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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노벨상 받은 일본, 한국은 왜 여전히 먼 길일까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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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 현장에서 일본인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의 수상이 발표되고 있다. 한국은 올해도 과학분야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일본은 이번 수상으로 생리의학상만 통산 6회째를 기록한 반면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아직 0명이다 . 노벨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한국에서는 “왜 우리는 아직도 노벨과학상이 없나”라는 탄식이 반복된다. 과학기술 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이지만, 정작 노벨 과학상의 문턱은 요원하기만 하다. 과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흔히 한국에 과학분야 노벨상이 없는 이유로 “기초과학 연구 역사가 짧다”는 점을 든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19세기 후반부터 과학 연구를 시작했고, 노벨상 수상 연구도 수십 년 전에 나온 것이 많다. 실제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카구치 시몬 교수의 업적도 1990년대 중반에 발표한 면역 조절 T세포 발견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 노벨상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주요 과학상 수상자들은 대체로 핵심 연구를 시작한 지 30년 안팎 후에 상을 받았다고 한다 . 그렇다면 1990년대부터 기초과학 투자를 본격화한 한국도 이제는 결실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을까? 단순히 “우리는 시작이 늦었으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변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한국도 지난 30년간 과학기술 인재를 꾸준히 배출했고 R&D 투자 규모도 세계 최고 수준인데, 노벨상에 가까운 획기적 성과나 유력 후보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뼈아픈 대목이다 . 문제의 원인을 시간 부족 이외에서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연구 성과의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벨과학상은 대개 인류 지식에 근본적 전기를 마련한 발견에 주어지며, 당장의 응용보다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오랜 탐구를 중시한다  . 실제로 2008~2017년 사이 노벨과학상 수상자 78명을 분석한 결과 핵심 연구 착수 후 수상까지 평균 31.2년이 걸렸다는 조사도 있다 . 한국처럼 단기 성과 압박이 큰 환경에서는 이러한 장기 연구의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과학자 1호’로 불리는 신희섭 박사(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위원)는 “중요한 질문일수록 답을 찾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더 많은 성과를 내려면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긴 호흡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환경의 문제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일본이 선두인 연구 수준, 한국은 격차 크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제인 ‘말초 면역 관용’(Regulatory T Cell에 의한 자가면역 억제) 분야만 보더라도, 오랜 기간 미국과 일본이 학계의 선두를 달려온 영역이다. 수상자들이 1990~2000년대에 발표한 일련의 발견들은 면역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2012년 생리의학상 수상)는 이번에 상을 받은 사카구치 교수에 대해 “면역학에서 상식을 뒤집어 자가면역질환, 암, 장기이식 등 의학 전반에 폭넓게 공헌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 그만큼 이 분야의 지식 패러다임을 바꿀 연구가 미국과 일본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도 연구나 핵심 네트워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의 면역학자들이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업적을 내고는 있으나,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질 정도로 학계 지형을 바꾸는 발견을 했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아직 없다.

이 격차는 비단 면역학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벨 과학상은 종종 여러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와 국제적 검증을 거쳐 가치를 인정받는다 . 다시 말해, 한 나라 연구자가 탁월한 발견을 하더라도 전 세계 동료 과학자들의 공감과 확장을 끌어낼 때 비로소 노벨상으로 결실 맺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 일본은 국내 연구 인프라 안에서 이런 국제적 파급력을 지닌 성과를 꾸준히 내왔다.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일본 국내파임에도, 해당 연구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글로벌 표준 지식이 된 경우가 많다 . 예컨대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는 스승인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가 시작한 중성미자 연구를 이어받아 성과를 냈는데, 이 연구는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주목하는 분야였다 . 일본 학계 특유의 도제식 연구 계승 문화는 국내에 머무르는 단점도 있지만, 한 우물을 깊게 파며 세대를 넘어 연구를 지속하게 함으로써 제한된 자원으로도 세계적인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

한국은 이와 대조적으로 국제 연구 네트워크에서의 입지가 약하다. 우수 연구자의 상당수가 해외 유학이나 외국 기관 근무 경력을 갖지만, 정작 국내에 돌아와서는 세계 흐름과 단절된 채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학·출연연마다 개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세대 간 지식 축적의 연속성이 부족하여,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들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사례가 드물다  . 신동아가 꼽은 한국 노벨과학상 부진의 원인 중 하나도 “국제 네트워크 구축 미흡”이다 . 결국 연구 수준의 절대치와 글로벌 연결성에서 아직 한국은 미·일 선도 그룹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노벨상의 영예 역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약진… 한국보다 먼저 노벨상 받을 가능성 높아


이런 사이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미 중국은 과학 논문 수와 특허 출원 등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올라섰고, R&D 투자 규모에서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다. 2023년 중국의 전체 연구개발 투자액은 약 3조3천억 위안(한화 약 600조 원)에 달해 전년 대비 8.4% 증가했다 .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기초연구 투자의 가파른 증가세다. 2023년 중국의 기초과학 연구비는 전년보다 11.6% 늘어나 전체 R&D의 6.77%로 역대 최고 비중을 기록했다 . 기업 주도의 응용연구뿐 아니라 정부와 대학이 순수 기초연구에 적극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 강도(GDP 대비 비율)도 2.65%로 OECD 평균에 근접해가고 있어, 중국 정부의 과학굴기(科學崛起)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이미 몇몇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屠呦呦) 연구원은 중의학의 산물인 말라리아 치료제를 발견해 중국 본토 출신으로는 첫 과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 이외에도 화학상과 물리학상 분야에서 중국계 학자가 여럿 상을 받았는데, 이들 상당수는 미국 등에서 연구한 해외파 과학자들이다 .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본토의 연구자들도 노벨상 후보군으로 거론될 만큼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예측으로 유명한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2025년 ‘인용상’ 명단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 기관 소속 과학자가 포함되어 화제가 되었다 . 이는 “과학계에서 커지는 중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다 .

중국의 이 같은 약진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가 명확한 장기 전략 아래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해외 우수인재 유치와 첨단 연구시설 구축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대표적으로 천인계획으로 불리는 인재 영입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난 과학자들을 모셔오고, 첨단 분야 국가프로젝트에 막대한 자원을 집중 투입해왔다. 그 결과 양적 성과뿐 아니라 질적 수준에서도 일부 분야는 세계 선두에 근접하고 있다. 한 예로, 양자통신·AI·신약개발 등 첨단 분야 논문에서 중국발(發) 연구가 두각을 나타내고,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도 중국 기관 소속 연구진 논문이 다수 실리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노벨과학상은 중국이 한국보다 먼저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 수치로 보더라도 중국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누적 6명을 배출한 반면 한국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 연구역량의 저변과 국가적 지원에서 앞서가는 중국이 다음 노벨상 동아시아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한국보다 높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대 쏠림’·‘예산 부족’은 한국의 잔형적 본질 흐리기식 핑계


한국 과학계의 부진 요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있다. 바로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과 기초과학 예산 부족 문제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의학계열로 몰리고, 정작 순수과학 분야 인재 풀이 얕아지는 현상이 연구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 자연계 수석=물리학과 진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공계 기초학문 선호도가 높았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전국 수능 상위권의 선택이 거의 모두 의대로 향했다 . 한 조사에 따르면 1990년까지 서울대 자연대 최상위 학과는 물리학과였지만, 지금은 상위 석차 5개가 모두 의대일 정도다 . 또 의사가 받는 보수와 사회적 지위가 워낙 높다 보니, 애초에 과학자를 꿈꾸던 영재들조차 미래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의학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 이렇듯 젊은 인재 풀의 축소는 한국 연구계의 잠재력을 깎아먹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일본 역시 우수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 선호 현상이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 입시 경쟁이 치열한 교육 문화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은 과학계에 뛰어난 인재들이 유입되어 세계적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차이는 대학 진학 후의 연구환경과 문화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 대학들은 학부 4학년 때부터 연구실에 배정되어 실제 연구 프로젝트와 논문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반면 한국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느라, 학부 연구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 또 과학고·영재고를 나와도 의대로 빠지는 학생이 일본이나 서구에 비해 유독 많은 현상 뒤에는,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인식의 문제가 깔려 있다. 실제 국내 박사급 인재 상당수가 더 나은 대우를 찾아 해외로 유출되고 있고, 최근 10년간 해외로 떠난 이공계 인재가 3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 “과학기술계로 가봤자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의대 쏠림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한편 “한국은 기초과학 연구예산이 적다”는 불만도 흔하다. 그러나 따져보면 한국의 R&D 지출 규모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이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 정부도 기초연구 예산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문제는 지원의 절대량보다는 방향과 지속성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한국이 R&D에 GDP 대비 세계 최고 비중을 투자하지만, 응용 연구偏重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 즉 돈이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응용기술 개발 쪽으로 치우친 투자관행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 R&D 사업들을 보면 당장 산업화나 상용화가 보이는 과제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성과가 불확실한 기초과학이나 장기 연구는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책의 일관성 문제도 제기된다.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정부가 유행처럼 특정 분야에 ‘한방향 몰아주기 투자’를 하는 바람에 다른 중요한 기초 연구 예산은 축소되는 일이 반복됐다. 네이처 역시 알파고 사건으로 AI에 열풍이 불자 한국 정부가 “2020년까지 AI에 1조 투자”를 선언했던 사례를 들며, 시류에 흔들리는 과학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

결국 의대 쏠림이나 예산 부족 같은 표면적 원인만으로는 한국 과학의 부진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문제를 겪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구조와 문화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학문보단 입시·취업, 창의성보단 순응 강조하는 문화


한국 사회의 교육 문화와 학문의식 결여는 노벨상과 거리가 먼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지목된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질주하는 입시 경쟁, 대학교육마저 취업 준비 과정처럼 여기는 풍조 속에서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탐구심이 자랄 토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본 언론이 분석한 바와 같이, 노벨상을 받은 일본 학자들 중에는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주제를 파고든 괴짜들이 많았다  . 아사히신문은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아무도 관심 없는 것에 대한 헤소마가리(へそ曲がり, 외골수) 개척심”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 한 분야에 미친 듯 몰두하는 오타쿠 기질, 남들이 쓸데없다 여기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 집요함이 혁신적 발견으로 꽃피운 사례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우리 교육은 어려서부터 정해진 답을 얼마나 빠르게 정확히 외워내는지를 경쟁시킨다. 실험실에서 직접 부딪치며 시행착오를 겪는 교육은 뒷전이고, 교과서 지식을 암기해 시험 잘 보는 법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대학까지 올라온다 . 한 과학기술 매체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중고교의 과학시간에는 제대로 된 실험 한번 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이렇다 보니 호기심을 탐색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경험이 결여된 채, 정답만 찾는 훈련이 주를 이루었다. 대학에 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학부 4년 동안 연구나 논문 작성보다는 취업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졸업논문은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모험심보다는, 스펙 관리와 안정된 진로 탐색이 우선인 분위기에서는 창의적 발상이 싹트기 어렵다.

연구실 문화 역시 새로운 도전보다는 안전한 성과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분야에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끝까지 파고들도록 인내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일본이 노벨상을 다수 배출한 비결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이다. 그는 대학원 학위도 없고 학부 시절에도 평범한 성적이었지만, 중소기업 시마즈제작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200번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우연한 계기를 포착, 이를 살려내어 세계 최초의 단백질 질량분석법을 개발했다 . 조직에서 그의 실패를 질책하거나 중단시키지 않고, 개성대로 탐구하도록 존중해준 덕분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는 평가다  . 반면 한국은 변화를 빠르게 좇고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연구 지원이 끊기기 일쑤다 . 연구자들도 단기간에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모험적인 주제보다는 안전한 주제를 선호하게 된다 . 한 연구자는 이를 두고 “한국의 연구 풍토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는 배경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 효율과 성과 위주의 풍토는 가끔은 단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원천기술 개발로 이어지지 않아 한계에 부딪힌다는 지적도 있다 .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은 계층적·획일적 조직문화다.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순응주의 정서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의 싹을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교수와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에 권위적인 분위기가 강한 연구실에서는 기존 가설에 이의 제기를 하거나 튀는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도제식 연구 풍토는 수직적 계승이 강하지만, 한편으로 제자가 스승의 연구를 발전시키며 같은 목표 아래 세대간 연속성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었다  . 한국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오래 연구하는 문화보다는 교수 개인이 각자 자기 프로젝트를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 그러다 보니 연구 주제도 유행에 따라 여기저기 단발적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고, 한 우물을 깊이 파면서 집요하게 축적되는 지식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벨상급 연구는 대개 한 분야를 평생 천착한 끝에 얻어지는데, 한국의 연구문화는 이러한 외골수 괴짜를 양성하기에 녹록치 않은 구조인 셈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태어나는 인재풀의 총량은 중국, 일본에 비해 적고 과거 위대한 학자를 어느나라가 더 많이 배출했는지를 고려한디면 한국인의 타고난 천재가 적은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태어나는 수준의 천재라면 한국의 입시 문화를 핑계삼지 않고도 미국에서 충분히 학문적 위상을 꽃피웠을 것이고 그게 실제로 많은 사례로 드러난다.

노벨상은 결과일 뿐…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답 없다


종합해보면, 한국이 과학분야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문화적 요인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장기 투자 부재, 안전지향적인 연구 환경, 젊은 인재 유출과 의대 쏠림, 교육 단계의 창의성 억압, 연구 공동체의 단절과 취약한 국제화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 모든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우수 인재가 부족하니 세계적 연구 성과가 나오기 어렵고, 세계적 성과가 없으니 과학자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지 못해 다시 인재 유입이 줄어드는 식이다. 또한 단기 업적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오랜 시간 몰입해야 할 대형 연구과제는 기획조차 되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획기적 발견이 싹틀 토양이 더욱 척박해진다. 이렇듯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의 노벨과학상 꿈은 앞으로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굳이 노벨상을 타야만 과학 선진국인가”라는 반론도 있다. 물론 노벨상 수상 여부가 절대적 척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이 한 국가의 기초과학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임은 분명하다 . 한국이 GDP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과학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현실은 우리 과학역량의 구조적 빈틈을 드러낸다. 일본은 비록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이제 별 볼 일 없다는 평가를 한국에서 받기도 하지만, 과학기술 인프라와 축적된 저력만큼은 막강하여 여전히 노벨상을 배출하고 있다 .일본이 100년 넘게 쌓아온 과학의 힘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제 규모에 걸맞은 학술적 성취를 이루었는가 돌아볼 때다.

결국 노벨상의 영예는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뿐, 그 자체를 목표로 쫓는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6년 한국을 찾은 일본 이화학연구소(理化学研究所) 마쓰모토 히로시 이사장은 “한국이 진정 노벨상을 원한다면 오히려 그 누구도 노벨상을 노리고 연구해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하는 학문 환경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일 자체가 곧 과학 강국으로 가는 길이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지원 속에 마음껏 연구에 몰두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기발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 그 긴 여정의 완성으로서 노벨상의 소식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제 노벨상 수상 그 자체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학문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눈을 돌릴 때다. 빈자리로 남겨둔 노벨상 흉상을 우리 손으로 채우는 길은, 그 터전을 마련하는 노력에서만 비로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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