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한국 사회에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들이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을 중국 반도체 기업 CXMT로 빼돌린 혐의로 무더기 기소되었는데요 . 이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 측은 연간 5조 원 매출 감소와 수십조 원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 이러한 사태는 단순히 몇몇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국가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범죄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의 법과 처벌 체계가 이런 기술 유출을 막기에 충분한 억지력이 있는지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
대만의 접근: 기술 유출을 국가안보 범죄로 간주
 대만의 경우, 반도체 등 국가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 이를 국가안전법에 따른 안보 범죄로 다스립니다. 실제로 올해 대만 사법당국은 한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을 국가안보 위협 행위로 간주해 기소했는데요 . 대만 국가안전법에 따르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은 최소 5년에서 최대 12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 여기에 별도로 영업비밀법 위반까지 적용될 경우 형량은 더욱 가중될 수 있습니다 . 해당 사건에서 검찰은 피의자들에게 7년에서 14년형을 구형했고, 법원도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인정해 관련자 전원을 구속 수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
이처럼 대만은 첨단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행위로 보고 엄벌에 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출된 기술이 자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적 손실을 주고 경쟁국(예를 들면 중국)의 기술 수준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사례로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TEL)의 대만 법인이 TSMC의 2나노 공정 기밀 유출 사건에 연루되어, 대만 당국이 해당 법인을 국가안전법 및 영업비밀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거액의 벌금을 구형한 일도 있었습니다  . 이는 대만에서 기업에 대해서까지 국가안보법을 적용한 첫 사례로 기록될 정도로, 기술유출을 국가 차원에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한국의 현실: 산업 범죄로 다루는 기술 유출
한국에서는 그동안 반도체 기술 유출을 주로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처벌해 왔습니다. 법 조문상으로는 최대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가능해 처벌 수위가 높게 보이지만, 실제 판결에서는 집행유예나 1~2년 남짓의 단기 실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1심 판결 33건 중 87% 이상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 판결이었고, 2022년 영업비밀 해외유출 사건의 평균 형량은 14.9개월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 경향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사법부도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4년 3월에 산업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기로 했습니다 . 새 권고 기준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경우 징역 9~15년, 국내 유출의 경우 징역 6~9년까지 권고형이 상향되었습니다 . 이는 이전보다 상당히 강화된 형량입니다. 다만 권고 형량이 실제 선고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이며 , 기본적으로 적용 법률 자체는 여전히 산업기술보호법과 영업비밀 보호에 머물러 있어 기술 유출 행위를 곧바로 안보범죄로 규정하는 대만과는 접근에 차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간첩죄 개정: ‘적국’에서 외국’으로 범위 확대,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국회는 간첩죄 조항(형법 98조)을 개정하여 적용 대상을 기존 ‘적국’ (사실상 북한으로 한정되었던 개념)에서 ’외국 및 외국 단체’로 넓히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개정안의 핵심은 외국 정부나 단체의 지령·사주를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것입니다 . 겉보기에는 이제 북한이 아닌 중국 기업 등 외국을 위해 우리 기술을 빼돌리는 경우도 간첩죄 적용이 가능해진 듯합니다.
그러나 이 개정 간첩죄의 보호 범위는 여전히 군사·외교 등 국가기밀에 한정됩니다 . 즉, 반도체 공정이나 설계, 제조기술처럼 국가 경제력의 핵심이지만 법적으로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산업기밀·영업비밀은 간첩죄로 직접 처벌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 실제로 외국 기업이나 국가를 위한 기술 유출이라 해도, 그 정보가 국가기밀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간첩죄 적용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 이번 삼성 D램 사례에서도, 비록 중국 기업이 연루되었지만 해당 공정 기술이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면 간첩죄가 아니라 기존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법적 공백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제안보 시대에 맞지 않는 법 체계라는 지적과 함께 보다 직접적으로 첨단기술 유출을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제간첩법” 제정 요구와 안보 범죄로의 격상 필요성
전문가들은 현행 간첩죄 개정이 시작점일 뿐, 다음 단계로는 첨단 산업기술 유출을 명시적으로 안보 범죄로 규정하는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 실제 통계를 보아도 현행 법체계의 구멍이 드러나는데요.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건수가 96건에 달했습니다 . 특히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등 분야의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될 경우 국가 경제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며, 강력한 제재와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홍준호 성신여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최근의 기술 유출은 개인 일탈이 아니라 중국 자본의 M&A, 고액 연봉을 앞세운 인력 스카우트 등 구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문제의 본질을 짚었습니다 . 산업기술 유출을 아직도 개별 기업 범죄로만 다룬다면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홍 교수는 특히 “반도체 같은 국가핵심기술은 유출되는 순간 상대국(경쟁국)의 산업 경쟁력을 직접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기술 보호를 개별 기업 책임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격상해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요컨대, 기술유출을 경제적 의미의 간첩행위, 즉 “경제간첩“으로 보고 다스릴 경제간첩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인재 이동 vs. 기술 유출: 이중 잣대 논란?
한편, 이번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삼성 등 한국 기업도 과거 미국 마이크론이나 일본 도시바 출신의 기술 인력을 고액 연봉으로 데려와 기술 발전에 활용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기술자가 중국에 가서 일하는 것은 왜 문제 삼느냐”는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실제 1990년대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일본 기업의 경력 엔지니어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기술 경쟁력을 높인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가령 삼성은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재팬 프로젝트를 가동해 일본의 반도체 설계 인력 100여 명을 고문으로 채용했고, 연봉 10배, 파격적 대우를 제시하며 일본 전자업계 인재들을 영입했습니다  . 그 결과 삼성은 일본의 앞선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도약할 수 있었지요.
이러한 인재 이동 자체는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야 할 핵심은 “불법적인 기술 유출이 수반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외국 기업으로 이직하여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은 각 개인의 자유로운 직업 선택 영역입니다. 반면, 재직 중 알게 된 회사의 영업비밀이나 설계 도면 등을 몰래 가져가 경쟁사에 넘긴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이 해외 인력을 데려올 때에도, 만약 그들이 전 직장에서 비밀 자료를 유출해 왔다면 이는 그 나라 법으로 처벌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07~2008년 도시바와 협력 관계에 있던 미국 기업 샌디스크의 일본인 직원이 도시바의 NAND 플래시 메모리 기술 자료를 빼내어 SK하이닉스에 제공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이 직원은 일본 경찰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체포되었고, 도시바는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약 1000억 엔(약 1조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력 대응했습니다  . 이처럼 일본도 자국 기업의 기술 유출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 민사소송으로 단호히 대응한 전례가 있습니다. 미국 역시 1996년 경제간첩법(Economic Espionage Act) 제정을 통해 산업기밀 유출을 연방 범죄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 법무부는 2018년에 중국 국영 반도체사 푸젠진화(JHICC)와 대만 업체 UMC, 그리고 마이크론 출신 엔지니어들을 경제간첩 혐의로 기소한 바 있습니다 . 이들은 공모하여 마이크론의 메모리 칩 설계 정보를 탈취해 중국에 전달한 혐의를 받았는데, 이는 미국이 외국을 위한 산업스파이 행위로 간주해 기소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 (비록 해당 중국 기업은 미출석 재판 등으로 2024년에 무죄 판결이 나긴 했으나, 이 사건은 미국 정부가 해외 기업의 산업기밀 절도를 국가 차원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
또한 비밀 유지 계약이나 전직 금지 합의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의 사례를 보면, SK하이닉스에서 HBM 개발을 주도하던 핵심 엔지니어가 퇴직 직후 미국 마이크론사로 이직하려 하자 SK측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해당 직원에 대해 2년간 Micron에서 관련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결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 삼성전자도 20년 넘게 근무하며 D램 설계를 담당했던 연구원이 퇴사 후 마이크론에 들어가려 하자 퇴사 시 맺은 2년간 경쟁사 취업금지 약정을 근거로 가처분 신청을 내어, 법원이 이를 인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 이렇듯 한국 기업들도 자사 핵심 기술 인력이 경쟁사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이런 전직 금지 조치나 소송은 미국, 일본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어느 나라든 자국의 첨단 기술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죠.
정리하면, 외국 인재 영입과 자국 기술 유출은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합법적인 수준의 기술 이전과 불법적인 영업비밀 유출은 엄연히 구분됩니다. 한국이 과거 해외 전문가 채용으로 이득을 본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타사의 기밀을 절취했다면 해당 국가에서 처벌받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한국 역시 자국의 핵심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경우 이를 국가적 범죄로 인식하고 강력히 처벌하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결론: 개인 일탈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대응으로
삼성 D램 기술 유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것은, 이러한 첨단 기술 유출이 단순히 몇몇 직원의 일탈 행위로 보기에는 규모와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개개인에게는 더 나은 대우나 새로운 도전 기회로 보일 수 있는 이직이, 국가 전체로서는 수조 원의 손실과 기술 패권의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쟁국의 전략적인 인재 영입 공세와 조직적인 산업스파이 행위가 현실로 벌어지는 지금, 기술 유출은 기업 내부 규정 위반 수준을 넘어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경제안보 문제가 되었습니다 .
현재 한국은 강화된 양형 기준 적용과 간첩법 개정 등을 통해 늦게나마 대응에 나섰지만  , 근본적으로는 경제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제도 정비와 국가 핵심기술 지정 및 관리 강화가 요구됩니다. 이는 대만이나 미국처럼 국가 차원에서 기술유출을 범죄로 다루는 체계를 갖추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술 인력을 우대하고 충성도를 높이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유출 위험을 사전에 줄이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개인의 일탈인가, 안보 범죄인가?라는 이분법을 넘어, 개인의 행위 뒤에 숨은 구조적 유인과 파급효과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첨단 기술 유출은 개인 한 명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그 파괴력이 너무 커서, 이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범죄 행위로 인식하고 다뤄야 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 한국도 이러한 인식 전환을 통해, 앞으로는 세계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자국의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더욱 촘촘한 제도와 강력한 집행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Sources: 삼성 D램 기술 유출 관련 아이뉴스24 기사  , 대만 국가안전법 및 사례  , 한국 산업기술보호법 및 양형 기준 , 간첩법 개정 내용 , 전문가 세미나 발언 , 일본 도시바-하이닉스 기술 유출 사건 , 미국 마이크론 기술 유출 사건 기소 , SK하이닉스·삼성 전직금지 사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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