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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정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프로필 학력 나이 고향 주요 이력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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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상원(개명 전: 노용래)은 대한민국 육군의 전직 군인으로, 정보 병과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41기) 출신으로 2012년 준장으로 진급한 뒤 정보사령관, 777사령관, 대통령경호실 군사관리관 등 요직을 거쳤다. 하지만 2018년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군에서 불명예 전역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경찰 및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2. 생애

노상원은 1962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불리며 학업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고,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1년 육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보병 병과로 임관했으나, 소령 시절 정보 병과로 전환하여 군 내에서 정보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군 경력 동안 국가정보원 및 청와대 파견 근무를 거쳤으며, 2012년 준장으로 진급한 뒤 2014년 정보사령관에 취임했다. 2016년에는 777사령관을 역임하며 정보 분야에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2018년,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여군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보직 해임 및 구속되었고,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하여 집행유예로 감형받았으나 군을 떠나야 했다.

3. 현역 시절 논란

3.1. 군 내 문제아로 평가

육사 시절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동기들과 잦은 충돌을 벌였으며, 상급자의 명령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소령 시절에는 작전과장으로 근무하던 부대 내에 ‘수암선생실’이라는 개인 공간을 만들어 밀실처럼 운영하면서 동료 장교들과 마찰을 빚었다.

7사단 연대장 시절에는 특정 대대장을 학군(ROTC)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육사 출신 간부들과만 친분을 쌓는 등 권위적인 태도로 부대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상급자들에게도 대놓고 반항하는 등 군 내 하극상을 자주 일으켰으나, 육사 출신 고위 장교들의 비호를 받아 승진했다는 의혹이 있다.

3.2. 여군 성추행 사건

2018년 육군정보학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식당에서 피해자를 강제로 무릎에 앉히고 신체 접촉을 하였으며, 이후 차량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군 내에서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었고, 노 전 사령관은 군인연금 박탈 및 불명예 전역 처분을 받았다.

4. 전역 후 행보

4.1. 무속 활동

전역 후 노상원은 경기 안산에서 무속인과 동거하며 점집을 운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아기보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사주 및 점괘를 봐주는 등 무속인의 길을 걸었다. 또한 군 내 인맥을 이용해 군수품 사업 및 중국제 군용 드론 중개업에도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교류하면서 정치 및 군사적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는 무속 신앙을 기반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운세를 점쳐 계엄령 선포 시기를 조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모의 가담

5.1. 계엄 기획 및 역할

2025년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노상원이 계엄령을 사전 모의하고 실행 계획을 작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그는 정보사령부의 예비역 요원들을 동원해 계엄군을 조직하고, 특정 정치인·언론인·판사·종교인 등을 ‘수거 대상’으로 정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그의 거처에서 압수한 수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 “국회의원, 판사, 언론인, 종교인, 공무원 등 수거 대상”
• “사살, 수용 및 처리 방안 검토”
• “비상 입법기구 구성 논의”

이러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면서, 노상원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5.2. 계엄 모의 장소 및 인맥 활용

노상원은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에서 정보사령부 간부들과 자주 만나 계엄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직접 작성한 계엄 초안이 박안수 계엄사령관의 명의로 배포된 것으로 보이며, 계엄군 배치 및 선거관리위원회 장악 계획 등도 그가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특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의 긴밀한 관계가 확인되었으며, 김 장관이 계엄 준비 과정에서 노상원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5.3. 검거 및 수사 진행

2025년 12월 15일, 노상원은 내란음모 혐의로 긴급체포되었고 18일에 구속되었다. 이후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며, 1월 10일 공식적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주를 보고 계엄 선포 시기를 결정했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또한 경찰 조사 중 수사관들에게 관상을 봐주겠다고 말하며 사주 및 관상을 통해 상대를 분석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6. 기타
• 노상원은 육사 시절부터 권력욕이 강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군인으로서 청와대, 국정원, 군 내 정보기관을 오가며 권력 중심부에 접근하려 했다는 증언이 많다.
• 불명예 전역 이후에도 군 내 인맥을 유지하며 군사 및 정보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 무속 활동과 정치적 행보가 결합된 사례로,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7. 결론

노상원은 군 정보기관 출신으로, 군 내에서 오랜 기간 정보 업무를 담당하며 승진해왔다. 하지만 군 내 문제아로 평가받았으며,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이후 무속인으로 활동하며 윤석열 정부와 연결되었고, 12·3 비상계엄 사태에 깊이 관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현재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이며, 향후 재판 과정에서 그의 역할과 책임이 추가로 밝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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