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인터넷 대기업 네이버가 사실상 AI 크롤러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2025년 여름, 네이버는 자사 서버 전반에 걸쳐 외부 AI 봇(OpenAI, 구글 등)의 크롤링을 전면 차단하는 업데이트를 조용히 적용했습니다 .
이 과감한 조치는 오늘날 생성형 AI 모델을 움직이게 하는 “무료 데이터 수집” 관행을 둘러싼 콘텐츠 제공자와 AI 기업 간의 전면전의 일환입니다.
즉, 네이버는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내 데이터, 공짜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는 웹의 오랜 불문율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십 년 동안 구글 같은 검색엔진은 콘텐츠 제작자들과 상호 호혜적 거래를 해왔습니다 – *“우리가 당신의 콘텐츠를 색인하면, 대신 트래픽을 보내주겠다”*는 식이었죠 .
하지만 AI 챗봇과 요약 서비스는 이 거래를 뒤엎었습니다. 트래픽이나 수익을 돌려주지 않고, 단순히 콘텐츠만 긁어다 학습하거나 답변에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 클라우드플레어 CEO 매튜 프린스는 이를 두고 공정한 교환 대신, 웹이 AI 크롤러들에게 채굴당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이에 대응해 전 세계 플랫폼들은 반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2025년 “크롤 단위 과금(pay per crawl)” 제도를 도입해, AI 기업이 크롤링할 때마다 요금을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 또한 주요 언론사와 웹사이트들도 원치 않는 AI 봇을 차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의 이번 조치는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이버는 왜 이렇게 나섰을까요? 이 결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으로 데이터와 AI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빅테크 크롤러 vs 네이버의 방어 전략
네이버의 첫 번째 조치는 사이트 전역에 ‘robots.txt’ 파일을 심어 AI 크롤러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
쉽게 말해, 이제 ChatGPT나 구글의 Bard 같은 AI 서비스는 네이버 블로그, 카페(커뮤니티), 쇼핑, 부동산, 뉴스 등 네이버의 핵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네이버는 AI가 실시간으로 검색 결과를 활용해 답변을 생성하는 검색증강생성(RAG) 기능까지 차단했습니다 .
즉, 네이버가 오랜 시간 축적한 한국어 데이터 자산을 외부 AI가 무단으로 가져가는 길을 원천 차단한 것입니다.
네이버의 공식 설명: AI 봇 크롤링으로 인해 서버 트래픽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해 과부하 위험이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전면 차단을 했다는 입장입니다 .
하지만 업계에서는 네이버의 진짜 의도가 단순한 “서버 보호”가 아니라 검색 시장 방어에 있다고 해석합니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될수록 사용자는 굳이 웹페이지를 클릭하지 않고 AI가 정리한 답변만 보고 끝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곧 네이버 검색 트래픽 감소 → 광고 수익 감소로 이어집니다 .
실제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구글이 검색에 AI 요약(AI Overview)을 도입했을 때, 이용자의 클릭율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AI 요약이 뜨면 단 8%만이 다른 웹사이트로 이동한 것입니다 .
즉, 네이버가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한국 시장에서조차 “검색 → 광고”라는 기존 수익 모델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네이버는 이를 막기 위해 자신들의 데이터를 AI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차단은 양날의 검입니다.
네이버 콘텐츠가 글로벌 AI 검색·추천에서 제외되면, 국내 제작자들의 콘텐츠가 해외로 퍼질 기회를 스스로 끊는 결과가 됩니다 .
예컨대, 외국인이 한국 8월 여행지 추천”을 ChatGPT에 물으면, 이제는 네이버 블로그 글 대신 한국관광공사나 구글 지도 리뷰가 답변에 반영됩니다.
이 때문에 해외 확산을 노리는 제작자들이 네이버 대신 구글·티스토리·카카오로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
실제로 구글과 카카오는 AI 크롤링을 허용하는 개방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네이버의 이번 조치는 단기적으로 자산을 지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닫힌 플랫폼”이라는 오명을 쓰고 제작자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AI가 촉발한 ‘크롤링 2차전’
네이버의 조치는 2차 크롤링 전쟁”의 신호탄입니다.
1차 전쟁은 2010년대, 주로 부동산·채용·쇼핑 같은 상업적 데이터베이스(DB)를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당시 네이버는 부동산 매물 DB를 무단 크롤링한 ‘다윈중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24년 9월 1심에서 일부 승소했습니다 .
한국 저작권법은 “상당한 투자로 구축한 DB”를 보호하며, 법원은 영리 목적의 무단 크롤링을 부정경쟁 행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하지만 AI 시대의 2차 전쟁은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이제 크롤링의 대상은 특정 DB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열람 가능한 모든 공개 데이터까지 확대되었습니다 .
블로그 글, 주식토론방 댓글, 커뮤니티 게시물 등 한국어로 쓰인 모든 텍스트가 AI에게는 학습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
특히 한국어 데이터는 영어에 비해 희소하기 때문에, 네이버가 보유한 대규모 한국어 콘텐츠는 외국 AI 기업들에겐 금광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
문제는 현행 법제가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DB 크롤링은 비교적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었지만, 공개 게시물을 AI가 읽는 행위는 법적으로 모호합니다 .
네이버가 공개한 블로그 글을 일반 사용자가 읽는 것과, AI가 읽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I 기업들은 이를 “복제”가 아니라 “열람”이라고 주장합니다 .
게다가 AI가 실제로 어느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법무법인 비트의 안일운 변호사는 *“AI 알고리즘 특성상 데이터 유출을 특정해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
즉, 법의 사각지대가 생긴 것입니다.
빅테크의 ‘내로남불’ –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
AI 크롤링 전쟁의 흥미로운 특징은, 모두가 동시에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입니다.
오늘은 “데이터를 빼앗겼다” 주장하던 기업이, 내일은 남의 데이터를 빼앗아 쓰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대표적 사례는 OpenAI와 구글입니다.
2024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OpenAI는 GPT-4 훈련 데이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무단으로 대량 전사(자막화) 했습니다 .
내부 문건에 따르면 OpenAI는 자체 개발한 ‘Whisper’ 도구로 100만 시간 이상 유튜브 오디오를 텍스트로 변환해 학습에 사용했습니다 .
구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글 역시 자사 AI(Gemini) 훈련을 위해 유튜브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따라서 구글은 OpenAI를 비난하기 어려웠습니다. 서로 “남이 하면 불법, 내가 하면 연구” 식의 내로남불이 벌어진 셈입니다 .
네이버도 예외가 아닙니다.
2025년 초,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네이버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네이버가 언론사 동의 없이 뉴스 기사를 자사 AI 학습에 사용했다는 이유였습니다 .
신문협회 또한 공정위에 네이버를 신고하며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이에 네이버는 2023년 6월 약관 개정을 통해 *“언론사 동의 없이 뉴스 데이터를 AI 학습에 쓰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 이미 상당한 데이터를 학습한 뒤라는 의혹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즉, 네이버 역시 데이터 보호자이면서 동시에 데이터 이용 가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미래: ‘무료 크롤링’에서 ‘유료 데이터’로
이 모든 흐름은 결국 데이터 유료화라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크롤링을 통한 무료 데이터 확보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차단·소송·기술 방어가 강화되면서, AI 기업들이 데이터를 구매하거나 라이선스를 체결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
이미 신호탄은 나타났습니다.
• OpenAI는 2023년 AP통신(Associated Press)과 계약을 맺고 뉴스 아카이브를 유료로 제공받았습니다 .
• **레딧(Reddit)**은 2023년 API 유료화를 선언하며 “AI 학습 데이터 무단 활용”을 직접 이유로 들었습니다 .
• 트위터(현 X)도 2023년, 과도한 AI 데이터 스크래핑을 이유로 일일 열람 제한을 걸었습니다 .
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 입장에서는, 데이터는 곧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방어 비용이 낮아지고, 공격(크롤링) 비용이 높아질수록, 데이터를 가진 쪽이 유리합니다 .
따라서 AI 기업들이 차라리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데이터셋을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결론: 데이터 전쟁의 분기점
네이버의 AI 크롤링 전면 차단은 단순한 기술 조치를 넘어, AI 시대 데이터 소유권 논쟁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네이버가 자산을 지키고 검색 시장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제작자 이탈·글로벌 확산 차단 등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번 사태는 웹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를 묻습니다.
• 웹은 계속 모두가 자유롭게 활용하는 공공 자원으로 남을까요?
• 아니면 데이터가 유료화되고, 콘텐츠 보유자가 룰을 정하는 폐쇄적 시장이 될까요?
분명한 사실은, AI의 시대에는 “데이터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네이버의 선택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실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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