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대만은 2026년 1월 반도체 관세 면제 조건을 포함한 무역 합의에 이르렀다. 사진은 인쇄회로기판 위의 반도체 칩들 모습으로, 이번 합의로 대만산 반도체 일부 물량에 대한 관세가 면제될 예정이다 .
1. 미국-대만 반도체 관세 면제 조건의 주요 내용과 구조

미국과 대만이 체결한 반도체 관세 면제 조건은 미국 내 투자 규모와 연계한 관세 감면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제품에 높은 관세(최대 25%)를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각 주요 생산국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특히 미국은 해외 기업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면 관세 부담을 줄여주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천명하였는데, 그 윤곽이 2026년 1월 발표된 미국-대만 무역합의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
합의에 따르면 미국에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대만 기업은 해당 시설 건설 기간 동안 그 시설의 예상 생산능력의 최대 2.5배까지 반도체 제품을 관세 없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  . 또한 건설이 완료되어 가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해당 공장의 생산능력 대비 1.5배까지 무관세 수출이 허용된다  . 이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가 부과되는데, 구체 세율은 미국 정부가 논의 중인 품목별 관세 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 즉, 일정 물량까지는 완전 면제하고 그 이상은 우대 관세율(할인된 세율)을 적용하는 물량 연동 관세면제 방식이다. 이번 미국-대만 합의에서는 이와 함께 양국 간 전체 관세율을 기존 20~25% 수준에서 15%로 인하하는 조치도 포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 이는 일본·한국 등 동맹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관세를 낮춘 조치로, 일부 품목(제네릭 의약품, 항공기 부품 등)에 대해서는 완전 면세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
이번 합의의 핵심 구조는 투자 유인 – 관세 면제로 요약된다. 미국 상무부는 성명에서 *“반도체는 미국의 기술·산업·군사 역량에 필수적이나, 그동안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며, 다른 국가들의 산업보조금 정책이 글로벌 무역 흐름을 왜곡해 대부분의 반도체 생산이 동아시아에 집중되었다고 지적했다 . 이에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고, 그 대가로 일정 범위 내에서 관세 면제 혜택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 사실상 대만을 첫 사례로 삼아 관세 면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며, 이 모델이 향후 한국 등 다른 반도체 생산국과의 협상에도 적용될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 측 협상 대표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우리 상무부가 그들의 투자 계획을 승인하면 그들은 그 수량의 2.5배만큼의 반도체를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다고 밝혀, 미국의 승인된 투자에 연동해 관세 혜택을 주는 방식임을 강조했다 . 요컨대 투자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무관세 수출 쿼터를 받고, 투자를 꺼릴 경우 높은 관세 부담을 지게 되는 구조다. 실제 러트닉 장관은 대만 기업이 미국 내 공장을 세우지 않을 경우 일부 제품에는 최대 100%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대만 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압박했다 . 이러한 강경책은 관세 위협을 지렛대로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 한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영향 (수출, 투자, 가격 경쟁력 등)
미국-대만 간 관세면제 합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 측면에서 보면, 향후 미국이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대두되므로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 가격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간 한국산 반도체는 한-미 FTA와 ITA(정보기술협정) 등으로 무관세 교역이 이뤄졌지만, 미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별도 관세를 부과하면 (15~25% 수준) 현지 고객사가 체감하는 가격이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처럼 가격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 다만 업계 일부에서는 현재 우리가 생산한 반도체를 미국으로 직접 보내는 비중이 중국·대만 등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며 단기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 실제로 한국 메모리 기업들은 완제품 형태로 미국에 수출하기보다는 글로벌 세트기업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급하는 비중이 높다. 그럼에도 미국이 관세를 무기화할 경우 한국산 반도체의 상대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마이크론(미국) 등 경쟁사의 반사이익이나 수요처의 대체조달 검토 등 시장 지형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관세 부과로 한국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나면 연구개발 투자 여력 감소 등 장기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투자 측면에서는 이번 합의가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압박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 미국은 대만에 관세 면제 혜택을 주며 “미국 내 생산 물량에 비례한 면제”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한국 기업들에도 유사한 조건이 적용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 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생산기지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향후 대미 수출 시 관세 부담을 지게 될 수 있다. 실제 업계에서는 관세 면제권을 획득하려면 결국 TSMC를 뒤따라 한국 기업들도 더 많은 미국 내 설비 투자 계획을 제시·실행해야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고 추가로 테일러시에 대규모 최첨단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에 호응하고 있다 . 그럼에도 미국이 이번 합의를 통해 제시한 엄격한 물량 연동 기준에 따르면, 현 단계의 투자 규모만으로는 충분한 면제 혜택을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결국 한국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미국 현지 투자 카드를 검토해야 하는 압박이 커진 상황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수익성 악화와 대규모 자본 지출 부담을 가져오지만, 미국 시장 접근성과 관세 비용을 저울질하여 전략적 투자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유불리가 엇갈릴 가능성도 지적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 또는 건설 중이므로 향후 관세 면제 요건을 충족하여 일정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 반면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는 현재 완제품이 아닌 패키징 공장에 한정되어 있어, 이를 미국 정부가 실질적인 반도체 생산시설로 인정해줄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 최종 칩 생산이 이루어지는 전공정(fab)이 아닌 후공정 시설만으로는 관세 면제 대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는 대미 수출시 삼성전자나 TSMC 대비 불리한 관세 부담을 질 우려가 있으며, 이는 SK하이닉스의 가격 경쟁력과 미국 시장 내 입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SK하이닉스도 향후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나 파트너십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요약하면, 미국-대만 관세 합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미국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한편, 투자 여부에 따라 관세 부담과 가격 경쟁력이 달라지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3. 한국과 대만의 대미 반도체 투자 규모 및 구성 비교, 그에 따른 협상력 차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과 대만의 위상 차이는 대미 반도체 투자 규모와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만은 TSMC를 비롯한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미국의 요구에 부응했고, 이에 상응하는 관세 혜택을 선제적으로 얻어냈다. 이번 미국-대만 합의에 따르면 대만 반도체·기술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능력 확충에 최소 2,500억 달러(약 367조 원)를 신규 투자할 예정이며, 대만 정부도 2,500억 달러 규모 신용보증을 제공해 추가 투자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 투자 분야는 첨단 반도체 제조와 인공지능(AI), 에너지 분야 인프라 구축 등에 집중될 계획이다 . 사실상 TSMC 등 대만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기지 건설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으로,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TSMC는 애리조나주에 이미 6개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 또는 건설 중이며 이번 합의를 계기로 추가 5개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 TSMC 한 곳만 보더라도 미국 현지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10개 이상 구축하는 셈으로, 그 투자 규모는 당초 발표된 12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여 10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 측도 대만 전체 반도체 공급망과 생산량의 40%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 수백 개의 대만 관련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것임을 시사했다 . 이러한 대만의 집중적이고 직접적인 반도체 제조 투자는 미국으로부터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 면제라는 구체적 보상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은 명목상 규모는 크지만, 구성 면에서 직접적인 반도체 생산 투자 비중이 낮고 불확실성이 큰 편이다. 한국은 2025년 전후 미측과 협의에서 총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등 타 산업용 투자가 차지하고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정부 차원의 금융투자 등으로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은 포괄적 계획이었다 . 반면 민간 차원의 반도체 직접투자는 제한적이었다. 삼성전자는 당초 2030년까지 텍사스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규모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수정해 미국 투자 규모를 총 37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 이 증액분은 추가 파운드리 라인 건설이나 기간 단축 등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38억7천만 달러(약 5조 원)를 들여 인디애나주에 AI 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 이외에도 메모리 업체들의 미국 내 완제품 생산 공장 건설은 현재까지 계획이 없다. 종합하면 한국 기업들의 순수 반도체 제조 분야 대미 투자 총액은 수십억 달러 수준에 그쳐, TSMC 단일 기업의 투자 규모(수백억~천억 달러대)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러한 투자 규모·구성 차이는 협상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대만 정부와 기업은 막대한 투자금액을 앞세워 미국으로부터 선제적인 관세면제 조건을 이끌어내는 협상력을 발휘했다. 반면 한국 정부와 업계는 2025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을 대만 등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약속만 받아냈을 뿐, 구체적인 면제 기준은 확약받지 못했다 . 이는 미국이 당시 반도체 관세 정책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고, 한국 측의 투자가 대만만큼 구체적·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대만이 “관세 면제 1호 국가가 되면서 한국은 추격자 입장에서 향후 협상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다  . 다만 한국은 앞서 언급한 미측 약속(한국을 대만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겠다)을 근거로 대만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조건을 주장할 명분을 가지고 있다 . 실제 2026년 1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대한국 반도체 관세에서 앞으로 다른 나라와 체결할 합의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동 성명이 있었고, 이는 한국보다 대미 반도체 교역량이 많은 국가는 대만 뿐이므로 결국 대만과 같은 대우를 뜻한다고 해석된다 . 문제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지렛대가 충분한가이다. 한국의 투자 카드가 대만에 비해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 약속이 자칫 대만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 의무로 되돌아와 한국을 압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즉 미국이 동등한 혜택을 원하면 대만만큼 투자하라는 논리를 펼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투자 규모·구성에서 앞선 대만이 협상 주도권을 쥔 반면, 한국은 대만의 선례를 기준점 삼아 향후 협상에서 동등한 대우를 끌어내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4. 관세 부과 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 경쟁력 및 글로벌 공급망 내 위치 변화
만약 미국이 한국산 반도체에 본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입지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는 관세 부과가 곧 가격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에 15~25% 관세를 매긴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제품 단가가 그만큼 올라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저하된다. 스마트폰·서버 등 최종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들은 비용 증가를 우려하여 한국산 부품 조달을 줄이고 미국 내 생산된 부품(예: 마이크론의 메모리)이나 관세 면제 혜택을 받는 대만산 부품으로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물량 감소와 글로벌 시장점유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관세 부담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되면 국내 업체들의 연구개발 투자 여력과 가격 인하 여지도 줄어들어, 중장기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내 한국의 위상 변화도 불가피하다. 미국은 이미 대만 전체 공급망과 생산량의 40%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힐 만큼 공급망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이는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거점을 분산하여 일부는 미국으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으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보조금 등 산업정책으로 반도체 생산을 키워왔다고 비판하며, 향후 품목별 관세 정책을 통해 이들을 압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 실제로 미국이 동아시아 전체를 거론하며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은 한국·대만·일본을 모두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따라서 한국이 관세 부과 대상이 되면, 미국은 한국에도 대만과 동일한 물량 제한 조건을 적용하려 들 것이고,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 내 위치가 축소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 궁극적으로 세계 반도체 생산의 지리적 분포가 변화하여, 한국의 역할이 일부 축소되고 미국 현지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재편이 진행될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기술력은 압도적이고,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는 필수적인 플레이어다. 단기간에 미국이 모든 생산을 대체할 수 없으므로, 과도한 관세 부과는 미국 자체 산업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를 의식해 트럼프 행정부도 일괄적인 232조 관세 적용을 미루고 우선 특정 AI칩(NVIDIA·AMD 제품)에 한해 25% 관세를 1단계로 도입한 상황이다 . 이 조치에서 한국산 메모리나 파운드리는 제외되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한숨 돌렸지만, 더 넓은 범위의 관세 부과를 검토하겠다는 미국 정부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 따라서 향후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한국은 일정 부분 미국 시장을 상실하거나 현지 생산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공급망 재편을 겪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구축해온 ‘메이드 인 코리아’ 반도체 수출 모델에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다. 반대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 요구에 발맞춰 생산 거점을 일부 현지화한다면, 글로벌 공급망 내 역할을 이어가되 그 활동 무대 일부가 한국 외 지역으로 분산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관세 정책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 경쟁력에 직접적인 압박 요인이며, 한국의 공급망 입지를 재조정하는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
5. 향후 한미 반도체 협상의 핵심 쟁점과 협상력 변수
향후 한미 간 반도체 관세 협상의 핵심 쟁점은 한국이 대만과 동등한 관세 면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지와, 이를 위한 투자 부담과 세부 조건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우선 1차적 쟁점은 “대만과 동일한 대우”의 구체화다. 한국 정부는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성명에서 반도체 교역 규모가 한국 이상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약속받아 , 곧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원칙론적 합의를 확보했다. 이제 이를 실제 수치와 조건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협상의 최우선 과제다. 여기에는 대만과 같은 2.5배/1.5배 무관세 물량 한도 적용, 기본 관세율 15% 상한 보장 등이 포함된다. 한국으로서는 최혜국 대우에 해당하는 이 수준을 출발점으로, 가능하다면 대만보다 유리한 조건(예: 무관세 한도 3배 등)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사실상 대만과 대등한 조건을 쟁취하는 것만으로도 협상의 큰 성과로 평가될 것이다 .
두 번째 쟁점은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 확대의 규모와 범위다. 미국 측은 한국에 대만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 확대 의무를 부과할 근거로 앞서 언급한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 약속을 활용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 즉 관세 혜택을 동등하게 주는 대신 한국 기업들도 대만 못지않게 투자하라는 압박이 뒤따를 수 있다. 한국 협상단은 투자 계획의 내용과 미국 측 인정 범위를 조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과 기존 오스틴 공장의 증설 투자를 얼마나 인정받을지, SK하이닉스의 패키징 공장을 관세 면제 대상 생산시설로 간주할지 등이 논의될 것이다 . 한국은 기존에 발표한 삼성전자 370억 달러, SK하이닉스 38.7억 달러 등의 투자계획을 근거로 최대한 관세 면제 범위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 반면 미국은 상무부 승인을 전제로 하는 투자 이행 확인 절차를 통해 투자 규모·속도를 사실상 통제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 협상에서는 투자 인정 범위(신규 공장뿐 아니라 증설, 후공정 포함 여부), 투자 이행 시한 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세 번째 쟁점은 관세 면제 조건의 세부 설계다. 예컨대 무관세 수출 물량의 산정 기준(신규 공장의 월간 웨이퍼 투입량 기준인지, 연산 출하량 기준인지), 면제 적용 품목의 범위(메모리, 파운드리, 팹리스 설계칩 등 모두 포함 여부), 관세 우대 기간(한시적 조치인지 상시적용인지) 등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대만과는 큰 틀만 발표되었을 뿐 세부 이행계획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 한국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디테일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기준을 정하고자 할 것이나, 미국이 대만과의 합의를 가이드라인 삼아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쟁점을 둘러싼 협상력의 변수로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 반도체의 대미 의존도와 대체 가능성이다. 한국산 메모리·파운드리칩이 미국 산업에 필수적인 정도가 협상력의 근간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산 DRAM이나 NAND가 없으면 미국 ICT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미국도 관세 부과에 신중할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 측에 유리한 협상이 전개될 수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메모리 분야 약 70%)과 제품 기술력은 여전히 독보적이어서, 한국은 이를 들어 과도한 관세는 미국 기업에도 피해라며 설득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수준에 대한 한국 기업과 정부의 대응 역량이다. 투자 규모를 키울 여력이 있다면 관세 면제 폭을 넓게 얻어낼 수 있겠지만, 기업 재무상황이나 국내 투자 계획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대만처럼 직접적인 금융지원(신용보증 등)에 나설 수 있다면 미국의 만족도를 높여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셋째, 한미 간 전략적·외교적 관계도 변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해온 점을 강조하며 통상 현안에서의 우대를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일본·대만과 동등한 15% 관세 상한을 이미 적용받고 있듯, 한국도 당연히 같은 동맹국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 반면 미국은 동맹이라도 자국 산업 이익을 최우선하기 때문에, 안보 공조만으로 관세 혜택을 얻기는 어렵다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넷째, 대중(對中) 정책과의 연계다.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배경에는 중국 견제가 깔려 있는 만큼, 한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등에 협력하는지 여부도 협상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중국 내 공장 증설을 자제하거나 미국의 수출규제를 준수한다면, 미국으로서도 한국을 지나치게 압박하기는 부담일 수 있다.
종합하면, 향후 한미 반도체 협상은 관세 면제 조건을 둘러싸고 “투자 대 관세”의 줄다리기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한국을 대만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기존 합의를 실질적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한편, 과도한 투자 요구를 조정하고 한국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협상의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 한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중요성, 대미 투자 계획, 동맹으로서의 신뢰 등을 총동원해 협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관세 부과 시점을 한국 등과의 개별 협상 완료 후로 미루고 있는 만큼 , 이 시간을 활용해 한국으로부터 최대한 유리한 투자 양보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협상에서 잃을 것이 많은가가 승부를 가를 변수이며, 한국으로서는 미국 시장과 자국 산업 보호 둘 다 놓칠 수 없는 만큼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6. 한국 정부 및 산업계가 고려해야 할 전략과 대응 방향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 정부와 업계는 선제적인 전략 마련과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만과 동등한 관세 면제”를 분명히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양국 정상 공동팩트시트에 명시된 약속인 만큼 한국은 대만에 준하는 2.5배/1.5배 무관세 혜택은 최소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 이는 차별 없는 최혜국 대우를 확인하는 기본 전제가 된다. 협상 과정에서 만일 미국이 한국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할 경우, 정부는 동맹국 대우 및 형평성 논리로 설득함과 동시에 필요한 경우 WTO 제소 등 법적 수단도 검토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다만 232조 안보조치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외교적 해결에 주력).
둘째,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전략적으로 재점검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보다는 장기적인 이익 차원에서 능동적 투자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존 발표한 미국 투자 계획의 이행 속도를 높이거나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추가 파운드리 공장 (테일러 2공장 등) 건설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생산 관련 미국 내 시설 투자까지도 선제적으로 카드화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자는 관세 회피뿐만 아니라 미국의 보조금(예: CHIPS Act 인센티브) 확보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한국 정부도 필요 시 기업들의 해외 투자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대만 정부가 2,500억 달러 신용보증으로 자국 기업을 뒷받침한 것처럼 , 한국도 정책금융을 통해 대미 반도체 투자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국내 여론상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장기적인 국익(관세 장벽 해소와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 유지)을 고려한 전략적 투자로 이해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협상 테이블에서 세부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내는 것이다. 한국 측 협상단은 관세 면제 대상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의 범위에 후공정(패키징) 공장도 포함되도록 미국을 설득해 SK하이닉스도 면제 혜택을 받을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 또한 기존 운영 중인 삼성전자 오스틴 팹의 생산능력도 신규 투자와 연계해 면제쿼타 산정에 포함시키는 등 유연한 기준을 제안할 수 있다. 무관세 물량 계산도 생산능력 대비 1.5배를 “연간”이 아닌 “분기별” 등으로 세분화하여, 수요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여지를 요구할 수 있다. 아울러 관세 우대 기간을 충분히 길게(예: 10년 이상) 확보하여,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 회수를 계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세부 조건은 앞으로 미 상무부와의 실무협상에서 결정될 사안으로, 산업부 등 관계부처와 기업이 긴밀히 공조해 준비해야 한다.
넷째, 다각화 전략으로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 일변도의 요구에 종속되지 않도록, 글로벌 시장 다변화와 기술 리더십 강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EU, 일본 등과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해 대미 의존도를 완화할 수 있다. 이미 EU는 자체적으로 반도체 육성책을 추진 중이므로, 삼성전자 등이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 가능하다. 또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 투자를 통해 미국이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우위를 지속 확보해야 한다. 미세공정, AI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등 분야에서 한국이 앞서나가면, 미국도 한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협상력이 생긴다. 요컨대 기술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 협상 테이블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섯째,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어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은 공급망 충격을 최소화하는 플랜B를 가동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수출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금융지원 등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관련 산업 피해 지원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미국 내 고객과의 가격조정 협상, 재고 비축 등을 통해 일시적인 혼란에 대응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 정치권 및 업계와의 소통 채널을 가동하여, 관세 부과의 부메랑 효과(미국 기업 비용 상승)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정책 완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로비와 여론전도 전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미 간 신뢰 구축과 상호 호혜 원칙을 강조하는 외교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안을 경제 안보 동맹 차원에서 다루며, 미국 측에 공급망 동맹국인 한국을 지나친 관세로 압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공급망 취약을 초래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한국도 자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등 상호 호혜를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향후 협상에서 양보를 이끌어내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종합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미-대만 관세 면제 합의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와 업계가 한 팀이 되어 공식 약속을 확실한 결과로 이끌어내고, 추가 투자와 협상 전략을 정교하게 수립해야만 관세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위기이자 기회로 삼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역할 강화를 위한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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