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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산업

우리은행 내부통제 붕괴: 부당대출 사태의 다각적 분석 및 시스템 리스크 진단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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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빙산의 일각: 우리은행 최근 금융 비위 사건의 재구성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일련의 금융사고는 단순한 개별 사건을 넘어 조직 전반에 걸친 시스템적 통제 실패를 드러내는 명백한 징후다. 특정 사건에서 시작된 조사는 은행의 최고위층까지 연루된 거대한 규모의 부당대출 스캔들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우리은행의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했음을 시사한다.

1.1 24억 원 담보물 사고: 최초의 경고 신호

본 분석의 시작점은 24억 2,280만 원 규모의 담보물 무단 매각 사건이다. 2023년 3월부터 2025년 5월 사이에 발생한 이 사고는 대출 담보로 설정된 기계·기구를 외부인이 임의로 매각하여 발생했다. 표면적으로는 외부인의 불법 행위로 인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출 실행 이후 담보물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은행의 핵심 기능에 심각한 허점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우리은행은 관련 외부인을 수사기관에 고소하고 잔존 담보물 매각을 통해 손실을 회수하겠다고 밝혔으나 , 이는 표준적인 사후 대응일 뿐, 이 사건이 은행 내부 리스크 관리 체계의 더 깊은 문제를 암시하는 전조였음은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통해 명확해진다.

1.2 드러난 실체: 2,334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 스캔들

금융감독원의 정기검사 결과, 우리은행 단 한 곳에서만 무려 2,334억 원에 달하는 부당대출이 자행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최초에 알려진 24억 원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사태의 본질이 개별 직원의 일탈이나 외부 요인에 의한 사고가 아닌, 은행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부정행위임을 명백히 한다. 함께 검사를 받은 KB국민은행(892억 원), NH농협은행(649억 원)과 비교해도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규모는 압도적으로 커, 문제의 심각성이 차원을 달리함을 알 수 있다.

1.3 스캔들의 진원지: 전임 회장 친인척 대상 730억 원 특혜 대출

이번 부당대출 스캔들의 핵심에는 역대 회장 중 평가가 좋지 못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에게 집행된 총 730억 원의 특혜성 대출이 자리 잡고 있다. 당초 350억 원으로 알려졌던 이 금액은 금융감독원의 추가 조사 과정에서 380억 원이 더 발견되면서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는 조직의 최고위층에서 발생한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와 윤리 기준의 붕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출 과정에서는 노골적인 불법 행위가 동원되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상가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면서 실제보다 매매가를 부풀린 '가짜 계약서'를 이용하는 수법이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담보물의 실제 시장 가치를 훨씬 초과하는 대출이 가능했다. 경찰 수사 결과, 손 전 회장의 손위처남이 실소유한 법인 2곳이 이러한 수법으로 총 4건, 47억 원의 부당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한 심사 부실을 넘어 은행 내부 시스템을 이용한 적극적인 사기 행위가 자행되었음을 의미하며, 위조 서류를 걸러내지 못한 여신 심사 과정은 담당자들의 무능 혹은 공모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러한 대출의 재무적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총 730억 원의 대출 중 최소 338억 원(46.3%)이 이미 연체 등으로 부실화되었으며, 금융감독원은 나머지 대출 또한 부실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높은 부실률은 이 대출들이 상업적 판단에 근거한 정상적인 여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환 능력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비정상적인 목적으로 실행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는 곧바로 은행과 주주의 실질적인 재무 손실로 이어진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담보 관리 부실, 최고 경영진 연루 특혜 대출, 문서 위조를 통한 대출 사기, 그리고 과거부터 반복된 직원 횡령 사건들은 서로 무관한 개별 사고가 아니다. 이는 대출 심사, 사후 관리, 문서 검증, 내부 직원 감독 등 리스크 관리의 모든 단계가 동시에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건전한 조직이라면 이 중 한두 가지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모든 통제 기능이 일시에 마비된 것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문화 자체가 제도적으로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2. 통제의 붕괴: 거버넌스와 조직 문화의 실패 원인 심층 분석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금융 비위는 단순히 규정이나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규정과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뿌리 깊은 조직 문화와 지배구조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최고 경영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수직적 문화 속에서 내부 고발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

2.1 침묵의 문화: 내부고발 시스템의 완전한 실종

부당대출이 집중적으로 실행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약 4년의 기간 동안, 우리은행의 준법감시부서에 해당 사안과 관련해 접수된 공식 내부고발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우리은행의 조직 문화에 대한 가장 통렬한 증거다. 직원들이 불법 행위를 인지하고도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력감으로 인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던 극도의 비민주적 분위기를 시사한다. 일부 임원이 손 전 회장에게 직접 보고한 사례는 있었으나, 이는 공식적인 내부고발 절차를 따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최고 권력자에게 줄을 서려는 시도이거나 묵인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은행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한 내부고발 시스템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2.2 금융당국의 진단: 회장 중심의 제왕적 지배구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주회장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명확히 지적했다. 이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아닌, 회장 개인의 영향력이 모든 공식적인 절차와 리스크 평가를 압도하는 독단적 구조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내부통제 규정이 있어도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
더욱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 이사회가 인수합병(M&A)과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조차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 및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머물렀음을 의미한다. 최고 감시 기구의 무력화는 회장 중심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배경이 되었다.

2.3 뿌리 깊은 병폐: 계파 갈등과 기회주의

우리은행의 조직 문화는 1998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 이후 지속되어 온 '계파 갈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통일된 기업 정체성의 확립을 저해하고, 규정과 원칙 준수보다는 특정 계파나 유력 인사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만연하게 만들었다. 금융감독원이 지적한 '제 식구 감싸기 문화'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직 전체의 이익보다는 소속된 파벌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2.4 기초 통제의 실패: 장기근무와 비효율적 시스템

손태승 전 회장 관련 스캔들이 거버넌스의 실패를 보여준다면, 과거에 발생했던 다른 대규모 금융사고들은 가장 기본적인 운영 통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특히 특정 직원이 고위험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행권 전체의 취약점으로 인식되어 현재는 순환근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개선되고 있지만 , 우리은행에서는 이러한 기초적인 통제 원칙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우리은행의 행태는 조직의 근본적인 개혁 의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은행은 2022년 700억 원대 대규모 횡령 사고 이후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면 쇄신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신임 회장 주도하에 '그룹 내부통제 현장 자문단'까지 신설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손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의 상당 부분인 451억 원(61.8%)이 바로 이러한 '개혁' 선언 이후인 2023년 3월 이후에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의 개혁 조치가 대외 홍보용에 불과했으며, 조직의 뿌리 깊은 상명하복 문화와 최고위층의 면책 특권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문제의 본질이 서류상의 규정 부재가 아니라, 그 규정을 무시할 수 있는 권력 구조에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3. 영향력의 거미줄: 핵심 행위자와 책임의 위기

이번 사태는 소수의 일탈이 아닌, 전임 회장부터 현직 고위 임원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연루된 구조적 비리다. 특히 전·현직 경영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리더십 교체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깊은 제도적 관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3.1 회장 네트워크: 손태승 전 회장과 그 친인척

사건의 중심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있다. 대출은 그의 손위처남 등 친인척이 소유한 법인으로 집중되었으며, 이는 회장이라는 직위를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했다는 심각한 배임 혐의를 낳았다. 검찰은 2025년 초 손 전 회장을 포함한 5명을 기소했으며 , 향후 재판 과정에서 그의 직접적인 지시 여부와 함께,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특혜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위압적인 조직 문화를 조성한 책임까지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3.2 공모한 경영진: 27명의 고위 임직원

문제는 회장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건과 별개로, 27명의 전·현직 고위 임직원이 연루된 1,604억 원 규모의 추가 부당대출이 적발되었다. 이는 은행의 여신 담당 고위 관리자 상당수가 리스크 관리 원칙을 무시하는 관행에 동참했거나 최소한 묵인했음을 보여준다.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행태의 배경으로 단기 실적에만 매몰된 '단기성과주의'를 지목했는데, 이는 건전성보다 대출 실적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성과 평가 문화가 만연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한 여신지원그룹 부행장의 사례는 단순한 부실을 넘어선 명백한 부패 행위를 보여준다. 그는 대출 브로커를 부하 직원에게 직접 소개하고, 17억 8,000만 원의 대출이 부실하게 심사되도록 압력을 가한 뒤, 그 대가로 아내의 계좌를 통해 3,8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수수했다. 이는 우리은행 최고위층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3.3 회전문 인사: 퇴직 후 이어진 부적절한 관계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에 42억 7,000만 원의 부당대출을 승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지역본부장은 우리은행 퇴직 후 해당 대출을 받은 차주 회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회전문 인사'는 대출 승인 과정에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낳는다. 재직 중 특혜를 제공하고 퇴직 후 보상을 받는 전형적인 부패의 고리로, 대출 결정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

3.4 현 경영진의 딜레마: 임종룡 회장의 책임론

현 경영진에게 가장 뼈아픈 사실은 손 전 회장 친인척에게 집행된 730억 원의 부당대출 중 과반이 넘는 451억 원(61.8%)이 임종룡 현 회장이 취임한 2023년 3월 이후에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과거 정권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최고 리더십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대출 관행이 지속, 심지어 가속화되었다는 것은 특정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강력한 제도적 관성이 조직을 지배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현 경영진의 사후 대응 방식과 개혁 의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책임 소재가 전임 회장, 다수의 고위 임원, 그리고 현 경영진의 재임 기간에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몇몇 '썩은 사과'의 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이는 리더가 누구인지와 무관하게 부패의 메커니즘이 자동으로 작동할 만큼 제도화된, 즉 '조직 자체가 부패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단순한 인적 교체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조직의 운영 방식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4. 감독 당국의 심판과 제도적 결과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실패는 금융감독원의 강력한 제재와 함께 그룹의 중장기 전략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감독 당국은 단순한 벌금 부과를 넘어, 은행의 경영 건전성 자체를 문제 삼아 성장 전략에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4.1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공개 문책

금융감독원은 정기검사를 통해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실태를 적발하고, 이례적으로 기자 설명회를 열어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연루 사실을 포함한 상세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복현 원장이 직접 '말도 안 되는 대출'과 같은 강도 높은 표현을 사용하며 현 경영진의 개혁 '의지'를 문제 삼은 것은 , 사안의 심각성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는 분명한 신호였다. 이는 단순한 감독 활동을 넘어, 시장과 금융소비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공개적인 문책의 성격을 띤다.

4.2 경영실태평가 등급 강등과 전략적 타격

이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는 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지주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기존 2등급에서 3등급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3등급은 '미흡'을 의미하는 심각한 평가 결과로, 이는 그룹의 평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 확장에 즉각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규정에 따르면, 자회사 인수를 위해서는 경영실태평가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등급 강등으로 우리금융이 그룹의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추진해 온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가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내부통제의 실패가 어떻게 기업의 핵심 성장 전략을 좌초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주주 가치와 그룹의 경쟁력에 직접적인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4.3 법적·행정적 조치

금융감독원은 관련자들에게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제재'를 부과하고, 범죄 혐의가 드러난 사안은 수사 당국에 통보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종 제재 수위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감독 당국의 강경한 태도를 고려할 때 기관에 대한 거액의 과징금은 물론, 연루된 임직원들에게는 직무 정지나 해임 권고 등 중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은행의 재무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외 신뢰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감독 당국이 운영상의 실패(부당대출)를 전략적 페널티(M&A 불허)와 직접 연결한 것은 규제 집행의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 이는 내부통제를 단순한 규정 준수 문제를 넘어, 금융회사가 사업을 영위하고 성장할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삼겠다는 신호다.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부 관리가 부실한 기업은 외형 확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금융권 전반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내부통제를 비용이 아닌 생존과 성장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을 제공한다.

5. 비위의 패턴: 한국 은행 산업의 구조적 문제

우리은행 사태는 개별 금융회사의 특수한 문제인 동시에, 한국 은행 산업 전반에 만연한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른 주요 은행들에서도 유사한 금융사고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업계 공통의 폐쇄적 조직 문화와 형식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이 근본 원인임을 시사한다.

5.1 업계 전반에 퍼진 병폐

금융감독원의 2024년 정기검사에서는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KB국민은행(892억 원), NH농협은행(649억 원)에서도 대규모 부당대출이 적발되어, 총 적발 금액은 3,875억 원에 달했다. 또한 2024년 한 해 동안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86건, 피해액은 1,625억 원에 이른다. 이는 여신 심사 과정의 허점과 임직원 비위가 특정 은행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반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보여준다. 대출 브로커와의 결탁, 서류 위조, 여신 한도 회피를 위한 '대출 쪼개기' 등 유사한 수법이 여러 은행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5.2 부정적 이상치로서의 우리은행

그러나 업계 전반의 문제라는 사실이 우리은행의 책임을 경감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은행은 여러 지표에서 다른 은행들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번 금감원 검사에서 적발된 부당대출액 3,875억 원 중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비중(2,334억 원)은 60%를 넘어, 문제의 규모가 타행을 압도한다. 또한 최근 6년간 발생한 금융사고 누적액에서도 우리은행은 1,158억 원으로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은행의 조직 문화와 거버넌스 문제가 경쟁사들과 비교해도 유독 심각한 수준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5.3 공통된 원인과 개혁 방향

전문가와 감독 당국은 은행권 금융사고의 공통적인 근본 원인으로 외부의 감시가 어려운 '폐쇄적 조직문화', 구조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의 부실, 그리고 대출 프로세스의 디지털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통제 방식 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진단에 따라 금융당국은 동일부서 장기근무 제한 강화, 총인원 대비 준법감시인력 비율 의무화(0.8% 이상),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상시 감시 시스템 고도화 등 업계 전반에 적용될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 사태는 이러한 개혁이 왜 시급하게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되었다.
수년간 감독 당국의 압박과 은행들의 개혁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금융사고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은 업계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사고 발생 시 부과되는 벌금이나 제재가, 엄격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비용보다 저렴하다고 판단될 경우, 은행들은 진정한 리스크 문화 구축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즉, 제재를 기업 경영에 있어 치명적인 위협이 아닌, 감수할 만한 '사업 비용'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개혁-사고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의 M&A를 불허하는 전략적 제재를 가한 것은, 금융사고의 대가를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기업의 성장 자체를 가로막는 수준으로 격상시켜 경영진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6. 나아갈 길: 시스템 개혁을 위한 제언

우리은행 사태는 단순한 처벌을 넘어,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은행이 내놓은 대책은 그 실효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금융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을 위한 심도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6.1 우리은행의 대응책: 비판적 평가

우리금융그룹은 사태 수습을 위해 '윤리경영실'을 신설하고, 검사 출신 인사를 실장으로 영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직원의 의무휴가 기간 중 이해관계자와의 부적절한 접촉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검사 출신 영입은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조직에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이 처벌의 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라,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내부고발 자체가 불가능했던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조직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새로운 감찰 조직 역시 기존의 권력 구조 안에서 무력화될 위험이 크다. 이는 또 다른 형식적인 조치에 그칠 수 있다.

6.2 구조적 개혁의 필요성

감독 당국이 추진하는 준법감시인력 비율 의무화(총 임직원의 0.8% 이상), 준법감시인 자격요건 강화, 고위험 직무 순환근무 의무화 등은 내부통제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조치들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듯, 아무리 훌륭한 제도와 규정이 마련되어도 이를 운영하는 조직의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제도적 개혁은 반드시 문화적 혁신과 병행되어야 한다.

6.3 실질적 변화를 위한 전문가 제언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 독립적인 조직 문화 진단 및 혁신 프로그램 시행: 내부 자체 진단을 넘어, 익명성을 보장하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조직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모든 직급의 직원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영진의 보상과 연계된 측정 가능한 핵심성과지표(KPI)를 포함한 다년간의 조직 문화 혁신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 이사회의 실질적 권한 강화 및 책임 소재 명확화: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에 독립적인 예산을 부여하고, 경영진의 승인 없이 외부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은 실무자 선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까지 명확하게 묻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 내부고발 제도의 혁신: 현재의 유명무실한 제도는 폐기하고, 독립적인 제3의 외부 기관이 운영하는 새로운 내부고발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신분 보장을 넘어, 중대한 비위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적발하는 데 기여한 제보자에게는 관련 부서 임원의 성과급을 환수하여 조성한 재원에서 파격적인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내부 감시를 활성화해야 한다.
* (감독 당국) 전략적 제재의 제도화: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의 M&A를 불허한 조치는 매우 효과적인 접근이다. 이를 일회성 조치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시스템적 내부통제 실패를 드러낸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신사업 진출이나 인수합병 등 주요 전략적 활동을 금지하는 '전략적 모라토리엄' 제도를 공식화해야 한다. 이는 제재의 성격을 단순한 재무적 벌칙에서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으로 전환시켜, 경영진이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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