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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정치

[국감]징계는 솜방망이, 성과급은 그대로? 금융 공기업 인사관리의 총체적 실패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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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횡령, 성비위 등 심각한 비위를 저지르고도 수백, 수천만 원의 성과급을 챙겨가는 현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 공적 책무를 지닌 금융 공기업의 인사관리 시스템이 근본부터 붕괴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민낯입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의원이 공개한 자료는 국민의 상식을 뒤흔들었습니다. 지난 5년간 5개 주요 금융 공기업(IBK기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한국산업은행)이 징계가 확정된 직원들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무려 12억 5,647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 직원의 사기를 꺾고,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할 공공기관이 스스로 그 존재 이유를 부정한 행태입니다.

1. 상식 밖의 현실: 범죄와 보상이 공존하는 조직

드러난 사례들은 하나같이 심각합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직원은 음주운전 사고로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도 이듬해 783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성비위로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 1,460만 원이 지급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가장 규모가 컸던 IBK기업은행의 상황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5년간 징계자 168명에게 총 11억 4,361만 원, 즉 전체 문제 금액의 90% 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고객의 돈을 횡령해 '감봉' 징계를 받은 직원이 748만 원을, 음주운전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이 1,000만 원이 넘는 성과급을 버젓이 타갔습니다.
징계 사유는 금품수수, 직장 내 괴롭힘 등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 행위들입니다. 하지만 이들 기관에서는 '징계'와 '보상'이 별개로 작동하는 기이한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2. 인사관리의 대원칙, '신상필벌'의 붕괴

인사관리(HRM)의 핵심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조직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기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기본은 '신상필벌(信賞必罰)', 즉 잘한 일에는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는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이 기본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의미합니다.
가. 징계의 무력화
징계는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며 조직 전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비위 행위자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징계의 효과를 완전히 상쇄시킵니다. 이는 조직 전체에 "잘못을 저질러도 금전적 불이익은 크지 않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며, 징계를 허울뿐인 조치로 전락시킵니다.
나. 성과주의의 왜곡
성과급은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특히 금융 공기업 직원에게 요구되는 '성과'에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준법정신이 기본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계량적 실적이 뛰어나도 횡령이나 음주운전 같은 중대 비위를 저지른 직원을 '성과를 낸 직원'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성과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다. 조직 문화에 미치는 악영향
이러한 불합리한 보상 시스템은 조직 문화를 병들게 합니다. 묵묵히 규정을 준수하며 일하는 직원들은 깊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조직 내 냉소주의를 확산시키고, 윤리 기준을 하향 평준화시켜 결국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도덕적 해이를 만연하게 합니다.

3. 국민에 대한 기만, 공기업의 책무를 저버리다

금융 공기업은 일반 사기업과 다릅니다. 이들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고도의 공공성을 띠기에, 직원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청렴성이 요구됩니다.
이들 기관은 국민과 대출자에게는 엄격한 준법과 신뢰를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비위 행위자에게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는 이중적인 태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김재섭 의원의 지적처럼, "대출자와 납세자에게 책임을 요구하면서 내부에서는 비위 행위자에게 금전적 혜택을 남겨둔 건 명백한 기강 붕괴이자 국민 기만"입니다.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온정주의와 경영진의 안일한 인식이 만들어낸 이 관행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4. 시스템 개혁과 문화 쇄신이 시급하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합니다. 보여주기식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과 책임 추궁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첫째, 징계와 보상 시스템을 연동하는 명확한 규정 확립이 시급합니다. 중대 비위 행위자에 대해서는 성과급 지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무관용 원칙'을 도입해야 합니다. 징계 수준에 따라 성과급 삭감 폭을 명확히 규정하고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성과 평가 기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재무 실적뿐만 아니라, 윤리 경영 및 내부 통제 준수 여부를 핵심 평가 요소(KPI)로 반영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는지가 평가의 최우선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잘못된 인사 관리와 통제 실패에 대한 '시스템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비위 직원의 일탈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부적절한 성과급 지급이 수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면, 이는 인사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부서 및 경영진의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따라서 비위 당사자뿐만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방치하고 내부 통제에 실패한 인사 관련 부서와 책임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인사를 단행했거나 관리 감독에 실패했을 경우, 관련 부서가 연대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잘못 운영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시스템 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것입니다.

금융 공기업은 더 이상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오명 속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사관리의 기본부터 다시 세우고, 관리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책임지는 문화를 확립해야 합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에 대한 엄중한 책임만이 조직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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