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가마로의 귀환
제1부: 진포, 귀환의 땅
1274년 겨울, 싸늘한 바닷바람 속에 가마로는 마침내 고려 땅 진포에 발을 디뎠다. 일본 규슈 하카타에서 철수한 후 며칠째 거친 풍랑에 시달리던 함선들은 간신히 모항에 돌아온 상태였다. 불과 두 달 전, 가마로는 수천의 군사와 함께 경상도 남쪽 합포(合浦) 항에서 일본으로 출정했었다 .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강압으로 편성된 고려-몽골 연합군은 9백 척에 이르는 함선과 4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쓰시마와 이키 섬을 거쳐 규슈 하카타에 상륙했다 . 그러나 전투 내내 불어닥친 태풍과 예기치 못한 난항으로 결국 다음 날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 이제 눈발 섞인 칼바람을 맞으며 귀환한 병사들은 절반도 채 남지 않은 배들을 떠나 조용히 모래밭을 밟았다.
진포 앞바다는 처참했다. 부서진 돛대 조각과 파선에서 떠내려온 잔해들이 물결을 따라 밀려와 해변에 널려 있었다. 몇 구의 시신은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차디찬 물살에 씻겨 나왔다. 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보다 깊은 허망함이 어려 있었다. 출정할 때 수백 척에 달했던 함선은 이제 몇 십 척 남짓에 불과했다. 실제로 총 3만에 이르던 원정군 중 1만3천5백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집계가 후에 전해졌을 정도로 귀환자는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 가마로는 부서진 갑옷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며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바다 건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쓰러져 갔던가. 피로 물든 바다와 폭풍은 친구와 동료들을 산 채로 집어삼켰건만, 정작 고국의 땅은 그들의 희생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마로는 무릎을 굽혀 모래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모래 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내렸다. “고향에 돌아왔구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살아 돌아온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눈앞의 해변은 분명 자신의 나라 고려의 해안인데도,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전쟁 전 고향을 떠나던 순간과 비교하여, 가마로 자신도 이미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포 포구에는 환영 나팔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고,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을 마중 나온 이도 거의 없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것은 부상자들의 신음과 부두에 배를 묶는 밧줄 소리뿐이었다. 그제야 가마로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바다 건너 치른 싸움은 고려 땅 이곳 진포의 고요한 일상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
제2부: 귀로의 상처
진포에서 개경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패잔병으로 이루어진 행렬은 말 없이 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눈발 날리는 창백한 하늘 아래, 가마로는 천천히 뒤따라가며 잡념에 사로잡혔다. 곳곳에 붕대를 감은 동료들의 발걸음은 절뚝였고, 말라버린 핏자국이 군복에 선연했다. 전쟁터에 함께 갔던 전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쓰시마 섬의 새벽 벌판에서 첫날 전열이 무너질 때, 가마로는 바로 곁에서 친구 진수가 화살에 목이 관통되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진수를 부축하려 했지만, 이미 친구의 눈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진수야, 견뎌!” 가마로는 울부짖었으나, 차가운 바람 속으로 친구의 마지막 숨결이 허망하게 흩어졌을 뿐이다.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 가마로의 손에는 아직도 진주의 피가 묻어 있는 듯했다. 밤이 되면 그는 불현듯 손을 들여다보곤 했다.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이 떨리고, 씻어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붉은 얼룩이 환영처럼 겹쳐 보였다.
행군이 계속되자 부상병 몇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잠시 멈춰 섰던 짧은 순간에 가마로는 자신도 모르게 등을 내리고 주저앉았다. 숨을 몰아쉬는 가슴 속으로 전장의 기억이 파고들었다. 콰쾅! 갑자기 머릿속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몽골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던지던 화포 폭탄 소리가 환청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눈앞에는 없지만 귀에는 생생한 천둥 같은 굉음이 맴돌았다. 그날 하카타 해변에서 폭탄이 터질 때의 충격이 떠오르자, 가마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쾅’ 하는 폭발과 함께 눈부신 섬광,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 그로 인해 한때 눈이 멀고 귀가 먹은 듯 혼미해졌던 순간이 있었다 . 폭탄의 연기로 자욱한 전장에서 고려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방향 감각을 잃었고, 말들은 놀라 날뛰었다. “살려줘!” “엄마—!” 곳곳에서 들리던 아비규환의 비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때 느꼈던 공포가 지금 이 한겨울 들판에서 되살아나 가마로의 숨을 죄어왔다. 그는 턱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함께 행군하던 동료가 놀란 눈으로 그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었다. “가마로, 괜찮은가…?” 가마로는 땀에 젖은 이마를 닦고 떨리는 숨을 고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따라 행군하는 동안 가마로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죽은 동료들의 모습이 떠돌았다. “내가 왜 살아남았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이 죽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쓰러져 간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대장장이였던 성칠이, 막냇동생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던 병춘이, 심지어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았던 몽골 병사 바투까지… 수많은 이름과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우들을 잃은 슬픔과 살아 돌아온 자의 죄책감이 뒤섞여 가마로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그의 옆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동료 병사는 한쪽 눈에 피묻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가마로는 그 모습에 또 다른 친구가 떠올랐다. 하카타에서 마지막 철수 직전, 한 무리의 일본 무사가 맹렬히 달려들었을 때 끝까지 후위를 지키다 장열히 전사한 동료, 창수. 창수는 적 두어 명을 베고는 등 뒤로 날아든 칼날에 쓰러졌었다. 철수정령이 내려 모두 배에 오를 때까지 창수의 시신은 거둘 새도 없었다. 가마로는 끝끝내 그를 버려두고 떠나온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가마로의 가슴 한켠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자라나고 있었다. 대지는 고요했으나, 그는 걸음을 내딛는 매 순간이 전쟁터로 향하는 것만 같았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행군 도중 눈을 붙이면 어김없이 악몽이 찾아들었다.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 선창, 피투성이가 된 시신들, 아수라장이 된 전장의 한복판에 자신이 다시 서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친구 진수가 손을 뻗어 자신을 부르는 듯했다. “가마로… 왜 나를 두고 갔어….” 그 핏발 선 눈동자를 견디다 못해 가마로는 꿈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식은땀에 전군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다 보면, 곁에서 자던 동료 병사가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악몽인가… 이제 괜찮아.” 그러나 가마로는 대답 대신 고개만 떨군 채 모닥불 속 잿더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3부: 개경, 차가운 환영
개경에 도착했을 때, 가마로는 깨닫는다. 자신들이 온몸을 내던져 싸운 그 전쟁은 고려 땅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패잔병들이 수도 개경 성 안으로 들이닥치던 날, 거리는 숨죽인 듯 고요했다. 왕성 앞 광장에도 별다른 환영 인파는 보이지 않았다. 찬 바람이 휑하니 불어오는 가운데, 몇몇 행인들만 먼발치에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상처 입은 병사들을 훑어볼 뿐이었다. “저 사람들이 일본 갔다 왔다더니…” 수군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속삭이는 듯 들렸다. 그러나 직접 다가와 말 건네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불쌍하다는 듯, 혹은 불길하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군복 자락에 묻은 피와 진흙 때문인지, 상점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병사들이 지나가자 대번에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가마로는 싸늘하게 식은 가슴으로 돌바닥을 밟아나갔다. ‘우리를 반겨주기는커녕…’ 입술을 깨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장에서 온몸을 내던진 자신들의 노고가 한순간에 허무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에게 해산 명령이 내려졌다. 별다른 치하도, 위로의 말도 없었다. 말 몇 필과 수레가 형식적으로 나와 부상병을 나를 뿐, 살아 돌아온 장정들은 각자 제 발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지가 떨어졌다. 왕궁이나 관아로부터의 후속 지시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정은 침묵을 지켰다. 가마로는 동료들과 함께 맡겼던 병기를 반납하고 각자 흩어지는 자리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헤어지며 “몸조리 잘하게” 하고 인사를 건네는 몇몇의 얼굴은 허탈감에 굳어 있었다. 자신들이 패전군이라는 현실이 더욱 실감났다. 한때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가마로는 마음속 깊이 고독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 가마로는 시내의 한 주막 모퉁이에 혼자 앉아 있었다. 따뜻한 술 한 사발로 전쟁의 기억을 잊어보려 했지만, 주모의 싸늘한 시선에 술잔을 반쯤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횃불이 드문드문 비추는 개경의 거리로 나섰다. 부슬비까지 내려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에휴… 괜히 원나라 일에 등 떠밀려 나가서는….” 골목 어귀에서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산도 없이 서 있던 가마로는 무심코 발길을 멈추었다. 담장 너머에 숨어서 그는 행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번 원정에 우리 쌀이며 인력이며 얼마나 들어갔다고 하더냐. 괜히 고생만 시키고 쓸데없는 전쟁 했지 뭐야.” “맞아, 승전도 못 하고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그 많은 희생은 누가 책임진담.”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가마로의 속이 쓰려왔다. 사람들은 전쟁의 실패를 두고 벌써 수군거리며 불만을 터뜨리는 모양이었다. “일본 정벌이니 뭐니 하더니, 결국 태풍에 다 말아먹었다지. 하늘이 돕질 않으니 시작부터 글렀던 전쟁이야.” 무심하게 내뱉는 말에 가마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고작 “하늘이 돕지 않은” 탓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는 더 듣고 있기 괴로워 자리에서 물러섰다. 빗방울이 어느새 굵어져 방패 연듯 얼굴을 때렸다. 개경의 밤거리는 춥고도 쓸쓸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가마로는 허리춤에 손을 짚었다. 전장에서 벗삼아온 칼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군복과 함께 칼을 관아에 모두 반납하고 나니, 빈몸으로 남겨진 자신이 마치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처럼 여겨졌다. “내 목숨을 바쳐 지킨 나라였는데… 정작 나라는 우리를 거두지 않는구나.” 그는 마음속으로 한탄했다. 승자의 개선식은커녕 패잔병을 다독이는 손길조차 없는 싸늘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가마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제4부: 혼돈의 조정
개경에 당도한 지 며칠 뒤, 겨우 찾아낸 옛 지기(知己)로부터 궁궐 안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는 궁성 수비를 돕는 하급 관리로, 전쟁 동안 개경에 남아 있었다. 밤늦게 주막 귀퉁이에 마주 앉자, 친구는 사람 눈을 피해 작게 입을 열었다. “윗분들이 많이 술렁였네.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난리가 났었지.” 예상대로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마로에게 친구는 당시 상황을 속삭이듯 전해 주었다. 패전 직후 조정 대신들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고 했다. “다들 자기 탓이 아니라더군. 어떤 이는 하카타에서 철수한 건 현명한 결정이라 하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무리한 원정이었다 하면서도 정작 누구 한 명 나서지 않았어.” 친구의 말에 따르면, 누구도 섣불리 패전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려 조정은 그저 패배의 원인을 태풍과 운명 탓으로 돌리며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다.
가마로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이 타들어 갔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단 말이지….” 그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우리 임금님(충렬왕)께서도 원 나라 눈치 보느라 속이 편치 않으셨겠지. 괜히 여기 신하들 문책했다간 몽골에서 뭐라 할지 모르니까.” 실제로 이번 전쟁은 애초부터 쿠빌라이 칸이 충렬왕에게 억지로 요구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 고려로서는 막대한 국력 소모가 불가피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 . 그 강압적인 원정의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자, 윗선에서는 서로 눈치만 보며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당장 몽골 황제가 노할까 두려워 누구 하나 전쟁 실패를 논하는 이가 없지. 괜히 잘못 말했다간 역모로 몰릴 수도 있으니….” 친구의 말대로라면, 결국 패전의 모든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과 병사들 몫으로 남겨진 셈이었다.
며칠 뒤 조정에서는 일본 원정에 대한 공식 보고가 몽골 황실로 올라갔다. 그 자리에서도 책임 공방은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소문에 단 한 줄, **“폭풍으로 인하여 부득이 철수하였나이다”**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했다. 가마로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죽어간 이들의 이름도, 흘린 피의 의미도 없이 고작 폭풍 한 마디로 끝나버린 것이다. “허망하지….”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허나 우리로선 그저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잊는 수밖에.” 잊으라—쉽게 뱉는 그 말에 가마로는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자신은 결코 잊을 수 없을 이 모든 일들을, 세상은 이렇게 빨리 묻어버리려 하는 것인가.
마침내 원나라에서 고려 조정에 전령이 당도했다. 일본 침공 실패에 대해 추궁하거나 누군가를 벌주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칸은 곧 다시 칼을 갈아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고작 태풍 따위에 굴할 줄 아느냐. 재정비하여 속히 재침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고려의 조정은 숨죽인 채 그 명을 받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지만, 내부는 벌집 쑤신 듯 혼란스러웠다. “내부 문서엔 이미 정동행중서성 관원들이 재차 설치될 조짐이 보인다더군.” 친구의 말에 가마로는 고개를 저었다. 정동행중서성, 바로 이번 일본정벌을 위해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한 행정기구였다. 이미 일본 원정을 구실로 고려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기 시작한 기관이었고, 패전 후에도 건재했다. “그 사람들이 다시 설치된단 말인가….” “어쩌겠나. 다음번 원정을 위해 또 이것저것 요구하겠지. 이번 원정으로 고려 백성들은 이미 입에 풀칠도 힘든 지경인데….” 친구의 말에 가마로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그래, 들은 말이 있어. 강화도 쪽 고을은 배 짓는 통나무를 대느라 산을 통째로 베어냈대. 백성들 등골이 휜 거지. 우리 쌀과 나무가 얼마나 실려 갔는지 상상이 안 가.” 친구는 치를 떨었다. 실제로 두 차례에 걸친 원의 일본 원정에 강제로 동원된 고려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훗날의 기록은 전한다 . 농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징발에 시달렸고, 선박과 무기 제작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소모되었다 . 수많은 고려 농민과 인부들이 동원되어 희생되었으며, 태풍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도 부지기수였다 . 그러나 당시의 권문세족과 관리들은 이 참혹한 대가에 눈감은 채,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마로의 가슴속에는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여 쏟구쳐 올랐다. “내가 목숨 걸고 싸운 이유가 대체 뭐였단 말인가….”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몇 번이고 자문했다. 하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조정의 높은 이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 만든 배를 타고 보낸 군사를 잃고도, 저마다 자기 살 궁리만 할 뿐이었다. 패배의 책임은커녕 앞으로 닥칠 더 큰 혼란을 피하려고만 했다. “결국 원나라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것이지.” 친구의 쓸쓸한 평가에 가마로는 턱을 지그시 깨물었다. 전장에서 흐른 피는 식어 굳었건만, 권력자들의 계산은 여전히 뜨겁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5부: 가족과 재회
얼마 후 가마로는 고향 집으로 향했다. 개경 도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외 마을에 그의 노모와 어린 동생이 살고 있었다. 전쟁에 나서기 전, 어머니는 마당 밖까지 따라 나와 행여 아들이 마지막이 될까 염려하며 손을 놓지 못했었다. 가마로는 돌아오는 길 내내 ‘과연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까’ 수없이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났다. 다행히 이제 살아 돌아와 그 앞에 서게 되었건만, 그는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쟁터에서의 시간은 그의 마음에 깊은 골을 남겼고, 집은 그 시간 속에 멈춰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다.
초가지붕 너머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옛날 그대로의 초라한 농가였다. 가마로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부엌 쪽에서 바지런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누구시오…?” 낮은 목소리가 묻는 순간, 가마로의 목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어머니… 저예요. 가마로예요.” 잠시 적막. 이윽고 방문이 와락 열리더니, 백발이 성성한 홀어머니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가마로냐… 가마로가 맞느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가마로는 달려가 노모의 손을 붙잡았다. 한겨울 찬바람에 텄는지 거칠어진 손이었다. 그 손길의 따스함에, 가마로는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예,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한사코 그의 두 어깨를 감싸 안으며 흐느꼈다. “우리 가마로… 살아 돌아왔구나… 살아 돌아와줘서 고맙다….” 주름진 눈가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전쟁터에서 수없이 상상으로만 그리던 장면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있었다. 가마로는 마치 꿈을 꾸는 듯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방 안에서는 어린 남동생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와 있었다. 몇 해 못 본 사이 훌쩍 자라 아직 앳되지만 제법 사내아이 티를 내는 모습이었다. 동생은 형의 군복 차림과 상처 입은 모습을 보고는 놀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형임을 깨닫고 “형님!” 하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가마로는 한 팔로 동생을 끌어안았다. 아직 어리디 어린 동생의 품은 따뜻했고, 형을 찾아 헤맨 세월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형님, 진짜 형님 맞죠…?” 동생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래, 나다. 보고 싶었다…” 가마로는 이를 악물고 웃어 보였다. 가족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이 순간, 그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그날 저녁, 허름한 상 위에는 오랜만에 따끈한 국과 밥이 올랐다. 변변치 않은 찬거리였지만 가마로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값지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밥숟갈을 몇 번이나 내려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전쟁 통에 내내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아들 소식을 기다렸다고 했다. 하카타에서 폭풍을 만나 많은 배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전갈이 전해졌을 때,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야 살 것 같더구나.” 어머니는 쪽진 머리를 떨구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가마로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차마 전쟁터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했다. 동생은 형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그 사이 농사일을 도왔는지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가마로는 괜스레 마음이 아릿했다.
이튿날 아침, 가마로는 집 안팎을 둘러보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도 변한 모습이었다. 가세가 기울었음이 역력했다. 마당 한켠에 있던 소죽통이 텅 비어 있고, 축사에는 기르던 소가 보이지 않았다. 처마 밑에 줄줄이 걸려 있던 마른 곡식 다발도 몇 묶음 남지 않은 듯했다. “예전에 기르던 소는 어디 있습니까?” 가마로가 조심스레 묻자, 어머니는 잠시 말을 아끼다 답했다. “올봄에 부득이 내다 팔았지. 네 원정 보낼 준비를 하느라….” 결국 전쟁 통에 군량과 부역을 대느라 살림을 줄일 수밖에 없었단다. 소를 판 돈으로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불공을 드리고, 남은 돈은 겨우내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데 보탰다고 했다.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에 가마로의 가슴이 저려 왔다. “집안이 많이 어려워졌지요… 제가 없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네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재산이 무엇이 중하냐.” 그제서야 가마로는 어머니의 손마디가 유난히 굵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논밭을 혼자 일구느라 힘을 많이 쓴 흔적이었다. 아들은 전쟁터에 보내고, 어린 자식 하나 데리고 늙은 몸으로 농사를 지은 어머니의 지난 세월이 눈앞에 그려져, 가마로는 목이 메었다.
동생은 전쟁 중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여러 번 부역을 다녀왔다고 했다. 거친 나무를 베어 나르고, 성을 보수하는 데 땀을 흘렸다 했다. “형님, 저 이제 소년 아니에요. 제가 다 컸으니, 형님 대신 집 지킬 수 있어요.” 동생의 말에 가마로는 가슴이 뭉클했다. 어린 것이 철이 너무 일찍 든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 대견했다. “그래, 우리 찬이 많이 컸구나.” 그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가마로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자신이 이 가정을 지켜야겠다고. 가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던 전장의 맹세는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정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초라하지만 소중한 보금자리임을 절감했다.
제6부: 갈림길에서
고향에서의 며칠은 꿈결처럼 지나갔다. 노모의 정성 어린 보살핌과 동생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가마로의 지친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밤이면 그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친구들의 원망 서린 눈빛과 꺼져가는 숨소리가 그를 따라다녔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에서 깨면, 가마로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가슴을 움켜쥐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 없이 등만 쓸어줄 뿐이었다.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1275년의 첫날, 가마로는 마당에 나와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디찬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눈부신 아침 해가 동쪽에서 떠올랐지만, 그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무거웠다.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듯 살아 돌아왔건만, 머지않아 다시 삶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예감이 그를 짓눌렀다.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군인으로서의 길을 이어갈 것인가. 두 갈래 길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전쟁터의 참상을 뼈저리게 겪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지옥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세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듯했다.
새해 벽두부터 개경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막부가 원나라의 사신 일행을 처형했다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 “뭐라구요? 사신을 참수했다고요?” 마을에 찾아온 지인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가마로는 아연질색했다. 패전 후에도 몽골은 일본에 항복을 권유하려 사절을 보냈는데, 일본 측이 그들을 모두 목 베었다는 것이다 . 이 소식은 순식간에 고려 조정에도 전해졌고, 원나라의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했다. “또 전쟁이 날 게야. 몽골 황제가 가만 있을 리 없지.” 동네 이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변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하늘이 도와 실패했다지만, 몽골이 포기할 리 있나.” “그러게. 올핸 더 큰 군사를 몰고 온다고 하더라.” 가마로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숨이 턱 막혔다. 또다시 전쟁… 악몽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악몽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밤, 가마로는 뜬눈으로 지새웠다. 어둠 속에서 홀로 뒤척이던 그는 거실 한구석에 놓아둔 자신의 군화를 바라보았다. 일본 땅의 진흙과 피가 얼룩져 여태 말라붙어 있는 낡은 가죽신이었다. 그 옆에는 녹슬기 시작한 칼집도 함께였다. 돌아온 후 두 번 다시 손대지 않았던 것들이다. 가마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화와 칼집을 들여다보았다. 손끝에 녹이 슬고 닳아버린 칼자루의 감촉이 전해졌다. 이제 이 군화를 다시 신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으려 했다. 가족 곁에 남아 두 번 다시 칼을 들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리라 다짐해 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갈등을 일으켰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만약 다시 징집 명령이 떨어지면,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지…?” 문득 어린 동생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만약 자신이 빠지면, 다음 차례는 훌쩍 자라버린 동생이나 마을의 다른 젊은이들이 될지도 몰랐다. 차라리 전장을 한 번 겪은 자신이 다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가마로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 또 칼을 잡을 텐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방문 너머로 살그머니 어머니가 다가왔다. 잠 못 드는 아들을 눈치채신 듯했다. “가마로야, 아직 자지 않았니?” 부드럽지만 약간 쉰 목소리였다. 가마로는 얼른 군화짝을 내려놓고 방문을 열었다. “예, 어머니….” 달빛 아래 어머니의 얼굴이 드러났다. 깊게 패인 주름마다 온갖 고생이 서려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한없이 다정했다. “무슨 고민이 그리 많으냐. 잠도 못 들고….” 어머니가 걱정스레 묻자, 가마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차마 전쟁이 또 날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네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네가 어디에 있든 살아만 있어다오.”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는 그 한마디에, 가마로는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어머니는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아들이 다시 전쟁터로 끌려갈까 봐 하루하루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을.
그 밤 이후로도 가마로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대장간에 가서 농기구를 고르다가도, 철 제련하는 소리에 그는 흠칫 놀라곤 했다. 쇠망치 소리가 전쟁터의 무기 소리로 들려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일부러 한적한 들판에 나가 쟁기질을 도와보기도 했다. 땅을 갈아엎는 일에 땀을 흘리다 보면, 차라리 이 길이 내 길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허나 귓가에는 또다시 옛 전우들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너마저 등을 돌리면 누가 싸우나….” 스스로의 환청을 떨쳐내려 삽자루를 더욱 세차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먼 개경에서 다시 소식이 전해졌다. 원나라가 재차 일본 원정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큰 군사를 꾸린다고 했다 . 이미 남송 정벌을 끝낸 원나라가 본격적으로 동쪽을 정벌할 기세를 보이고, 고려에는 또다시 선박과 병력 동원을 독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가마로는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밤, 처음으로 홀로 술을 찾았다. 작은 술병을 앞에 놓고 그는 말없이 잔을 비웠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거친 술맛도 느낄 새 없이,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신이 아무리 전쟁을 등지고자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새벽, 가마로는 동틀 무렵 집을 나섰다. 아직 식구들이 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는 허리에 칼집을 찬 채, 집 뒤 언덕에 올랐다. 마른 겨울의 들판 끝에서 어스름한 새벽빛이 서서히 밝아오르고 있었다. 가마로는 동쪽 하늘을 물들이는 여명을 바라보았다. “또 다시 가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바람소리뿐이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란스러웠다. 가족 곁에 남아 평범한 농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나라의 부름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의무감 또한 떨쳐지지 않았다. 전우들이 흘린 피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자신이라도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다시 전쟁터에 간다면 이번에는 살아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문득 산 아래 자신의 집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침 밥을 지으려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핀 것일 터였다. 저 연기처럼 자신의 삶도 저 작은 초가 속에 담긴 것이 아니었던가. 가마로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저 연기 피어오르는 작은 삶임을 깨달았다. ‘그래, 난 무엇을 위해 싸웠던가.’ 처음 전장에 나설 때도 가마로는 가족과 고려 땅을 지키겠노라 다짐했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었다. 다만 그 방법이 꼭 칼을 드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언덕 위에 서서 가마로는 천천히 허리춤에 찬 칼을 빼내들었다.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지만, 군인이 아닌 지금의 자신에게 이 칼은 무겁기만 했다. 그는 잠시 칼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전쟁이 남긴 상처 자국이 얼굴에 어른거렸다. “이 칼을 다시 쥘 것인가….” 가마로는 칼등을 어루만지다, 이내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결연한 눈빛으로 칼집에 도로 칼을 꽂았다. 어떤 결심이 굳어진 모양이었다.
아침 해가 마침내 힘차게 떠올라 주위에 황금빛을 뿌렸다. 가마로는 언덕 아래 자기 집과 멀리 개경이 있는 북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운명은 여전히 자신을 거대한 물결처럼 흔들었지만, 그는 온몸으로 그 물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을 지키는 길이 무엇이든, 그 선택의 무게를 짊어지리라 마음먹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마로는 단단히 묶은 혁대를 한 번 고쳐 매고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들녘엔 서리가 내려 하얗게 빛났지만, 머잖아 첫볕에 사라질 터였다. 그리고 곧 봄이 오면 새싹이 돋을 것이다. 가마로는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눈앞에는 가야 할 두 갈래 길이 펼쳐져 있었지만, 이젠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른봄 찬란한 아침 햇살이 그의 발끝을 부드럽게 감싸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Sources:
제7부: 폭풍 후
가마로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그는 다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에 있었다. 검은 파도 위에서 아비규환의 함성, 불타는 함선, 그리고 귀를 찢는 바람 소리가 그를 짓눌렀다.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여기는 전장의 한복판이 아니라 개경(開京) 외곽 훈련소 막사의 어두운 새벽이었다. 전쟁은 끝났건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가마로의 꿈속을 휘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 돌아왔음을 실감하면서도 수천 전우들의 마지막 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함께 바다를 건넜던 원정군 4만 명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13,500여 명이 끝내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 처참한 패배였고, 가마로는 그 생존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서늘한 안도와 죄책감으로 가슴을 에이는 듯했다.
그는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고 천천히 막사 밖으로 걸어나갔다. 여명이 밝아오는 훈련장 뜰에서는 아침 운동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돌아온 병사들과 새로 모집된 신병들이 뒤섞인 채 구령에 맞춰 창을 찌르고 활을 당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가마로 역시 패잔병 신세로 몇 주 전 이곳 무관 훈련소에 배속되었다.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을 재편성하고 새 군대를 훈련시키는 과정이었다. 훈련장의 공기는 전쟁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모두들 패배의 기억을 떨쳐내려 애쓰는 듯 군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디엔가 또 싸움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흐르고 있었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일본이 원정군을 격퇴한 기세로 보복을 위해 고려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비록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 조정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며 귀환 병사들을 다시 국경 성채와 해안 방어 부대로 속속 배치하고 있었다. 가마로는 군장 차림으로 운동장에 늘어선 열병 대열을 바라보았다. 한때 자신도 저 신참들처럼 싸움에 나가겠노라 혈기왕성했건만, 지금은 창을 뻗는 젊은 팔들에 섞인 노련한 동료들의 굳은 표정만 보아도 전쟁의 무게가 느껴졌다. 멀찍이 앳된 훈련병 하나가 실수로 창을 떨어뜨리자, 곁에 있던 노병이 굳은 목소리로 뭔가 타이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마로는 그 광경을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전쟁을 한 번 겪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그는 싸우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패배 후 돌아온 고려 조정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개경의 궁궐과 관가에서는 패전의 충격을 두고 책임 공방이 벌어졌지만, 정작 누구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이번 전쟁의 실패를 그저 ‘운이 나빴던 것’으로 돌리기 바빴다. 수만의 사상자와 피해가 났건만 고위직 누구 하나 제대로 문책받지 않았고, 백성들에게는 “태풍 탓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섞인 방백만 전해졌다. 심지어 참전했다 돌아온 병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보살핌도 미흡했다. 전쟁터에서 간신히 귀환한 부상병들이 거리와 절간을 전전해도 조정의 구호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승을 거두고 돌아온 것도 아닌 패잔병들이라며 푸대접을 받는다는 푸념이 군사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마로는 며칠 전 개경에 들렀을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궁궐 앞마당에 늘어선 동료들의 초췌한 얼굴과, 그 옆을 바삐 지나치던 관료들의 냉랭한 눈길이 떠올랐다. 모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싸움을 치르고 돌아왔건만, 나라의 대신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궁리만 하는 듯했다. 노병들 몇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다”고 성토했지만, 그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패배의 여파로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으나, 정작 국왕과 대신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시간을 벌고 있었다. 한편, 원나라 조정은 이 패배에 개의치 않고 벌써 다음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쿠빌라이 칸은 일본 정벌이 실패로 끝나자마자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1차 원정의 실패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쿠빌라이는 불과 몇 달 뒤인 1275년 다시 일본 측에 항복을 권고하는 사신단을 보냈다 . 몽골 황제가 재차 칼을 갈고 있다는 소식에 고려 조정은 아연 긴장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불안이 궁궐 안팎에 감돌았다. 고려로서는 겨우 살아남은 귀환 병사들을 추슬러야 할 틈도 없이 다시 원나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패배의 상처를 추스르기도 전에, 새로운 폭풍이 몰아칠 조짐이 이미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채 지나지 않아 원 세력의 압박은 더욱 거세어졌다. 쿠빌라이는 남송(南宋) 정복을 완료한 후에도 일본 원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려를 일본 침공을 위한 군사 기지로 계속 활용하고자 조직적인 계획을 세웠다. 1280년에는 고려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이라는 일본 원정 총괄 기구가 설치되었다 . 이는 고려의 인력과 물자를 직속으로 징발하기 위한 몽골의 출장소와 같았다. 이어서 원나라는 대대적인 2차 침공을 준비하며 고려에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 가마로도 최근 훈련소에 내려온 전갈을 통해 그런 풍문을 접했다. “머지않아 다시 군사를 뽑을 수도 있다”는 지시가 은밀히 전해지고, 장수들은 슬슬 병선 정비와 병력 동원을 타진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쿠빌라이의 명령이 내려졌다. 1281년 2차 일본 원정을 앞두고 고려군 1만 명과 전함 900척이 동원되었으며, 나아가 1285년에는 고려에 병사 1만과 전선 650척을 추가로 준비하라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병사들은 또다시 징집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조정의 신하들은 원나라의 강요를 속수무책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몽골에 호소해 보기도 했지만 , 황제의 의지를 돌릴 순 없었다. 개경의 조정은 몽골 황실의 요구 앞에 한없이 작아졌고, 고려 땅에서는 다시금 전운(戰雲)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날 훈련을 마칠 무렵, 가마로는 믿기지 않는 얼굴 하나를 마주쳤다. 멀리 운동장 구석에서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는 어느 부상 병사의 옆모습이었다. “…이현…?” 가마로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현. 분명 그의 옛 전우 이현이었다. 가마로는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이현 형!” 애타게 불러보는 목소리는 떨렸고, 마주 선 사내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한쪽 눈에 깊은 흉터가 있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곧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가마로… 살아 있었구나!” 이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마로의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붙들었다. 뼈만 남은 듯 야윈 이현의 어깨를 짚은 가마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불현듯 그날의 이별이 떠올랐다. 하카다만 철수 직전의 혼돈 속, 적의 화살이 빗발치던 바닷가에서 이현과 헤어졌던 순간이었다. 서로를 끌어올리려다 커다란 파도가 배 사이를 갈라놓았고, 가마로는 끝내 이현을 놓쳐버렸다. 눈앞에서 전우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정말 자네가 살아 있다니…” 이현의 목소리는 젖은 쉰볕처럼 갈라졌다. 가마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전우와 기적처럼 재회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저녁, 가마로와 이현은 훈련소 담장 너머 조용한 나무 그늘 아래에 나란히 앉았다. 짙푸른 여름밤 공기 속에서 매미 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달빛 아래 바라본 이현의 옆얼굴에는 세월이 훨씬 더 흐른 듯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그는 전장에서 왼쪽 눈 언저리에 큰 상처를 입어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했다. “난 그때 죽은 줄만 알았지…” 가마로가 낮은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휩쓸려갔네.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 해안 바위틈에 부처님처럼 떠밀려 와 있지 않은가.” 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폭풍 같은 전장의 기억을 담담히 읊조리려 애쓰는 그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가마로는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들었다. 이현은 한쪽 다리에도 깊은 상처를 입어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우리 부하들을 절반도 못 건졌어… 끝까지 챙기지 못하고 놓쳐버린 목숨들이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네.” 이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살아 돌아온 기쁨보다도, 자신이 구하지 못한 전우들에 대한 자책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거느리던 소대의 막내 춘홍이가… 마지막까지 날 부르짖다 물에 잠겼지. 나는 그 손을 잡지 못했네.” 이현은 뜨겁게 두 주먹을 쥐었다. 그의 남은 눈에서 커다란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가마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역시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전쟁터에서 수없이 보았던 죽음의 장면들이 겹쳐 떠올랐다. 헤아릴 수 없는 젊은 목숨들이 바닷물 속으로 스러져 갔다. 친구가 죽고, 상관이 죽고, 이름도 모르는 이국의 병사들까지 쓰러져 갔다. 가마로는 그 기억을 지울 길이 없어 고통스러웠지만, 이현 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소. 살아남은 우리가 그 죽은 자들의 몫까지 기억하고 사는 수밖에…” 이현은 한동안 흐느끼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두 사람은 말없이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별들이 총총히 빛났지만, 가마로의 눈에는 전장의 횃불 연기처럼 아득하게만 보였다.
잠시 후 이현은 담배쌈지에서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푸념처럼 말을 꺼냈다. “이봐 가마로,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운 건가? 도대체 무엇을 얻었지…?” 가마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현의 한숨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영광을 위해? 결국 돌아온 건 폐허와 상처뿐 아닌가.” 가마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하늘의 은총일지도 몰라. 그나마 고려 땅에 발을 붙이고 숨 쉴 수 있으니…” 그러나 그의 말끝은 힘이 없었다. 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처음엔 살아 돌아온 게 고마웠지. 하지만 집에 가 보니 늙은 부모만 눈이 빠지게 날 기다리고 있더군. 동생들은 굶주렸고…” 이현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정작 나라에서는 우리를 잊은 것 같더군. 전쟁터에 끌려간 게 벼슬도 아닌데, 남은 건 빈손일세. 하하.” 그의 웃음에는 쓰라림이 배어 있었다. 가마로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 또한 가족들을 떠나 있을 동안 생계가 막막했지만, 돌아와 보니 별다른 지원 한 푼 약조받은 게 없었다.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패잔병인데 뭐 해줄 게 있겠나…” 가마로가 자조적으로 내뱉자,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공을 세우고 못 세우고의 문제가 아니네. 함께 나가 싸운 병사들이 그렇게 죽었는데 조정에서 위로 한마디 없으니 하는 말이지.” 그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들어보니 이번 패전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느라, 위에서는 우리의 고생 따윈 안중에도 없다지 않나.” 가마로는 기억 속의 개경 모습을 떠올렸다. 호화로운 연회를 벌이는 권문세족들과, 그 앞에서 구걸하던 외팔이 병사의 상처 입은 얼굴이 겹쳐졌다. 그의 가슴에도 울분이 차올랐다. 그러나 겨우 삼켜 내뱉는 말은 담담했다.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함께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오.” 가마로가 되뇌듯 말하자, 이현은 한쪽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마로는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부디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원나라가 또 군사를 부르지 않겠는가. 우린 또 가야 할 거야.” 그의 말대로였다. 가마로는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훈련소에서 열심히 군사를 다시 기르고 있지만, 머지않아 또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두 사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다리가 이 모양이라 다음번엔 나서지도 못하겠지. 자네만은 몸 성히 있으니 또 가게 되겠구만.” 씁쓸히 말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가마로는 말없이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도 살아남아 반드시 돌아오리라.’ 전쟁이 다시 닥친다면 피할 수 없을 터, 그는 적어도 눈앞의 이현이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뒤 가마로는 잠시 고향에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전쟁터로 떠났다가 살아 돌아온 병사가 있다는 소식에, 그의 마을 사람들은 가마로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을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야까지…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가마로의 눈에 비친 고향 풍경은 전쟁 전과는 다른 빛으로 다가왔다. 한때는 지루하고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상의 풍경이 이젠 경이롭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전란의 기억을 안고 돌아온 그에게는 이 고요한 삶 자체가 커다란 축복처럼 보였던 것이다. 논밭에서 허리를 펼친 농부들은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고생 많았네! 이제 전쟁은 끝난 거지?” 저마다 한마디씩 건네왔지만, 가마로는 그때마다 애매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전쟁이 정말 끝났는지, 아니면 잠시 숨 고르는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평온을 가슴에 담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특별히 장터 주막에서 술상을 차려 그를 위로해 주었다. 지옥 같은 싸움터에 갔다 온 청년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흥분한 기색이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여기저기서 가마로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 땅은 어떤 곳이던가?”, “왜 졌데? 일본 무사들이 그렇게 강했나?” 호기심 어린 물음에 가마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의 침묵에 눈치 챈 마을 원로가 나서서 사람들을 타일렀다. “허허, 우리 가마로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소. 쉬게들 하시오.” 이내 자리의 화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몇몇 젊은이들은 가마로 곁에서 떠날 줄 몰랐다. 특히 동네 청년들 몇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에겐 전쟁의 참상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일 터였다. 가마로는 그 순진하고도 열띤 눈빛을 보니 문득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해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자신도 한때는 저렇게 별 생각 없이 칼을 휘두르고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전쟁이란 것은 결코 영웅담이 아니며, 피와 눈물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해가 저물 무렵, 가마로는 마을 사립문 앞 평상에 앉아 동네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조용히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모두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가마로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을 바람이 불 때에 군선에 올랐단다. 배에 탄 사나이들 눈에는 각오가 가득했지. 고려군 8천 명이 몽골, 중국군과 함께 4만 대군의 일부로 일본으로 향했다네 . 바다 위에서의 며칠은 고요했고, 모두들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지.” 그는 일부러 무용담처럼 말을 이었다. 청년들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에는 이겼다면서요? 일본의 섬들을 점령했다 들었습니다만.” 한 청년이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가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 쓰시마와 이키 섬에서는 순조롭게 승리를 거두었지. 몽골 군사들이 무자비하게 섬을 휩쓸었고, 우리도 뒤를 따르며 적을 무찔렀다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자신만만했지.” 그는 쓰시마섬 해변에서 불타오르던 초가 집들과 울부짖던 말을 떠올렸다. 승리감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던 그 순간. 가마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본토에 닿자 상황이 달랐네. 드넓은 하카다 들판에 일본 무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지. 우리는 화약 무기를 앞세워 무사들을 쫓았다만, 그들도 필사적으로 달려들더군.”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 하나는 “몽골의 폭탄이 펑펑 터지면 일본인들이 혼비백산했다지요?”라고 묻고 있었다. 가마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우리의 신무기에 처음엔 적들도 놀랐지. 허나 전쟁은 그리 간단하지 않더군. 수가 불리해지자 우리는 바닷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단다.” 가마로의 목소리는 점점 쓸쓸해졌다. “그리고 그날 밤… 갑자기 하늘이 흔들리며 폭풍이 몰아쳤다. 내가 평생 본 적 없는 폭풍우였지. 하카다만에 정박해 있던 우리 함선 대부분이 그 폭풍에 침몰하거나 박살나 버렸다 .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단다. 배가 가라앉으며 수많은 동료들이 바닷물에 던져졌고, 나는 필사적으로 부둣가 기둥을 붙잡고 버텼지. 살고 싶다는 일념 하나였네…” 그의 담담한 이야기 속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자, 주변은 어느새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청년들의 얼굴에서 흥분은 사라지고 깊은 먹먹함이 번졌다. 가마로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맺힌 충격과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소년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가마로는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되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 나도 간신히 목숨만 건져 작은 배 하나에 실려 돌아왔네. 함께 갔던 동무들이 눈앞에서 떠내려갔는데도, 난 그저 멍하니 살아 돌아왔을 뿐이야.” 그는 말하면서도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겪은 전쟁은 승리도 영광도 없는, 그저 처절한 죽음의 소용돌이였단다.” 가마로는 마주 앉은 청년들의 눈을 차례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제 난 안다. 전쟁의 참상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살아남은 우리에겐 평화로운 오늘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청년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평상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잠시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전쟁에 나가 무용을 떨치고 싶다던 청춘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전쟁을 한 번 겪은 자만이 알 수 있는 평화의 의미를, 가마로는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부디 너희들은 다시는 그런 싸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가마로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당부했다. “이 마을의 논밭과 가족들을 지키는 일이, 먼 이국에서 칼부림하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값지단다.” 그의 말에 모두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눈시울을 훔쳤고, 어린 소년은 훌쩍였다. 평상 너머로 매미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날 밤, 가마로는 고향집 뜰에서 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한동안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숨 쉬는 현재의 평화를 느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지울 수 없는 불안이 고개 들었다. 언젠가 다시 저 먼 바다를 향해 돛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눈을 감으면 또다시 거센 비바람과 불타는 배들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가마로는 멍하니 자신의 거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굳은살 박인 손바닥 위에 달빛이 내려앉았다. 이 손으로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이 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들었건만 돌아온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자신이 보고 느끼는 세상이 변했을 뿐이다. 전쟁 전에 그가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풍년을 기뻐하는 농부의 노래, 아이들의 장난스런 흙장난까지… 이전에는 당연하던 그 모든 평범한 일상이 이제는 너무도 소중하고 아릿하게 다가왔다. 전쟁을 겪은 가마로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 이전의 세상과 결코 같을 수 없었다. 그는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평화가 이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하늘의 별빛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의 귓가에,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몰아치는 환청이 울리는 듯했다. 혹여 이 고요한 밤하늘을 다시 짙은 전운의 구름이 뒤덮게 될까 두려웠다. 가마로는 칼집을 그러쥐었다. 비록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이었지만, 그에게 남은 삶은 부디 죽은 자들의 몫까지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기를 소망했다. 머잖아 또다시 조정의 부름이 있을지라도 그는 피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다만 다음에는 부디 살아서 돌아와 마을의 이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가마로의 뇌리에 스치는 기억들이 하나 둘 밤하늘로 흩어져갔다. 멀리서 부엉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칼끝처럼 예리한 초승달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은 차갑고도 고요하게 온 누리를 적시고 있었다. 전쟁은 끝난 듯 보였으나, 역사는 새로운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실 몽골의 일본 원정이라는 거대한 격랑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10여 년에 걸쳐 고려 땅을 휩쓴 긴 싸움이었다 . 첫 패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폭풍이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동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가마로와 같은 병사들이 내던져질 터였다. 고려는 그 긴 세월 동안 국력을 총동원해야 했고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 가마로는 눈을 감았다. 언젠가 먼 훗날 역사는 말할 것이다. 이 땅의 병사들이 겪은 피비린내 나는 나날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폭풍 같은 전란을 견뎌낸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화가 찾아왔음을. 비록 자신이 역사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가마로는 그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리라 다짐했다. 밤공기가 서늘하게 내려앉은 마을에 적막이 감돌았다. 그 적막 속에서, 가마로의 마음에는 한 줄기 바람 같은 다짐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 어떤 폭풍이 다시 닥칠지라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가리라. 그리고 삶은 계속되리라. 이제 가마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먼 동이 터오르는 희미한 빛줄기가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끝)
제8부: 바다로 향하는 그림자
고려에 드리운 몽골의 그림자
1274년 겨울, 첫 번째 일본 원정의 실패 소식과 함께 가마로는 동료들과 간신히 조국 고려 땅으로 돌아왔다. 칼과 화살만큼이나 두려웠던 것은 예기치 않은 태풍이었다. 그날 밤, 원나라 군선들은 거센 바람에 속절없이 휩쓸렸고, 가마로의 눈앞에서 수많은 병사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목숨을 부지한 병사들은 폐허가 된 돛대와 난파선 잔해를 딛고 가까스로 귀환했지만, 전쟁의 상흔은 깊었다. 모두가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몽골 황제 쿠빌라이는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고려 왕궁에까지 전해진 소문에 따르면, 원 황제는 일본 정벌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했다고 한다. 일본이 자신이 보낸 사신들을 처참히 죽였다는 소식에, 그는 더 큰 군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곧 몽골 조정의 압력이 다시 고려를 짓눌렀다. 쿠빌라이는 전쟁 준비를 위해 고려에 새로운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그 이름부터가 섬뜩하였다. 정동행성(征東行省) – 동쪽 나라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임시 관청이었다 . 1280년(충렬왕 6) 고려에 설치된 정동행성은 명목상 **“일본 원정을 위한 전방 사령부”**였지만, 실상은 원나라가 고려를 옥죄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 고려 왕은 정동행성의 승상 자리에 올랐으나, 그것은 영예가 아닌 굴욕이었다. 정동이란 글자 그대로 **“동쪽을 정벌한다”**는 뜻으로, 몽골 황제가 일본에 쳐들어갈 발판을 고려 땅에 마련했음을 의미했다 . 가마로는 관아 앞에 내걸린 ‘정동행중서성’ 현판을 바라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거대한 원나라의 그림자가 다시 고려를 덮치고 있었다.
정동행성이 설치된 이후 고려에 내려온 몽골 황제의 지시는 단호했다. “일본 정벌을 위해 필요한 병력과 함선, 군량미를 모두 마련하라.” 고려 조정은 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 첫 원정의 실패로 군선을 대부분 잃었기에, 고려 백성들은 또다시 목재를 베고 쇠를 구워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장정들은 징집되었고, 농가의 말까지도 군마로 징발되었다. 백성들은 수년간 몽골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터라 더 이상의 희생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원나라에 대한 두려움은 그보다 컸다. 1270년대 내내 겪었던 몽골의 침략을 기억하는 고려인들에게, 황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마로의 고향 원촌에서도 장정들의 이름이 적힌 징집 명부가 다시 작성되었다. 사람들은 수군대었다. “일곱 해 전 그 난리를 치르고도 원이 또 군사를 내라 한다니….” “일본이 황제의 사신을 죽였으니 진노가 크신 게지. 우린 거역하면 멸망일 뿐이오.” 이렇듯 한숨 섞인 대화가 들려왔다. 마침내 1281년을 앞두고, 고려의 왕 충렬왕은 어쩔 수 없이 원정 동참을 공식 선언하였다. 그동안 일본 원정에 비교적 미온적이던 고려 조정도 이제는 적극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 충렬왕은 직접 정동행성의 직책을 받아들이고 원정 준비에 힘썼다. 심지어 그는 원정 참여를 계기로 고려에 있던 몽골 측 간섭 세력인 홍다구 등을 몰아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실리를 꾀하기도 했다 . 겉으로는 원 황제의 뜻에 따르는 모양새였으나, 그 속내에는 고려의 주권을 지키려는 왕의 고심도 엿보였다. 또한 일부 대신들은 차라리 이 기회에 일본을 굴복시켜 해적 왜구의 노략질을 근절하자는 주장을 폈다 .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고려는 다시 한 번 몽골의 대의에 따라 동쪽 바다를 향한 전장에 나서게 되었다.
다시 울려퍼지는 징집의 북소리
1281년 음력 3월의 어느 흐린 새벽, 가마로는 마을 입구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군역을 알리는 징집의 북소리였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하늘 아래, 서리가 걷히지 않은 마당에 나선 가마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머리칼이 희끗한 이장이 북을 치며 외쳤다. “대왕님의 명으로 일본 정벌군에 재차 장정을 징발한다!” 그의 목소리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집집마다 문이 열리고, 남정네들이 굳은 얼굴로 나왔다. 가마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현실이 되자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또다시 전쟁터에 나서야 한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 원정에서 보았던 지옥도가 떠올랐다. 짙은 비린내와 함께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던 동료들의 시신, 귀환 길에 치른 고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는 속으로 절규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그 악몽으로, 내가 다시 들어가야 한다니.
그 순간 뒤따라 나온 노모가 가마로의 팔을 살며시 붙잡았다. “가마로야….” 떨리는 목소리였다. 어머니의 주름진 눈가에는 벌써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가마로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단출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몇 해 전 첫 원정길에 나설 때에도 어머니와 이렇게 이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린 누이와 아내가 뒤에서 눈물 지었는데, 이제 또다시 그 슬픈 이별을 겪게 하다니 가마로는 가슴이 미어졌다. 방으로 들어가 장비를 꾸릴 때, 그의 아내는 말없이 다가와 싸리로 엮은 짚신 한 켤레를 내밀었다. “지난번엔 신었던 것이 다 헤어졌다 하셨지요… 이번엔 부디 무사히 돌아오셔요.” 그녀는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가마로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걱정 말아요. 꼭 살아서 돌아갈 것이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지난 원정 때도 수많은 가장들이 두 번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에는 더 큰 전쟁이라 하지 않는가. 가마로의 머릿속에는 끝없는 회의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아는 자신이 이 길을 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 차라리 들에 숨거나 멀리 도망쳐버릴까 하는 비겁한 생각까지 스쳤다. 하지만 그는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자신이 도망친다면 남은 가족들에게 몽골의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 터였다. 고려는 이미 원의 지배하에 있었고,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그 일족까지 멸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약한 생각을 떨쳐내자, 가마로의 등에는 다시 싸늘한 각오가 어렸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떠나야 한다. 그것이 비록 목숨을 담보로 한 길일지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마을 어귀까지 전송을 나온 사람들과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애처로웠다. 징집된 젊은이들의 가족들이 흙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는 사이, 가마로는 맨 뒤에 서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노모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두 어깨를 부여잡고 힘주어 말했다. “몸조심해야 한다. 지난번처럼 또 상처 입지 말고… 꼭 살아서 돌아와다오.” 쌀 한 되마저 군량미로 바쳐야 할 형편에 어머니가 쥐어준 것은 말린 묵은 나물 다섯 줄기뿐이었지만, 가마로는 그걸 품에 넣으며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반드시 돌아와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리리라. 마침내 징집 행렬이 떠났다.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건만, 가마로는 저도 모르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고향 쪽을 돌아보고 말았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 아래 눈에 들어온 것은 눈물로 범벅이 된 가족들의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가슴에 새긴 채, 가마로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쓰디쓴 전쟁의 길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출정을 앞둔 병영의 풍경
남해의 군항 합포에 이르렀을 때, 가마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바닷가의 너른 포구에 셀 수 없이 많은 **전선(戰船)**들이 빽빽이 정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조정이 동원할 수 있는 선박은 모두 긁어모은 듯했다. 조각배에서부터 강철로 보강한 대형 전투선까지 각양각색의 배들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부두에서는 땟국이 흐르는 인부들이 마지막 남은 함선을 기워내고 있었다. “저게 다 우리 고려 배란 말인가….” 옆에 섰던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예전 원정 때는 몇 백 척이더니, 이번엔 거의 천 척 가까이 되는 게야.”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두 번째 원정을 위해 고려가 부담한 배만 900척에 이르렀고, 그 대부분이 새로 건조된 것들이었다 . 원나라에서는 남송 출신의 기술자들까지 보내 배의 설계를 도왔다. 가마로는 거대한 전선의 뱃머리를 어루만지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원정 때 이용했던 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배들이었다. 한 척당 수백 명의 병사가 탑승할 수 있고, 갑판 위에는 노를 젓는 수병 외에도 투석기와 화포를 설치할 자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원 세조 쿠빌라이가 얼마나 이 재원을 쏟아부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은 함선에는 고려 백성의 피와 땀이 깃들어 있었다. 성 아래 산야의 울창한 숲들은 이미 잘려나간 지 오래였고, 농민들은 쟁기를 놓고 배 짓는 일에 동원되었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가마로의 마음은 씁쓰레했다.
병영으로 걸음을 옮기자, 여기저기서 훈련용 나팔 소리와 함께 군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왠지 기백이 없었다. 드넓은 훈련장에 몰려든 고려군 병사들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마로처럼 이전 원정의 참상을 직접 겪었던 생존자들이었다. 또 나머지 상당수는 억지로 끌려온 농부나 어부들이었다. “7년 전에도 졌는데, 이번엔 무얼 하겠다고…,” 누군가 한숨 섞인 투덜거림을 내뱉었다. “입 조심하게, 벙어리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옆에 앉은 병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제지했다. 원 장교들이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혹여 밀고자가 있을까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 훈련은 형식적이었다. 창을 들고 허공을 찌르는 병사들의 동작은 힘이 없었고, 말갈기처럼 흐트러진 투지는 어딘가에 잃어버린 듯했다. 몇몇은 부상병 행세를 하며 훈련을 빼먹기도 했다. 원나라 장교들은 그런 고려 병사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루는 몽골인 장교 한 명이 훈련장을 돌며 고함을 질렀다. “너희 고려군은 왜 이렇게 나약하냐! 그렇게 해서 일본 무사들과 싸울 수 있겠느냐?” 그의 거친 꾸짖음에 이곳저곳에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통역을 거쳐 전달된 모욕적인 말에 젊은 병사 하나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우리를 나약하다 모욕하지 마시오! 지난번에도 우리 고려 수군이 앞장서서 싸운 것을 모르시오?” 그 청년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몽골 장교는 눈살을 찌푸리며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채찍을 빼어 등을 향해 내리쳤다. “감히 군령을 어겨?! 네까짓 게 입을 놀려—” 매서운 채찍 끝이 공기를 갈랐다. 그러나 그 순간 채찍질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채찍을 막아선 건 가마로의 창이었다. 가마로는 재빠르게 창대를 뻗어 그 채찍을 받았다. “그만하시지요.” 가마로가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장교의 눈이 한순간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 외쳤다. “어디 함부로 덤비느냐!” 주변의 원군 병사 서너 명이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기세로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중년의 고려 장교 하나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흥분들 하지 마시오!” 그 장교는 바로 김방경 장군이었다. 김방경은 고려군 최고의 지휘관으로 원정군 **주장(主將)**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 그의 위엄 있는 등장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김방경은 노려보는 몽골 장교에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고개 숙여 말했다. “죄송하오. 젊은 병사의 혈기가 지나쳤나이다. 허나 모두 황제 폐하의 큰 뜻을 받들어 한배를 타는 전우들이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러면서 슬쩍 자기 검집에 손을 얹어보였다. 묵직한 고래 가죽 검집에 새겨진 용 문양이 번득였다. 몽골 장교는 잠시 당혹스런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 씩 웃으며 채찍을 거두었다. “김 장군의 체면을 봐서 봐주겠소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소.” 김방경이 거듭 허리를 굽히자, 몽골 장교 일행은 휙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김방경은 가마로와 젊은 병사를 향해 엄하게 눈을 흘겼다. “자네들, 내 앞이라 해서 방심하지 말게. 군율은 몽골이나 고려나 매한가지일세.”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죄를 청했다. 그러나 김방경은 이내 상냥한 얼굴로 가마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낮게 속삭였다. “자네 같은 이가 많아야 이번 싸움을 치를 수 있을 테지.” 그리고는 곧장 병사들을 둘러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힘을 내라! 고려의 용맹을 왜놈들에게 보여주자! 지난번에 다 못 이룬 뜻을 이번에는 반드시 이룰 것이니, 조금만 더 참고 기운을 내자!” 그의 격려에 병사들은 마지못해 “와!” 함성을 올렸다. 그러나 그 눈빛들 이면엔 의구심이 어려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사기가 바닥이라는 것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병영을 짓눌렀다. 일부 병사들은 밤에 모닥불을 쬐며 이렇게 수군거렸다. “저 몽골 원수(元帥) 나리들은 우리를 믿지도 않는데, 과연 싸움이 될까?” “지난번에도 홍다구 장군과 고려 지휘관들 사이에 늘 다툼이 있었다더군 . 명령 체계가 갈려 우왕좌왕하다가 철수했다지.” “원나라 장수들은 우리를 하인 부리듯 하고, 우리 장수들은 체면만 챙기고…. 전쟁이 이 모양이니 이기겠나.” 가마로는 그런 푸념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켠이 답답해졌다. 사기가 이리도 떨어져서야 큰일인데…. 그는 일부러라도 씩씩한 목소리로 동료들을 달래보았다. “그래도 우리는 해적들과 싸워 온 수군 아닌가. 바다 싸움에 있어선 왜놈보다 우리가 훨씬 익숙할 게야. 저 몽골 녀석들도 이번엔 우리한테 배워가며 싸울 걸세.” 그러나 그런 말에 선뜻 힘을 얻는 병사는 많지 않았다. 먼 항구 쪽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적막하게 병영을 감싸돌았다.
며칠 뒤, 본격적인 연합 함대 훈련이 시작되었다. 고려군과 몽골군을 뒤섞어 부대를 편성하고, 승선 연습과 해상 전술을 맞춰 보는 훈련이었다. 배마다 몽골 지휘관과 고려 지휘관이 함께 타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자주 의견 차이가 드러났다. 몽골 지휘관 홀돈은 배 위에서의 전투를 기동전으로 생각했다. 그는 작은 함선들을 흩뿌려 적 함대를 각개격파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김방경을 비롯한 고려 지휘부는 대형 판옥선들을 앞세워 밀집 진형으로 돌파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전술적 시각차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연합군 군사회의에서도 논쟁거리였다. 회의장 밖을 지키던 가마로는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흩어졌다간 각개격파 당하기 십상일세!” “허면 뭉쳐 있다가 일본군 화살 세례에 모두 맞아 죽을 것이오!” 몽골과 고려의 장수들이 언성을 높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병사들 사이에도 불신이 싹텄다. 몽골 병사들은 고려군을 두고 “비실대는 고려놈들”이라고 업신여겼고, 고려 병사들은 몽골군을 “우릴 총알받이로 쓰려는 오랑캐”라고 은밀히 성토했다. 원정군 내의 이러한 마찰과 반목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모두 한 배를 타고 같은 적과 싸워야 하지만, 속내는 하나로 뭉치지 못한 채 출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폭풍 전야: 전략과 조정의 움직임
1281년 5월, 제2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드디어 눈앞에 다가왔다. 정동행성의 지휘 아래 최종 출정 준비가 진행되던 어느 날, 가마로는 병영에 퍼진 한 가지 소식을 접했다. 원나라 조정에서 새로운 전략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것이었다. “남쪽 군이 온다 하더니… 정말인가 보군.” 동료 병사가 속삭였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남로군(강남군)**의 합류가 공식화된 것이었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첫 원정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두 갈래의 대군을 동시에 동원하는 초유의 전략을 세웠다 . 즉, 고려와 북방 출신들로 구성된 동로군이 한 축, 원나라가 남송(강남) 지역에서 동원한 강남군이 다른 한 축이었다. “동로군은 고려 합포에서 출발하여 일본 규슈로 진격하고, 강남군은 명주 등지에서 출발하여 규슈 북쪽 해역에서 합류한다.” 훈련장 한복판에 모인 병사들 앞에서 전달된 새 명령서는 그렇게 적고 있었다. 가마로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강남군이라…. 듣기로 강남군은 남송이 멸망한 후 투항한 옛 송나라 군사들과 원나라 본토 병사들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병력 10만에 선박 3천 척이 넘는 대규모 함대라 하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 동로군 역시 웅대했다. 고려와 몽골 연합군 4만에 함선 900척 규모로 편성된 동로군은 이미 합포 앞바다에 집결해 있었다 . “14만이 넘는 대군이라… 세상에 이런 큰 전쟁이 또 있을까.” 주변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과장된 숫자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엄청난 병력이 일본을 향해 몰려가고 있음은 분명했다. 쿠빌라이의 분노와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하듯, 몽골 제국 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이 형성된 것이었다 .
한편, 이러한 소식은 고려 조정에도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었다. 개경의 궁궐 깊은 곳, 충렬왕은 연일 올라오는 보고서를 받아보며 근심을 거듭했다. 원 황제가 내린 전략 변경 지시에 따라, 고려는 더욱 막대한 군수 물자 조달을 떠안게 되었다. 이미 고려는 함선 건조와 식량 제공으로 국고가 바닥날 지경이었다. 대신들은 연일 걱정스런 어조로 아뢰었다. “폐하,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옵니다. 곳간의 곡식이 달렸사온데,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사옵니다.” 그러면 충렬왕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고 한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원정을 실패한다면 그보다 큰 재앙이 닥칠 것이오. 황제 폐하의 신임을 잃고 우리의 안위도 보장 못할 것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원을 다해야 하오.” 충렬왕은 누구보다 고민이 깊었다. 그는 고려를 위해 원나라에 굴욕을 감내하며 사위가 된 왕이었다. 지금 원 황제의 의중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그는 결연히 원정을 도와 몽골로부터의 간섭을 줄여보고자 했다 . 그래서 김방경 같은 충직한 무장을 앞세워 고려군을 잘 이끌게 하고, 원나라의 홍다구 같은 인물은 현장에서 몰아내고자 꾀하였다. 그러나 왕의 바람과 달리 현장의 고려군 사기는 날로 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정은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백성들이 겪는 고통만은 뼈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대신 최탄은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이러다가는 나라 재정이 거덜나겠사옵니다! 상국의 체면도 중요하지만, 우리 고려의 국력이 고갈되고 있나이다.” 실제로 함선 제조와 군량미 충당을 위해 고려 조정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야 했다 . 왕족과 대신들까지 곡식을 헌납하고, 지방의 촌부들에 이르기까지 미두(米斗)를 바쳐야 했다. 민가는 텅 비어 가산이 기울었고, 젊은 남정네는 모조리 전쟁터에 나가니 들판의 농사는 황폐해졌다. 긴 몽골과의 전쟁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고려 사회가 다시 한 번 거대한 모험에 내몰리고 있었다. 충렬왕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왕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원의 역린을 건드려 국토가 쑥대밭이 되게 둘 수는 없었다. 고려로서는 싸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정일이 밝아왔다. 1281년 음력 5월 22일, 맑게 갠 하늘 아래 몽골-고려 연합 함대는 일제히 돛을 올렸다 . 가마로는 갑판 위에서 고향 땅이 아련히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려 합포만의 푸른 물결 위로 수백 척 함선의 돛대가 숲처럼 우거졌다. 선창마다 전투태세에 돌입한 병사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동로군 함대는 일본을 향해 일제히 남쪽으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멀리 앞쪽 기함에서는 홍다구와 홀돈 등 원나라 장수들이 지휘 깃발을 높이 들고 있었다. 김방경 장군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항해를 독려하고 있었다. 고려군의 북소리가 진군의 박자를 맞추고, 몽골군의 나팔 소리가 바다 위로 길게 퍼져나갔다. 이 거대한 함대가 과연 일본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가마로는 출렁이는 파도를 응시하며 문득 아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난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자는 다행이었지만, 돌아오지 못한 이도 부지기수였다. 실제 고려 기록에 따르면 첫 원정 때 1만 3천여 명의 고려군이 미귀환했다고 전한다 . 이번엔 그보다 훨씬 큰 전쟁이니, 그 희생이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가마로는 옷깃 안쪽에 소중히 간직한 어머니의 부적을 손으로 감쌌다. 가족의 얼굴이 파도 너머로 아른거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리라… 반드시.
함대는 서서히 고려의 해안을 떠나 광활한 대한해협으로 접어들었다. 초여름의 바닷바람이 돛을 힘차게 불었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는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실려 오는 듯했다. 뱃머리에 선 가마로는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피어나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잿빛 기운이 서서히 번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전조 같았다. “하하, 저 날씨를 보라지. 순풍에 돛을 달았군!” 한 몽골 병사가 낄낄대며 말했다. 하지만 가마로는 괜스레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문득 지난 원정 때 겪은 폭풍의 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바다 한가운데서 느닷없이 불어닥친 광풍이 연합군을 모조리 집어삼켰었다. “신풍(神風)”, 일본인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그 태풍 말이다. 가마로는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떨치려 했다. 하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나먼 바다 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한 자락…. 그것은 가마로의 눈에 한 마리 거대한 용처럼 보였다. 마치 바다의 신이 일어서서 함대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마로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등 뒤에서 북소리가 울리고, 뱃전에 부딪는 파도가 포말을 일으켰다. 고려의 병사 가마로는 미지의 풍운을 향해 나아가는 배 위에서 눈을 감았다 뜨며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이번 싸움이 모든 고통의 종지부가 되기를, 이 땅의 백성들에게 다시는 전쟁의 재앙이 닥치지 않기를. 그러나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거친 파도 소리만이 장엄한 진군가처럼 이어질 뿐이었다.
(이상, 1281년 제2차 여몽연합군 일본원정 출발 직전까지의 가마로 시점 기록. 고려는 원나라의 압력으로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다시 병력과 선박을 총동원하여 일본 정벌에 나섰으나, 내우외환 속에 군사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 거대한 연합함대가 출발하던 그날, 가마로의 눈앞에 비친 바다는 향후 역사의 격랑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카타 해안 상륙
고려-몽골 연합군의 함선들이 규슈 하카타만을 향해 나아갈 때, 바다는 거대한 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연합군 동로군 약 4만 명이 900척에 달하는 전선에 나누어 타고 출병한 장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 나는 고려군 보병 가마로, 그 거대한 함대의 한 척에 몸을 실은 병사에 불과했다. 새벽 물안개 너머로 일본 해안선이 어렴풋이 드러났을 때, 가슴은 두려움과 기대로 뜨겁게 뛰었다. 7년 전 첫 원정 때 실패를 안겨준 그 땅을 다시 밟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 해변에 가까워지자, 눈앞에는 길게 이어진 성토와 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측이 지난 원정 이후 해안 방어를 강화하여 돌과 흙으로 구축한 성벽이 바다를 따라 수십 리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 성벽 위에는 수많은 무사가 매복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륙하라!”는 함성과 함께 우리는 얕은 물로 뛰어들어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곧바로 화살과 조총 소리가 뒤섞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처음 마주한 일본 무사들의 전투 방식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북소리나 함성 대신 묵묵히 진형을 유지한 채 접근하다가, 일단 거리가 좁혀지면 각기 앞장서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몇몇 무사는 이름을 외치거나 깃발을 앞세우며 일대일 결투를 하려는 듯 뛰쳐나왔는데, 우리는 그런 광경에 잠시 당황했다. 몰려오는 왜군(倭軍) 기마무사의 칼날이 눈부시게 번뜩였고, 그들이 휘두르는 긴 칼은 우리 병사들의 방패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창을 세워들었다.
곧 혼전이 벌어졌다. 몽골군의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고려 활군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가 일본군 진형을 향해 쏟아졌다. 폭약을 채운 화포 비도화전이 쏘아올려져 일본 측 성벽 너머로 날아가 터지며 흙더미를 날렸다. 그러나 일본 무사들은 그런 폭음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에는 다시금 개인 단위로 뛰쳐나와 맞서는 것이 아닌가. 한 무사는 말을 타고 돌진해 오다 말에서 뛰어내려 우리 창병들과 맞섰다. 그는 갑옷 곳곳에 화살이 꽂혀 피를 흘리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하아아!” 그의 함성과 함께 내 동료 한 명이 방패째로 쓰러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창끝을 그 무사 가슴께로 내질렀다. 창이 그의 갑옷 틈으로 파고들자 무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와아!” 하는 함성이 터졌다. 우리의 기병대가 측면으로 상륙하여 돌파구를 열자 일본 측 선봉이 잠시 물러났다. 해안 여기저기에 작은 교두보가 생겨나며 우리도 가까스로 상륙에 성공하는 듯 보였다.
전우 사달의 죽음
그러나 안심할 새 없이, 곧 치열한 백병전이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벌어졌다. 나는 오랜 전우 사달과 등을 맞대고 칼을 휘둘렀다. 사달은 나와 함께 고려에서 훈련받은 친구로, 수년간 생사를 함께 한 사이였다. “가마로, 버텨!” 그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와 마음이 든든해졌다. 우리는 눈앞으로 몰려드는 왜군 병사들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바닷물에 젖은 모래는 이미 피로 붉게 물들고, 짠내 나는 해풍 속에 피비린내가 섞여 코를 찔렀다. 사달은 방패로 적의 칼을 받아내며 한 팔로 창을 휘둘러 앞의 적을 쓰러뜨렸다. “이제 조금만 밀고 나가면 돼!” 그가 외치던 찰나,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한 발이 사달의 목 옆을 꿰뚫었다. “으읍—” 사달의 신음과 함께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사달!”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사달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져 갔다. 그의 눈이 나를 찾았지만, 입술은 달싹일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나는 그의 상처를 틀어막았지만 뜨거운 피는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주변의 함성은 잠시 먼 메아리처럼 들렸다. 나에게는 사달의 숨소리만이 크게 들릴 뿐이었다. “안 돼… 이러지 마!” 그러나 사달의 눈빛에서 서서히 생기가 빠져나갔다. 내가 수없이 같이 훈련하고 웃고 떠들던 그 눈이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형제여, 정신 차려!” 나는 그를 흔들어 보았지만 그의 몸은 축 늘어졌다. 등 뒤로 적의 함성이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차마 사달의 몸을 그 자리에 두고 물러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심장이 갈갈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왜 우리가 이 낯선 땅에서 이리도 쓰러져 가야 한단 말인가…’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동료가 나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가마로! 물러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어!” 그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치켜들어 마지막으로 사달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 그의 식어가는 체온을 가슴에 새긴 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전우의 희생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가슴속에서 불타올랐다.
엇갈린 지휘
해가 기울 무렵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일본군의 조직적인 방어와 완강한 저항 앞에 몽골-고려 연합군은 큰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한 채 해안선 인근에 밀집되어 있었다. 성벽 뒤로는 끊임없이 일본의 증원군이 들이닥쳤고, 더 깊이 진격하려 할수록 우리 측 피해만 불어났다. 결국 몽골군 지휘관들은 상륙 부대를 일부 철수시켜 해상으로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고려군 지휘관들은 이대로 물러설 경우 적에게 빌미만 줄 뿐이라며 반발하였다. 저무는 하카타의 하늘 아래, 연합군 지휘부 사이에 언쟁과 불협화음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다.
밤이 되기 전, 우리는 상륙지에 간신히 쌓은 목책 진지 둘레에 모여 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몽골 측 장교와 고려 측 장교가 전하는 지시는 엇갈리고 혼란스러웠다. “모두 배로 철수하라!” 몽골군 전달병은 이렇게 외치고 갔지만, 잠시 후 고려군 장교는 **“철수 명령은 취소다. 진지를 사수하라!”**고 정정했다. 지친 병사들은 어느 지시를 따라야 할지 어리둥절해하며 웅성거렸다. 나 역시 방패에 기대 선 채, 땀과 피로 범벅된 얼굴을 들고 동료들과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방경 도독사와 몽골 도원수 홀돈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방경 장군은 물러서지 말고 결사항전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우리 군사가 비록 적지만 이미 적진에 들어와 스스로 싸우고 있으니, 이는 배를 불태우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하고 김 장군이 간언하였다고 전해졌다 . 멀리 타국에까지 와서 싸우는 원정군은 물러설 곳이 없으므로, 싸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몽골 측 홀돈 도원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고 했다. “병법에 이르길, 작은 군대가 비록 강하더라도 대군 앞에서는 결국 사로잡히고 만다 했소. 피로에 지고 보급마저 부족한 우리가 적의 늘어나는 병력을 상대로 버티는 것은 계책이 못 되오. 차라리 군사를 물리는 게 상책이오.” 이렇게 반박하며 철수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
지휘부의 이러한 대립 소식은 순식간에 진지 곳곳으로 퍼졌다. “몽골 장수들은 우리보고 빠지라 하고, 우리 김 장군은 더 싸우자고 하신다니 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 투덜거렸고, 병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결국 절충안이 내려왔다. 선봉 부대 일부는 배로 철수하고, 일부 병력은 해안 진지에 남아 다음 날 공격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갈피를 못 잡은 채 분주히 움직였다. 일부는 해변에 새로 상륙하는 보급품을 나르며 진지를 보강했고, 일부는 부상병들을 배로 실어 날랐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피로뿐 아니라 혼란과 불안이 역력했다. 상관들의 명령이 수시로 바뀌니 사기는 떨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까지 싹트는 듯했다. **“이러다 싸우기도 전에 우리끼리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 역시 가슴 한켠에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고개 드는 것을 느꼈다. 지휘관들 사이의 불화는 곧 우리 같은 말단에게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적과 싸우러 와서, 정작 우린 방향을 잃고 있었다.
일본군의 방어와 야습
그날 밤, 우리는 결국 상당수 병력이 함선으로 복귀한 채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나와 몇몇은 뭍에 남았지만, 대부분은 배 위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라는 명을 받았다. 일본군은 해변의 토벽 뒤에 횃불을 밝히고 경계를 서고 있었고, 우리 역시 선상과 해변 양쪽으로 경계를 강화했다. 사위를 어둠이 완전히 뒤덮었을 때,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갑옷을 식혔다. 나는 해안 방비에 남은 동료들과 함께 모래둔덕 뒤에 몸을 숨긴 채 바다 쪽을 주시했다. 먼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등불들 — 우리 연합군 함선의 등불이었다 — 이 바람에 일렁이며 별처럼 반짝였다. 그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하루 목숨을 부지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달이 없는 현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달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적진 너머에서 들려오는 일본측 나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저들도 잠들지 않고 있을 터였다.
한편, 함선에 오른 병사들은 피로에 지쳐 겹겹이 갑판에 누웠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깊은 잠에 든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이 밤에 기습을 해온다는 소문을 우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로 7년 전 1차 원정 때도 밤이 되자 왜군의 작은 배들이 불시에 들이닥쳐 함선을 공격했고, 연합군이 피해를 보자 부득이 하카타만 밖으로 퇴각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경계하며, 몽골군 측은 배들 사이에 횃불을 밝히고 순찰선을 돌렸다. 우리의 마음 한구석엔 적의 그림자가 밤바다 위로 스며들 것이라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자정 무렵 달빛이 구름 속에 가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을 때였다. 갑자기 멀리 함선 쪽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이다! 왜군이다!” 이어서 쨍그랑 금속음과 함께 불길이 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번쩍 놀라 일어섰다.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이 우리 대형의 빈틈으로 은밀히 파고들어 몽골군 함선에 접근한 모양이었다. 쾅! 이어지는 굉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들고 불화살이 이리저리 튀었다. 일본군이 야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횃불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함선 위로 불화살이 꽂혀 갑판이 불타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 지원하러 가자!” 지휘관의 외침에, 해변에 남았던 우리도 급히 작은 배에 몸을 실어 함대 쪽으로 노를 저어갔다.
배들이 엉켜 있는 사이를 누비며 현장에 이르자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일본의 소형 선박들이 우리 대형 함선 옆에 접근해 있었고, 등불을 끈 채 몰래 올라탄 적 소수 정예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 함선 갑판마다 싸우는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졌다. 나는 배가 닿자마자 뛰어올라 한 몽골군 함선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낯선 형상의 갑옷을 입은 일본 무사가 칼을 휘둘러오는 것을 간신히 받아쳤다. 불똥이 튀어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아랑곳할 새 없었다. 무사는 재빠르고 날랜 동작으로 나를 베려 들었다. 나는 방패로 그의 칼을 막아내고 틈을 노려 창을 찔렀다. 적의 허벅지를 맞히자 그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칼을 휘둘러 내 창대를 부러뜨렸다. 당황한 나머지 뒤로 물러서는데, 옆에서 달려든 우리 고려군 동료가 그 무사의 어깨를 베어냈다. 적은 피를 뿜으며 비틀거리다 바다로 몸을 던져 빠져나갔다.
사방이 어둡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 무사들의 습격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자 약속이나 한 듯 배 밑바닥에 매달렸던 밧줄을 타고 재빨리 자기 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달아난다! 놈들이 물러선다!” 몽골 병사 몇이 소리쳤지만, 곧 지휘관들은 경계하라는 손짓을 했다. 일본군은 동틀 무렵까지 치고 빠지는 식의 야간 기습을 반복할 공산이 컸다. 실제로 적의 소형 선박들은 몇 차례 더 그림자처럼 접근해왔다가, 우리가 대비하고 있으면 다시 물러나기를 거듭했다 . 우리는 일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밤새 불규칙하게 계속된 기습으로 연합군 병사들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씨름해야 했다. 일본군의 이러한 유격전과 조직적인 방어 방식은 우리 대군을 철저히 소모시키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눈앞의 적을 칼로 상대하기도 전에, 그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낮에 무모하게 돌격해오던 것과는 또 다른, 차갑고 치밀한 전략의 일면이었다. 낮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 용맹으로 맞서고, 밤에는 어둠을 이용해 적을 교란하는 지략으로 나오니, 일본 무사들의 전투 태세는 실로 두 얼굴을 가진 듯했다. 연합군 진영은 거대한 병력에 비해 한데 뭉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였지만, 일본측은 적은 병력으로도 통일된 지휘 아래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여 우리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뼈아프게 느껴져,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일본군의 야습은 완전히 중지되었다. 희미한 여명 아래 드러난 광경은 참담했다. 밤새 불타거나 부서진 함선들이 연기와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고, 몇몇 배는 불길이 꺼지지 않은 채 기울어 침몰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물에 빠진 병사들이 들썩이는 파도를 붙잡고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서, 해상에 부유하는 시신들과 잔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구조 작업을 도우러 나서려는데, 문득 어깨를 짚는 손길이 있었다. 뒤돌아보니 김방경 장군이 그의 수하들과 함께 작은 주돗배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고 계셨다. 나와 눈이 마주친 장군의 얼굴에는 분노와 비통함이 어린 듯했다. “속히 부상병을 구출하고 전열을 정비하라!” 장군의 지시는 간결했지만 그 눈빛엔 타오르는 불꽃이 있었다. 나는 비로소 등줄기를 타고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다. 비록 상황은 불리하지만, 우리의 지휘관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동료들과 함께 나는 부상자들을 끌어올리고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며 동이 트는 바다 위를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 날 이후로도 며칠간, 연합군은 바다로 물러난 채 섣불리 재상륙을 하지 못했다. 일본군은 해안 성벽 뒤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었고, 아군이 상륙 시도를 하면 즉각 달려들어 격퇴했다. 낮에는 해안가에서 활과 포환을 주고받으며 대치하고, 밤이면 일본의 기습을 경계하며 진을 치는 소모적인 상태가 계속되었다 . 그 사이 날은 점점 더워져 갔다. 무더운 초여름의 열기 속에 갑옷을 걸친 병사들은 쉽게 지쳐갔고, 식수와 식량도 빠르게 소모되었다. 왜군의 완강함과 우리 지휘부의 혼선 속에, 병사들의 사기는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지원군은 언제 오나….” 누구랄 것도 없이 이런 한숨이 새어나왔다. 원래 우리 동로군과 중국 강남에서 오는 남로군이 합류하여 일거에 일본을 제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남군은 아직 바다 건너 소식이 없었다. “저쪽은 10만 대군이라더니 뭐 하고 있는 거야?” 어떤 이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기다림’**이었다. 싸워 승부를 내지 못한 채 바다에서 시간을 끌수록 우리의 형편만 더 나빠지고 있었다. 불확실한 정세와 연일 지속되는 소모전에, 가마쿠라 막부의 무사들은 갈수록 자신감을 얻는 듯했다. 반대로 연합군 진영에는 피로와 좌절이 쌓여갔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에 부딪혀 그 앞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사달을 잃은 슬픔도 채 추스를 새 없이,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남는 데에만 급급했다.
다가오는 폭풍
7월이 넘어가며 장마철의 습한 공기가 해상에 감돌았다. 남쪽 하늘 끝에 먹구름이 꾸물꾸물 모여들고, 바람결이 심상치 않게 바뀌기 시작했다. 하루는 해질녘에 갑자기 바람 방향이 돌변하여, 동쪽에서 불던 바람이 거칠게 남서쪽에서 몰아쳤다. 바다 위를 뒤덮은 구름은 납빛으로 낮게 깔려 해군의 돛대 끝을 스칠 듯했다. 저녁 무렵 내리는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뱃전과 투구를 연달아 때렸다. 천둥이 멀리서부터 구름 사이로 울리며 우리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선창에서 노를 젓던 뱃사공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이다….” 누군가가 내뱉은 말이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일본 땅 깊숙이 들어오는 이 거센 남풍은 여름 태풍의 징후임에 틀림없었다.
순간 모든 병사들의 눈빛 속에 공포가 스쳤다. 우리 대부분은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몽골과 고려의 정예였지만, 태풍의 무시무시함만큼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히 7년 전 첫 번째 원정 때, 하카타만에서 불현듯 닥친 폭풍으로 인해 많은 함선이 침몰하고 군사가 죽었던 비극은 아직도 생생히 전해지고 있었다 . 그때 살아남은 병사들은 하룻밤 새 바다가 지옥으로 변했다고 증언했다. 사람 키만 한 파도가 전함을 집어삼키고, 미친 듯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배들이 서로 부딪쳐 박살났다고 했다. 혹자는 **“하늘이 일본을 도왔다”**고까지 말하곤 했다. 이제 그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나도 갑판 난간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태풍이 온다면, 우린 꼼짝없이 바다 위에서 풍랑과 싸워야 한다. 칼과 창으로 맞서는 적보다도, 차라리 자연의 분노가 더 두렵게 느껴졌다. 하늘이 우리를 시험하려 드는 걸까.
김방경 장군은 급히 함대를 지휘하여 안전한 정박지를 찾으려 했지만, 사방이 이미 거센 풍랑의 전조로 뒤덮이고 있었다. 몽골군 지휘부에서도 흉흉한 기운을 느꼈는지 명을 내려 함선들의 닻을 단단히 내리고 돛을 모두 접게 했다. 돛줄이 바람에 날려 휘청거리는 것을 수병들이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파도가 점점 높아져 배 옆구리를 세차게 후려쳤다. 나는 젖은 갑옷 속의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을 느끼며, 사달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제발 우리를 지켜다오….’ 그 순간 거대한 번갯불이 하늘을 갈랐다. 산처럼 검은 구름 사이로 보랏빛 섬광이 바다를 비추고, 곧 우레와 같은 천둥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함대 곳곳에서 놀란 말들이 울부짖고 병사들이 탄식을 토해냈다.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자, 멀리 일본 해안의 윤곽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폭풍이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전에, 갑판 위에서 김방경 장군이 마지막으로 우리 고려군 병사들에게 외쳤다. “흩어지지 말고 인내하라! 서로의 생명을 붙들어 주며 버텨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비바람에 실려 와 겨우 들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옆에 웅크린 동료의 손을 꽉 잡았다. 어쩌면 이 손을 놓치면 우리는 모두 갈기갈기 찢겨 바다 밑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병사들의 얼굴마다 두려움이 역력했지만,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티는 모습에서 묘한 결의도 엿보였다. 인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함께 살아남겠다는 의지뿐이었다.
거센 비바람이 함선을 덮치기 시작했고, 나는 온몸이 물에 잠긴 듯한 감각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배의 밧줄을 몸에 감았다. 눈을 뜰 수조차 없는 폭우 속에서, 배들이 뒤엉키며 비명과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순간순간 커다란 파도가 우리 배를 들어올렸다 내던졌고, 몸은 공중에 붕 떴다가 다시 갑판에 내팽개쳐졌다. 귀를 찢는 듯한 바람 소리에 동료들의 외침도 파도소리도 모두 하나로 뒤섞여 들려왔다. 그 속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살고 싶다… 고려의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폭풍은 날이 밝도록 휘몰아쳤다. 시간 감각이 사라질 만큼 긴 밤이었다. 마침내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바람이 누그러졌을 때, 나는 정신을 잃은 채 한 조각 부목을 붙들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산산조각 난 배의 파편 사이에서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수많은 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 바다 위에 떠 있었고, 그 틈바구니마다 동료들의 시신이 떠올랐다. 하늘은 폭풍을 씻어낸 듯 맑게 개어 있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먹구름이 남았다. ‘패배구나….’ 나는 직감했다. 더 싸울 군선도 병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훗날 들으니, 일본인들은 이때의 태풍을 신풍(神風), 즉 신이 보낸 바람이라 부르며 나라를 지켜준 은혜로운 바람으로 떠받들었다고 한다 . 그러나 그 ‘신풍’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나로서는, 그것은 그저 무고한 젊은이들의 꿈과 목숨을 앗아간 비정한 폭력이었을 뿐이었다. 살아 돌아온 우리가 손에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싸늘한 주검과 실패의 참담함, 그리고 전우를 잃은 상실감뿐이었다. 나는 고향 고려 땅을 다시 밟았지만, 사달의 넋은 차마 위로할 길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폭풍우 전날 하카타만에 내려앉았던 검푸른 하늘의 빛과 전장의 비릿한 내음이 때때로 꿈에 되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사달의 마지막 표정을 떠올린다. “형제여, 나는 살아남았소. 하지만 그날 바다에 산화해 간 수많은 넋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소….” 바람이 불 때마다, 하카타의 모래밭에 스러져간 이들과 폭풍에 휩쓸려간 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전쟁이란, 이렇듯 인간의 희망과 목숨을 파도 거품처럼 앗아가 버리는 무상한 것이었음을—나는 살아서 돌아온 자로서 뼈저리게 증언할 수밖에 없다. 그 비극의 기억을 등에 지고, 나는 오늘도 간절히 빌어본다. 다신 이 땅에 그런 **광풍(狂風)**의 재앙과 전쟁의 광기가 몰아치지 않기를….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 날 새벽, 하카타만의 바다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가마로는 젖어 무거워진 갑옷을 부둥켜안은 채 간신히 부서진 판자 조각 위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주변 물결은 잔잔했지만 그 위로 떠도는 형체들은 처참했다. 반쯤 가라앉은 함선들의 부러진 돛대가 여기저기 바다 표면을 찌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동료들의 시신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밤새 몰아친 태풍은 고려-몽골 연합군의 위용을 순식간에 짓밟아버렸다. 간간이 들려오는 신음과 울부짖음만이 적막한 새벽 바다에 퍼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한 채 넋이 나간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마로는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들러붙은 빗물을 훔쳤다. 소금기 어린 물방울이 눈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 몇몇 동료 병사들이 부서진 배 옆에 모여 있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갑옷은 진흙과 피로 범벅이 된 채, 모두들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이었다. 몇몇은 싸늘해진 전우의 시신을 붙잡고 흔들어 깨우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잃어버린 칼과 방패 조각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챙겨둔 물자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나무로 짠 상자들은 산산조각나 속에 있던 곡식과 화살은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마실 물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절망만이 드리웠다. 주린 배를 움켜쥔 채 해변을 배회하는 이들의 눈빛은 초점 없이 텅 비어 있었고, 모두 지친 짐승처럼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게 다 너희 고려 놈들 때문이야.” 갑작스레 낮은 목소리의 원망이 적막을 깨뜨렸다. 가마로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몽골 출신의 한 병사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이를 악문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고려군 출신의 병사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뭐라고? 지금 우리 탓을 하려는 거냐?” 고려 병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금세 두 사람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 가마로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배를 만든 것도, 출정을 재촉한 것도 다 너희 몽골 장수들이잖아!” 참다 못한 또 다른 고려 병사가 거들며 소리쳤다. 몽골 병사는 거칠게 칼자루를 그러쥐고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닥쳐라! 비겁하게 굴지 마라. 배를 모는 건 너희 고려 선원들이었다. 폭풍을 피하지 못한 게 누구 탓이란 말이냐!”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울분에 찬 목소리만으로도 뜻은 분명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저마다 상대를 원망하며 뒤섞인 채,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어떤 싸움도 끝을 보지 못했다. “그만 둬라!” 거친 외침과 함께 둘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가마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한 팔에 피투성이 붕대를 감은 몽골군 백부장 계급의 장교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나섰다. 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두 병사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냐? 다들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조용히 해라.” 위세 있게 뱉은 말이었지만, 그 목소리 끝에는 기운이 없었다. 두 병사는 험악하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이내 힘이 풀린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다. 부장급 지휘관 몇이 간신히 질서를 붙들어 보려 했지만, 최고 지휘관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명령 계통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장수들은 침묵하거나 실종되었고, 지휘관의 깃발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군율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병사들은 각자 살아남기에 급급한 처지가 되었다.
가마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온몸이 뻐근하고 아팠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자 어젯밤 부딪힌 상처에서 통증이 밀려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휘청거리며 겨우 부서진 돛대 조각을 짚고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발밑에는 부러진 창과 화살촉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무 파편과 시신이 뒤섞인 진창이 발목까지 깊게 빠졌다. 시커먼 썩은내가 코끝으로 밀려와 그는 속이 울렁거려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모래톱 위에 몇몇 병사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몰골은 하나같이 처참했다. 한 병사는 다리가 부러져 앉은 채 신음을 흘렸고, 다른 이는 눈두덩을 깊이 베여 피투성이 얼굴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몇은 이미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또 다른 병사는 얼굴이 불덩이처럼 붉게 달아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가래 끓는 기침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썩어가는 시신의 악취와 함께 진영에는 불길한 역병의 기운마저 감도는 듯했다.
“물… 물을…” 그 무리 속에서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쓰러져 가는 젊은 병사가 신음했다. 가마로는 그 소리를 듣고 화들짝 자신의 물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러나 허리춤에 매달린 가죽 수통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바닷물을 그대로 들이킬 수도 없어 그는 갈라지는 혀로 메마른 입안만 다시 훑었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밀려왔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마실 물 한 모금 찾을 길이 없었다. 바닷물에 젖은 모래만 반들거리며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먹구름 사이로 해가 떠올랐다. 태풍에 찢긴 회색 구름장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려비쳤으나, 그 빛마저 싸늘하게 느껴졌다. 가마로는 비틀대는 걸음으로 부상자들을 지나 모래톱을 가로질렀다. 그때 저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해변에 밀려온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끌어내고 있었다. 여러 병사가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마침내 상자의 뚜껑이 억지로 부서지자 그 안에서 곰팡이가 슨 쌀 몇 줌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여기저기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굶주린 병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내놔! 그건 우리 부대 식량이야!” 한 병사가 외치며 상자 쪽으로 몸을 던졌다. 이미 쌀 한 줌을 움켜쥔 다른 병사는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물러서! 이건 내가 먹겠다. 굶어 죽긴 싫다!” 아사 직전의 짐승 같은 목소리였다. 금세 둘은 서로 멱살을 잡고 모래밭 위를 뒹굴며 뒤엉켰다. 주변의 병사들이 달려와 말리려 했지만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굶주림과 공포에 눈이 뒤집힌 그들에게 이제 군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가마로는 그 아수라장을 지켜보았으나, 지친 몸은 전우들을 말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싸움은 결국 몇 사람이 탈진하여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상자에서 쏟아진 몇 알의 쌀은 핏빛 모래 위에 흩어져 버렸다. 그것을 주워 겨우 입에 넣었다가 쓰디쓴 맛에 뱉어내며 엉엉 우는 병사의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가마로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 구름 사이로 잠시 파란 하늘이 드러나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먹구름만이 가득했다.
그 사이 이미 몇몇 병사들은 슬금슬금 진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밤사이 몰래 부서진 작은 배 조각들을 그러모아 혼자 바다로 도망치려다 적발된 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전우들을 등지고 섬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이들도 있었다.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도둑질과 탈영까지 속출하는 난장 속에서, 더 이상 군기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문득 가마로는 시선을 돌려 참혹한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물 위에는 부러진 선체 조각들이 파도에 떠밀려 다니고, 그 사이사이에 사람의 형체들이 둥둥 표류하고 있었다. 살아남아 간신히 부목을 붙잡은 이들도 보였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일부 병사들은 가까스로 해안가로 올라왔으나, 아직 바다 위에 남겨진 동료들도 많았다. 가마로는 저 멀리 수평선을 응시했다. 혹시나 기적처럼 아군의 배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한순간 스쳤다. 그러나 망망대해에는 부서진 돛대들과 걷힌 구름뿐, 아군의 깃발은커녕 그 어떤 돛도 보이지 않았다.
남로군의 소식도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원래 오늘쯤 남쪽 바다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던 또 하나의 대규모 함대가 있다고들 했지만, 태풍이 휩쓴 뒤로 아무도 남로군을 목격하지 못했다. “남로군도 우리처럼 전멸했겠지…” 누군가 침울하게 내뱉자 몇몇은 고개를 떨구었다. 혹자는 남로군이 애초에 항해 도중 풍랑에 가라앉아 버렸을 거라고 수군거렸고, 또 다른 이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처음부터 남로군이라는 것도 오지 않았던 거야”라고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지원군마저 사라졌다는 현실에 공포는 서서히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나마 남아 있던 희망의 끈마저 끊어지자, 병사들의 얼굴엔 패배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웠다.
“대체 언제 철수하라는 거지…?” 웬 병사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돌아가라는 명령은커녕 지휘관의 목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가마로는 그 말을 듣고도 쓴웃음만 지었다. 철수라니, 돌아갈 배가 몇 척이나 남았다고…. 눈에 띄는 배라고는 부서져 쓸모없게 된 잔해들뿐이었다. 간신히 형태를 유지한 몇 척이 저만치 둥둥 떠 있었지만, 돛은 찢겼고 키도 부러져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표류할 뿐이었다.
가마로는 모래톱 가장자리까지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얕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는 멍하니 발밑에서 철썩이는 바닷물을 내려다보았다. 물빛은 피와 화약재로 얼룩져 검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문득 고향 고려의 바닷가가 떠올랐다. 한낮이면 아이들이 맑은 물살을 가르며 웃음소리를 퍼뜨리던 평화로운 바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바다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머나먼 타국의 바닷가에서,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많은 목숨이 스러져 가야 한단 말인가. 가마로의 가슴 한켠에서 먹먹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전쟁터로 나설 때 그는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칠 꿈도 꾸었건만, 이제 그런 것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까지 차가운 바닷물에 담근 채 고개를 푹 떨구었다. 눈을 감자 출정 전날 함께 웃고 떠들던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향 마을에서 같이 징집되어 온 동무도 있었다. 가마로는 목이 메어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센 파도 소리뿐이었다. 대신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가 꺽꺽 울부짖으며 적막한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친구도,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도 저 갈매기처럼 이미 먼 곳으로 떠나버렸으리라. 가마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이미 바닷물에 흠뻑 젖은 얼굴이었지만, 이번에 흘러내린 것은 소금기가 아닌 슬픔의 눈물이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 가마로는 속으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아마 살아남은 다른 고려 병사들도 마음속으로 같은 외침을 되뇌고 있으리라. 순간 그의 머릿속에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차라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스쳤다. 이 차디찬 바다에 몸을 던져 모든 고통을 끝내 버릴까—위태로운 생각이 번뜩였지만, 곧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된다. 고향에 돌아가 가족의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아무리 뼈아픈 패배의 치욕도 견뎌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이 지옥 같을지라도, 살아서 고향 땅을 밟을 길만 열린다면 무엇이든 참아내리라…. 가마로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간절히 속삭였다.
머리 위 하늘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짙은 먹구름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아 먼 곳에서 우렛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바다는 여전히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무심하게 파도를 밀어 올렸다. 언제 또다시 폭풍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존자들의 가슴에 짙게 깔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절망에 찬 낮은 웅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우린 버려졌어… 이젠 끝이야…” 몇몇 병사들은 해변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꼈다. 어떤 이는 조용히 기도 같은 중얼거림을 흘리더니,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빼들었다. 그 칼끝이 자기 가슴팍을 향하자 곁에 있던 동료 하나가 황급히 달려들어 칼을 낚아챘다. 절망에 미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드는 자까지 나타난 것이다. 가마로는 차마 그 끔찍한 광경을 더 지켜볼 수가 없어 눈을 돌렸다. 패배의식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 남은 이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었다.
가마로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크게 심호흡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져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떨리는 손으로 부서진 칼자루를 힘줘 움켜쥐고 스스로를 부둥켜세웠다. 무뎌진 칼날에 비친 자신의 수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칼등에는 이름 모를 이의 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가마로는 문득 전쟁의 덧없음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씁쓸한 깨달음이 가슴을 에고 든다고 느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겨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린 싸움…. 적의 칼날이 아니라 하늘의 폭풍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운명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이 먼 곳까지 피 흘리며 달려와야 했단 말인가. 그의 입술 사이로 쓰디쓴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멀리 일본 본토의 산자락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을 정복하겠다며 몰려들었던 수많은 함선들은 이제 대부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바다 위에는 부서진 배 조각과 싸늘한 시신만 둥둥 떠 있을 뿐이다. 이 처참한 광경 앞에서 누구도 더 이상 싸울 뜻을 품지 못했다.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죽은 자들의 침묵뿐이었다. 가마로는 그 적막한 침묵 속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쟁이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그 탄식은 이내 삼켜지고 말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석양 아래, 가마로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먼 수평선 너머 고향이 있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건너 저편 어디에도 끝내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마로, 귀향 없는 삶
가을 들녘의 이른 아침 햇살이 옅은 안개를 뚫고 규슈의 작은 농촌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가마로는 진흙투성이 밭 가운데서 허리를 굽힌 채 김을 매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휘두르던 무 대신 이제 손에 쥔 것은 낯선 땅의 호미였다. 손바닥에는 굳은살과 상처 투성이였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호미질을 멈추지 않았다. 부드러운 흙 내음이 피어오르자, 문득 고향 고려의 논밭과 가을바람 냄새가 아득히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는 쿠빌라이 칸의 부름에 응해 고려 병사의 하나로 일본 원정 함선에 올랐던 처지였다 . 본래는 고향에서 밭을 일구던 농부였지만, 원나라의 무리한 요구 앞에 고려 충렬왕도 군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렇게 모인 여몽 연합군의 선봉으로 가마로는 동료들과 함께 거친 바다를 건넜다. 수천에 달하는 함선에 몽골, 고려, 그리고 남송 출신 한인 병사들까지 수만 명이 뒤섞여 있었다 . 처음 일본 땅을 밟았을 때, 가마로의 눈앞에는 불타는 섬마을과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혼란에 빠진 전우들의 모습이 펼쳐졌다.
1281년 여름, 두 번째 원정은 기세등등하게 시작되었으나 끝내 태풍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늘이 노한 듯 불어닥친 거센 비바람이 연합 함대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가마로가 탄 배도 그 격랑에 휩쓸려 다카섬 인근 바다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필사적으로 부서진 널빤지를 붙잡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살아 남은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작은 섬 여기저기에 표류해 있었다. 가마로와 몇몇 동료들은 다카섬 해안가에 모여들었지만, 배도 식량도 없이 사흘을 꼬박 굶주린 채 버텼다 . 동틀 무렵 바다 멀리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왜군의 함성이 들려왔을 때, 그는 등을 식은땀으로 적셨다.
가마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도망칠 길을 찾았다. 그러나 섬을 포위한 일본군의 병력은 이미 수적으로 우세했고, 병사들은 지친 상태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해안 바위 틈에 몸을 숨겨 밤중에 탈출을 시도했다. 고향이 있는 서쪽 바다 방향으로 헤엄쳐 나아가 보려 했지만, 거센 파도와 어둠 속에서 끝내 체력이 다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 굶주림과 피로로 탈진해 있던 그들은 결국 일본 측 수색대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가마로가 칼을 뽑아들 틈도 없이 무사들은 달려들어 그의 팔을 꺾고 거칠게 밧줄로 묶었다. 탈출 시도는 허망하게 끝이 났고, 그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일본 측은 포로가 된 적군에게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가마로가 끌려간 곳은 규슈 북부의 큰 항구 하카타였다. 부상당한 몽골 군사들은 그 자리에서 참살당했고, 나머지 포로들도 줄지어 무릎 꿇린 채 처형 순서를 기다렸다. 그는 눈앞에서 동료들의 목이 차례차례 떨어져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원정에 투입되었던 몽골 병사와 고려 병사들, 그리고 북방 한인 병사들까지 일본군은 가차 없이 죽였지만, 남송 출신 남중국 병사들만은 노예로 삼아 살려두었다고 했다 . 죽음의 공포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가마로는 속으로 이미 고향 부모와 조상님께 사죄했다. “여기서 나는 끝이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던 순간, 뜻밖의 명령이 떨어졌다.
“저 자들은 목숨을 살려 두어라.” 처형대 근처에 있던 한 일본 무사가 손짓하며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의 토호로 보였는데,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땅을 하사받은 지방 영주라고 통역을 통해 알아들었다. 그 영주는 가마로를 비롯한 몇몇 젊고 건장한 포로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논밭을 일구는 데 부려 먹겠다”라는 말이 오갔다. 그리하여 목숨을 건진 포로 십여 명이 노끈에 묶인 채 따로 끌려나왔다. 가마로와 그의 고려인 동료 둘, 그리고 몇몇 남송 출신의 한족 병사들이 그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일본 측이 고려로부터 끌려온 병사 26,989명 중 7,592명이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고 하니 , 가마로는 자신이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소수에 속함을 깨닫고 온몸이 떨렸다.
포로들은 몇 날 며칠을 묶인 채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상처 입은 몸으로 험준한 산과 계곡을 넘어, 규슈 내륙의 한 농촌에 도착했을 때는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곳은 전란의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은 조용한 촌락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대눈을 뜨고 낯선 포로들을 지켜보았다. 남루한 군복 차림의 가마로 일행은 마치 가축처럼 취급당한 채, 마을 외곽 황무지로 끌려갔다. 지방 영주는 이곳에 새로운 논밭을 만들 계획이라며 포로들을 부역시킬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가마로의 새 삶, 아니 생지옥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가마로는 동틀 녘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꼬박 농지 개간 노동에 투입되었다. 울창한 수풀을 베어 내고, 돌을 골라내며, 마른 땅을 일구어 물길을 트는 고된 작업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낯선 땅의 기후는 무덥고 습하여 금세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목에는 포승줄 대신 거친 노끈이 묶여 있었고, 끝에는 언제나 일본 무사의 손이 쥐고 있었다. 채찍질과 고함 소리가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가마로는 이를 악물고 괭이를 휘둘렀다. 쓰러져 죽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피폐해진 육신은 비척거렸지만, 어느새 몸 속 어딘가에서 끈질긴 생존의 의지가 꿈틀댔다.
낯선 마을에서의 나날은 두려움과 모멸감의 연속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방인 포로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들은 멀찌감치서 돌을 던지며 “야만인!”이라 소리치고 달아났다. 일본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가마로에게는 그들의 조롱 섞인 웃음과 속삭임이 모두 자신을 향한 증오로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로들에게 마을의 허름한 헛간 한 채가 거처로 주어졌다. 밤이 되어도 가마로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언제 마을 사람들이 횃불과 쇠스랑을 들고 몰려와 자신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한 번은 동료 고려 병사 하나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마을 논두렁에 심어둔 무 몇 개를 몰래 캐어 먹었다가 들킨 적이 있었다. 그날 일본인 지주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포로들을 마구 매질했다. 가마로는 등을 수십 대 얻어맞으며 이를 악물고 견뎠다. 피투성이가 된 채 헛간으로 끌려와서는, 동료에게 분노를 터뜨릴 수도 없어 그저 서로의 처지를 한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누군가 헛간 문 앞에 조심스레 놓고 간 작은 주먹밥 하나를 발견한 일이 있었다. 가마로는 그것을 허겁지겁 입에 넣으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방인에 대한 증오 속에서도 누군가 연민을 보였다는 사실에, 그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듯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계절은 어느새 바뀌어 갔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들녘에는 쓰러진 시체 대신 황량한 논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가마로는 매일같이 삽질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 먼 이국 땅에 와서 농사를 짓고 있는가. 뼈를 깎는 노동으로 일구어진 새 논은 서서히 형태를 갖추었지만, 그의 마음은 허허로운 들판처럼 공허했다. 한낮 뜨거운 햇살 아래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는 눈부신 빛 사이로 자신이 쫓았던 싸움의 허망함을 느꼈다.
밤이 되면 포로로 살아남은 고려인 전우 셋은 모닥불 옆에 움츠린 채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말이 통하는 이는 서로밖에 없었다. 가마로는 낮에 들은 마을 사람들의 일본어 몇 마디를 흉내 내보기도 하고, 어깨 너머로 배운 몸짓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차츰 줄어들었다. 각자 지쳐 있었고, 고향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가마로는 멍하니 하늘을 보곤 했다. 칠월 칠석 밤에 고향에서 보던 별들이 이국의 하늘에도 떠 있었다. 그 별빛을 따라 마음속으로 가족들이 있는 고려 땅을 그려보면, 눈가에 뜨거운 것이 고였다. 집을 떠나올 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꾹 참았던 것이 이제서야 터져 나오는 듯했다.
적막한 들판에 홀로 앉아 있으면, 가마로는 때때로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고려의 군사로 싸웠던 기억은 꿈처럼 아득하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일본 농부들과 같이 온종일 땅을 일구는 나날이었다. 그는 ‘전쟁이란 대체 무엇이었던가’ 자문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던 맹세는 패배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남은 것은 다만 하루치의 노동과 한 끼의 죽을 얻기 위한 처절한 생존뿐이었다. 가마로는 전쟁터에서 수없이 외쳤던 함성보다, 지금 이 순간 땅속에서 들리는 지렁이의 꿈틀거림과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싸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실상이었다.
그러나 포로가 된 몸이라 해도, 가마로의 가슴 한구석에는 고려 사나이의 긍지가 남아 있었다. 낮에는 묵묵히 삽과 괭이를 들었지만, 밤이면 몰래 헛간 뒤쪽에 쌓아둔 작은 돌무더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직이 고향의 말을 되뇌며 가족과 조상의 이름을 불렀다. 비록 향 하나 피울 수 없고 제사상조차 없었지만, 그는 마음으로 제를 올렸다. 그때만큼은 일본인이 아니라 고려인의 피가 자신에게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 땅에 동화되어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가마로는 스스로 묻는다. 만약 이곳에 평생 묶여 살아야 한다면, 과연 내가 고려인임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루하루 생존해 가는 동안, 그는 점차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갈등했다. 한쪽에는 언젠가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미한 희망이, 다른 한쪽에는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체념이 있었다. 날이 갈수록 탈출의 희망은 먼 바다 건너 아스라이 저물어 갔고, 오히려 이 마을의 흙과 비와 바람이 차츰 그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어느 고요한 초겨울 밤, 가마로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언덕 너머로 지는 해를 보았다. 석양빛에 논밭은 붉게 물들고, 먼 산자락 위로 기러기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숨죽인 들판에서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전쟁의 광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도 이렇게 또 해는 지고, 새로운 날이 찾아온다. 저 붉은 노을은 어제 죽어간 자들과 오늘 살아남은 자 모두의 넋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가마로는 천천히 두 손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비록 이국 땅에 버려진 패잔병에 불과하지만, 그는 내일도 다시 해가 뜨면 호미를 쥐고 밭으로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더 살고, 또 하루를 더 견딜 것이다. 머나먼 고려의 하늘 아래 언젠가 자신이 돌아갈 날을 그리면서도,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전쟁은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지만, 살아남은 자로서의 길은 끝끝내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가마로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남겠지만, 패배한 병사 가마로의 이야기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마로의 가슴속에는 오늘도 조국 고려의 바람과 일본 규슈의 흙내음이 뒤섞여 하나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쓰라린 회한과 지독한 생존 본능,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뿐이었다. 먼 동쪽 하늘에 어느새 하나둘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마로는 굳은 손을 들어 천천히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살아 있다… 아직, 살아 있다.” 그 짧은 혼잣말이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고려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처럼,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인 숨결이었다.
주
• 고려로부터 원정에 참전한 26,989명의 병사 중 7,592명이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전한다 . 이는 가마로처럼 전사하거나 이국에서 생을 마친 자들의 수를 짐작게 한다.
•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1281년의 2차 원정군은 고려군 4만과 남송 출신 10만 등 대규모 연합군이었다 . 태풍과 일본의 결사 항전에 원정군은 궤멸되었고, 이후 원나라는 더 이상 일본 정벌을 시도하지 않았다.
폭풍 뒤에 남겨진 가마로의 이야기
일본의 기록화에 묘사된 몽골-고려 연합군의 침공 장면. 가마로는 저 폭풍 같은 전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제1부: 폭풍 후
1281년 늦여름, 가마로는 쓰러진 배 옆 해안 모래밭에서 정신을 차렸다. 사방에는 부서진 함선의 잔해와 동료들의 시신이 밀려와 있었다. 눈앞의 바다는 여전히 회색빛 파도로 출렁였고, 바람에는 소금기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얼마 전까지 고려의 군사로서 원나라 함대와 함께 일본을 정벌하려던 그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났다. **“신의 바람”**이라 불린 거센 폭풍은 순식간에 원정군을 집어삼켰고, 살아남은 자들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가마로 역시 두 팔이 뒤로 결박된 채, 마을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이때까지도 머릿속에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성 소리를 지우지 못한 채였다.)
마을에 도착한 가마로의 눈에 비친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승리에 도취된 일본의 무사들이 언덕 위에서 포로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농부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가마로는 제법 큰 농촌 마을의 공터 한가운데에 무릎 꿇린 채 동료들과 함께 있었다. 일본 병사들은 포로들의 숫자를 세고 상처 입은 자들을 가려냈다. 저항할 기력조차 없는 고려인, 몽골인, 그리고 다른 이국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초췌한 몰골이었다. **“이방인”**이라는 말이 그대로 자신을 가리키는 듯, 가마로는 끓어오르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꾹 삼켰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버티며 주변을 살폈다. 일본어의 고함소리가 쏟아졌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다만 자신들을 둘러싼 분위기만은 분명했다. 살고 싶다면 순종하라. 가마로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제2부: 이방인의 땅
며칠 뒤, 가마로는 이즈하라(対馬의 작은 마을)의 들판 한쪽에 세워진 허름한 헛간에서 잠을 깨웠다. 동틀 녘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포로로 잡혀온 동료 몇 명이 낯선 땅의 새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헤어진 가족과 고향 생각에 흐느끼는 이도 있었지만,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감시 중인 일본인 졸병들이 언제 매질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일본인 촌장은 포로들을 이끌고 논밭으로 향했다. 가마로는 비틀거리며 걸으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익혔다. 마을은 작았지만 논과 밭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숲과 언덕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국의 풍경 속에서 가마로는 철저히 고립된 이방인이었다.
처음 작업은 농지 개간이었다. 가마로는 낯선 농기구를 손에 쥐고 마른 논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일본인 감독관이 휘두르는 채찍과 거친 억양의 지시만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등을 굽힌 채 곡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다. 대개 농사일은 해본 적 없는 병사들이었기에 동작은 서툴렀고 진도는 더뎠다. 일본인 농부들은 그런 그들을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몇몇은 코웃음을 치거나 **“모코(蒙古) 녀석들”**이라고 낮춰 불렀다. 그 말은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경멸의 뉘앙스로 충분히 전해졌다. 가마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려의 이름을 듣고 싶었다. 자신은 분명 고려의 군사인데, 이들에게 몽골의 부하, 그저 오랑캐로 취급받는 현실이 참을 수 없이屈辱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나서서 항의하거나 **“나는 고려인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돌아올 것은 죽음뿐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친 포로들은 다시 헛간에 모여졌다. 마른 풀 더미 위에 쓰러져 숨을 고르며, 가마로는 일본인들이 던져준 주먹만 한 크기의 떡과 물을 받아들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목구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같은 처지의 포로들이 작게 신음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따금 일본 병사들이 헛간 문을 열어 내부를 확인하고는 **“탈주를 꿈꾸지 마라”**는 뜻으로 위협적인 눈짓을 보냈다. 가마로는 천장 틈으로 비쳐드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고향의 달과 같을 텐데,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지는가. 문화도 언어도 다른 이 이방인의 땅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제3부: 서먹한 교류
시간이 흐르면서 가마로와 다른 포로들은 마을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비록 쇠사슬 없는 노예나 다름없었지만, 날마다 농사일을 거들고 마을 허드렛일을 하며 주민들과 얼굴을 트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서로를 대했지만, 인간 사이의 정은 사소한 순간에 피어나기 마련이었다.
어느 늦봄 오후, 가마로는 밭둑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닦고 있었다. 그때 마을의 어린 소년 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소년의 손에는 조그마한 도토리 모양의 쿠키가 쥐어져 있었다. 굶주려 보이는 가마로를 불쌍히 여겼는지, 소년은 말없이 쿠키를 내밀었다. 가마로는 당황스러웠다. 주변에 있던 다른 포로들도 움찔하며 지켜봤다. 어디선가 지켜보던 일본인 농부가 낮게 호통쳤다. “야마토(大和)의 아이에게서 뭐 받지 마라!“라는 소리였지만, 가마로는 그 뜻을 정확히 몰랐다. 다만 소년은 겁을 먹고 한걸음 물러섰다. 가마로는 재빨리 두 손을 내저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그의 미소를 보고 살짝 웃으며 쿠키를 다시 내밀었다. 가마로는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아리가토…”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달려가 버렸다. 남겨진 가마로는 그 말이 감사의 뜻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작은 교류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가마로는 일하면서 몸짓으로 일본 농부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곤 했다. 이를테면 **“물”**을 가리키며 고려말로 “물”이라 말하면, 농부는 **“미즈(水)”**라고 가르쳐주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해도 자꾸 반복하다 보면 단어 몇 개쯤은 교환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가마로가 휴식 시간에 자신의 고향 노래를 나직이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곁눈질로 듣던 농부가 다가와 듣더니 흥미롭다는 듯 일본 민요 한 소절을 불러주기도 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주위의 다른 포로들과 주민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 속에서도 인간적인 교류가 싹트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러한 서먹한 우정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포로와 촌민이 가깝게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감시 눈초리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휘하는 **지역 무사(武士)**는 포로들을 단순 노동력 이상으로 보지 않았고, 주민들과 거리를 둘 것을 명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마로는 마음 한구석에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완전히 닫혀 있을 줄 알았던 **인간 대 인간의 정(情)**이 미약하나마 오가는 것을 체험하며, 그는 비로소 포로로서의 삶 속에도 작은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제4부: 전쟁의 그늘
해가 바뀌어도 귀향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가마로와 포로들은 여전히 논밭을 일구고 있었다. 어느 초가을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마로는 마을 입구에 나부끼는 깃발들을 보았다.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에서 파견된 사자의 행렬이었다. 땀과 흙투성이인 포로들은 길가로 비켜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앞장선 무사는 말에서 내리며 마을의 영주 대리인인 지방 무사에게 두루마리 한 장을 내밀었다. 가마로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내 촌장과 주민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마을에서는 커다란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막부의 사자가 전하는 새로운 **령(令)**이 있었다. 포로들을 관리하는 무사는 주민들을 불러 모아 엄숙히 말했다. 가마로는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무사의 입에서 낯선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그 중 몇몇 단어는 귀에 익었다. “막부의 통제 강화”, “은상(恩賞)”, “경계” 같은 말들이었다. 감시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함께 있던 주민들은 웅성였다.
다음 날부터 포로들을 대하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마을의 젊은 무사들은 순찰을 늘리고, 포로들을 쏘아보는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한 번은 가마로가 일손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펴자, 곁에 있던 무사가 칼 자루로 가마로의 등을 툭 치며 고함을 질렀다. 의미는 몰라도 **“건방지다”**는 투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전보다 사소한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포로들을 위축시켰다. 가마로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참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마로와 몇몇 포로들은 우연히 마을 무사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막부에서 보낸 서찰 내용을 두고 수군거리며 한탄하고 있었다. “…보상은커녕 경계만 하라 하니, 우린 무엇을 얻는 것이냐…” 라는 투의 말이었다. 또 다른 이는 “남쪽 조정(朝廷)에 불온한 기운이 돈다“라고 중얼거렸다. 가마로는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본 내부에도 뭔가 불안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감지했다. 막부가 포로들을 더욱 통제하려는 것도, 혹시 모를 반란이나 외세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마로는 그들이 말하는 남쪽 조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막부와 조정 사이의 알력, 즉 훗날 남북조 시대로 이어질 갈등의 전조였다.)
이렇듯 전쟁의 그늘은 포로로 남은 가마로뿐만 아니라, 이 땅의 주민들과 무사들 위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가마로는 자신이 속한 고려와 원의 세계만이 아니라, 일본 역시 평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포로인 자신은 그저 무력하게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가마로의 정체성 혼란과 자존심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한때는 고려의 용맹한 병사로서 가문과 나라의 명예를 떨치겠다고 다짐했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패잔병 포로로서 타국의 들판을 갈고 있으니, 이 얼마나 뼈아픈 몰락인가. 그는 밤늦은 시간 홀로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누구인가? 고려의 병사인가, 아니면 이곳 일본 땅에 버려진 비참한 노예인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가마로의 가슴을 날마다 후벼 팠다.
제5부: 고려로부터의 바람
포로 생활이 2년에 접어들 즈음, 가마로의 기다림은 지쳐가고 희미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원이나 고려 조정에서 자신들을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혹시 몸값 교섭이 이뤄진다든지, 아니면 재침 공략이 다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서로 위안 삼아 나누곤 했다. 가마로와 동료들은 매일같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고국의 배가 혹은 사신이 올 것만 같은 착각을 하며, 노을이 지는 바다를 눈물겹게 응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무심했다. 어느 겨울밤, 포로 중 한 명이 은밀히 간직하고 있던 소식을 전했다. 그는 마을 장터에 왔던 나그네 상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귓속말로 풀어놓았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다시 대군을 모은다 했지만, 몇 해째 소식이 없단다.” 그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가마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다른 포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우린 어쩌면 이대로…” 남은 말을 잇지 못했지만, 모두가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구조의 희망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며칠 뒤, 뜻밖의 방문자가 마을을 찾았다. 고려 승려 복장을 한 사내였다. 그는 일본어도 유창하게 구사했고, 막부의 허가를 받아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는 듯했다. 마을 촌장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그를 대접했고, 포로 중 고려인들이 있다는 얘기에 승려는 잠시나마 그들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그렇게 가마로는 오랜만에 동향의 말씨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승려는 그들에게 고향의 최근 소식을 전해주었다. “고려 조정에서도 포로들의 존재를 알고는 있소. 그러나 원 황제가 움직이지 않으니 속수무책이라 하오.” 가마로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고국이 자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뭉클했지만, 현실적인 구출 가능성은 희미하다는 사실에 다시금 절망이 밀려왔다. 승려는 이어서 새어 나가는 희망의 불씨를 전해주었다. “그래도 언젠가 귀환할 길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몸과 마음을 굳게 가져요.” 포로들은 모두 눈물이 그렁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승려는 떠났지만, 그의 존재는 포로들에게 작은 위안과도 같았다. 오랜만에 고려의 말, 고려의 숨결을 느낀 가마로는 그날 밤 모닥불 옆에서 조용히 엎드려 눈물을 훔쳤다. 그리운 가족과 고향의 하늘이 떠올라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다림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소모시키는 것이었다.
제6부: 막부의 그림자
계절이 몇 번 바뀌는 사이, 가마로는 어느덧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일본 땅에 묶인 채, 그러나 예전보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일본의 정치적 상황도 변해 갔다. 가마로가 포로로 끌려온 지 4년째 되던 해, 마을에는 또 한 번 막부에서 관리가 내려왔다. 이번에는 새로운 토지 대장과 세금 징수 규칙을 선포하러 온 것이었다. 주민들은 수군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몽고놈들 쫓아내느라 피땀 흘렸건만, 막부는 우리에게 더 많은 공납만 요구하는구나.” 가마로는 일본어를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미루어 그들이 막부에 대해 원망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통제는 강화되고 있었다. 마을의 지역 무사들은 점점 군기 잡기에 열을 올렸고, 포로들에게도 더욱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었다. 외박 금지, 작업장 이탈 금지 등의 규칙이 하나둘 생겨났다. 심지어 주민들이 포로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금지사항이 되었다. 그나마 있던 인간적 교류의 틈마저 막혀버린 것이다. 가마로는 답답한 마음에 밤마다 헛간 구석에서 팔뚝만 한 나뭇조각을 깎았다.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나뭇조각에 그는 고려 글자 몇 자를 새겨넣곤 했다. 고향의 마을 이름, 가족들의 이름, 그리고 자신의 본명 등. 그렇다. 가마로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편의로 부르는 소리일 뿐, 그의 본래 이름은 **‘가문룡(嘉文龍)’**이었다. 포로로 잡힌 후 일본인들은 그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충 “가마로”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포로 동료들까지 그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 나뭇조각 위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꾹꾹 새길 때마다, 가마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리 이곳에서 천대받는 몸일지언정, 그는 고려인 가문룡이며 언젠가 그 이름으로 불릴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그림자는 짙어져 갔다. 막부의 지배층에서는 남쪽 조정과의 알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마을 무사들끼리 은밀히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은둔황제”, “요동치는 민심” 같은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가마로는 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촉이 예민한 포로들 중 몇은 수군거렸다. “저러다 싸움이라도 나는 거 아냐?” 일본 내부의 일이긴 하지만, 만약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막부의 통제력이 흔들리면 포로들을 학살해버릴지도, 아니면 그 혼란 속에 도망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안갯속이었다.
가마로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 아래 펼쳐진 마을은 잠들어 있었지만,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엉이 한 마리가 구슬프게 울었다. 그는 문득 수년 전 고려에서 출정하기 전 밤을 떠올렸다. 그때도 달이 밝았고, 그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 돌아오겠다고 어린 아들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아들과 재회는커녕 이름조차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막부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 땅에서, 그는 버텨내야만 했다. 자신을 잊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채.
제7부: 탈출의 속삭임
긴 포로 생활에 지친 이들은 차츰 탈출에 대한 속삭임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두 두려워 입 밖에 내지 못했지만, 밤하늘 아래 몰래 속닥이는 목소리로 희망과 모험을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초여름 밤, 가마로와 가까이 지내던 포로 동료 박연이 은밀히 말을 걸었다. 박연은 가마로와 같은 고려 출신으로, 늘 침착하고 지혜로운 형이었다. 그는 바람 소리에 묻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계획의 윤곽을 밝혔다. “가마로, 나와 몇몇이 바닷가로 도망쳐 배를 구해 볼 생각이네.” 그 한마디에 가마로의 가슴이 쿵쾅였다. 이어 박연은 손짓으로 헛간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몰래 모아둔 마른 쌀과 물주머니가 숨겨져 있었다. 몇 주 동안 조금씩 축낸 식량을 비축해 온 것이었다.
가마로는 숨이 턱 막혔다. 이 무모한 시도에 희망과 공포가 뒤섞여 밀려왔다. 그는 나지막이 물었다. “들키면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알지?” 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 “알지. 하지만 이대로 죽은 듯 사느니, 한 번 부딪쳐 보는 게 낫지 않겠나?” 가마로는 침묵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여러 차례 탈출을 상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길 생각을 하니 가족들의 얼굴과 함께 붙잡혀 죽을 동료들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동안 가마로는 번민했다. 낮에는 생각을 지우고 묵묵히 일했지만, 밤만 되면 두 갈래 길이 마음을 갈랐다. 하나는 목숨을 건 탈출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한 희망 속의 현상 유지였다. 탈출이 성공한다 해도 바다를 건너 고향에 닿을 수 있을까? 수백 리 바다길을 작은 배로 견딜 수 있을까? 실패하면 잔인한 형벌이 기다릴 뿐이었다. 박연과 그 일행은 그를 은근히 설득했다. “가마로, 자네도 알고 있잖아. 더 기다려도 기적은 없을 거라는 걸…” 그 말에 가마로는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 이 땅에서 하루하루 닳아 없어지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신을 믿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준 몇몇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소년이 건넸던 쿠키, 민요를 들려주던 농부, 몰래 물을 더 떠주던 촌장의 며느리… 그들은 모두 자신을 인간 가마로로 대해주었던 이들이다.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면 그들까지 곤란에 빠질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포로들에게 마음을 열어 준 것을 막부가 반역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마로는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어느 밤, 그는 박연에게 속삭였다. “나는… 남겠네.” 박연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가마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자네들 뜻은 이해하네. 하지만 내겐 아직… 여기에 남아 이루고픈 것이 조금 남았어.” 그 ‘이루고픈 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운명감 같은 것이 가마로를 붙잡았다. 박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후회 말게. 자네도 꼭 살아남아서 고향에 돌아가길 빌겠네.” 두 사람은 힘주어 손을 맞잡았다. 탈출을 택한 이들과 남기로 한 이들, 그렇게 포로들 사이에 마음의 갈림길이 생겨났다.
제8부: 배신과 갈등
탈출 계획은 은밀히 진행되었다. 박연과 뜻을 같이 한 포로 다섯은 달빛이 옅은 밤을 선택했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구름 낀 밤, 그들은 마을 사람 모두 잠든 시각에 헛간을 빠져나갈 속셈이었다. 가마로와 남는 이들은 들키지 않도록 평소처럼 잠든 척 연기하기로 했다. 모두 숨죽인 채 그 밤을 기다렸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실행을 며칠 앞둔 밤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포로 중 한 명인 장루라는 젊은이가 일본인 순찰 무사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낮에 열사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그를 무사가 불러낸 것이었다. 장루는 한참 후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걱정스레 다가갔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누웠다. 가마로는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장루는 탈출 계획에 참여하기로 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얼굴엔 공포와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탈출 예정일의 새벽. 모두가 살금살금 준비를 하는데, 불현듯 헛간 문이 벌컥 열렸다. 횃불을 든 일본인 무사들과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코라!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익숙치 않지만 거칠게 내뱉는 일본어 명령에 포로들은 얼어붙었다. 무사들은 재빠르게 내통한 듯, 탈출을 시도하려던 다섯을 찍어냈다. 그들의 숨겨둔 보따리와 물품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박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얼굴엔 분노와 절망이 어렸다. 곧이어 무사들 사이로 장루가 나타났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박연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네가 우리를 팔았구나!” 장루는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포로들도 그를 향해 분노의 눈빛을 보냈다. 결국 배신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마을 공터에는 살벌한 장면이 펼쳐졌다. 붙잡힌 다섯 포로는 마을 사람들과 다른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사들 앞에 끌려나왔다. 지역 무사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두려움도 어려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이 막부에 알려지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까 노심초사인 듯했다. 그는 칼을 뽑아들고 포로들에게 일갈했다. 가마로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본보기로 엄벌하겠다는 뜻임을 직감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린 소년이 두려움에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가마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어지는 것은 비명과 처절한 고함뿐이었다. 박연을 비롯한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중상을 입은 채 끌려갔다. 장루는 무사의 발 앞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했다. 그의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를 절단하는 처벌을 받았다.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모습에 주민들마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본 마을은 공포와 불신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포로들을 다시 두려움의 눈길로 바라봤다. 한동안 조금씩 쌓였던 신뢰는 산산조각 난 듯했다. **“역시 저자들은 위험해”**라는 수근거림이 들렸다. 포로들 사이에서도 적막과 긴장만이 감돌았다. 가마로는 밤이 되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꼈다. 죽은 동료들에 대한 슬픔과,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배신에 대한 허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자유를 꿈꿨던 대가로 다시 짐승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탈출 미수 사건 이후, 포로들은 손발에 족쇄까지 채워진 채 작업에 동원되었다. 가마로의 발목에도 차가운 쇠사슬이 감겼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족쇄였지만, 그는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배신과 갈등의 상흔이 깊게 남은 채, 가마로와 포로들의 나날은 더욱 비참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제9부: 폭풍 전야
탈출 소동 이후 마을은 폭풍 전야처럼 숨죽인 나날이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포로들을 멀리했고, 포로들은 서로를 의심했다. 특히 장루의 존재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잃고 불구의 몸으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었는데, 포로들도 주민들도 누구 하나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로 동료들은 그를 상종하지 않으려했고, 일본인들은 그를 조롱과 멸시의 눈빛으로 대했다. 장루 스스로도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따로 격리되어 지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조차 누구도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그만큼 모두의 마음은 황폐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을의 촌장은 고심에 빠졌다. 포로들의 존재가 마을에 위험과 불안을 가져온다고 여긴 몇몇 주민들은 이참에 포로들을 모두 처분하거나 다른 곳으로 넘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촌장은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포로들은 분명 골칫거리였지만, 동시에 값싼 노동력이기도 했다. 막부로부터 농지 개간을 독려받은 상황에서 이 많은 인력을 잃는 것은 마을에도 손해였다. 게다가 몇 년 사이 정이 들어 버린 주민들도 없지 않았다. 촌장 자신조차 포로들에 대한 연민을 완전히 버리진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실과 인간애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국 그는 지역 무사와 상의하여, 포로들을 당분간 더 부려먹되 보다 엄격히 관리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주민들에게는 포로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라고 지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야경과 순찰을 강화했다.
가마로는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꼈다.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금만 움직임이 수상해 보여도 곧바로 무사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한 번은 포로 중 병들어 일어서지 못하는 자가 있었는데, 무사는 태만으로 간주하고 그의 등을 매질했다. 가마로와 다른 이들이 겁에 질려 말리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 했다. 차츰 포로들은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기계처럼 일만 하게 되었다. 공포 정치 아래에서는 연대감도 쉽게 깨지는 법이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자연재해가 닥쳤다. 늦가을 태풍으로 인근 강이 범람하여 논둑이 무너지고, 일부 초가집들이 떠내려갔다. 주민들은 황급히 복구에 나섰다. 포로들도 물론 동원되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흙자루를 나르고 방파제를 쌓았다. 가마로도 어느새 마을의 일부가 된 듯 온힘을 다해 움직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수확을 앞둔 벼농사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식량이 귀해지자, 주민들의 마음엔 불안과 불만이 자라났다. 그 불만의 화살은 종종 이방인 포로들에게로 향했다. “저 놈들 때문에 하늘이 노한 게 아니냐“라는 미신 섞인 중얼거림까지 나왔다. 어느 저녁에는 술에 취한 청년들이 헛간에 돌을 던지며 **“몽고 놈들 나가라!”**고 소리치는 일도 벌어졌다. 가마로는 깊은 어둠 속에서 그 욕설을 묵묵히 견뎠다. 모든 것이 폭풍 전야처럼 긴박했다. 작은 불씨 하나로 큰 불화가 터질 것만 같은 상황, 누구도 먼저 마음을 열거나 나서기를 두려워했다. 가마로는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폭풍 전야의 고요 속에서,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숨죽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제10부: 희망의 불씨
짓눌린 날들이 계속되던 와중에도, 인연의 끈은 기묘하게 이어지는 법이었다. 탈출 사건 이후 멀어졌던 주민들과 포로들 사이에도 다시 자그마한 온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태풍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였다. 가마로는 어느 비 오는 날 무너진 둑을 수리하며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때 마을의 촌장 할아버지가 비에 젖어가며 현장 지휘를 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모두가 놀라 소리쳤고, 가마로는 재빨리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거센 물살 속에서 노구의 촌장을 번쩍 안아 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촌장은 기침을 하며 숨을 골랐다. 정신을 차린 그가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 흙투성이가 된 가마로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가마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 촌장은 가마로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또 다른 작은 변화도 있었다. 마을의 젊은 아낙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가마로가 논둑에서 노래를 흥얼거릴 때 잠시 곁에서 듣곤 했던 이였다. 탈출 소동 이후로는 거리를 두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몰래 헛간 근처에 음식 꾸러미를 놓고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모두 의아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젖은 낙엽을 가장해 밥과 된장국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두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마로와 포로들은 모른 척 그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인간의 선의에 목이 메었다. 누가 한 일인지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숨은 호의들이 서서히 쌓이며, 얼어붙었던 마음을 조금씩 녹여 주었다.
가마로는 이러한 희망의 불씨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여전히 포로 신세였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겨났다. 언젠가 누군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위해, 아니 설령 영영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자신이 고려인으로서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가을의 끝자락, 마을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벼 대신 보리 파종이 한창이었다. 가마로는 추수를 잃은 주민들을 돕기 위해 쉬는 날에도 자청하여 보리 씨를 뿌리는 일을 거들었다. 같이 일하던 농부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없이 자신의 등짐 망태에서 고구마 하나를 꺼내 건넸다. 그리고 서툴지만 또렷하게 조선말로 말했다. “…고맙소…”. 가마로는 놀라 그를 바라봤다. 농부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시 일본말로 “아리가토“라고 반복했다. 가마로는 환하게 웃으며 고구마를 받아 들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고향 말로 따라 중얼이듯 인사하고는, 함께 그 고구마를 둘로 나눴다. 작은 고구마 하나를 나눠 먹으며,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다. 참혹한 불신의 나날 속에서도, 이렇게 다시 인간 대 인간으로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꺼져가던 희망의 심지가 다시금 살아나는 듯한 기분을 가마로에게 안겨주었다.
제11부: 시대의 격랑
1310년대의 어느 해, 가마로가 이 땅에 떨어진 지도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월은 어느덧 그를 마을의 일원처럼 만들었다. 일본말도 상당히 익혀서 주민들과 간단한 대화는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가마로”**라고 불렀지만, 이제 거기에 담긴 조롱의 느낌은 희미해졌다. 오히려 아이들은 그를 **“가마로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그는 들판에서 아이들에게 새끼 메는 법이나 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주곤 했다. 평온한 날들도 있었지만, 시대의 격랑은 점차 이 외딴 마을에도 파고들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 전역은 불온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의 권위는 예전 같지 않았고, **조정(朝廷)**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가마로가 있던 규슈 지역에도 남조(南朝)를 자처하는 세력의 밀사가 숨어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어느 날은 관군과 반란군이 부근 들판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마을 청년 몇이 징발되어 나갔다가 부상당해 돌아오기도 했다. 가마로는 역사의 큰 흐름이 크게 바뀌려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자신이 이 땅에 온 지도 한 세대가 지나가는데, 그동안 세상은 또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도 그 영향은 나타났다. 지역 영주 가문이 막부 편에 설지, 새로 떠오르는 세력 편에 설지 저울질하며, 수하 무사들을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날, 가마로가 일궈온 밭둑 옆으로 갑작스런 무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지나갔다. 그는 허리를 펴고 바라보았다. 등에는 옛 고려군의 화살 자국 흉터가 남았지만, 이제는 일본 나룻배 같은 삭은 조각배에 의지해 겨우 삶을 이어가는 늙은 포로였다. 그런 그가 격변하는 시대 앞에 설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두려움을 나눴다. 더 이상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남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미워하던 원수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한 동포처럼 느껴졌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평범한 농민과 늙은 포로는 똑같이 세상의 폭풍 앞에 작은 존재일 뿐이었다.
어느 저녁, 촌장은 가마로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가마로, 자네는 참 오래도 살아남았네. 이젠 우리 마을 사람이라 해도 될 것이야.” 가마로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받았다. 촌장도 이제는 노구가 되어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두 노인은 말없이 잔을 부딪쳤다. 전쟁의 원한을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남은 시간을 위로하는 순간이었다. 촌장은 흐릿한 눈으로 먼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요즘 시대가 하 수상하네만, 부디 우리 마을은 무사해야 할 터… 자네 같은 이가 있어서 든든하네.” 가마로는 과분한 말이라 여겨 손사래쳤지만, 속으로는 뭉클함을 느꼈다. 자신이 이 땅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작은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시대의 격랑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법. 1333년 가을, 마침내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먼 동쪽에서 일어난 난리였지만, 그 여파로 규슈 일대에도 혼란과 권력 재편이 일어났다. 가마로의 마을은 다행히 직접적인 전쟁터가 되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권세가들의 다툼 속에 조세 수탈과 약탈이 심해졌다. 포로 신분이던 사람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일부 새로 부임한 관리들은 **“외구(外寇)의 잔당은 처단하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가마로와 남은 몇 안 되는 포로들은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살아남았지만, 역사의 폭풍은 여전히 그들을 시험하는 듯했다.
제12부: 해질녘의 망향(望鄕)
세월이 흘러, 가마로는 일흔을 넘긴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1350년대의 어느 해 질 무렵, 그는 마을 뒷언덕에 올라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 바다는 곧바로 고향 고려의 방향과 이어져 있었다. 손을 들어 노을 진 하늘을 가리키며, 가마로는 아직 또렷한 고려말 발음으로 읊조렸다. “저 너머, 내 나라가 있지…” 옆에 함께 앉은 어린 아이가 있었다. 마을에서 태어난 지 10년 남짓 된 소년으로, 가마로와 자주 어울려 다니는 마을 대장장이의 손자였다. 아이는 가마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주름진 손을 꼭 잡았다. 가마로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손을 감싸쥐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말도 다 통하지 않지만, 이 아이는 어느덧 자신의 손자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가마로는 아이에게 느릿한 일본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이 먼 나라 고려에서 온 병사였음을, 바다 건너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그리고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늙어버린 심정을. 아이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물건을 꺼내 아이 손에 쥐여주었다. 그것은 닳고 닳은 나무패 조각이었다. 그 위에는 흐릿하지만 한자로 된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었다. “嘉文龍” - 가마로의 본명이었다. “이게 할아버지 이름이야.” 노인은 한 글자 한 글자 짚어주었다. 아이는 신기한 듯 반복하여 발음해 보았다. 가마로는 손을 흔들어 조용히 시키고는 말했다. “기억해 다오. 이 늙은이는 본래 이런 이름으로 불렸단다.”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갈대들이 서걱였다. 가마로는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머나먼 젊은 시절, 칼과 방패를 들고 바다를 건너던 순간부터, 폭풍에 휩쓸려 이 땅에 내던져진 날, 그리고 피와 눈물로 얼룩진 포로의 나날들… 수없이 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함께 웃고 울던 동료들, 정을 나눴던 마을 사람들, 끝내 돌아가지 못한 채 스러져간 이방인들의 한(恨)… 그 모든 것이 저녁놀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아이의 손을 잡은 가마로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지마는, 그래도 이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단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해서, 처음엔 원수였던 사이도 이렇게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될 수 있었어.” 아이는 그 말을 이해 못 해도 가만히 경청했다. 가마로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 붉은 노을을 보면 난 아직도 내 고향이 생각난다. 하지만 말이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이 땅도 내 고향 같구나.” 자신의 말에 스스로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괴로워하던 정체성의 갈등이었건만, 노년의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사람은 어디서든 살아가는 법이고, 세월은 이방인도 한 곳에 뿌리내리게 한다는 것을. 고려의 병사였던 자신도 일본의 흙을 밟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 보니, 어느새 이곳의 공기와 물이 친숙해져 버렸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평생 사무치지만, 동시에 지금 눈앞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진짜였다.
“할아버지, 저 노을 너머의 나라엔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가마로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언젠가… 언젠가 말이다.” 직접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들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마을에 어스름이 깔렸다. 아이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할아버지, 집에 같이 가요. 할머니가 기다리실 거예요.” 가마로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허리는 많이 굽었지만 걸음은 안정되었다. 아이는 재잘거리며 앞장섰다. 가마로는 천천히 그 뒤를 따르며 마지막으로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려의 하늘도 오늘 저녁 저 빛일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지금 자신의 삶이 있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등 뒤로 붉은 노을이 그의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두 세계에 걸쳐 서 있는 그의 인생을 상징하듯이, 그림자는 고려의 가문룡과 일본의 가마로 두 이름을 함께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았다.
석양 속에서, 가마로는 문득 지난날의 자신에게 속삭였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내 삶을 지켜냈노라.” 쓸쓸하면서도 평온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정체성과 인간관계,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끝끝내 피워낸 작고도 강한 생의 꽃을 그는 가슴에 안은 채, 느릿이 귀갓길을 걸어갔다. 먼 하늘에는 어느새 저녁 별이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histor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소설 가마로 상편 (0) | 2026.01.10 |
|---|---|
| [닐의 통찰] 태평성시도 중국적 요소 차용과 전시 고지 논란 연구 (0) | 2025.12.27 |
| 칠지도(七支刀)의 역사적 의미 해석 (0) | 2025.12.17 |
| 《천룡팔부》와 그 후속작 《사조영웅전》의 연결 고리 (0) | 2025.11.29 |
|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관계 (0) | 2025.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