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화량 논쟁 뒤에 숨은 ‘부채 기준’의 문제
최근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이 직접 나서 “돈 풀어서 환율이 오른다는 주장은 경제를 모르는 말”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핵심 주장은 명확하다.
① M2 증가율은 과도하지 않다.
② RP 매입은 착시다.
③ 금리차와 성장률 격차로는 최근 환율 상승을 설명할 수 없다.
④ 진짜 원인은 해외증권투자 확대에 따른 외환 수급이다.
팩트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M2 증가율은 코로나 시기 10%대 중반에서 최근 4~5% 수준으로 내려와 있고, RP 거래를 누적 합산해 “수백 조를 풀었다”고 말하는 것은 중앙은행 운영 구조를 오해한 주장에 가깝다. 환율 역시 금리차가 줄어드는 와중에 상승했으니, 단순한 통화량–환율 연결은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설명이 ‘맞는 말만 골라 한 설명’이라는 점이다.
통화량 논쟁에서 빠진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는 무엇을 부채로 계산하고 있는가”, 그리고 시장은 그 부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다.
통화량은 안정적인데, 왜 환율은 불안할까
한국은행의 논리는 전통적인 중앙은행 교과서에 충실하다.
통화량 → 물가 → 환율이라는 경로에서 보면, 지금 한국은 통화량도, 물가도 통제 범위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보다 낮고, 통화 증가율도 역사적 평균보다 낮다.
그런데 시장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미래 지급 능력은 괜찮은가?”
환율은 단순히 현재의 통화량을 반영하지 않는다. 환율은 국가의 미래 재정 부담과 그 부담이 통화로 전가될 가능성을 가격에 미리 반영하는 지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통계는 일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부채를 세는 방식부터 다르다
국제적으로 국가 재정을 비교할 때 표준은 일반정부부채(GG Debt)다.
이 기준은 중앙정부·지방정부뿐 아니라 사회보장기금, 그리고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는 비시장 공공기관까지 포함한다. OECD, IMF, EU가 공통으로 쓰는 기준이다.
여기서 차이가 갈린다.
일본은 이 기준을 이미 적용하고 있다.
일본의 부채비율이 GDP 대비 260%를 넘는다는 숫자에는, 지방정부와 사회보장뿐 아니라 상당수 공공기관 부채가 이미 들어가 있다. 일본은 부채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다 올려놓고 시작한 나라”에 가깝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국가채무(D1)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중앙·지방정부 부채만 공식 국가채무로 제시하고, 한전·가스공사·LH 같은 공기업 부채는 ‘공공기관 경영 문제’로 분리한다. 통계상으로는 국가부채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이들 기관은 정부가 100% 지분을 갖거나 사실상 통제하고 있고, 요금·공급·정책 목표에 따라 수익 구조가 결정된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부채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이미 일반정부 영역에 들어가는 부채다.
동일한 기준으로 다시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
기준을 통일해 보자.
• 일본:
• 국가채무 ≒ 일반정부부채
• 이미 대부분 산입
• 높지만 투명
• 한국:
• 공식 국가채무 약 50%대
• 공공기관 부채 포함 시 85~95% 수준
• 연금·보증까지 감안하면 100% 이상 잠재
즉, 한국의 문제는 “부채가 일본보다 많다”가 아니다.
문제는 아직 다 안 올려놓은 상태라는 점이다.
시장은 숫자보다 전가 가능성을 본다.
공공기관 부채가 결국 요금 인상, 재정 지원, 국채 발행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국가 리스크다.
왜 일본은 버티고, 한국은 환율에 흔들릴까
여기서 흔히 나오는 반론이 있다.
“일본은 부채가 260%인데 왜 괜찮냐”
답은 단순하다.
1. 일본은 부채를 엔화로 조달하고
2. 일본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 중앙은행과 연기금이 보유하며
3. 부채 구조가 이미 시장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엔화는 위기 때 오히려 강해진다.
엔화는 준기축통화이고, 위험 회피 통화로 기능한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 원화는 로컬 통화
• 외국인 자금 비중 높음
• 공공부채 상당 부분이 장부 밖에 있음
이 구조에서 부채가 늘어나면, 시장은 이렇게 반응한다.
“아직 안 보이지만,
언젠가 원화로 처리될 비용”
그래서 환율이 먼저 움직인다.
환율은 경고등이다.
한은의 설명이 불완전한 이유
한국은행의 설명은 단기 유동성 관리라는 관점에서는 맞다.
M2, RP, 기준금리만 보면 통화정책은 비교적 보수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환율이 반응하는 영역은 그 바깥이다.
• 공공기관 부채의 누적
• 요금 억제 정책의 미래 비용
• 연금·복지 지출의 구조적 증가
• 정치적 재정 확장 압력
이 모든 것이 통화량 통계에는 안 잡히지만,
환율에는 잡힌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안 풀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환율이 오를 이유가 없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론: 환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 통화량은 과도하지 않다 → 맞다
• RP로 수백 조를 풀었다 → 틀리다
• 금리차만으로 환율을 설명할 수 없다 → 맞다
그러나 동시에,
• 공공부채를 어디까지 국가부채로 볼 것인가
• 그 부담이 통화로 전가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빠져 있다.
환율은 단순한 투기 결과가 아니다.
환율은 국가 재정 구조에 대한 시장의 종합 평가다.
일본은 “이미 다 드러난 부채”의 나라이고
한국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부채”의 나라다.
그래서 일본은 부채 260%에도 버티고,
한국은 부채 50%에서도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통화량 논쟁은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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