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최보윤 변호사 프로필
최보윤 변호사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직업: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
-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 나이: 1978년생 (현재 46세)
- 고향: 서울
- 경력 :
- 사법연수원(41기) 수료
- 법무법인 태신 변호사
- 성남시 장애인권리증진센터 무료 법률자문 및 소송구조
- 한국척수장애직장인협회 회장
- 법무부 인권정책자문단 자문위원
- 법무부 장애인차별시정심의위 위원
- 수상 : 올해의 장애인상
최보윤 변호사는 교통사고, 의료사고, 산업재해 등의 사건을 주로 다루며,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에도 열정적입니다. 사법연수원 재직 중 의료사고로 인한 장애를 겪은 후, 장애인 법률 구조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장애인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의 경험은 장애인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법적 지원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관련된 후보자 인터뷰를 첨부합니다.
박충권 연구원 프로필
박충권 연구원의 프로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생연도: 1986년
-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 북한
- 학력:
- 평양 김정은국방종합대학교 화학공학 학사
- 서울대학교 재료공학 석사 및 박사
- 경력:
- 북한 대량살상무기연구소 근무
- 서울대학교 재료공학연구소 연구원
-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 (2018년부터)
- 정치 활동:
- 국민의힘 영입인재
- 남북관계 및 한국 소재산업 발전에 관심
-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칼럼 게재
- 정치 입문을 통한 사회 기여 의지 표명
박 연구원은 북한에서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위선을 깨닫고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현대제철에서 자동차 부품소재 연구를 담당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하여 한국의 산업발전과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기업 규제 완화와 노동 시장 개혁을 주장하며, 탈북민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 연구원은 1986년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땐 열심히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공부도 열심히 해 북한에서도 엘리트만 간다는 평양 김정은국방종합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여 졸업 후 북한 대량살상무기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다만 엘리트코스를 달리던 그는 북한의 체제 자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북한의 체제를 알리고 고취시키는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북한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굉장히 깊은 고뇌에 빠졌고 김정일이 직접 쓴 사회주의와 관련한 논문도 2개나 읽으면서 의문을 풀어볼까 했지만, 논문에 담긴 너무나도 많은 오류에 회의감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갔습니다.
회의감은 곧 의심과 분노로 변했습니다. 박 연구원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공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마주했고, 동시에 모든 믿음이 깨졌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24살이란 나이에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벗어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9년 4월 북한이 은하2호 시험발사에 성공한 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빠져나왔고, 중국 단둥을 거쳐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리고 박 연구원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 재료공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8년엔 국내 굴지 대기업인 현대제철에 입사해 연구개발본부에서 자동차 엔진·변속기·파워트레인용 부품소재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현실정치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은 바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었는데, 박 연구원은 국방대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보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자금이 핵무기 개발에 투입되는 사실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고 이 때문에 북한 인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고 북한의 무력은 더 강해졌는데, 이 같은 일이 한국으로 넘어온 다음에도 재발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박 연구원은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칼럼을 한 언론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를 아꼈던 지도교수는 박 연구원에게 절대 눈에 띄는 활동을 않겠다는 각서를 받을 정도로 그의 정치개입을 막았지만 그럼에도 박 연구원의 눈과 마음은 정치로 쏠렸습니다. 그런 상황을 알았던 듯 국민의힘이 적절한 시기에 박 연구원에게 영입제안을 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면서 현실정치에 몸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박 연구원은 "탈북할 때도 '혼자 잘먹고 잘살자'는 생각으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고민 끝에 (정치 입문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명이라면 '정면돌파 해보자. 정치를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 입문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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