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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서귀포 불로초 설화 종합 조사 보고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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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초 설화의 전체 이야기와 서사 구조


 서귀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불로초 설화는 중국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장생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진시황은 영원한 젊음을 주는 약초인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고자 방사(方士) 서복(徐福, 서불로도 불림)을 사자로 임명하였습니다 . 서복은 동해 너머 삼신산(三神山)에 신선과 불로초가 있다는 기록을 인용하며, 어린 남녀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쌍(또는 3,000명)을 데리고 떠나겠다는 건의를 올려 허락을 받습니다  . 이렇게 구성된 원정대는 기원전 219년 산둥반도를 출발하여 연안을 따라 항해하며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 여러 섬과 해안을 거쳐 마침내 한반도 남쪽 끝 섬인 제주도에 이르렀고, 영주산이라 불리던 한라산에 올라 불로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설화의 결말에는 두 가지 전승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서복 일행이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한 채 되돌아갔다는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불로초를 구했지만 진시황에게 바치지 않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쪽이든 떠나기 전 서복은 제주에서의 마지막 흔적으로 정방폭포 절벽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고 전해집니다 . ‘서불과지’란 “서복(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서복 일행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아쉬움과 흔적을 담은 장면으로 설화의 서사가 마무리됩니다 . 이처럼 시작(진시황의 명령) – 전개(서복의 원정과 탐색) – 절정(제주 정방폭포 도착) – 결말(불로초 획득 실패 혹은 성공 후 귀환과 암각 새김)**의 구조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등장인물과 배경 장소 설명


 이 설화의 주인공은 서복(徐福)으로, 진시황의 명을 받은 방사(불로장생술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서복은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통일 후 황제의 총애를 받아 불로초 탐사대의 지도자가 된 인물입니다 . 조력자로는 황제가 선발한 어린 남녀 500쌍 또는 3,000명의 동남동녀가 등장하며, 이들은 신선의 영약을 찾기 위한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 배경이 되는 주요 장소는 제주도의 한라산과 정방폭포입니다. 한라산은 설화에서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으로 지목되어 신선이 사는 영산으로 그려집니다 . 정방폭포(서귀포시 동홍동)는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제주 유일의 해안폭포로, 서복 일행이 제주에 닻을 내리고 첫 발을 디딘 곳으로 전해집니다 . 정방폭포 절벽 바위에 새겨졌다고 하는 “서불과지” 암각은 이 설화의 상징적인 배경으로, 서복의 방문과 귀환을 증명하는 흔적으로 강조됩니다 . 한편 제주에서는 이 전설과 관련하여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이 탄생했는데,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뜻으로 서복의 귀환길이 시작된 항구를 가리킵니다 . 실제로 서귀포 앞바다는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도착했다가 서쪽(중국)으로 돌아간 자리라는 전설과 함께 지명의 유래 설화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 이외에도 제주 북동부의 조천(朝天)이라는 지명도 서복이 어느 포구에 들러 동이튼 새벽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암벽에 글귀를 남겼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어, 제주 섬 곳곳에 서복의 흔적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 흥미롭게도 서복의 “동쪽 바다 원정” 전설은 제주뿐 아니라 한반도 남해안 여러 지역에 깃들어 있어, 경남 남해군 금산 기슭이나 통영 소매물도 등지에도 ‘서불과차’(徐巿過此) 글귀 전설이 전해지며 바위 각석 흔적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이를 통해 서복과 불로초 설화는 제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명과 명소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설화의 역사적 배경과 문헌적 출처


 서귀포 불로초 설화는 단순한 구전민담이 아니라 역사 기록에 뿌리를 둔 전설입니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진시황본기에는 서복 이야기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시황 28년에 “제나라 사람 서불(徐巿)이 바다에 봉래·방장·영주라는 세 신선의 산이 있다 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신선을 찾게 해 달라 아뢰었다”는 대목이 나오고 , 이후 실제로 황제가 서복에게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바다로 나가 불로초를 찾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또한 진시황 35년 조에는 황제가 서복 등이 많은 돈을 쓰고도 약을 못 구했다는 보고를 받고 노하여 방사들을 처벌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 서복의 원정은 역사적 사실의 기반 위에 설화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 이밖에도 중국 『회남자』 및 『후한서』 등의 문헌에도 서복 관련 기록이 있어, 서복이 도달한 동쪽 바다의 섬으로서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제주도나 일본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 설화의 제주 지역 전승에는 조선시대 학자들의 기록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조선 말기 학자 김석익이 편찬한 『파한록(破閑錄)』에는 서귀포 해안 절벽에 진나라 방사 서불이 새겨놓았다는 글자 흔적이 있는데, 1877년(고종 14년) 제주목사 백낙연이 이 전설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밧줄을 드리워 탁본해보니 글자가 12자였고, 모양이 올챙이 머리처럼 가늘어지는 중국 고대 문자(과두문)라 해독할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이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19세기까지도 정방폭포 암벽에 서복의 글자가 남아 있었고, 이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1840년대)에 정방폭포의 암각 “서불과지”를 우연히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는 전언도 전해져, 그의 친필 탁본본을 참고해 복원한 글자가 현재 서복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 이처럼 불로초 설화는 중국 고대 사서의 뒷받침과 조선 시대 문헌 기록을 함께 갖추고 있어 역사성과 전설성이 결합된 독특한 사례입니다. 다만 정작 암각의 실물은 근현대에 이르러 풍화로 소실되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고, 지금은 전설과 문헌 기록을 통해서만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불로초 설화의 전승 방식과 시대별 변화


서귀포의 불로초 설화는 오랜 세월 구전과 기록을 통해 전승되며 내용에 일부 변화와 해석의 차이가 생겨났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기원한 “서복 동방원정” 이야기가 제주지역 설화로 자리잡은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진나라 역사에 뿌리를 둔 이 이야기는 한반도에 전래되며, 제주라는 신비의 화산섬이 중국인들에게 삼신산의 하나로 여겨졌던 점이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 제주 섬은 도교적 상상 속에서 “동해 한가운데 떠있는 신선의 섬”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한라산 정상 부근에만 서식하는 희귀한 약초 등이 알려지면서 불로초의 소재지로 거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이러한 배경 속에 서복 설화는 조선시대 지방지나 지리지의 지명 유래담으로 기록되고, 민간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로 자리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귀포란 지명이 서복의 귀환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지리지류에 언급되어 후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 또 한편으로 민간 구전 설화로 전해질 때는 다소 재치있는 각색이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지역 전설 중에는 사실 서복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고, 데려온 동남동녀 500명은 한라산 경치를 구경만 한 채 결국 불로초는 못 찾고, 돌아가며 정방폭포 바위에 ‘서불과차’라고 새겨놓고 떠났다는 식으로 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 이 버전에서는 서복이 애초에 황제를 속이고 제주 구경만 한 채 철수했다는 뉘앙스로, 현실에서는 불로초 따위는 없었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설화의 변주는 구전 과정에서 시대와 전달자의 관점에 따라 내용을 조정하며 전승되어 왔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시대별로 서복 설화에 대한 관심과 활용도 변화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지식인들과 지역민에게 지명이나 전설로 인식되던 것이, 현대에 들어 제주를 찾는 외지인과 연구자들의 관심사로 부각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제주도의 관광 개발과 함께 각종 향토 설화가 발굴되면서 불로초 설화도 주목받았고, 1980년대 이후에는 학술 연구와 문화콘텐츠 소재로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서복 설화를 재조명하려는 지역 학술 세미나와 연구회가 조직되었으며 , 중국·일본과 연계한 국제 교류의 소재로서도 재해석되었습니다 . 이를 통해 서복 설화는 단순히 옛날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새롭게 의미 부여되며 오늘날까지 전승·변용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및 상징성


서귀포의 불로초 설화는 지역 정체성의 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어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우선 서귀포라는 지명 자체가 이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주민들에게 고향의 이름 속 전설로 존재합니다 . 지역민들은 “서복이 다녀간 고장”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이 설화가 선사하는 장수와 불로장생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주도는 청정한 자연환경과 장수 노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인데, 일부 주민들은 제주도 자체가 불로초의 섬이라 여기며 한라산의 맑은 바람을 불로풍(不老風), 바위를 타고 흐르는 샘물을 불로수(不老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 이렇듯 불로초 설화는 제주 자연과 사람들의 건강, 장수를 상징하는 은유적인 의미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 차원에서 서복과 불로초는 문화 교류와 도시 브랜드의 상징으로 활용됩니다. 서귀포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복 설화를 지역의 대표 설화로 내세워,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예컨대 2003년 서복전시관 개관을 전후하여 서복문화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중국, 일본 학자들과 주민들이 서복과 불로초에 관한 연구발표 및 토론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 이 자리에서 서귀포 문화계 인사들은 서복과 동남동녀, 불로초는 서귀포 지역 정체성의 한 축이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관광자원 개발, 더 나아가 불로초 관련 상품 개발까지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 즉, 설화의 주제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지역 이미지와 경제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로초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라기보다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신화적 자산으로 여겨지며, 주민들에게 고향의 역사와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다만 지역 주민들의 시각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설화 활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존재합니다. 일부 주민들은 서복전시관과 공원에 조성된 중국풍 시설물이나 홍보가 지역 정서와 동떨어져 보인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시에서는 이 설화를 한·중 우호 교류의 매개로 삼고자 노력 중이며, 많은 주민들도 고유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것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서복과 불로초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 투어 코스가 개발되고, 설화를 활용한 마을 해설사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등 주민들이 직접 설화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기회도 늘고 있습니다  . 이처럼 불로초 설화는 서귀포 주민들에게 역사적 뿌리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되며,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로초(불사의 약초)의 민속적 의미와 유래


불로초란 글자 그대로 “늙지 않는 풀”을 뜻하며, 오래 살고자 하는 인류의 염원이 담긴 민속 개념입니다. 중국 진시황 시대의 기록에 등장한 이후, 불로초는 영생 또는 장수의 약초를 지칭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도교 전설에서는 신선들이 불로초를 먹고 불사(不死)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고, 진시황 외에도 한나라 무제 등 역대 황제들이 실제로 불로초를 찾아 나섰다는 기록이 있어 인간의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을 보여줍니다. 우리말 속담에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을 정도로, 늙지 않고 오래 삶을 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꿈이었습니다. 불로초는 그러한 꿈을 상징하는 환상적인 약초로서, 현실의 희귀한 약재들과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제주 설화의 맥락에서는 한라산의 특정 식물들이 불로초의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라산 정상 부근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시로미 열매가 옛 제주 사람들 사이에 불로장생의 열매로 불렸습니다 . 시로미(Empetrum nigrum var. japonicum)는 검은 빛깔의 작은 열매로, 예로부터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전설이 내려왔습니다 . 실제로 “진시황이 동남동녀 500명을 보낸 것은 한라산 시로미 열매를 구하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가 제주에 전해져 왔을 정도입니다 . 그 밖에도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는 영지버섯(靈芝)도 불로초의 일종으로 여겨졌습니다 . 영지버섯은 중국에서 예로부터 불로장생을 돕는 영약으로 숭배되어 왔으며, 제주도에서도 노송지대 등에 자라는 영지버섯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일부 학자는 한라산에 서식하는 황칠나무(黃漆)나 제주당귀, 옥지지(바위솔의 일종) 등도 불로초 설화와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 예컨대 근래 어떤 연구에서는 “과학저널 네이처가 꼽은 불로장생 약초가 다름 아닌 중국 원산의 황기(黃耆)인데, 제주 한라산에도 황기가 자라므로 서복이 찾으려던 불로초는 황기였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 이렇듯 불로초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설마다, 또 연구자마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희귀하고 신비로운 약초라는 점, 오래 살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는 믿음이 그 핵심을 이룹니다.

민속적으로 불로초는 단순한 약재를 넘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많은 옛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이 산 속 깊이 불로초를 찾아 떠나거나, 불로초를 얻기 위한 시련을 겪는 모티프가 반복됩니다. 제주 불로초 설화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맞물려 신비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처럼 속세와 떨어진 곳에 불로초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사람들에게 자연에 대한 경외와 탐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늘날에도 항노화 의학이나 슈퍼푸드 등의 개념으로 불로초 전설이 새롭게 언급되곤 하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민속적 상징이 현대과학과도 접목되어 논의되는 흥미로운 문화 현상입니다. 결국 불로초는 영원한 젊음이라는 인류 보편의 염원이 빚어낸 상징물로서, 서귀포 설화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러 이야기 속에 형태만 달리하며 살아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화를 활용한 관광지·문화 콘텐츠·조형물·축제 등 현황


 현재 서귀포시는 불로초 설화(서복 전설)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지역 관광자원과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2003년 개관한 서복전시관과 서복공원이 있습니다. 정방폭포 인근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서복전시관은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조성된 기념 전시시설로서, 진시황과 서복 관련 유물과 모형, 기록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 내부에는 서복의 동상과 더불어 중국 시안에서 본뜬 진시황릉 병마용(兵馬俑) 모형, 청동 마차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진시황 시대와 불로초 원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 전시관 주변의 서복공원은 야외 산책로와 정원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다 절경과 함께 전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중국풍 패방(牌坊) 형태의 문이 세워져 있고, 이 문 현판의 “서복공원(徐福公園)” 글씨는 2007년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휘호해 준 것입니다 . 이는 서복 전설을 매개로 한중 우호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현판으로 여겨집니다. 공원 안쪽으로는 서복 일행이 도착한 모습을 묘사한 벽화와, 서복의 얼굴을 부조로 새긴 기념비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 특히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서복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동상은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명물로 떠올랐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앞서 언급한 추사 김정희의 탁본을 참고해 복원한 ‘서불과지’ 암각 글씨도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들은 전설 속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서복 설화를 기반으로 한 관광 스토리텔링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는 정방폭포-서복전시관 일대를 역사문화 관광지로 육성하고자 2024년 이 구간 280m를 공식 서복거리(徐福路)로 지정했습니다 . 2024년 5월 열린 서복거리 지정 기념식에는 서귀포시장과 주제주 중국총영사가 참석하여 현판 제막식을 갖고, 참석자들이 서복전시관-정방폭포-소정방폭포에 이르는 코스를 함께 걸으며 서복 전설에 대한 해설을 듣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 이는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맞춰 스토리텔링과 문화요소를 결합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려는 시도로서, 서복 이야기가 현대적으로 재현되는 좋은 예입니다 . 서귀포시는 앞으로 이 서복거리에 전문 해설사를 상시 배치하여 관광객들에게 전설을 생생히 들려주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또한 이 지역 올레길(올레 6코스)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자들도 자연스럽게 서복공원과 전시관을 지나도록 동선을 연계하여, 자연경관과 전설 이야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형 관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문화콘텐츠 측면에서 불로초 설화는 영화·문학 등의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 장이머우 감독, 공리 주연의 영화 <진용(秦俑)>에서 서복과 불로초 전설을 변주한 이야기가 그려졌고 , 한국에서도 불로초를 모티프로 한 창작물이 등장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21년 개봉한 한국 영화 <서복>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에게 ‘서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죽음과 영생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SF 드라마입니다. 영화 <서복>은 불로초 설화에서 영감을 얻어 영원한 삶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 이처럼 직접 제주 설화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서복”과 “불로초”라는 키워드는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여전히 강력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주 지역에서도 지역 예술인들이 서복 이야기를 테마로 한 소설이나 웹툰, 관광 기념품 등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시 차원에서 이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축제와 행사 분야에서도 과거에 서복문화제와 같은 이름으로 지역 축제를 추진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대규모 축제로 정착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대신 앞서 언급한 국제학술대회나 기념행사, 그리고 소규모 전시관 행사 등이 그 역할을 부분적으로 해왔습니다 .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각기 서복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는데, 중국 산둥성과 일본 규슈 등에는 서복을 모신 사당과 묘가 있어 현지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 서귀포에서도 이러한 국제 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하거나, 자체적으로 서복 추모 다례 행사 등을 개최하여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유산으로서 서복을 기리고 있습니다.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위치한 서복공원 정문 패방. 2007년 방한한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가 직접 쓴 휘호 “徐福公園”(서복공원) 편액이 걸려 있다 . 서귀포시는 2024년 이 일대를 “서복거리(徐福路)”로 지정하고 전설을 결합한 관광 코스를 선보였다  .

결론적으로, 서귀포 불로초 설화는 고대의 역사와 신화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이야기로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관광자원, 상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설화의 줄거리는 진시황과 서복이라는 역사 인물을 통해 전해지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보편적 염원인 영생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이 전설은 세대를 넘어 구전되고 기록되며, 현대에는 지역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하여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불로초 설화는 서귀포시의 소중한 스토리 자산으로서 보존·활용되어,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설의 현장 정방폭포 전경. 제주 서귀포의 해안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정방폭포에는 서복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서불과지(徐市過之)” 암각이 새겨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이 폭포와 주변 경관은 불로초 설화의 무대가 되어, 오랜 세월 지역민들의 입으로 전승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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