생. 서강대 철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 중국 베이징대 박사 / 서강대 철학과 교수, 同 동아연구소장, 건명원 원장 역임 / 現 서강대 명예교수. (사)새말새몸짓 이사장 / 저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나는 누구인가》 《탁월한 사유의 시선》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등
8월은 망국(亡國)과 해방(解放)과 건국(建國)의 달이다. 2021년 8월을 맞은 마음은 편치가 않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호(號)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은 ‘대한민국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보다’ ‘이제는 내리막길만 남았다’라며 체념하고 있다. 내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여야(與野)에서 많은 후보가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황천항해(荒天航海)를 해야 할 대한민국호를 이끌 만한 믿음과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때아닌 역사 논쟁으로 다시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김원웅(金元雄) 광복회장은 지난 5월 21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친일(親日)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1980년대 대학가 대자보(大字報)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광복회장이라는 사람이 되풀이한 것이다.
지난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李在明) 경기도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 달라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은가”라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인 윤석열(尹錫悅) 전 검찰총장은 7월 4일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 망언을 집권세력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며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에 대해 ‘색깔론’이라고 맞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최진석(崔珍晳·62)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였다. 노장(老莊)철학 분야의 석학(碩學)이자 ‘스타 철학자’였지만, 기자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12월 그가 쓴 시(詩)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통해서였다. 그는 당시 이 시에서 국회를 통과한 소위 ‘5·18역사왜곡특별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러고 나서 올해 3월에 나온 《나 홀로 읽는 도덕경》과 5월에 나온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특히 ‘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대한민국’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는 과거에 발목이 잡히고 기본적인 국가 정체성(正體性)마저 흔들리면서 좀처럼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이 녹아 있었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최진석 교수의 사무실을 찾아 대한민국의 오늘을 진단하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본과 조선의 차이점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8월이면 우리는 늘 홍역을 한 번씩 치른다. ‘반일(反日)’과 ‘친일(親日)청산’이라는 홍역이 그것이다. 하지만 극일(克日)의 다짐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일본을 한 번은 이겨봐야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은 정한론(征韓論)을 펼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묘를 찾아간다. 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내 제자에게는 요시다 쇼인을 공부시켰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가웠다. 기자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일본 야마구치(山口) 하기(萩)에 있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설 학교)를 세 번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하자 최진석 교수도 반가워했다.
메이지(明治)유신의 주도세력이었던 조슈(長州·지금의 야마구치)에는 메이린칸(明倫館)이라는 번교(藩校·번의 공립학교)가 있었다. 요시다 쇼인이 병학(兵學)교수를 지낸 메이린칸은 다카스키 신사쿠(高衫晉作) 등 메이지유신의 인재들을 많이 길러냈다. 《맹자(孟子)》에서 유래한 ‘명륜’이라는 이름은 성균관의 명륜당(明倫堂)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조슈의 메이린칸에서는 유신의 인재들이, 조선의 명륜당에서는 망국의 선비들이 배출됐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왔을까요.
“일본은 전국(戰國)시대 이래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항상 긴장하고 예민함을 유지하다 보니 어떤 정해진 이념(理念)을 수행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반면에 도덕국가를 지향했던 조선은 실질을 숭상하는 나라가 아니었어요. 실질을 숭상하려면 현실을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능력이 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차이가 메이지유신과 망국이라는 차이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해방도, 건국도 우리 힘으로 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의 인재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 사진=배진영
―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질을 숭상하기보다는 관념에, 명분에 빠져 사는 성향이 강한 것은 일종의 민족성으로 보아야 할까요.
“실력이죠.”
― 실력이요?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을 구축해본 기억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 무슨 의미입니까.
“조선이라는 나라는, 나라 자체를 우리 힘으로 만들고 우리 힘으로 운영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중국의 국가 시스템 안에 편입되어 살았죠. 가장 구체적인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아닌 남의 뜻에 맞추어서 운영했기 때문에, 자신이 서 있는 구체적인 문제, 실질을 붙잡지 못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기도 하고 애써 보려고 하지 않는데, 해방도 우리 힘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국도 우리가 우리 피를 흘려서 하지 못했습니다. 6·25전쟁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독립적으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구체적인 터전인 나라를 독립적으로 세우고 독립적으로 운영하지 못했습니다.”
― 그렇지요.
“우리 삶의 전략이 추상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을 지식(智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수입국이었어요. 지식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세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수입해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세계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해본 적이 없어요. 구체적인 세계를 우리 뜻과 의지와 욕망으로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이 만든 처방전, 이념을 가져다 쓰기만 했습니다.”
―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은 약소국(弱小國)에서도 세계사적인 지적(知的) 생산이 나왔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생산력이 약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가 1500년대 작품인데, 그때 이미 법률로 지적 재산권을 보장해주고 있었어요. 지식을 법률로 보호할 정도로 지식이 풍성했고, 그런 지식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복잡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식의 대부분을 나라가 독점(獨占)하고 있어서 지식이 활발하게 생산되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자유롭게 세계와 관계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얘기죠. 어느 정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네가 세계를 자유롭게 만들어 살아라’ 하는 것과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너희는 여기에서 그냥 살아라’ 하는 것은 창의성(創意性)이나 자율성(自律性)을 작동시키는 데 있어서 큰 차이가 있어요. 지금도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하려는 것 같아요.”
― 그렇죠.
“국가 입장에서는 그것이 효율적인 것, 일사불란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죠. 하지만 지식의 생산이나 자율적·창의적 활동들을 못 일어나게 하는 부작용이 무척 큽니다. 조선은 생각하는 방식까지 모두 국가가 정하는 나라였는데, 이는 나라를 풍성하게 하는 데 굉장한 장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주쿠를 본격적으로 운영한 2년 반 동안 92명의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혁명 과정에서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살아남아서 메이지유신을 완성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400여 개의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이 있었습니다. 지금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처럼 거기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공부했어요. 그런데 400여 개에 달하는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 요시다 쇼인이 만든 손바닥만 한 쇼카손주쿠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쇼카손주쿠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조선의 젊은이들은 배우라고 정해진 것만 배웠습니다. 쇼카손주쿠의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궁리한 다음에 그것을 공부했습니다. 쇼카손주쿠는 ‘시대의 급소(急所)’를 잡았지만, 조선은 ‘시대의 급소’를 잡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망했다”
― 메이지유신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면, 메이지유신은 주자학(朱子學), 양명학(陽明學), 국학(國學), 난학(蘭學) 등 다양한 지적 축적(蓄積)을 바탕으로 한 ‘지식정보혁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지식의 생산은 지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구체적인 세계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구체적인 세계를 관찰하고, 그러면서 발견된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야망이 없으면 지식은 생산되지 않습니다. 이런 야망이 없는 지식인들, 혹은 세계를 자기 눈으로 관찰하려는 포부가 없는 지식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 조선 500년 동안의 국시(國是)였던 주자성리학은 결국 구체적 세계와 괴리되어 있던 것이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조선이 1392년 건국한 지 꼭 200년이 지난 1592년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습니다. 기업도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잘하다가 갑자기 망하는 법은 없어요. 자기가 먼저 망해서 힘이 빠지면 그 틈을 외적(外敵)이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 맞습니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된 이후, 200년 동안 조선은 ‘누가 이것을 더 잘 지키느냐’ 하는 데만 매달렸습니다. 200년 동안 사회・경제적 조건이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맞는 이론이나 지식을 생산해야 합니다. 조선은 지식이나 이론은 그대로 정해놓고, 밑에서 변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관찰하고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이론과 실제 사회・경제 조건 사이에 격차가 생기면서 비효율(非效率)이 발생했고, 그것이 200년간 쌓인 것이죠.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스스로 망했다는 얘기입니다.”
陣營정치
― 중국의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의 《고별혁명(告別革命)》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건국·근대화·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철학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생각하려면 일단 자기 자신이 궁금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속적 상태에 빠지면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해석하는 틀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그 틀을 누가 더 오랫동안 잘 수행하느냐만 중요해지는 것이죠. 그러면 자기를 궁금해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최진석 교수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진영(陣營)에 빠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영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영이 정해준 이념과 주장만 확대 재생산하면 되기 때문이죠. 진영정치에서는 자기 자신이 그 진영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빛나느냐 하는 것만 의미가 있지, 자기 자신이 독립적 주체로서 빛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 그렇죠.
“다른 기능적 능력은 배워서 습득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인격적인 문제이고, 더 나아가 영혼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각(自覺), 각성(覺醒)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先導국가는 ‘생각하는 국가’”
― 개인 차원의 각성은 그래도 종종 일어날 수 있지만, 한 나라를 각성시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선도(先導)국가는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는 국가’입니다. 종속(從屬)국가나 추격(追擊)국가는 ‘생각하지 않는 국가’예요.
아주 후진적 레벨에서 출발해서 중진국 상위 레벨까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따라 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중진국 상위 레벨에서 선도국가 내지 전략(戰略)국가, 즉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면 이때부터는 사람이 생각해야 합니다.”
―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것이 가능할까요.
“역사에서 1820년을 ‘대분기(大分岐)’라고 합니다. 1760년에 시작된 산업혁명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생산력과 새로운 생산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국가·국제질서 시스템이 이때 딱 세팅(setting)됐다는 얘기입니다. 1820년대 이후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중진국 함정’에 갇혔다가 빠져나온 나라가 없어요. 생각하지 않고 도달한 높이는 단단하게 유지되기 어렵고, 도약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능적·양적(量的)으로 몇 가지 면으로는 이미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하지 않고 이룬 업적이라면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것입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어떻게 제고(提高)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철학자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큰 사명입니다.”
“국가 관념 약화, 심각한 知的 退行”
―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헤르만 헤세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以上)이다’라고 말했어요. ‘지금의 상태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것을 ‘건너가기’라고 표현합니다. 이것만 제대로 가르치면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하든지 탁월해질 수 있어요. 탁월해진 인간들의 수가 많아지면 그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됩니다. 시대에 맞는 인재를 먼저 기르는 나라는 흥하고, 거기에 실패한 나라는 망하는 거예요.”
―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망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일단 세계를 보는 시각이 많이 후퇴했어요. 진영의 대립과 적대감이 더 심화됐어요. 근대국가의 진화(進化) 방향은 민족에서 국가로의 이행(移行)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 관념을 약화시키고 있어요. 이건 심각한 지적 퇴행(退行)입니다.”
―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이 건국된 게 1948년이냐 1919년이냐를 놓고 논란을 빚고,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 공무원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이 국가인지 민족인지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한민국은 그동안 이룩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요.
“네이션 빌딩의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를 경험했고, 남북분단, 남북 간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근대국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반공(反共)이데올로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공산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을 발전시켰습니다.
한데 이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북한과 그 동조세력이었죠. 민족 정통성을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에 두는 흐름이 생겼고, 그러면서 묘하게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과 민족을 긍정하는 것이 같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 그렇습니다.
“민족감정에 빠지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로 보게 되고, 북한의 역사는 힘들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사람들이 나쁜 사람으로 평가되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싸운 사람들이 오히려 찬양받는 매우 부정적인 기류가 만들어졌습니다. 시민단체나 정치결사체들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됩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군(軍) 통수권자이고,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을 홀대하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싸운 사람을 높이려 하는 일은 대통령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조선DB
―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월북(越北)해 6·25 당시 북한 정권의 요직을 지낸 김원봉(金元鳳)을 언급해서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 ‘현충원은 살아 있는 애국의 현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애국’이라고 할 때의 ‘국(國)’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입니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라고도 했는데, 애국으로 통합되어야 할 보수와 진보는 중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닙니다. 배타적(排他的)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일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할 때, 말로는 ‘애국’이라고 하면서 느낌은 ‘민족’을 가졌을지 모르겠습니다. 민족적 의미에서 기려야 한다면, 민족적으로 기리면 됩니다. ‘애국의 현장’은 대한민국만을 중심에 놓고 배타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국가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기여하고, 6·25전쟁 중에 대한민국의 파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을 애국의 한 전형(典型)으로 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래서 대한민국이 네이션 빌딩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네이션 빌딩이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현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헌법은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매뉴얼인데,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법 수호자로서 역할은 하려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 헌법을 넘어선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원수(元首)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나라의 모든 일이 복잡해지고 해결이 난망(難望)해집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경영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동감입니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대통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민족의 시각으로는 국가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민족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가들과는 다 등을 돌리고,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북한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만 굽실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아큐(阿Q)가 되어 풀리지 않은 현실을 풀린 것으로 ‘정신 승리’ 하는 것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북한 군인이나 요원들은 멋있게 그려지는 반면, 한국 군인이나 경찰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 대통령뿐 아니라 여야 정치인들, 심지어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마치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金九)를 꼽습니다.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보다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던 김구를 더 존경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정체성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 아닐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번째 국무회의를 백범기념관에서 했습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등의 법통(法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자기의 피를 흘려서 국가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가 자기에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천안함이나 연평해전 장병 등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사람들은 굉장히 홀대받고, 국군의날에 퍼레이드 대신 야간에 쇼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 최근 김원웅 광복회장이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 참….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네이션 빌딩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왕 도움을 받아야 하는 초라한 형편에서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소련에 의지했다면 우리는 전체주의적 억압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가난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미국에 의지했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북한의 삶보다는 대한민국의 삶이 천만 배 더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세요. 〈JSA〉를 보면 북한군 병사는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키는 멋있는 사람으로 나오는 반면 한국군 병사는 결국 자살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 북한군 병사들은 질이 높고 군인으로서의 태도를 지키는데, 한국군 병사는 탈영병입니다. 〈공조〉라는 영화를 보면 한국 형사는 굉장히 천하게, 북한 경찰은 굉장히 멋있게 그려집니다.”
“내재적 접근법은 이론이 아니라 프로파간다”
―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것도 역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지식인은 대부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보다 김일성을,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보다는 김정일을 높게 봅니다. 21세기에 3대 세습이 이루어져도 그것을 ‘계승’이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한다면, 저는 김일성보다는 박정희가, 김정일보다는 이명박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박정희를 비판하다가 바로 김일성에게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다가 사회주의로 바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 비판은 김일성 추종이 아니라 박정희 수정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비판은 사회주의로의 전향이 아니라 자본주의 수정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수정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한동안 ‘북한을 북한의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사실 그건 이론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이론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미덕은 객관성(客觀性)과 보편성(普遍性)입니다. 주관적인 감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어떤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매우 넓은 어디에나 치우침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을 이해할 때 북한의 내재적 조건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대한민국을 이해할 때에도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내재적 조건을 가지고 이해해야죠. 대한민국을 이해하려 할 때에는 인권・민주 같은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이해하고, 북한을 이해할 때에는 북한만의 특수한 조건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이론이 아닙니다. 어떤 지적 작업에서도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건 그냥 프로파간다죠. 지금 행세하고 있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내재적 접근법을 가지고 북한을 이해했는데,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이것도 모두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중국 가보고 사회주의적 인식 벗어나”
― 지금 교수님의 말씀은 그 연배의 지적 흐름과 굉장히 다른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까.
“저는 1970년대 말부터 대학을 다니기 시작해서 대학원 과정까지 포함하면 1980년대 내내 대학에 있었습니다. 대학가가 굉장히 치열할 때였고, 제가 지금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시각들이 팽배했을 때였습니다. 저도 그 세례를 깊이 받았죠. 게다가 제 고향도 전라도고…. 그러다가 1990년에 중국에 갔습니다. 거기서 사회주의 국가의 실상을 보고, 북한 사람들을 직접 접하면서 그때까지 가졌던 사회주의적인, 혹은 북한에 대한 호의적 인식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몸살처럼 한 달간 앓고 일어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아무리 모순을 내포하고 있더라도 사회주의보다는 낫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무리 심하게 독재를 했어도 김일성보다는 낫다. 대한민국의 언론통제가 아무리 비판을 받더라도 중국이나 북한의 그것보다는 훨씬 낫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보고서도 안 벗어나더라고요.”
― 소위 철학자,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훈련을 안 받은 것도 아닐 텐데….
“안 받았어요. 생각하는 훈련을 받은 게 아니라, 생각의 결과를 습득하는 훈련만 받았어요.”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자랑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친일청산’ 문제를 들고나온 것처럼, 이 문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6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인화성(引火性)이 강한 정치적 무기다.
― 친일청산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것을 대한민국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됩니다. 그때 강대국끼리 벌이는 국제질서의 구조를 이겨낼 정도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했습니다. 북한도 친일파를 완전히 척결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초대(初代) 내각에도 친일파가 많았잖아요? 남한이나 북한이나 외세의 간섭 아래 황망하게 국가를 세우면서 친일세력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독립적 구조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이룬 해방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日帝시대에 태어났다면…’
― 그래도 오늘날까지도 친일파 척결을 못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복회장도 박정희의 공화당에 ‘자발적’으로 공채시험을 봐서 들어갔고, 전두환(全斗煥)이 주인 노릇을 하던 민주정의당에서 조직국장도 지냈고, ‘토착 왜구’들이 득실댄다던 한나라당에서도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그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튼튼한 국가의 보호를 받던 사람도 생계 때문에 자발적으로 ‘토착 왜구’들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생계가 해결되고 나자 이제는 친일 인사들의 ‘파묘(破墓)’까지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없어진 지 2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본 기억도 없는 한 사람이 살 궁리를 한다면 대체 어떠했을까요? 여기에는 친일, 반일의 문제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고 존재론적(存在論的)인 ‘인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 자체에 대한 기억이 없고, 국가의 보호를 받아본 기억도 없이 식민지가 된 지 이미 20년이나 흐른 시점이라면, 그래도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식민지 구조 속에서나마 더 나은 직업을 찾으려 노력했을 수도 있습니다. 열다섯 나이에 철이 들어보니 식민지가 된 지 20년이나 지났다면, ‘나는 죽어도 간도특설대 장교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노력하여 흥남시청의 농업계장이라도 하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높은 자리에도 쑥쑥 올라간 광복회장도 ‘생계’ 때문에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저 같은 미물(微物)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국가의 목표는 富國强兵”
미네르바 여신은 완전무장한 모습이고, 요시다 쇼인 옆에는 칼이 놓여 있는 반면, 통치자인 세종대왕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 특히 강병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식인 중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부국강병, 특히 강병에 눈길을 주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가는 최종적으로 전쟁을 하는 집단입니다. 국가 간의 승부는 전쟁으로 이루어집니다. 깨어 있는 국가는 항상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것은 저만의 독특한 관점이 아니라, 국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주장입니다.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 부국강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부국이 강병을 위한 것인 만큼, 국가에는 강병이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병이 빠진 부국은 체력은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이 허망합니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 보면, 정신승리법으로 겨우 버티는 아큐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아큐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전쟁을 기획하고 실천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전쟁을 도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 그런 풍토 속에서 전쟁에 눈길을 두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려는 것, 야망을 갖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지적 호전성(好戰性)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적 호전성’이라니.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지적 호전성이 없으면 생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적 호전성이 없으면 쉽게 문약(文弱)해집니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지혜라는 것은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혜의 여신(女神)인 미네르바(아테나)는 완전무장한 모습입니다. 일본에서 학문의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시다 쇼인의 초상을 보면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옆에는 칼이 놓여 있습니다. 반면에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 책만 보고 있어요. 세종대왕은 일국의 통치자인데도 그 옆에 칼이 없어요. 문기(文氣)가 승하고 무기(武氣)가 약해지면 나라는 허약해집니다. 무기가 승하고 문기가 그 뒤를 따라가면 그 나라는 흥합니다. 한 나라가 가져야 할 가장 높은 어젠다는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국·일본에 대해서는 그렇게 결기를 보이면서,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신적 배경을 찾는다면 조선시대 500년 동안 중국을 정치적·문화적으로 숭배하고 살아온 기억 때문이겠지요. 그것은 중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 외교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북한과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현 집권세력이 기본적으로 북한에 민족적 정통성이 있고, 북한을 민족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로 여기다 보니 한마디로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로 흐르고 있는 거죠. 집권세력의 이런 몽환적(夢幻的) 통치 때문에 대한민국은 지금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아니라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 미중신냉전(美中新冷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나라를 더 가까이하고 어떤 나라를 더 경계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야 할 게 세 가지 있습니다.”
― 그게 무엇입니까.
“영토, 역사, 문화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 영토를 존중하는가 존중하지 않는가? 우리 역사를 존중하는가 존중하지 않는가? 우리 문화를 존중하는가 존중하지 않는가?”
― 그럼 우리가 앞으로 누구를 가까이하고 경계해야 하는지는 자명(自明)해지네요.
“생각하면 답이 자명하게 나오는데 생각하지 않으면 정해진 답을 적용하려고만 하게 되는 거죠.”
“수령론·품성론 지키려면 생각하면 안 돼”
― 1980년대 초 대학가에서는 다양한 좌파 이념 간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은 북한의 민민전(民民戰) 방송 내용을 따라간 주사파(主思派)가 대세를 장악했습니다. 이것도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아닐까요.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 추종만 하게 됩니다. 생각의 특징은 반성과 각성과 자각에 있습니다. 주사파는 반성과 각성과 자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맹목적 추종으로 출발했다고 봐야 합니다. 주사파를 만나봤을 때 주체사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행동을 강화하는 강령인 수령론(首領論)과 품성론(品性論)만 내세울 뿐입니다.”
― 맞습니다.
“수령론과 품성론을 지키려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去勢)되면 자기 내부를 비판하다가 외부의 반대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입해서 추종하는 일밖에 할 수 없어요. 박정희를 비판하다가 김일성으로 넘어가는 식이죠.”
― 우리는 안 그래도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국민인데 소셜미디어(SNS) 시대가 되면서 확증 편향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류문명이 진화하면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보 유통 경로가 어떻게 변하든 자기는 누구인지, 자기가 죽기 전까지 완수해야 할 소명(召命)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에 대해 숙고(熟考)하고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계속 제기하는 사람들은, 외부에 있는 지식정보 채널을 자기를 단단히 하는 연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외부의 지식정보 채널에 함몰돼버리고, 생각하는 능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겠지요.”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법
새말새몸짓기본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최진석 교수. 사진=최진석 제공
―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교육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전남 함평에서 새말새몸짓기본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 새말새몸짓기본학교는 어떤 학교입니까.
“15~49세 사이의 학생을 모집해서, 기본을 함양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본’이란 각성하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는 이 기본만 잘 되어 있으면 인간은 누구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탁월해지지 않는 이유, 이념에 휘둘리는 이유는 기본이 함양되지 않아서일 뿐입니다.”
― 새말새몸짓기본학교는 학생들을 얼마나 배출했습니까.
“이제 1기(期) 28명이 졸업했습니다. 대부분이 20대이고, 10대가 한명, 30대, 40대가 몇명 있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6개월간 공부를 했지요.”
― 생각하는 능력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선 철학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내용이 매우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암호학과 산업혁명도 가르칩니다.”
― 암호학이요?
“블록체인을 가르칩니다. 블록체인은 최첨단 문법이니까요. 또 생각을 하려면 내면에서 어떤 충동과 감동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베토벤을 가르칩니다. 운동도 가르치고요.”
“모든 문제를 법제화해서 해결하려 해”
지난 3월 최진석 교수는 《나홀로 읽는 도덕경》을 펴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도덕경》이 어떤 책인지와 《도덕경》의 주요 내용을 문답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도 결국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든가 ‘시대의 급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보인다. 책의 후반부는 《도덕경》의 원문과 한글 번역인데, 시(詩)나 잠언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쉽고 자연스러운 번역이 돋보인다.
― 저는 《도덕경》에서 제58장의 ‘그 정치가 어눌하면 그 백성들은 순박해지고, 그 정치가 빈틈이 없으면 그 백성들은 교활해진다(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는 구절을 가장 좋아합니다. 원래부터 좋아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더욱 가슴에 와닿더군요.
“지금 우리나라를 옥죄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규제입니다. 모든 문제를 규제하고 법제화(法制化)해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게 강해지면 그게 바로 독재입니다.”
― 매사를 규제와 법으로 해결하려는 게 답답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걸 답답해하면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영논리로 보면 건전한 비판이 작용할 수 없어요. 그러면 일방통행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일방통행으로 가면 거기서 부패와 비효율이 만연하게 되고, 활기를 잃게 됩니다.”
― 우리보다 후진국에서도 우버를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우버는 고사하고 타다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타다가 가련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이미 있는 것을 어루만지거나 과거를 살게 됩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면 아직 없는 것을 꿈꾸거나 미래를 살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면 일단 규제부터 하고 시작합니다. 드론이 처음 등장할 때 우리나라 기술력이 아마 세계 3위 정도 되었을 거예요. 당시 중국은 등수 안에도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수많은 규제로 묶어서 드론을 날리기도 어려워졌어요. 중국은 ‘이런 것은 없던 거니까 규제할 게 없으니 일단 마음대로 날려라’ 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세계 드론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지키는 일에 익숙하도록 훈련받아”
― 우버나 타다를 금지시킨 정치인들은 ‘택시와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
“타다나 우버를 규제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그게 실질적인 혁신이냐 아니냐 하면서 기능적인 것을 많이 따집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공유(共有)경제입니다. 우버나 타다를 공유경제의 실험으로 받아들여야지, 그것이 기능적으로 혁신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고만 있으면 공유경제를 경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됩니다.”
최진석 교수는 “타다나 우버를 허용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로 등장한 것을 환영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미래를 여는 일보다는 과거를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질문보다는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그대로 담아두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내는 일입니다. 대답에 빠지면 원래 모습을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원래 모습은 시제(時制)로 과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이 채우는 사회는 모든 문제가 과거 논쟁으로 빠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일에 빠져야 진실한 삶을 사는 느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다루는 데만 습관이 되어 있으면 질문이라는 것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모든 문명은 전부 질문의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대답의 결과로 나온 문명은 없어요.”
“‘나는 5·18을 왜곡한다’ 쓴 것 후회 없어”
최진석 교수가 ‘과거 논쟁’ ‘과거 파헤치기’를 지적하는 대목에서 소위 ‘5·18역사왜곡금지법’과 이를 비판한 그의 시 ‘나는 5·18을 왜곡한다’가 떠올랐다.
〈…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쎈타, 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5·18을 왜곡한다.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감옥에 갇히다니
그들만의 5·18을 저주한다.…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
― ‘나는 5·18을 왜곡한다’로 비난도 많이 받았는데, 괜히 썼다고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5·18역사왜곡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5·18은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5·18은 민주와 자유의 확대로만 완성됩니다. 민주와 자유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민주와 자유의 확대를 막는 일이고, 그것은 5·18의 완성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제가 그 시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데 20분밖에 안 걸렸어요. 써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도 없었고, 쓰고 나서 괜히 했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흔적은 남겨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법을 만든 사람들은 개운하고 통괘하겠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사유(思惟)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겁니다.”
― 지금 대선 후보로 나선 사람 중에 우리나라를 선진국, 선도국가로 끌어올릴 만한 사람이 보입니까.
“아직은 없어요. 우리나라를 선도국가, 일류국가, 전략국가로 도약시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이 ‘시대의 급소’를 잡은 사람은 보이지 않네요.”
―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든지, 대통령을 뽑는 사람이든지, 우리나라가 굉장히 커진 나라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나라가 건국 초기 단계, 아직 후진국 단계일 때에는 법학에서 나오는 인사이트가 중심이 됩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발전하면 법학적인 것으로 컨트롤이 안 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러면 경제학적 관점이 중심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잘 발달한 나라를 우리는 중진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거기서 더 커지고 다양해지면 경제학 시각으로 컨트롤이 안 되는 부분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는 통치의 인사이트가 인문학에서 나오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인문적 높이의 시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 ‘인문학적 높이의 시선을 가진 사람’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물론 ‘인문적 높이의 시선을 가진 사람’이 인문학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나 삶을 하나의 기능적인 단계에서가 아니라 모든 기능적인 단계를 통괄(統括)하는 높이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인문적 능력’입니다.
정치인의 인문적 소양의 핵심은 신뢰, 즉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염치(廉恥)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란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고, 문명이나 역사에 대한 일정 분량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굉장히 중요한 단계에 있는데, 이 정도 리더십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또 계속 ‘적폐청산’만 하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이 너무 급조된다”
― 신뢰와 정직의 상징이어야 할 일국의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하고도 저렇게 버티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그렇게 몰염치한 짓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각하는 능력은 사실 인격적 실력입니다. 인격적 실력이 문재인 대통령과 달라지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나은 통치를 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인격적 실력은 같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나라냐’라고 했던 사람이 ‘이건 나라냐’는 질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철없는 학자의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이 나라는 어떤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데 대한 장기간의 인식 경험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해왔다는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급조(急造)됩니다. 그저 어떤 대립적 명성과 인기로 대통령이 되려고 해요.”
―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꽉 막히고 어떤 의미에서는 ‘군사독재정권’ 사람들보다 더 염치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계급운동입니다. 계급은 국내 문제예요. 그러다 보니 민주화운동세력들은 어쩔 수 없이 시야가 국내적으로 좁아져버리고, 자기만 옳다는 자기 확신이 강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좁아진 자기를 보지 못하고, 그것을 근거로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주(週)52시간제라든지 최저임금제라든지 하는 것들이 전부 국제경쟁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내용입니다. 외교도 대외개방적이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외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내용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외개방적인 과감한 태도를 가졌던 때는 산업화 시대입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문을 닫으면서 시야가 국내용으로 급격히 좁아져버렸어요. 그것이 아주 큰 문제입니다.”
保守와 進步
새말새몸짓기본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최진석 교수. 사진=최진석 제공
― 철학자로서 보수(保守)와 진보(進步)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보수는 국가이익을, 진보는 보편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는 국가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그 사람이 보수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그 충성심은 국방과 납세(納稅)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보수를 자처하면서 국방과 납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닙니다.
진보는 보편적 이념을 중시하는데, 보편적 이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인권, 평등 같은 것들입니다. 진보를 자처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면 진보가 아닙니다.”
―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나라의 진보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어요. 그것은 보수주의자가 국방과 납세에 문제가 있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자기는 투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은 투기를 못 하게 한다든지, 자기는 자식을 자사고나 외고에 보내면서 자사고나 외고를 폐지한다든지 하는 것은 진보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도 없고 진정한 진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내 편 네 편만 있는 거예요.”
― 요즘 2030세대, MZ세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저는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세대 간에 충고하려는 습관을 좀 버렸으면 좋겠어요. 각 세대는 저마다 기술문명을 다르게 접촉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종에 가깝습니다. 각 세대가 세대에 맞게 성장하도록 서로 허용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 지금 젊은 세대는 앞의 세대와 비교할 때, ‘생각하는 능력’이 더 나은 것 같습니까, 아니면 더 떨어지는 것 같습니까.
“자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의지가 이전 세대보다 강한 것을 보면, 요즘 세대가 앞 세대보다 생각하는 능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자기를 독립적 주체로 지키려는 의지, 이것이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 그게 우리 사회의 도약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봅니까.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새말새몸짓운동을 제창했는데, ‘새말새몸짓’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입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갈 때는 있는 길을 따라가는 거지만,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것은 없던 길을 열면서 가는 것입니다. 과거를 모두 헌말헌몸짓으로 규정하고 새말새몸짓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새말새몸짓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제가 계속 강조해온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 정년(停年)을 7년 앞둔 2018년 대학을 나와 새말새몸짓기본학교를 만든 것입니다.”
― 돈이 많이 들 텐데, 도와주는 분들이 있습니까.
“한 달에 1만원씩 내는 소액 기부자들이 500명이고, 고액 기부자들도 있습니다. 더 많은 분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는 없다”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들은 다 잘하지만,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겠다고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가 선도국가가 될 것이냐, 아니냐’를 묻습니다. 정말 주체적이라면 ‘내가 선도국가를 만드는 데 도전할 것이냐, 아니냐’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온 민족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번영시킨 나라입니까? ‘우리가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는 없다.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꿈을 꿔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멀리 퍼지지도 않고 크게 울림도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 단계 더 올라서야겠다는 의지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보다 더 나은 단계는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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