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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산업

아담 스미스의 생애와 사상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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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의 생애 개요


**아담 스미스(1723~1790)**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커코디(Kirkcaldy)**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을 보였으며, 14세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해 도덕철학을 공부했습니다 . 이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지만 교육 수준에 실망하여 일찍 떠나왔고 , 에든버러에서 공개 강연을 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1751년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논리학과 도덕철학을 가르치는 한편, 절친한 친구 데이비드 흄 등 당대 계몽사상가들과 교류하며 지적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

스미스는 **1759년에 첫 저서 『도덕 감정론』**을 출간하여 학자로서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 1764년에는 더 나은 경제적 보수를 위해 교수직을 사임하고 부유한 귀족 청년의 가정교사로서 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이 경험이 그의 사상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 10여 년간 고향에 머물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끝에, **1776년에 야심작 『국부론』**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 『국부론』의 성공으로 그는 당대에 크게 존경받는 학자가 되었고, 1778년에는 조세행정 관직인 스코틀랜드 관세청 감사위원에 임명되어 에딘버러에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 스미스는 1790년 평생 미혼으로 지내다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대부분의 미발표 원고를 소각시켰지만 학문적 유산은 후대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도덕 감정론』의 주요 사상과 개념

1759년 출간된 **『도덕 감정론』**에서 스미스는 인간의 도덕심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도덕 판단의 기초로 **“공감(共感)”**을 강조했는데, 이를 통해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에 함께 느끼고 반응하는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설명했습니다 . 스미스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상상적 교감을 통해 선악과 공정에 대한 감정을 형성합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고립된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공명할 줄 아는 존재이므로, 자기 이익만을 좇는 욕망도 자연스럽게 절제된다는 것입니다 .

스미스는 특히 인간 내면에 자리한 “도덕 감시자”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중립적 관찰자)**로서 우리 행동을 지켜보는 양심의 목소리입니다 .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이 가상의 심판자의 시선으로 자기 행동을 평가하고, 부끄러움이나 자부심을 느끼며 도덕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스미스는 이를 두고 “가슴속의 동거인”, “우리 행위의 재판관” 등의 표현을 썼는데 , 이 내면의 감시자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지나친 이기심에 빠지지 않고 자기 행동을 조절하며,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행복 간 균형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요컨대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으며, 개인의 도덕은 이러한 공감 능력과 내면의 감시자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 『도덕 감정론』의 핵심 사상입니다 .

유럽 여행과 프랑수아 케네의 영향

1764년부터 약 2년간 스미스는 제자인 부클루 공작과 함께 유럽 대륙 여행을 했으며, 이 시기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당대 주요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철학자 볼테르를 만났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과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 특히 파리에서는 **경제 사상계의 새로운 흐름이던 “중농주의(Physiocracy)”**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프랑수아 케네와 튀르고(Anne Turgot) 등 중농학파 인사들과 깊이 있는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 스미스는 **케네가 고안한 ‘경제표(經濟表, Tableau Économique)’**에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도식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국민경제의 순환 구조를 최초로 체계화한 것이었습니다. 경제표는 토지 소유자, 농업 생산자, 기타 산업계층 간의 부(富)의 흐름을 “지그재그” 도식으로 보여주며 국가 경제를 하나의 유기적 순환계로 파악했는데, 이는 경제를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중농주의자들은 당시 지배적이던 **중상주의(mercantilism)**를 강하게 비판하며 **“자연질서에 맡겨 두라(laissez-faire)”**는 좌우명 아래 자유방임 경제를 옹호했습니다 . 스미스는 이들의 사상에서 큰 영감을 받아 시장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중농학파의 학설은 완전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경제이론 중 진리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라고 평할 정도로  케네와 그 동료들의 작업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비록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과 달리 농업뿐 아니라 제조업과 무역도 부를 창출한다고 보았지만, 자유무역과 정부 불간섭, 그리고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 등의 개념은 『국부론』 체계에 흡수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럽 여행에서 얻은 사상적 자극은 스미스가 자신만의 경제체계를 구상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초기 관찰과 분업의 통찰

스미스는 산업혁명이 막 태동하던 18세기 중엽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면서 경제 발전의 실체를 체감했습니다. 특히 그가 공장 생산 현장에서 목격한 경험은 『국부론』의 중요한 통찰로 이어졌습니다. 유명한 예로, 스미스는 한 핀(pin) 공장을 방문한 일을 묘사하는데, 핀 제조과정을 여러 작업자들이 나누어 맡은 결과 놀라운 생산성 향상이 나타났습니다 . 열 명 남짓한 노동자가 18가지 세분된 작업을 분담하자 하루에 약 4만8천 개의 핀을 만들어냈지만, 각자가 모든 공정을 혼자 수행했다면 한 사람당 하루에 고작 한두 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 이 일화는 분업(分業)의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며, 전문화된 노동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킨다는 스미스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현장 관찰을 통해 스미스는 분업이야말로 부의 증진을 이끄는 핵심 동인임을 깨달았습니다. 노동을 세분화하면 숙련도 향상과 시간 절약, 기술 혁신이 촉진되어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예를 들어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무역이 확대될수록) 분업의 범위도 넓어져 더 많은 생산 증대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훗날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어 대량생산 체제가 자리잡는 과정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되며, 경제성장의 원천을 기술이나 자본보다 “노동의 조직 방식”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요컨대, 스미스는 산업혁명 초기의 사회 변화를 지켜보며 분업과 전문화가 가져오는 부 창출의 비밀을 간파했고, 이를 『국부론』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습니다.

『국부론』의 주요 내용

1776년에 출간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은 스미스의 대표작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저작입니다. 이 책에서 스미스는 **한 국가의 부(富)**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고 증대되는지를 해명하며, 당시 통념이었던 금은보화의 축적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야말로 국부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부론』의 방대한 내용 중 핵심 개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동 가치설: 스미스는 노동이 상품 가치의 근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어떤 재화의 가치란 그것을 통해 구매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노동의 양에 달려 있다. 따라서 노동이야말로 모든 상품 교환가치의 실제 척도다”라고 언급하며 , 노동이 부를 창출하는 본원적 요소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사회의 부유함은 금이나 화폐의 보유량이 아니라, 그 사회가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으로 결정되며, 이는 곧 유효노동의 양과 생산성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 이러한 통찰로 스미스는 당시 생산 활동을 경시하고 무역 흑자만 중시하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 보이지 않는 손: 스미스의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입니다. 그는 시장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한다고 보았습니다 . 예컨대 푸줏간 주인이나 제빵사가 자선심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고기와 빵을 팔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식사를 해결하고 사회에 재화가 공급됩니다 . 이처럼 사적 이익과 공익의 조화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스미스는 이러한 조화가 가능하려면 가격이 자유롭게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다시 그 가격 신호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절되는 시장 자율 조정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입니다 . 반대로 가격이 왜곡되면 시장질서가 흔들리므로, 스미스는 독과점이나 담합처럼 가격을 인위로 올리는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 실제로 그는 “동업자들이 서로 만날 때마다 담합으로 공중에게 해를 끼우는 일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며, 사업자들의 담합이 사회에 해롭다고 비판했습니다 . 결국 경쟁적 시장에서는 각 개인의 이기심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가져와 전체 부를 늘리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경쟁과 가격기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스미스의 주장입니다.
• 시장의 자율 조절 기능: 스미스는 정부의 간섭이 최소화된 자유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여 경제를 자동조절한다고 보았습니다 .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이는 생산자에게 생산 확대의 신호가 되어 공급이 늘고, 반대로 과잉 공급 시 가격 하락은 생산 축소를 유도하여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 가격 메커니즘은 개별 행위자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질서로서, 중앙에서 명령하지 않아도 경제가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로 제시되었습니다. 스미스는 국가가 생산과 가격을 일일이 통제하려 들면 오히려 비효율과 부패가 생긴다고 보고, **각자가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때 “만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운행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그러나 이것이 정부의 완전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미스는 시장 실패나 공공재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정부의 역할도 인정했습니다. 다만 국방, 치안과 사법, 공공시설처럼 민간이 이윤을 추구하기 어려운 분야에 국한하여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

요약하면,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생산적 노동을 통해 부가 창출되고, 자유로운 시장 거래를 통해 부가 증진되며, 경쟁과 가격기구에 의해 경제가 조정된다는 일련의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그는 당대 경제질서를 지배하던 **중상주의 정책(무역 제한, 길드 독점 등)**을 비판하고 자유무역과 경쟁 촉진을 옹호함으로써, 근대 시장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놓았습니다 . 이러한 사상은 훗날 고전파 경제학으로 계승되어 산업혁명기 자본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의 철학적 연속성 및 자본주의에 대한 통합적 이해

스미스의 두 저작,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은 표면적으로 주제와 어조가 다르지만 철학적으로 긴밀한 연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전자에서 그는 도덕철학자로서 인간의 공감과 양심을 논하고, 후자에서 경제학자로서 시장의 원리를 논했으나, 두 책 모두 인간 행위의 동기와 질서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미스 본인은 경제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분리하지 않았으며, 글래스고 대학에서 자연신학-윤리학-법학-정치경제학을 모두 아우르는 강의를 통해 도덕철학과 경제를 하나의 체계 속에 결합시키려 했습니다 . 이는 그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합적 이해, 즉 도덕적 질서와 경제적 질서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세기 이후 일부 학자들은 **스미스의 이른바 “아담 스미스의 역설”**을 거론하며, 『도덕 감정론』의 이타적 공감과 『국부론』의 이기적 자기이익 추구가 모순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오늘날에는 두 책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도덕 감정론』에서 제시된 공감과 공정한 관찰자의 개념은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한 도덕적 전제조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스미스는 시장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도덕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순전히 탐욕적 존재가 아니며, 양심(중립적 관찰자)의 작용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남과 협력하는 성향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 이러한 인간관 위에서야 자유로운 거래가 신뢰 속에 이루어지고,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전체적인 사회 번영으로 이어지는 시장 질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 스미스는 **도덕적 규범(정의, 신의 등)**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시장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도덕과 경제를 별개가 아닌 한 체계로 이해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정의가 파괴되는 순간, 인간 사회라는 거대한 구축물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라고까지 말하며, 정의롭고 도덕적인 환경이 경제 발전의 근본 토대임을 역설했습니다. 결국 『도덕 감정론』의 인간상과 가치관이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배경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스미스 사상의 전반을 보면, 도덕철학과 경제이론이 통합되어 자본주의를 도덕적 질서 위에서 이해하려 한 그의 지적 야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사상의 오해와 진정한 의도

스미스에 대한 평범한 인식 중에는 몇 가지 오해가 존재합니다. 흔히 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을 완전히 맡겨두라고 한 자유방임주의자”, “정부 개입을 전적으로 반대한 작은 정부론자”, 나아가 **“부자 편을 든 자본가의 대변인”**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 이러한 이미지는 스미스의 일부 개념(예: 자유무역, 자조자利주의)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이며, 그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통념입니다. 실제 스미스의 저작과 삶을 들여다보면,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도덕적 공정성에 대한 신념을 지닌 사상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도덕 감정론』에서 스미스는 **“모든 시대에 걸쳐 도덕철학자들을 한탄하게 만든 것은 부와 권세에는 부당할 만큼 지나친 찬탄을 보내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우리의 성향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즉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빈곤한 이들을 멸시하는 태도야말로 도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일반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 이러한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스미스는 부유층에 대한 특혜나 불평등에 비판적이었고, 경제적 성장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부론』의 집필 의도도 중상주의 정책으로 인해 빈곤에 시달리던 대다수 국민의 부를 증진시키려는 데 있었습니다 . 그는 자유무역을 옹호한 이유도 각 나라가 싸고 질 좋은 물자를 교환함으로써 소비자들(특히 서민층)이 이득을 보고, 결과적으로 국민생활 수준이 올라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를 단순히 “부자의 이익을 옹호한 이론가”로 보는 시각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스미스의 정부 관에 대한 오해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그는 시장 기능을 신뢰하며 정부의 과도한 간섭에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수행해야 할 정당한 역할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스미스는 『국부론』 제5편에서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임무로 국방, 치안과 사법(법 질서 유지), 그리고 공공사업과 교육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개인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수행하지 못하는 사업”**은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고 하여, 도로·교량·운하·항만 같은 인프라를 정부가 제공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 또한 은행 시스템 규제나 독점 금지 등 시장 질서를 잡아주는 최소한의 규칙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몫으로 보았습니다 . 심지어 산업 보호를 위해 유치산업에 대한 한시적 관세를 용인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발명과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스미스는 **“한손에는 시장, 다른 손에는 정의”**를 쥐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정부와 시장의 균형을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번영을 조화시키고자 한 것이지, 결코 무정부적인 시장만능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끝으로, 스미스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려면 그의 전체 맥락을 봐야 합니다. 스미스는 어디까지나 도덕철학자 출신 경제학자로서 인간의 행복과 사회적 번영을 최종 목표로 삼았습니다. 『국부론』의 내용도 오늘날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식의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이념적 구호와는 결이 다릅니다. 오히려 그는 시장의 역동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한 전제조건(법치, 도덕, 공정경쟁)을 강조했으며, 그 전제를 무시한 채 이기심만 방치하는 사회는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요컨대 아담 스미스에 대한 흔한 오해와 달리, 그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의 풍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자유와 공정의 균형을 추구한 것이지, 어느 한쪽의 극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의 진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부론』의 현대적 의의와 오늘날 경제 시스템에 끼친 영향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정립한 기념비적 저서로서, 이후 수세기 동안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이 나온 1776년은 미국 독립선언이 발표된 해이기도 한데, 당시부터 이미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무역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던 터라 『국부론』은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저작으로 환영받았습니다 . 『국부론』은 중상주의를 반박하는 일종의 경제 혁명 선언서로 여겨졌고, 실제로 19세기 영국에서 곡물법 폐지 등 무역 자유화 정책이 추진되는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스미스 이후 리카도, 맬서스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계승·발전시켰으며, 근대 경제학은 하나의 학문 분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애덤 스미스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국부론』은 성서 이후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그는 경제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여 경제학을 자립적인 체계적 학문으로 격상시켰고 , 보이지 않는 손이나 분업, 자유무역과 같은 개념들은 현대 경제 담론의 뼈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시장 가격에 따른 자원 배분, 국제 분업에 따른 무역 이익, 국민총생산(GDP)을 통한 국부 측정 등의 개념은 스미스의 통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인 지배적 경제체제로 발전하는 데 스미스 사상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또한 경제 정책 면에서 볼 때도, 정부의 과도한 통제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정책 기조(예: 민영화, 규제 완화, 무역 개방)**가 정당성을 얻는 데 스미스의 이론이 역사적 정당화를 부여했습니다.

물론 현대에는 당시와 경제 여건이 달라져 스미스의 이론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수정도 제기되었습니다. 예컨대 노동 가치설은 이후 한계효용 이론으로 대체되었고, 완전 경쟁 시장 가정에 대한 의구심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색도 이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의 근본적인 통찰 – 시장의 힘, 분업의 생산성, 자유로운 교환의 효용 – 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21세기 글로벌 경제에서도 국부론적 질문, 즉 *“어떻게 한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고 모든 계층의 삶을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 논의의 출발점에는 여전히 스미스가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자유시장 vs 정부 개입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는데, 이는 곧 스미스 대 마르크스의 대립 구도로 회자되며 그의 사상이 현재 진행형의 의미를 지님을 보여줍니다 .

요약하면, 아담 스미스는 오늘날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대한 지적 틀을 마련한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국부론』은 발표된 지 250년이 지났어도 정치경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남아 있으며 , 현대 경제 시스템의 뿌리 곳곳에 그의 영향이 스며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고, 세계 각국은 분업과 교역을 통해 부를 쌓으며, 공공정책 입안자들은 스미스가 제기한 딜레마들 – 효율과 형평, 자유와 규제의 문제 – 속에서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미스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며,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경제사상의 기본 좌표로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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