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대표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서 최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25인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 이 순위는 중국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한 온라인 여론을 바탕으로 선정되었으며, 외부의 시각이 아닌 중국인의 관점에서 뽑힌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 ‘중국 역사 인물 순위(中国历史人物排行榜)’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 명단은 중국 역사 전반에 걸쳐 사회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순서대로 꼽은 것이다. 선정 기준이 공식적으로 상세히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역사상 중국의 통일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 사상과 문화에 남긴 유산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고대의 성현부터 제국을 건설한 군주, 근현대의 정치 지도자까지 다양한 시대의 인물이 망라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인물 1위는 공자였다. 춘추시대 노나라 출신의 사상가인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로서, 고대 중국의 윤리와 사회질서를 정립한 위대한 철학자다 . 그의 가르침은 이후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 전체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에게 성인의 반열로 추앙받고 있다. 2위는 진시황(시황제)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국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첫 황제이다 . 진시황은 만리장성 축조와 문자·화폐·도량형의 통일 등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으로 이후 중국 제국의 기틀을 닦았으며 , 비록 가혹한 법치로 논란도 있지만 “시황제”라는 칭호로 새로운 통치 이념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 3위 노자는 전설적인 철인(哲人)으로 도가 사상의 비조이다. 그는 『도덕경』을 저술하여 도교를 창시하고 무위자연의 철학을 설파함으로써 , 중국인의 정신적 삶에 한 축을 세운 사상가로 손꼽힌다. 4위 채륜은 후한(東漢)의 환관 출신 발명가로, 종이를 발명(제지법 개발)하여 지식과 정보의 전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 그의 제지법 표준화는 문명의 기록과 확산을 용이하게 만들어 중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5위 한 무제(유철)는 전한(前漢) 제국의 7대 황제로, 재위 기간 동안 한나라의 국력을 극대화하고 팽창 정책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한 군주다 . 그는 흉노 등 북방 민족을 물리치고 서역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했으며, 동쪽으로는 고조선, 남쪽으로는 남월(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하여 중화 제국의 세력을 넓혔다 . 이러한 공적으로 한 무제는 한나라를 고대 중국의 최전성기로 이끈 황제로 평가된다.
6위는 마오쩌둥(모택동)이 차지했다. 마오쩌둥은 20세기 중국 공산당을 이끈 혁명 지도자로,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을 승리로 이끌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국가주석이다 . 그는 신해혁명 이후 혼란에 빠졌던 중국 대륙을 재통일하고 사회주의 중국의 기틀을 세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7위 맹자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의 유학자로, 공자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유교 철학자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왕도정치의 이상을 설파했는데 , 이러한 가르침은 유교 윤리를 풍부하게 하고 후대에 ‘아성(亞聖)’으로 불릴 만큼 공자 다음 가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8위 수 문제(양견)는 6세기 말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수나라를 건국하여 중국을 재통일한 황제다 . 검소하고 어진 정치로 유명한 그는 폭정을 일삼은 아들 수 양제와 달리 역대 역사서에서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명군으로 칭송되며 , 통일 후 민생 안정을 이루어 당나라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9위 주자(朱子)는 남송의 대학자 주희로서, 성리학(신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이다 . 그는 유교 경전을 정리하고 이기(理氣)론 등 이론 체계를 세워 유교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주자의 성리학은 이후 원·명·청대는 물론 조선에까지 국가 이념으로 채택되어 동아시아 사회질서를 깊이 규정하였다. 10위는 덩샤오핑(등소평)으로, 마오쩌둥 사후 197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실권을 잡고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다 .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실용 노선을 택했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
이어서 11위에는 사마천이 꼽혔다. 사마천은 전한 시대의 역사가로, 기전체 통사(通史)인 『사기(史記)』를 저술하여 방대한 중국 고대사를 기록으로 남긴 역사학의 아버지다. 그의 사서는 이후 역사서 편찬의 본보기가 되었고, 중화 역사관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2위는 한 고조 유방이다. 초한쟁패에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농민 출신에서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이후 400여 년간 이어진 한 제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13위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도가 사상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전국시대의 철학자다. 그는 『장자』라는 책을 통해 온갖 풍부한 우화와 철학적 사유를 펼침으로써 무위자연의 도가 사상을 대중에게 전달했고, 특유의 해학과 상상력으로 중국인의 정신세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4위 당 태종(이세민)은 당나라 제2대 황제로, ‘정관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당 제국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이끈 명군이다. 뛰어난 군사·행정 능력과 열린 용인술을 발휘하여 당나라를 동아시아 최강대국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치세는 후세의 황제들에게 이상적인 통치의 모델이 되었다. 15위는 장중경으로, 후한 말기의 의학자이자 전설적인 의성(醫聖)이다. 그는 한나라 시대에 『상한잡병론』 등의 의서를 집필하여 한의학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고, 민간 전설에 따르면 한겨울에 동상에 걸린 빈민들을 돕기 위해 처음으로 만두를 만들어냈다고 전해질 만큼 독창적인 치료법으로 유명하다 .
16위 이사(李斯)는 진시황을 보좌한 재상으로, 전국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법가 사상가 겸 정치가다. 그는 진 왕조에서 문자와 화폐, 도량형의 통일을 주도하고 가혹한 법치 체제를 확립하여, 분열된 사회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재편했다. 17위 송 태조 조광윤은 10세기 후주의 장군이었던 인물로,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후 송나라를 건국하여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난세를 종결시킨 황제다. 송 태조는 즉위 후 공신들과 잔치를 베풀면서 술잔을 권하여 병권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무장들의 권력을 평화롭게 회수하였고, 그 결과 문민 통치의 안정을 이루어 후대에까지 명군으로 전해진다. 18위는 주공(周公) 희단이다. 주공은 서주(西周) 초기에 주나라 성왕을 보좌하며 나라를 다스린 왕족이자 섭정으로, 예악(禮樂) 제도를 정비하고 주례(周禮)의 기틀을 세운 성인 군주로 칭송된다. 공자 역시 “주공이 꿈에 나타날 정도”라고 말할 만큼 그를 이상적인 성현 정치의 모범으로 숭배하였다. 19위 굴원은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시인 겸 정치가로, 조국이 멸망하자 멱라강에 투신해 절개를 지킨 애국 시인이다. 그는 『이소』 등의 걸작을 남겨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죽음을 기려 중국에서는 매년 단오절에 굴원의 넋을 기리는 용선 경주를 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20위 동중서는 전한의 유학자로, 천인감응설 등 유교적 천명 사상을 체계화하고 한 무제에게 건의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격상시킨 학자다 . 동중서의 건의 이후 유교 경전이 국가의 주요 시험과 관리 등용의 기준이 되어, 유교는 중국 왕조 사회의 사상적 기반으로 확립되었다 .
21위 홍무제 주원장은 14세기 원나라 몽골ㅇ 지배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한 한족 초대 황제다.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에 가담하여 두각을 나타낸 그는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올라 한족이 다시 중원을 통치하는 시대를 열었다. 주원장은 재위 기간 강력한 황권을 바탕으로 부국강병 정책을 펼쳤으나, 공포 정치와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여 많은 논란을 남기기도 했다. 22위 석도안(釋道安)은 동진 시대의 고승으로, 불교 교단을 정비하고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중국 불교의 개척자다. 그는 출가한 승려들이 성씨 대신 ‘석(釋)’ 씨를 쓰는 관례를 처음 도입하고, 승가의 계율과 규범을 제정하여 중국 불교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 23위 염민(冉閔)은 4세기 서진 멸망 후 혼란기에 등장한 군웅으로, 한때 소국 연(燕)의 황제로도 자처했던 논쟁적 인물이다. 염민은 오호십육국 시대에 한족이 북방 유목 민족들에게 압박받자 이에 맞서 수십만의 이민족을 학살하는 극단적 폭력을 휘둘렀고, 그 결과 한족을 구한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견해와 지나치게 잔혹한 폭군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염민을 순위에 넣은 것에 대해 과대평가됐다
는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 24위 장건은 서한의 탐험가 겸 외교 사절로서, 비단길 개척의 선구자이다 . 기원전 2세기 한 무제의 명으로 대월지국 등을 찾기 위해 서역 원정을 다녀온 그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로의 물꼬를 텄고 훗날 “비단길의 아버지”로 불렸다. 끝으로 25위는 상앙(商鞅)이다. 상앙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정치사상가로, 법가 이론에 입각한 대대적인 변법 개혁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귀족의 세력을 억누르고 군공(軍功)에 따른 작위 수여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혁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훗날 진시황의 전국 통일에도 사상적·제도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상이 중국 네티즌들이 선정한 25인의 면면이며, 이들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중화 역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로서 현재의 중국인들에게 존경과 자부심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순위 발표는 중국 사회에서 상당한 화제를 모았고, 몇 가지 논쟁과 다양한 의견도 뒤따랐다. 우선, 공자와 노자 같은 고대 사상가들이 현대 정치가들보다 상위에 오른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중국인들이 전통적인 문화적 가치를 여전히 깊이 존중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한 온라인 논평에서는 “중국인들은 정치적으로는 법가와 강한 공권력을 선호하지만, 문화적·실생활적으로는 유교·도가 등 전통 가치관을 따른다”며 공자와 노자가 마오쩌둥보다 위에 있는 결과를 흥미롭게 해석하기도 했다 . 동시에 진시황, 한 무제, 수 문제처럼 역사상 국가 통일과 중앙집권을 이룬 황제들이 대거 상위권에 포진한 현상도 두드러진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천하를 통일한 군주들을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한 해설자는 “중국인들은 통일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로 이번 순위에 그런 성향이 반영되었다고 평했다 . 이러한 분석대로라면, 통일 국가의 창건과 유지에 기여한 인물들(예컨대 진시황·유방·주원장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중국인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몇몇 인물의 선정과 순위를 두고는 논란과 이견도 존재했다. 가령 6위에 오른 마오쩌둥의 경우, 현대 중국을 건국한 공로는 인정되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그의 통치기에 발생한 대규모 인명 피해와 사회 혼란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마오쩌둥이 고대 성현들 다음가는 상위권에 포함된 것은, 중국 사회에서 그의 역사적 위상과 공헌을 크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23위 염민을 둘러싼 논쟁도 그 한 예이다. 염민은 그 잔혹성 때문에 “영웅이라기보다 악행을 저지른 인물인데 순위에 올랐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일부 불러일으켰다 . 실제로 염민은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한족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과, 반대로 민간인 학살자의 폭정을 부각하는 비판적 견해가 공존한다. 이처럼 인물에 따라 위대함의 기준에 대한 토론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중국 내 여론은 이 순위를 자국 역사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만 선정된 25인 중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의 위인이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가 다소 전통적이고 한족 중심으로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공자에서 덩샤오핑에 이르는 이 역사적 위인들의 업적을 다시금 조명하며, 중국 역사의 연속성과 위대함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 있다.
중국인의 이러한 위인 순위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각 나라의 역사 의식과 가치관 차이를 드러내준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을 묻는 조사에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2024년 한국갤럽의 설문에서도 이순신이 1위(14%)를 기록했고 세종대왕이 2위(10%)로 그 뒤를 이었다 . 이어 근대화와 산업화에 기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위에 오른 바 있는데 , 이는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국난 극복의 영웅과 민족문화를 꽃피운 문화 창조의 위인을 한국인들이 특히 위대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도 국민들이 좋아하는 역사 인물을 조사하면, 전국시대를 통일 직전까지 제패한 오다 노부나가나 메이지 유신의 단초를 마련한 사카모토 료마 등이 늘 상위권에 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노부나가는 파격적인 혁신과 카리스마로 혼란기 일본을 평정한 무장으로 인기가 높고, 료마는 막부 말기 존왕양이 운동을 주도하며 근대 일본 탄생에 간여한 열혈 혁명가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모두 항쟁과 개혁을 통해 민족의 존립과 발전에 기여한 위인들을 역대 위인 순위에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서양 국가들과의 비교도 흥미롭다. 영국에서는 2002년 BBC가 실시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 투표에서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끈 수상 윈스턴 처칠이 국민들이 뽑은 1위에 올랐다 . 그 밖에 브루넬(산업혁명 공학자), 다윈(과학자), 셰익스피어(문호), 아이작 뉴턴(물리학자) 등 영국 역사에 큰 영향을 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상위권에 포함되었다. 미국에서는 2005년 Discovery Channel과 AOL이 공동 주최한 국민 투표에서 보수 성향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가장 위대한 미국인 1위로 선정되는 결과가 나왔다  . 레이건은 노예제를 폐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2위)을 근소한 차로 제쳤고, 3위는 암살당한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 주니어, 4위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 차지했다  . 흥미로운 점은 이 미국 조사에서 위대한 인물 Top10 중 일부가 대중문화 분야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록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8위)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9위)도 10위권에 들어, 연예인이 미국의 ‘위대한 인물’ 상위에 오른 점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 한편, 서구의 학술적 관점에서 뽑은 세계사적 위인 순위와 중국 네티즌들의 자국 위인 순위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하트가 펴낸 저서 『영향력 있는 역사인물 100인』에서는 공자가 세계 5위, 종이를 발명한 채륜이 7위에 오르는 등 일부 중국 인물이 상위권에 들었으나 , 이 외의 중국 위인들은 상대적으로 뒤쪽에 위치했다. 이는 세계사적 영향력 순위가 과학 혁명이나 세계 종교의 창시자 등 보편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중국인들의 위인 순위는 중국 역사 내부에서의 공헌과 업적을 중시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처럼 서로 다른 위인상의 비교를 통해, 각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대함’이란 그 사회의 역사 경험과 가치관을 반영한 상대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각국의 위인 순위에는 그 국민이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떤 인물을 본받고자 하는지가 담겨 있으며, 웨이보를 통해 공개된 중국의 위대한 인물 25인 역시 중국인이 바라보는 자국 역사와 영웅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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