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장기 왕조로, 전한(西漢,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과 후한(東漢, 25년220년)으로 나뉜다. 중간에 왕망(王莽)의 신(新)나라(8~23년)가 존재했으나, 후한 광무제(光武帝)에 의해 다시 부흥되었다. 한나라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정착시키고, 실크로드를 개척하며, 중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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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한(西漢, 전한,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
1. 고조(高祖) 유방(劉邦)
• 재위: 기원전 202년 ~ 195년
• 연호: 없음 (전국 시대 이후 연호 제도가 정착되지 않음)
• 주요 업적:
• 초한전쟁에서 항우(項羽)를 격파하고 한나라 건국.
• 군현제와 봉건제를 혼합한 ‘군국제(郡國制)’ 시행.
• 황로사상(黃老思想) 채택, 법가적 정책 완화.
• 지방 제후 세력 견제.
2. 혜제(惠帝) 유영(劉盈)
• 재위: 기원전 195년 ~ 188년
• 주요 사건:
• 모후 여태후(呂太后)의 섭정 시작.
•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장안성 확장.
• 정치적 실권 부족, 여씨 일족의 권력 강화.
3. 전소제(前少帝) 유공(劉恭) & 후소제(後少帝) 유홍(劉弘)
• 재위: 기원전 188년 ~ 180년 (여태후 섭정기)
• 특징:
• 여씨 정권의 꼭두각시 황제.
• 여씨 일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황제를 제거함.
• 여씨의 난(呂氏之亂)으로 몰락.
4. 문제(文帝) 유항(劉恒)
• 재위: 기원전 180년 ~ 157년
• 연호: 전원(前元), 후원(後元)
• 주요 업적:
• 경제 안정(문경지치, 文景之治).
• 조세 감면, 가혹한 형벌 완화.
• 유학 장려, 도덕 정치 강조.
5. 경제(景帝) 유계(劉啓)
• 재위: 기원전 157년 ~ 141년
• 연호: 중원(中元), 후원(後元)
• 주요 업적:
• 중앙집권 강화, 오초칠국의 난(吳楚七國之亂) 진압.
• 황실과 제후 왕들의 권력 균형 조정.
6. 무제(武帝) 유철(劉徹)
• 재위: 기원전 141년 ~ 87년
• 연호: 건원(建元), 원광(元光), 원삭(元朔) 등 11개 연호.
• 주요 업적:
• 대외 확장: 흉노 격퇴, 위만조선 정복, 남월 정벌, 서역 개척.
• 내정 개혁: 유교를 국교화(동중서 추천), 소금·철 전매제 실시.
• 문화 발전: 사마천의 《사기》 집필 후원.
7. 소제(昭帝) 유불릉(劉弗陵)
• 재위: 기원전 87년 ~ 74년
• 연호: 시원(始元), 원봉(元鳳), 원평(元平)
• 특징:
• 곽광(霍光)의 보좌로 정치 안정.
8. 선제(宣帝) 유순(劉詢)
• 재위: 기원전 74년 ~ 49년
• 연호: 본시(本始), 지절(地節), 원강(元康) 등
• 주요 업적:
• 한나라 전성기 재현.
• 흉노와 화친 정책(호한연합, 胡漢聯合).
9. 원제(元帝) 유석(劉奭)
• 재위: 기원전 49년 ~ 33년
• 연호: 초원(初元), 영광(永光)
• 특징:
• 유교적 이상주의로 국력 약화.
• 환관 세력 성장.
10. 성제(成帝) 유오(劉驁)
• 재위: 기원전 33년 ~ 7년
• 연호: 건시(建始), 하평(河平)
• 주요 사건:
• 외척 왕씨(王莽)의 세력 확대.
11. 애제(哀帝) 유흔(劉欣)
• 재위: 기원전 7년 ~ 1년
• 연호: 건평(建平)
• 특징:
• 동성애자로 유명, 총애하던 동동(董賢)에게 권력 위임.
12. 평제(平帝) 유간(劉衎)
• 재위: 기원전 1년 ~ 기원후 6년
• 연호: 원시(元始)
• 주요 사건:
• 왕망(王莽)의 섭정 시작.
13. 유자영(孺子嬰)
• 재위: 6년 ~ 8년
• 특징:
• 왕망의 꼭두각시 황제.
• 왕망이 한나라를 찬탈하고 신(新) 건국.
Ⅱ. 신(新, 8년~23년)
• 왕망(王莽)
• 주요 정책: 토지 국유화(왕전제), 화폐 개혁 → 실패로 적미군(赤眉軍) 봉기 발생.
Ⅲ. 동한(東漢, 후한, 25년~220년)
1.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
• 재위: 25년 ~ 57년
• 연호: 건무(建武), 중원(中元)
• 주요 업적:
• 후한 부흥(광무중흥).
• 중앙집권 강화, 지방 군벌 숙청.
2. 명제(明帝) 유장(劉莊)
• 재위: 57년 ~ 75년
• 연호: 영평(永平)
• 주요 업적:
• 불교 공인(백마사 건립).
• 반초(班超)의 서역 경영 강화.
3. 장제(章帝) 유달(劉炟)
• 재위: 75년 ~ 88년
• 연호: 건초(建初), 원화(元和), 장화(章和)
• 주요 업적:
• 유교 학문 장려, 《백호통의(白虎通義)》 편찬(경전 해석 통일).
• 서역 경영 지속, 반초(班超) 파견하여 서역 50여 개국 정복.
• 국내 치안 안정, 경제 발전 유지.
4. 화제(和帝) 유조(劉肇)
• 재위: 88년 ~ 105년
• 연호: 영원(永元), 원흥(元興)
• 주요 업적:
• 환관 세력 성장 시작.
• 반초의 서역 경영 강화, 로마(대진국)와 외교 접촉.
• 태학(太學) 발전, 유교 교육 강화.
• 불교 전파 본격화(인도 승려 마등(摩騰)과 축법란(竺法蘭) 입국).
5. 상제(殤帝) 유융(劉隆)
• 재위: 105년 ~ 106년
• 특징:
• 생후 100일에 즉위, 1세 사망(한나라 최단명 황제).
6. 안제(安帝) 유호(劉祜)
• 재위: 106년 ~ 125년
• 연호: 영초(永初), 원초(元初), 영녕(永寧) 등
• 주요 사건:
• 황후의 외척 세력(염씨 일족) 강성.
• 흉노의 침략, 농민 반란(청주 농민 봉기).
• 서역 경영 약화, 국가 재정 악화.
7. 순제(順帝) 유보(劉保)
• 재위: 125년 ~ 144년
• 연호: 영건(永建), 양가(陽嘉), 영화(永和) 등
• 특징:
• 외척 양기(梁冀)의 전횡 시작, 환관 세력 성장.
• 태학 학생들의 정치 개입 증가(유교적 사대부의 정치 참여 확대).
8. 충제(沖帝) 유병(劉炳)
• 재위: 144년 ~ 145년
• 특징:
• 즉위 당시 2세, 1년 만에 사망.
• 외척 양씨(梁氏) 세력이 정권 장악.
9. 질제(質帝) 유찬(劉纘)
• 재위: 145년 ~ 146년
• 주요 사건:
• 외척 양기(梁冀)의 강압적 정치에 반발 → 양기에 의해 독살됨.
10. 환제(桓帝) 유지(劉志)
• 재위: 146년 ~ 168년
• 연호: 건화(建和), 연희(延熹) 등
• 주요 사건:
• 외척 양기의 독재 타도 → 환관 세력 득세.
• 당고의 금(黨錮之禁) 발생(사대부 탄압, 환관 전횡 심화).
• 국가 재정 악화, 천재지변 증가(기근, 홍수).
11. 영제(靈帝) 유굉(劉宏)
• 재위: 168년 ~ 189년
• 연호: 건녕(建寧), 중평(中平) 등
• 주요 사건:
• 환관들이 황제 권력 장악(십상시(十常侍) 부패).
• 184년 황건적의 난 발생 → 후한 쇠퇴 가속화.
• 지방 군벌(동탁, 원소, 조조 등)의 독립적 세력 형성.
12. 소제(少帝) 유변(劉辯)
• 재위: 189년
• 특징:
• 황후 하씨(何氏)의 형제 하진(何進)이 권력 장악.
• 동탁(董卓)이 실권을 장악하고 폐위(유협으로 교체됨).
• 후에 동탁이 암살(왕윤·여포)됨.
13. 헌제(獻帝) 유협(劉協)
• 재위: 189년 ~ 220년
• 연호: 초평(初平), 건안(建安)
• 주요 사건:
• 동탁의 전횡 → 여포의 쿠데타 → 조조(曹操)의 섭정.
• 조조의 세력 확장, 원소·유비·손권과 대립.
• 220년 조비(曹丕)가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위(魏) 건국 → 후한 멸망.
Ⅳ. 한나라의 멸망 원인
1. 외척과 환관의 전횡
• 외척과 환관 세력이 황제를 조종하며 권력 다툼 심화.
• 특히 후한 후기로 갈수록 환관이 권력을 장악하며 부정부패 심화.
2. 군벌 할거(割據) 현상
• 지방 제후들이 황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세력 형성.
• 대표적인 군벌: 조조, 유비, 손권, 원소, 동탁 등.
3. 사회 혼란과 민란 발생
• 황건적의 난(184년) 등 농민 반란 증가.
• 조세 부담 증가, 대토지 소유 확대 → 빈부 격차 심화.
4. 대외 위협 증가
• 흉노, 선비족 등의 지속적인 침략.
• 서역 경영 실패, 변경 방어력 약화.
Ⅴ. 한나라의 유산과 역사적 의미
1. 유교 국가 체제 확립
• 무제(武帝) 때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확립.
• 후대 왕조(당·송·명·청)의 관료제 운영 모델이 됨.
2. 실크로드 개척
• 중국과 서역(로마, 페르시아 등) 간의 교역로 개척.
• 한문화(漢文化)의 서방 전파, 불교 유입 촉진.
3. 과거제(科擧)의 기틀 마련
• 유학 교육과 관료제 시스템 정착.
• 향후 수·당대 과거제 발전의 토대 형성.
4. 중화 정체성 확립
• “한족(漢族)“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됨.
한나라는 중국사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왕조로, 이후 당나라와 명나라 등 주요 왕조들이 한나라의 제도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한(漢)이라는 명칭은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 중국의 주류 민족도 “한족(漢族)“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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