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의 성격과 의도
정부는 최근 원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 높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돌파하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긴급히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구두 개입 메시지를 내놓았는데요 . 실제로 이런 경고와 함께 발표된 대책들 – 이를테면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주식에 재투자하면 1년간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방안 등 – 덕분에 하루 만에 환율이 33.8원 급락하며 1,449.8원으로 마감되는 단기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 그러나 무서운 개가 더 크게 짖는다는 속담처럼 이러한 강경 발언과 조치는 정부 스스로 느끼는 엄청난 위기의식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급등하는 환율이 몰고올 수 있는 물가 상승과 그에 따른 민심 이반을 차단하려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는 해석인데, 이는 시장 안정을 위한 자신감보다는 정치적 타격을 피하려는 배수진 성격이 짙어 보입니다.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강도 개입 조치의 지속적인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입니다. 환율은 근본적으로 한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s)을 반영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인위적으로 결과만 눌러 담는 방어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입니다 . 실제로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의 근본 요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힙니다. 첫째, 미국과의 금리 격차입니다. 미 연준(Fed)의 정책금리가 5%를 넘는 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 수준에 머물러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이 오래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국내 자금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압력이 큽니다 . 한국 금리가 이렇게 낮은 상태에서는 원화 가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중론입니다 .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가계부채 부담과 부동산 경기 등을 우려한 정부가 소비 위축을 두려워해 금리를 올리지 못해왔던 점도 문제를 키웠습니다 .
둘째, 확장 일변도의 재정 운영입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인 728조원으로 편성하는 등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고 있는데요  . 이러한 돈풀기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면 화폐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소비쿠폰 지급 등으로 시중에 풀린 현금이 급증했고, 그 여파가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 하지만 정부는 내수 부진과 지지율을 의식해 이러한 확대재정 기조를 유지해왔고, 당장 내년 상반기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선심성 지출을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 이는 시장에 “정부가 돈은 계속 풀면서도 환율만 잡으려 한다”는 신호를 주어 원화 약세 압력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셋째, 낮은 경제성장률과 투자 매력 저하입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2025년 성장률도 0%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 반면 미국 경제는 비교적 견조하여 잠재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는 등 상대적 호조를 보이고 있어 달러화 강세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전반적인 투자매력 하락입니다. 한 명지대 경제학자는 “한국의 재화와 서비스, 금융자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면 달러를 들고 와서 원화를 사려 했을 것이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원화 값이 싸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 각종 규제와 반기업 입법, 높은 비용 구조 등이 겹쳐 국내에서 투자하기보다는 해외로 자금이 나가는 구조가 지속되니 원화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죠 . 이는 곧 구조적인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근본 요인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환율 방어는 일시적인 신호 효과만 낼 뿐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입니다. 사실 정부의 개입 의지가 강력했던 지난 12월 말에도 단기간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 중반에서 1,440원대 중반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이를 두고 환율 하향 안정세로의 전환점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 앞서 언급한 구조적 요인들(만성적 달러 강세 요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당국의 대책은 환율의 레벨 자체를 근본적으로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 세계일보는 사설을 통해 “한·미 금리 역전이 오래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과 개인 할 것 없이 해외투자에 나서고 있고, 여기에 외국인 주식매도와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 등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어 이 정도 조치로는 원화 약세 흐름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했습니다 . 다시 말해 결과만 붙잡고 있을 뿐 원인을 치유하지 못하면, 시장 불안 심리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언제든 다시 환율이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 시의 위험성과 부작용
만약 이러한 총력 대응에도 환율 방어에 실패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의지는 보이지만 쓸 수 있는 실탄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이미 나오고 있는데 , 정부 개입에 한계가 드러날 경우 투자자들은 “이 정도로 해봤자 못 막는구나”라고 받아들여 오히려 원화를 대거 내다팔고 달러 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 한 외환전문가는 실탄 없는 방어와 구두 개입이 반복될수록 환율은 더 높은 수준에서 굳어질 수 있다며, 근본 신뢰 회복 없이 임기응변식 대응만 거듭하면 오히려 환율 상단을 계속 높여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최악의 경우, 대규모 외환 방어 실패가 제2의 외환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기축통화가 아님에도 고정환율을 방어하느라 외환보유고를 소진해 치명타를 입었는데, 현재도 구조 개선 없이 외환보유액을 소모하는 방어전을 지속하면 유사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는 “환율 방어에 실패하면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며 한국 경제가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장기 침체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 즉, 근본 대책 없이 외환시장에 돈을 쏟아붓고도 방어선이 뚫리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훼손되고, 환율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뛰어오를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로서는 “국민연금까지 동원하며 막았는데도 못 지켰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정책 신뢰도 추락과 함께 더욱 큰 환율 충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또한 무리한 개입 과정에서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정부는 국민연금이라는 국민 노후자산까지 환율 방어에 동원하려 해 논란이 되었는데 , 이러한 관치적 시장개입은 자금시장 왜곡과 연기금 손실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외환 당국이 은행과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달러를 내놓게 하는 식의 조치도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를 해치고 경제 주체들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습니다 . 세계일보는 “국민연금과 은행, 기업의 팔을 비트는 식의 ‘관치’로는 환율 안정을 기약하기 힘들다”고 지적하며, 단기 대책을 넘어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근본 해법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
환율 안정을 위한 근본적 처방들
결국 원화 가치 안정을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처방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 앞서 지적한 원인들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 방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미 금리차 축소 (통화정책 정상화) – 현재 2%p 안팎에 달하는 한미 간 금리 격차를 줄여 원화 자산에 대한 매력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고려되지만,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부도 물가 안정과 자본유출 방지를 위해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경기 위축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했죠 .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리가 낮아서 원화 가치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을 통해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일정 부분 축소하지 않고서는 환율 방어에 한계가 뚜렷하다고 강조합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부실 위험이 큰 가계대출 관리와 금융시장 안정을 병행하는 한편, 점진적이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시장 충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 재정 긴축 및 건전성 강화 – 확장 재정 기조를 수정하여 국가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일도 시급합니다. 현재 정부는 경기 부양과 민생 지원을 이유로 대규모 예산 편성과 재정 지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비(非)기축통화국 가운데 한국의 부채 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경고까지 나옵니다 . 통화량 증가→원화가치 하락의 경로를 차단하려면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 긴축에 나서야 합니다. 실제 경제전문가들은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비판까지 언급하며,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 등 지속가능한 재정 운용으로 방향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내년 중순 예정된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일시적 경기부양이나 현금성 지원에 의존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재정을 무분별하게 풀기보다는, 한정된 재원을 경제 활력 제고에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환율 안정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는 조언입니다 .
• 경제 성장률 제고와 투자환경 개선 –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입니다. 환율 불안의 근본에는 낮은 성장과 투자 부진 문제가 자리하고 있으므로, 생산성 향상과 기업환경 개선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예컨대 노동·교육·연금 등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법인세 등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등으로 기업 투자 의욕을 높이고 외국 자본이 다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 현재 시장에서는 “투자하고 싶은 한국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 이는 외환시장 개입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국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여 자생적인 원화 수요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해외투자(향후 10년간 2,000억 달러 직접투자 등)로 외화 유출이 예정된 상황에서 , 이를 상쇄하려면 수출 경쟁력 강화, 첨단산업 투자 유치, 서비스산업 혁신 등으로 외화 획득력을 키우는 전략이 절실합니다. 결국 성장률 회복과 경제 모멘텀 제고 없이는 환율 안정도 요원하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결론 및 전망
지금의 외환시장 상황을 두고 보면, 정부가 근본 처방 없이 정치적 의지 만으로 환율을 틀어막으려 한다는 인식을 시장에 줄 위험이 있습니다 . 돈은 계속 풀고(확장재정), 성장은 부진하며, 금리 인상은 못하면서 환율만 억누르려 드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연말에 쏟아낸 대책들로 일시적으로 원·달러 환율 1,440원대를 회복했을 때도, 이를 두고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연말 환율 마지노선을 정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구조적 변화(금리·재정·성장) 없이 구두개입과 미봉책만 반복된다면 역대 어느 정부도 환율 방어에 성공한 전례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 환율은 한 번 고삐가 풀리면 더 높은 고점으로 급등해버리는 경향이 있죠 .
결국 환율 안정의 열쇠는 시장 신뢰 회복에 있습니다. 시장의 신뢰는 정책의 일관성과 펀더멘털 개선 노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당국이 진정 환율을 안정시키고자 한다면 앞서 언급한 통화·재정·구조 개혁 방안을 과감하고도 꾸준하게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 좋은 약은 입에 쓰고, 근본 치료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근시안적인 처방을 남발하는 사이 신뢰를 잃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특히 내년 초를 지나 미국 경제의 호조로 달러 강세 압력이 재차 거세질 경우,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 현 시점에서 환율 1,500원 돌파 위험이 거론되는 등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만큼 , 정부가 정치적 고려보다 경제 논리에 입각한 어려운 선택들 – 금리 정상화, 재정 긴축, 구조개혁 –을 행하지 않는다면 원화 가치는 다시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은 정부의 말보다 행동을 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고강도 환율정책의 성패는 정부가 짖는 개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이빨(정책 실행과 개혁)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국내 언론 보도 및 전문가 인터뷰 종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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