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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이슬람 경전 코란 꾸란과 이슬람 전승에 나타난 예수 '이사 이븐 마르얌'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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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존귀한 사도


이슬람 경전 꾸란에서 예수, 즉 '이사 이븐 마르얌'(마리아의 아들 예수)은 결코 주변적 인물이 아니다. 그는 꾸란에서 가장 존경받고 빈번하게 언급되는 예언자 중 한 명이며, 특히 '울룰 아즘'(굳건한 결의를 지닌 예언자들)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사도로 묘사된다. 그의 이야기는 이슬람 신학의 핵심을 이루며, 이전의 계시들을 확증하는 동시에 유대교 및 기독교와 이슬람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알라(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믿고 존경하는 것이 필수적인 신앙의 요건으로 간주된다.
본 보고서는 이슬람의 관점에서 예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그의 기적적인 탄생의 배경이 되는 어머니 마르얌(마리아)의 특별한 지위를 조명하고, 이어서 꾸란에 묘사된 그의 정체성, 칭호, 그리고 사명을 상세히 탐구할 것이다. 또한 기독교 신학과의 핵심적인 분기점인 신성(神性)과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슬람의 독자적인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마지막으로 꾸란의 암시와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전승에 기반한 이슬람 종말론에서 그가 수행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분석함으로써 '이사 이븐 마르얌'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제1부: 축복받은 혈통: 이사의 어머니 마르얌


예수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는 그의 어머니 마르얌에게서 시작된다. 꾸란은 마르얌의 생애와 신앙에 상당한 비중을 두며 그녀에게 독보적인 존경을 표한다.

선택받은 여인: 마르얌의 독특한 지위


마르얌의 특별함은 꾸란의 구조 자체에서부터 드러난다. 꾸란의 제19장은 그녀의 이름을 딴 '마르얌 장'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욱이 마르얌은 꾸란 전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누구의 아내' 등)를 통해 지칭되는 고대 문헌의 관습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파격적인 대우이다. 꾸란은 그녀의 혈통이 고귀한 '임란의 가문'(알 임란)에 속한다고 밝히며, 제3장의 제목으로 이 가문의 이름을 사용한다. 알라는 천사를 통해 마르얌에게 "너를 선택하여 정결케 했으며, 세상의 모든 여성들 위에 너를 선택했다" (꾸란 3:42)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꾸란이 수태고지 이전에 마르얌의 이름, 혈통,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심을 강조하는 것은 그녀의 중요성이 단지 예수의 어머니라는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알라가 직접 그녀를 선택하고 정결케 했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텍스트는 그녀를 그 자체로 완벽한 신앙의 귀감이자 '사이다'(여주인)로 제시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남녀 모든 신자에게 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타왁쿨)와 순결, 헌신의 보편적 모델을 제공하며, 그녀의 의미를 단순히 출산의 도구로 한정할 수 있는 가부장적 해석에 도전한다.

경건과 헌신의 삶


꾸란 3장 '알 임란'은 마르얌의 어머니가 뱃속의 아이를 온전히 알라의 봉사에 바치겠다고 서약하는 장면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태어난 후 마르얌은 예언자 자카리야의 보살핌 아래 성전에서 자라게 된다. 그녀의 깊은 신앙심과 관련하여 꾸란은 한 가지 기적을 묘사한다. 자카리야가 그녀의 기도처에 들어갈 때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음식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묻자 마르얌은 "그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입니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자에게 아낌없이 베푸십니다" (꾸란 3:37)라고 답했다.
마르얌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이 제공된 이 사건은 앞으로 태어날 아들의 기적적인 삶을 예고하는 서곡과 같다. 특히 "그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는 그녀의 대답은 이슬람 신학의 핵심 원리를 명확히 제시한다. 즉, 앞으로 예수가 행할 모든 기적은 그 자신의 신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직 알라의 권능이 헌신적인 종을 통해 발현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신학적 틀을 미리 설정하는 것이다. 마르얌의 이야기는 예수에 관한 이슬람의 핵심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

수태고지 (알 비샤라)


수태고지는 '알 임란' 장(3:45-47)과 '마르얌' 장(19:16-22) 두 곳에서 상세히 묘사된다. 이슬람 전승에서 가브리엘(지브릴) 천사로 확인되는 존재가 그녀에게 나타나 "알라로부터 온 '말씀'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의 이름은 메시아,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될 것이라고 알린다. 마르얌은 "어떤 남자도 저를 만진 적이 없는데 어찌 아들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며 순수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천사의 대답은 이슬람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렇게 되리라. 알라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창조하시니라. 그분께서 어떤 일을 명하시면, 단지 '있어라!' ( 쿤, 파야쿤 ) 라고 말씀하실 뿐이니, 그러면 그것이 있느니라".
이 대화는 단순히 기적적인 탄생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신의 권능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선언이다. "어떻게?"라는 마르얌의 논리적 질문은 인간의 인과율을 초월하는 답변으로 귀결된다. 쿤, 파야쿤 이라는 구절은 알라의 절대적 전능함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 문구이다. 이 구절은 예수의 존재가 신의 본질이 관여된 '출산'이나 '낳음'이 아니라, 특별한 '창조' 행위의 결과임을 즉각적으로 규정하며, 이는 훗날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신학적 근거가 된다.

제2부: 말씀과 영: 꾸란에 나타난 이사의 정체성


이 장에서는 예수의 탄생, 기적, 그리고 그에게 부여된 특별한 칭호들의 신학적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꾸란이 규정하는 그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해부한다.

기적적인 잉태와 탄생


꾸란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명백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이 기적을 설명하는 방식은 기독교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꾸란은 즉시 이 기적을 아담의 창조와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실로 알라 앞에서 예수의 예는 아담의 경우와 같다. 그분께서는 그를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있어라!' 하시니 그가 있게 되었느니라" (꾸란 3:59). '마르얌' 장의 서사는 마르얌이 외딴곳으로 물러나 종려나무 아래에서 산고를 겪는 모습과, 신성한 음성이 그녀를 위로하며 물과 대추야자를 제공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담과 예수를 비교하는 것은 강력하고 정교한 신학적 논증이다. 이 비유는 예수 탄생의 비범함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서 신성의 함의를 제거하는 이중적 효과를 가진다. 이 논리의 기저에는 만약 아버지 없는 탄생이 예수를 신으로 만든다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던 아담은 그 논리에 따라 더욱 신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꾸란은 이 유비를 통해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기독교적 주장을 무력화하고, 두 존재 모두 알라의 의지에 따른 기적적인 '피조물'임을 재확인한다.

표적(아야트)의 예언자


꾸란은 예수에게 수많은 기적을 부여하지만, 항상 "알라의 허락으로"(비 이드닐라)라는 신학적 단서를 명시적으로 덧붙인다. 그가 행한 기적들은 다음과 같다.
* 요람에서 말하며 어머니의 순결을 변호함 (꾸란 19:29-33).
* 진흙으로 새의 형상을 만들어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새로 만듦 (꾸란 3:49, 5:110).
* 선천적 맹인과 나병 환자를 치유함 (꾸란 3:49, 5:110).
* 죽은 자를 살림 (꾸란 3:49, 5:110).
* 사람들이 집에서 무엇을 먹고 저장하는지 앎 (꾸란 3:49).
성경에서 예수의 기적이 종종 그의 내재적 신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제시되는 반면, 꾸란에서 "알라의 허락으로"라는 구절의 끊임없는 반복은 결정적인 신학적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이는 기적의 힘을 행위자(예수)로부터 분리하여 궁극적인 원천(알라)에 귀속시킨다. 따라서 기적은 예수가 신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가 알라로부터 온 '진정한 사도'임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적들은 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향해 손짓하는 '표적'(아야트)인 것이다.

꾸란의 칭호에 대한 해설


꾸란은 예수에게 여러 특별한 칭호를 부여한다. 아래 표는 이 칭호들의 이슬람적 해석과 기독교 신학과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 꾸란의 칭호 | 아랍어 음차 | 주요 꾸란 구절 | 이슬람 신학적 해석 | 기독교 신학과의 차이점 |
|---|---|---|---|---|
| 메시아 | 알-마시흐 | 알 임란 3:45, 안-니사 4:171 | 이스라엘 자손에게 특별한 사명을 띠고 온 존귀한 예언자.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명예로운 칭호이며, 신성이나 왕권을 의미하지 않음. | 신성, 죄를 위한 희생적 구원자, 혹은 정치적/왕적 의미의 유대 메시아 예언 성취를 함의하지 않음. |
| 알라의 말씀 | 칼리마툴라 | 알 임란 3:45, 안-니사 4:171 | 알라의 창조적 명령("있어라!")을 통해 창조된 존재를 의미. 그 말씀이 마르얌에게 전달되어 탄생함. 그는 '말씀의 결과물'임. | 요한복음 1장의 '하나님이었던' 선재적이고 신적인 로고스와 다름. 본질이 아닌 창조의 방식을 나타내는 칭호임. |
| 그분으로부터 온 영 | 루훈 민-후 | 안-니사 4:171, 앗-타흐림 66:12 | 알라로부터 창조된 영혼으로, 천사를 통해 마르얌에게 불어넣어짐. 아담의 창조(꾸란 38:72)와 유사한 명예로운 표현. | 삼위일체의 제3위격인 성령이 아님. '그분으로부터'는 신의 본질의 일부가 아닌, 기원과 명예를 나타내는 창조된 실체임. |
| 알라의 종 | 압둘라 | 마르얌 19:30 | 요람에서 행한 첫 번째 선언. 그의 인간성과 알라에 대한 완벽한 복종을 강조하며, 이는 이슬람에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임. | '신의 아들' 개념과 정면으로 대치됨. 가족이나 본질적 관계가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를 강조함. |
| 알라의 사도 | 라술룰라 | 알 임란 3:49, 안-니사 4:171 | 그의 주된 기능. 특정 민족(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라의 메시지(인질)를 전달하는 역할. 모세,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 계보에 위치시킴. | 기독교도 그를 사도로 보지만, 이슬람은 그의 역할을 '오직' 사도로 한정하며 알라와의 동등한 지위를 부정함. |
꾸란은 예수를 위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있는 '메시아', '말씀', '영'과 같은 칭호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슬람의 엄격한 유일신 사상(타우히드)의 틀 안에서 체계적으로 재정의한다. 이는 매우 정교한 신학적 작업이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존칭을 인정하되, 그 본래의 순수한 의미가 변질되었으며 이슬람이 그 올바른, 비신격화된 해석을 복원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꾸란의 예수 묘사는 그의 예언자적 지위를 확증하는 동시에, 기존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된다.

제3부: 메시지의 핵심과 거대한 분기점


이 장에서는 예수의 사명과, 꾸란의 설명에서 비롯되는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근본적인 신학적 불일치를 분석한다.

예언자적 사명


꾸란에 따르면 예수의 사명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바니 이스라일)에게 국한되었다. 그는 자신 이전에 온 토라(타우라트)의 진실성을 확증하고 새로운 계시인 복음(인질)을 가져오기 위해 파견되었다. 또한 그는 이전에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것들 중 일부를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역할도 했다 (꾸란 3:50). 그의 핵심 메시지는 모든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동일했다. "나의 주님이시자 너희의 주님이신 알라를 경배하라" (꾸란 5:72, 5:117). 더불어 그는 자신 이후에 올 마지막 사도의 도래를 예언한 선구자로 여겨지며, 무슬림들은 그 사도를 무함마드로 이해한다.

타우히드(신성한 유일성)의 원칙


알라의 절대적이고 불가분한 유일성(타우히드)은 이슬람의 반석과도 같은 교리이다. 꾸란은 알라가 "낳지도 않으셨고, 태어나지도 않으셨다" (꾸란 112:3)고 단언한다. 알라에게 동반자를 두는 행위(쉬르크)는 이슬람에서 유일하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된다.
꾸란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정체성의 모든 측면은 바로 이 타우히드라는 렌즈를 통해 해석되어야 한다. 그의 기적은 타우히드를 옹호하기 위해 '알라의 허락으로' 일어난다. '알라의 말씀'이라는 그의 칭호는 타우히드를 지키기 위해 창조 행위로 재정의된다. 그의 지위는 타우히드를 수호하기 위해 '종'(압둘라)으로 규정된다. 그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타우히드에 대한 궁극적인 방어이다. 이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슬람의 예수관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이는 임의적인 믿음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핵심 공리에서 파생된 일관된 체계이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비판


꾸란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거부한다.
* 신의 아들 개념: "그들은 '가장 자비로우신 분께서 아들을 두셨다'고 말한다. 실로 너희는 끔찍한 것을 주장하는도다... 가장 자비로우신 분께서 아들을 두는 것은 합당치 않노라" (꾸란 19:88-92).
* 삼위일체: "오, 성서의 사람들이여! 너희의 종교에서 극단으로 치닫지 말라... 메시아,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단지 알라의 사도일 뿐... '셋'이라 말하지 말라. 멈추는 것이 너희에게 더 좋으니라. 실로 알라는 단 한 분의 신이시니라" (꾸란 4:171). 꾸란은 삼위일체를 알라, 마르얌, 예수의 세 존재로 이해하는 듯한 구절(꾸란 5:116)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이전 기독교의 성격에 대한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 된다.
* 예수의 신성: "'알라가 바로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분명 불신하였느니라" (꾸란 5:17, 5:72).

십자가 사건의 재해석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극적인 분기점은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해이다. 꾸란 4장 '안-니사' 157-158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실로 알라의 사도,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를 살해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느니라. 단지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뿐... 그들은 그를 확실히 살해하지 않았노라. 오히려 알라께서 그를 자신에게로 들어 올리셨느니라".
꾸란이 십자가형을 부정하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교정이 아니다. 여기에는 깊은 신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이는 알라의 권능에 대한 확언이다. 알라가 자신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이 적들의 손에 붙잡혀 모욕당하고 살해당하도록 방치한다는 생각은 신성한 힘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알라는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슬람이 원죄와 대속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일치한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영혼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며, 대속을 필요로 하는 유전적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십자가형과 희생에 대한 신학적 '필요성' 자체가 부재한다. 십자가 사건을 부정함으로써 기독교 구원론의 근간이 제거되는 것이다.

신성한 구조: 승천 (라프)


꾸란의 구절은 "알라께서 그를(라파아후) 자신에게로 들어 올리셨다" (꾸란 4:158)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슬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에 따르면, 이는 예수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하늘로 올라간 물리적 승천을 의미하며, 그는 지금도 하늘에 살아있으며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제4부: 메시아의 귀환: 이슬람 종말론 속의 이사


이 장에서는 역사적 서술을 넘어, 꾸란보다는 하디스에서 더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예수의 미래적, 예언적 역할을 탐구한다.

심판의 날의 징조


꾸란은 "실로 그(이사)는 마지막 시간(심판의 날)에 대한 징표가 될 것이라" (꾸란 43:61)고 언급하며 예수의 종말론적 역할을 암시한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상세한 이야기는 수많은 권위 있는(사히흐) 하디스, 특히 알-부카리와 무슬림의 하디스 모음집에서 비롯된다. 그의 귀환(누줄 이사)은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징조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닷잘과의 대결


하디스 문헌은 '알-마시흐 앗-닷잘'(거짓 메시아 또는 적그리스도)이라 불리는 강력하고 기만적인 존재의 출현을 상세히 예언한다. 닷잘은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신성을 주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할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 닷잘에 맞서 그를 물리치기 위해 재림한다. 그는 새벽 기도 시간에 맞추어 다마스쿠스 동쪽의 하얀 미나렛(첨탑)에 강림할 것이라고 예언된다. 예수를 본 닷잘은 "소금이 물에 녹듯이 녹아내릴 것"이며, 예수는 현재 이스라엘에 위치한 '루드'의 문에서 그를 처단할 것이다.

정의의 통치


닷잘을 물리친 후,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추종자로서 꾸란의 법으로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사히흐 알-부카리'에 기록된 유명한 하디스는 그가 '정의로운 통치자'(하캄 아딜)로 강림하여 "십자가를 부수고, 돼지를 죽이며, 지즈야를 폐지할 것"이라고 전한다.
예수의 종말론적 행동들은 각각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십자가를 부수는 것'은 이슬람이 그의 메시지에 대한 변질(즉, 기독교와 예수 숭배)로 간주하는 것을 종식시킴을 의미한다. '돼지를 죽이는 것'은 신성한 법에 어긋나는 모든 관행의 폐지를 상징한다. '지즈야'(비무슬림에게 부과되던 인두세)를 폐지하는 것은 모든 인류가 이슬람이라는 단일한 신앙 아래 통합되어 더 이상 그 세금을 낼 비무슬림이 존재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그의 통치는 절대적인 평화, 정의, 그리고 부유함이 넘쳐 아무도 가난으로 고통받지 않는 시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 생애와 자연스러운 죽음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수는 일정 기간(종종 40년으로 명시됨) 동안 통치한 후, 다른 모든 인간처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는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묘 옆에 묻힐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상에서의 그의 죽음과 매장은 마지막 심판 이전에 그의 신성에 대한 어떠한 남은 관념도 불식시키고, 그의 필멸성과 인간성을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결론: 예수, 이사 이븐 마르얌의 영원한 유산


결론적으로 이슬람에서 예수의 역할은 다층적이고 심오하다. 그는 알라의 권능을 증명하는 창조의 기적이자, 신성한 인도를 가져온 존경받는 예언자이며, 순수한 유일신 사상의 확고한 옹호자이다. 또한 경건과 헌신의 상징이며, 인류 역사의 마지막 장을 열 메시아적 인물이다.
이슬람의 예수관을 형성하는 신학적 틀은 매우 독자적이고 강력하다. 유대교 및 기독교와 공통된 유산과 많은 서사적 요소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이사' 묘사는 궁극적으로 이슬람 고유의 핵심 신학 원리를 반영하는 강력한 표현이다. 그는 무슬림들에게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지만, 그 존경의 근원은 그가 유일한 신에게 보인 완벽한 복종에 있다. 이로써 그는 '무슬림'—신에게 복종하는 자—이 된다는 것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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