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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정치

조은석 특별검사 프로필 학력 나이 고향 주요 이력 윤석열 내란 특검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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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사항 (Profile)
• 이름: 조은석 (曺銀錫) –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죄 특별검사
• 출생: 1965년 5월 21일 (만 60세) –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 
• 학력: 광주 광덕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 사법시험: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9기 수료) 
• 병역: 육군 법무관 복무 (1990~1993년, 중위 전역)  – 군 복무 후 1993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검사로 임관함.

주요 경력 (검사 및 공직 생활)
• 조은석 특검은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자 ’기획통’으로 꼽힙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대검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등 검찰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며 뛰어난 수사력과 기획력을 인정받았습니다  . 특히 좌우를 가리지 않는 날카로운 수사를 펼치는 인물로 평가받았고, 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를 다수 이끌었습니다  .
• 초기 검사 시절: 1990년대부터 수원지검 성남지청을 시작으로 서울지검 등지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서울지검 특수1부 재직 시절에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비리 사건 등 굵직한 특수 수사를 담당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 2003년에는 나라종금 로비 의혹 수사팀에 참여해 김홍일 전 의원, 안희정 전 지사 등 정관계 유력인사를 기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 이러한 경력으로 검찰 내에서 “머리가 좋고 수사를 잘하며 자백을 잘 받아내는 검사”로 알려졌습니다.
• 2014년 세월호 수사: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있으면서 세월호 참사 관련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당시 해경 지휘부의 구조 실패를 수사하며 해경 123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이는 사고 책임을 국가에 묻기 꺼리던 청와대 및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입장과 충돌한 것이었습니다 . 조은석 형사부장은 끝내 해당 혐의로 해경 책임자를 불구속기소했으나, 그 후 인사에서 수사 부서에서 배제되어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한직으로 좌천되는 불이익을 겪었습니다 . (훗날 해경 123정장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이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
• 2017년 화려한 복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조은석 전 검사는 2017년 7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발탁되며 검찰 요직에 복귀했습니다 . 한때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도 거론될 만큼 화려한 재기였으며, 검찰 내에서는 이것이 세월호 수사 당시 정권에 소신을 보였던 그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복권”으로 해석됐습니다. 이후 2018년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2019년에 변호사로 개업하며 일선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 (퇴임 직전에는 자신의 수사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수사 감각』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
• 2021년 감사원 감사위원:  문재인 정부에 의해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되어 2021년 1월부터 4년간 재직했습니다 . 감사위원 재직 시절 조은석 위원은 윤석열 정부 초기 벌어진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에서 유일하게 “표적 감사” 의혹을 제기하며 140쪽 분량의 내부 비판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소신 행보를 보였습니다 . 특히 감사원 감사위원회 결정을 주심위원으로 이끌며 “위법 부당함이 없다”는 이유로 전현희 건을 불문(責任無) 처리하도록 주도했고, 이에 반발한 감사원 사무처가 절차를 무시한 채 조은석 위원을 건너뛰고 감사 결과를 확정해버리는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또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진행된 대통령 관저 비리 의혹 감사 결과에 대해도 조은석 위원이 “감사가 부실하다”며 이례적으로 재심의를 요구하는 등 현 정부와 각을 세웠습니다 . 이러한 행보로 여권으로부터는 “편향적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되었습니다 . 참고로 2024년 12월 감사원장(최재해) 탄핵 이후 한동안 감사원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으며, 2025년 1월 감사위원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
• 2025년 윤석열 내란 사건 특별검사: 정권 교체 후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회 추천을 거쳐 2025년 6월 12일 조은석 전 감사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12·3 비상계엄 및 내란·외환 행위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째 특별검사 임명 사례이며, 조은석 특검이 지휘하는 이른바 “내란 특검”은 수사 기간 최장 170일, 특검보 6명 및 파견검사 60명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졌습니다 . 조 특검은 임명 직후 특검보와 수사팀을 신속히 구성하고, 불과 임명 엿새 만인 6월 18일에 윤석열 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을 전격 기소하는 등 속도감 있게 수사를 진두지휘했습니다 . 2025년 하반기 내란 사건 본안 재판 과정에서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형을 구형하며 30년 만의 내란죄 사법 처리를 이끌었고  , 현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조은석 특검은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며 엄정한 단죄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 검찰 선후배 사이: 조은석 특검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 내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각각 19기와 23기로, 조 특검이 윤 전 대통령보다 4년 선배입니다 . (두 사람 모두 1960년대생이지만, 윤 전 대통령(1960년생)이 연수원 기수로는 후배가 되는 독특한 인연입니다.) 검찰 재직 당시에도 한 조직에서 근무한 선후배였으며, 2017년에는 조은석 서울고검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동시에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라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 결국 2019년 윤석열 후배가 검찰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선배인 조은석은 검찰을 떠나게 되었고, 두 사람의 길이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
• 닮은 성향과 좌천의 기억: 두 사람 모두 권력의 외압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로 이름이 높습니다. 조은석 특검이 2014년 세월호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을 거슬러 소신을 관철하다 한직으로 밀려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에서 상부 압력을 폭로한 뒤 좌천되었던 경험과 겹쳐 보입니다  . 이처럼 원칙을 중시하는 검사 기질은 둘의 공통점이지만, 한편으로 수사 스타일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조은석이 법리와 논리로 치밀하게 조여오는 스타일이었다면, 윤석열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파하는 저돌적 스타일로 알려졌습니다 . 과거 같은 특수부 동료로서 함께 굵직한 사건들을 다뤘던 두 사람은 종종 수사 방향이나 방법론을 두고 견해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 뒤바뀐 역할의 악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선배였던 조은석이 전직 대통령이 된 후배 윤석열을 수사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칼과 방패를 맞댄 처지가 되었습니다. 7년여 만에 특검과 피의자로 다시 마주한 이들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 검찰 조직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나란히 특수통으로 명성을 쌓았던 선후배가, 이제는 내란 사건의 특별검사 대 피고인이라는 극적인 대결 구도로 재회한 셈입니다 . 조은석 특검이 대규모 수사팀을 앞세워 강경한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윤 전 대통령 측도 특검 조사에 불응하고 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등 맞서고 있어 양측의 “강대강” 대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이러한 악연에 대해 한 법조인은 “조 특검은 야망이 큰 사람이고, 윤 전 대통령 역시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는 강단 있는 검사였다”면서 “검사 시절부터 질긴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이기에 이번 특검 수사는 그야말로 물러설 곳 없는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

Sources: 조은석 특검 관련 뉴시스 프로필  ; 한국경제  ; 경향신문 ; MBC 뉴스데스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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