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핀테크 거인, 한국 금융 생태계를 두드리다
지난 2025년 8월, 대한민국 금융과 기술 산업의 심장부에 전례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2인자이자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기업 서클(Circle)의 히스 타버트(Heath Tarbert) 총괄 사장이 직접 방한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장 시찰이나 관계 구축 차원의 방문이라기에는 그의 행보가 매우 치밀하고 전략적이었다. 해시드, 두나무, 코인원 등 국내 최고 가상자산 기업들은 물론, 카카오페이와 같은 거대 핀테크 기업, 나아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과의 연쇄 회동은 서클이 한국 시장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인 진출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번 방한은 서클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USDC(유에스디코인)'와 블록체인 국제결제망 'CPN(Circle Payment Network)'을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다층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미 지난 5월 하나은행과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전통 금융'과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던 서클은, 이번 방문을 통해 '디지털 자산', '핀테크', 그리고 '전통 금융'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공략하며 한국 금융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글은 서클의 이번 방한이 한국 금융 시장에 던지는 함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앞으로 펼쳐질 변화의 풍경을 전망하고자 한다.
1. 블록체인 벤처 생태계의 핵심을 꿰뚫는 '해시드'와의 연대
타버트 사장의 첫 공식 일정은 국내 대표 블록체인 벤처캐피털(VC)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와의 단독 회동이었다. 이 만남은 단순히 투자 논의를 넘어선 전략적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클은 해시드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블록체인 벤처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잠재력 있는 파트너사를 발굴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논의의 핵심 투자 대상으로 거론된 '한국디지털에셋(KODA)'은 주목할 만하다.
KODA는 국내 최초의 기관투자자 대상 디지털자산 수탁(Custody) 기업으로, 해시드, KB국민은행, 해치랩스가 공동 설립했다.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수탁 서비스는 '신뢰'와 '보안'의 핵심 인프라다. 기관투자자나 기업이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수탁 기업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해시드는 KODA에 대한 지분율을 지난해 말 21.27%에서 1년 만에 31.84%로 10%P 이상 끌어올리며 앵커 투자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했다. 여기에 서클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경우, KODA는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서클의 USDC가 한국 내 기관 투자자들에게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서클 입장에서 KODA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이익을 넘어선다. 이는 USDC의 한국 시장 내 유동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기관 투자자들이 USDC를 채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수탁 솔루션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한국 시장에서 규제 당국과 금융 기관에 '안전하고 책임 있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2. 가상자산 거래소와 핀테크 거인들을 아우르는 '통합적 협력' 전략
타버트 사장은 가상자산 업계의 두 축인 두나무(업비트 운영사)와 코인원, 그리고 핀테크 업계의 거인인 카카오페이와도 잇따라 접촉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막대한 사용자 기반과 자금의 흐름을 통제하는 '결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의 협력 논의는 여러 가능성을 내포한다. 현재 업비트에는 USDC가 원화 마켓에 상장되어 있지 않다. 서클은 USDC를 업비트 원화 마켓에 상장시켜 한국 내 유동성을 극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했을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상장을 넘어, USDC를 활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모델이나 결제 시스템을 공동으로 구축하는 방안도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업비트 사용자들이 USDC를 해외 송금이나 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연동하는 형태다.
국내 3위 거래소 코인원과의 별도 면담 또한 유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다수의 거래소에 USDC가 상장될수록 유동성은 더욱 풍부해지고, 이는 시장 전반의 안정성과 활용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장 흥미로운 접점은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와의 만남이다. 카카오페이는 5천만 명에 육박하는 카카오톡 이용자 기반을 바탕으로 한국 내에서 독보적인 결제 및 금융 플랫폼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서클은 카카오페이의 방대한 결제 네트워크에 'USDC'를 결합하는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 송금'이나 '디지털 자산 결제 인프라' 구축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기존의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망을 거치는 복잡하고 느린 해외 송금 방식 대신, USDC를 통해 실시간에 가깝고 저렴하게 송금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새로운 핀테크 혁신을 이끌어낼 잠재력을 갖고 있다.
3. '전통 금융'과의 접점 확장: CPN과 USDC의 역할론
이번 방문에서 가장 전략적 의미가 큰 일정은 단연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과의 연쇄 면담이다. 서클은 이미 지난 5월 하나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디지털 자산 기반의 금융 혁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이번 만남은 그 협력의 범위를 확장하고 구체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서클은 단순히 홍보나 관계 구축을 넘어, 자사가 야심 차게 선보인 블록체인 국제결제망 'CPN(Circle Payment Network)'의 한국 내 참여 기반을 마련하려 했다. CPN은 전 세계 금융 기관들이 USDC를 활용해 실시간에 가깝게 저렴하고 투명하게 자금을 이체하고 결제할 수 있도록 설계된 네트워크다.
서클의 시중은행 공략은 '협력'을 통한 '시장 확대'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 서클은 은행의 경쟁자가 아니라, 은행이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은행 입장에서 CPN과 USDC는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첫째, 기존 국제 송금망 대비 훨씬 저렴하고 신속한 해외 송금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수수료 절감과 고객 편의 증진으로 이어진다.
둘째, USDC를 활용한 기업 간(B2B) 결제, 무역 금융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자산 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기술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서클은 전통 금융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USDC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 한다. 한국의 규제 환경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공식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중은행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서클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고, 은행을 통한 시장 진입을 가장 확실한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4. 한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 규제와 혁신 사이의 균형
이번 서클의 방한은 한국 시장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IT 인프라와 높은 디지털 금융 수용성, 그리고 막대한 규모의 가상자산 거래량을 자랑한다. 또한, 정부가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칭)' 제정 등 구체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서클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 있다.
서클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국내 사업 전반을 담당할 인력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제휴를 넘어, 한국에 물리적인 거점을 마련하고 현지화 전략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서클의 한국 진출에는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가 놓여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다. 금융당국은 디지털 자산 시장의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USDC와 같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한국에서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금세탁방지(AML) 등 엄격한 규제 준수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정부의 정책 방향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테더(USDT)가 약 67%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서클(약 26%)은 꾸준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거나, 향후 한국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경우, 시장의 경쟁 구도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결론: 한국 금융의 미래를 재편할 거대한 파동의 시작
서클의 히스 타버트 사장 방한은 한국 금융의 미래를 재편할 거대한 파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서클은 단순한 '코인' 발행사가 아닌, 전통 금융과 신생 핀테크를 연결하는 '인프라'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번 방한은 그들이 한국 시장에서 '디지털 결제 허브'이자 '국제 송금의 새로운 표준'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서클이 해시드를 통해 안정적인 수탁 인프라를 확보하고, 두나무·코인원을 통해 유동성을 극대화하며, 카카오페이를 통해 대중적 결제 채널을 확보하고, 나아가 시중은행과의 협력을 통해 전통 금융 시스템에 깊숙이 파고드는 이 전략은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이다.
만약 이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한국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및 블록체인 기반 금융의 주요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또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디지털 자산 시대에 대한 대비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클의 행보가 단순한 비즈니스 성과를 넘어, 한국 금융 시장 전체에 새로운 혁신의 불꽃을 지피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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