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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고대 일본 귀족 계보서 《신찬성씨록》 연구 보고 성씨 외국계 도래계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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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찬 배경 및 역사적 맥락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은 헤이안 시대 초기(간무 천황사가 천황기)에 편찬된 귀족 계보서로, 815년(고닌 6년)에 완성되었다 . 간무 천황(재위 781806)의 지시로 799년 각 씨족에게 자신의 계보 제출을 명하여 작업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사가 천황 시대인 815년에 정식 완료되었다 . 이는 중앙 귀족들의 가계와 신분 질서를 재확인함으로써 천황 중심의 지배 체제를 확립하려는 목적에서 추진된 사업이었다. 실제로 《신찬성씨록》은 각 씨족의 조상 업적과 천황가에 대한 봉사 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어 정치적 성격이 강하며, 당시 천황이 수도권 거주 씨족들의 기록을 수집한 것은 천황제 국가의 존속과 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였다 . 편찬 실무에는 간무 천황의 측근인 후지와라노 오쓰구(藤原緖嗣), 후지와라노 소노히토(藤原園人) 등이 참여하여, 결과적으로 이 기록에는 간무 조(桓武朝)의 통치 이념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 특히 간무 천황은 자신이 속한 텐지(天智)계 황통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이전 덴무(天武)계 중심의 질서를 탈피하려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편찬된 《신찬성씨록》은, 8세기 말~9세기 초 이미 귀족 반열에 올라있던 이주계 씨족들까지 모두 망라하여, 천황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족적(族的)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

2. 전체 체제와 구성


《신찬성씨록》은 헤이안쿄(당시 수도) 및 그 근교 5개국(기나이 지방)에 거주하던 1182개 씨족을 그 출자(出自), 즉 혈통 기원에 따라 세 가지 계통으로 구분하여 수록하고 있다 . 편찬의 주된 기준은 해당 씨족이 천황의 후손인지, 신화 속 신의 후손인지, 또는 외래 출신인지 여부였다. 이에 따라 책에는 황별(皇別)・신별(神別)・제번(諸蕃) 세 부류가 차례로 편성되어 있으며, 각 씨족의 시조(始祖)와 성씨(姓氏) 명칭의 유래, 분파 관계 등이 기술되었다 . 특히 이 분류는 씨족들이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카바네(姓)의 정통성을 판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국가가 공인한 족보 체계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
• 황별(皇別, 일명 천손계 天孫系) – 초두에 열거되는 황별 계통은 초대 진무 천황 이후로 천황가에서 갈라져 나온 자손 씨족들을 말한다 . 총 335개 씨족으로, 천황의 직계 혈통(예: 황자나 황손)이 분적하여 형성된 가문들이다. 대표적으로 기요하라(清原), 다치바나(橘), 미나모토(源) 등 황실의 분가로 생겨난 유명 씨족들이 황별에 속한다 . 황별 씨족들은 다시 황친(皇親) 계열과 그 외의 성씨 보유 계열로 세분되는데, 황친은 천황의 가까운 혈족으로서 “마히토(真人)”와 같은 최고 칭호의 성(姓)을 하사받은 경우를 가리킨다 .
• 신별(神別, 신계 神系) – 신별 계통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자손인 씨족들로서, 진무 천황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하는 가문들이다 . 총 404개 씨족이 여기에 해당하며, 일본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신(神臣) 가계를 포함한다. 신별은 그 출원에 따라 다시 세 갈래로 나뉘는데, 첫째 천신(天神)은 손오대로 알려진 니니기노 미코토(瓊瓊杵尊)가 천손강림할 때 함께 내려온 하늘 신들의 후손으로 246개 씨족이 이에 속한다 (예: 후지와라(藤原), 오나카토미(大中臣) 등)  . 둘째 천손(天孫)은 니니기노 미코토 이후 3대 이내에 갈라져 나온 천계 혈통의 후예로 128개 씨족이 해당하며, 오와리(尾張), 이즈모(出雲) 등의 가문(및 하야토계 가문 일부)이 여기에 포함된다  . 셋째 지기(地祇)는 천손강림 이전부터 일본 땅에 있던 토착신(토지신)들의 자손으로, 30개 씨족 (예: 아즈미(安曇), 유게(弓削) 등)으로 비교적 소수이다  . 요컨대 신별 계통은 천황 직계는 아니지만 신화적 신격(神格)을 시조로 모시는 씨족들로, 왕권 신화와 연결된 가계임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 제번(諸蕃, 일명 도래계 또는 인별계 人別系) – 제번 계통은 해외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인 씨족들로, 총 326개 씨족이 이 범주에 속한다 . 편찬 당시 표현으로 ‘제번(諸蕃)’은 여러 외래 부족을 뜻하며,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외국 출신 계통을 모두 포괄하였다. 제번 씨족의 사례로는 고대 한반도계 이주 집단인 하타씨(秦氏), 백제계인 오쿠라씨(大藏氏) 등이 거론된다 . 《신찬성씨록》은 이 제번 그룹을 다시 다섯 갈래로 구분하여, 각 씨족이 자칭하는 출신국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백제」 출신 104씨, 「고려」(고구려) 출신 41씨, 「신라」 출신 9씨, 「가야」 출신 9씨, 그리고 「한(漢)」 출신 163씨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한(漢)”은 실제 중국 한족 계통을 의미하기보다는 백제·고구려·신라·가야 네 범주에 들지 않는 한반도 토착계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한나라(漢)에서 왔다’고 표방한 경우를 가리킨다 . 예를 들어 동한(東漢)씨로 불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의 조상 아치노오미(阿知使主)는 원래 백제계였으나, 한(漢)나라 출신이라고 신분 세탁하여 동한 성을 하사받았고, 《신찬성씨록》에도 “한” 계통으로 분류된 사례이다 . 이처럼 제번 계통은 외래 혈통임을 인정받으면서도 일본 천황 지배질서에 편입된 신민(臣民) 집단으로 기술된 것이 특징이다  .

한편, 이상의 세 계통에 포함되지 못한 출자 미상(출신 불명)의 씨족 117개는 별도로 미정잡성’(未定雜姓)으로 분류되었다 . 이는 편찬 과정에서 조상의 계보가 확실치 않거나 판단이 보류된 가문들을 모아둔 부류로 볼 수 있다.

3. 수록 가문과 분류 방식


《신찬성씨록》에는 총 1182개 씨족의 이름과 계보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 다만 대상 지역은 제한되어 있어서, 당시 수도였던 헤이안쿄의 좌·우경(左京・右京)과 그 주변의 5개 구니(국), 즉 야마시로(山城)・야마토(大和)・셋쓰(摂津)・가와치(河内)・이즈미(和泉) 등 기나이(畿内) 지역 거주 씨족들만 포함되었다 . 서문(序文)에서도 이들 지역의 씨족조차 “절반 이상이 등재되지 못했다”고 언급되어 있어, 해당 범위 밖의 지방 호족들은 본서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즉, 《신찬성씨록》은 고대 일본 중앙 귀족층의 계보를 정리한 명부로 이해할 수 있다.

기록 형식은 현대의 족보와 유사하지만 보다 체계적인 명감(名鑑)의 성격을 띤다. 각 씨족 항목에는 그 가문의 본관(本貫), 즉 씨족의 기원지가 표시되고 조상에 관한 사적(事績)이나 유래담이 간략히 덧붙여진다 . 특히 씨족 이름이 어떻게 유래했는지, 어떤 조상을 시조로 모시는지, 그리고 그 씨족이 어떤 분파 과정을 거쳤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이러한 정보는 해당 씨족이 부여받은 씨(氏)와 성(姓) (우지와 카바네)이 정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편찬의 주목적 역시 각 씨족이 받은 관위와 성씨 칭호의 적법성을 확인하는 데 있었으며 , 이를 통해 조정은 귀족 사회를 재편하고자 했다. 《신찬성씨록》의 편목 구성은 앞서 설명한 황별 – 신별 – 제번 순의 계통별 대분류를 기본으로, 그 하위에서 다시 지역 또는 씨족 원류별 그룹으로 묶여 있다. 예컨대 각 분류 내에서 좌경・우경・기나이 각 국 등 거주지 단위로 씨족을 배열하거나, 제번의 경우 앞서 언급한 출신국별(백제, 신라 등)로 묶어 기술하는 식이다  . 다만 원본의 체재를 보여주는 서문과 목록 일부만 현존하고 본문은 전하지 않아, 세부 편찬 방식은 부분적으로 추정에 의존한다 . 그럼에도 《신찬성씨록》은 일본 고대 씨족 및 고대사 연구에서 빠져서는 안 될 1차 사료로서, 후대 여러 문헌에 인용·참고되어 왔다 .

4. 백제・신라・고구려 등 한민족계 씨족 기록 현황


《신찬성씨록》의 제번(도래계) 326개 씨족 가운데는 고대 한민족 계통 이주민의 후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원문 편찬 당시에는 이들을 출신 국가별로 분류하여, 중국(한) 및 한반도 여러 나라(백제・고려〈고구려〉・신라・가야)로 구분해 기록하였다 . 예를 들면, 제번에 속한 씨족들 중 백제 출신으로 분류된 경우가 104씨, 고려(高麗)로 표기된 고구려계가 41씨, 신라계 9씨, 가야계 9씨, 그리고 한(漢)으로 분류된 것이 163씨 있었다고 한다 . 이 수치를 그대로 합하면 326이 되는데, 편찬자는 백제·고구려·신라·가야 네 범주에 들지 않은 나머지를 일괄적으로 ‘한(漢)’이라고 표기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 당시 ‘한(漢)’은 겉보기에는 중국 한(漢)나라 또는 당(唐)나라 출신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출신을 숨기고 스스로 중국계라고 주장한 한반도계 씨족이 많았다 . 다시 말해, 상당수 한반도계 이주민 가문들이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조상의 출신국을 백제나 신라 대신 중국 한(漢/唐)으로 속여 기재한 사례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

현대 연구 성과에 따르면, 《신찬성씨록》에 등재된 한반도계 씨족의 실제 수는 당시 표기된 것보다 많았다. 연민수 박사 등 연구진은 2020년 역주 작업에서 새롭게 150개의 한반도계 씨족을 추가로 식별해냈다고 보고하였다 . 이들은 다양한 사료 분석을 통해 ‘한’으로 분류된 씨족 가운데 상당수가 한민족계임을 밝혀낸 것으로, 약 90% 이상의 신뢰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 그 결과 기존에 알려진 163씨를 훨씬 웃도는 총 313개의 한반도계 씨족을 산정하였는데, 이를 왕국별로 보면 백제계 약 202씨로 가장 많고, 고구려계 52씨, 신라계 48씨, 가야계 10씨, 고조선계 1씨로 파악된다 . 이 수치를 전체 등재 씨족(1182)의 구성비로 환산하면, 고대 일본 지배층의 약 26%가 한반도계 출신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 이는 일본 고대 왕권이 출신에 구애되지 않고 외부 인재를 적극 등용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 실제로 《신찬성씨록》 속 많은 도래씨족들은 궁정의 중심부 관료나 특수 기술 집단으로 활약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일본 왕권은 이들을 통합함으로써 권력을 강화했다  .

대표적인 한민족계 씨족으로는, 백제 멸망 후 일본에 건너간 왕족 및 귀족의 후예들이 세운 가문들을 들 수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아예 성씨를 “백제”(일본 음으로 ‘구다라’ 百濟)로 표기한 씨족이 존재하며, 그 외에도 백제계로 언급된 성씨로 이시노(石野), 다카노(高野), 사쿠라이(櫻井), 야마구치(山口), 히라다(平田), 나가다(長田) 등 여러 두 글자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 이들은 백제 왕족 혹은 팔성(八姓) 귀족 출신이 일본에 이주하여 취한 성씨라고 전한다 . 한편 신라 출신 도래인들의 성씨도 다수 확인되는데, 예컨대 나가오카(長岡), 야마무라(山村), 시미즈(淸水), 다케하라(竹原), 야마다(山田), 도요하라(豊原) 등이 《신찬성씨록》에 신라계 성씨로 수록되어 있다 . 고구려계로는 일본에서 ‘고마(狛 또는 高麗)’씨라고 불린 집단이 유명한데, 고구려 왕족 계열 이주민들이 나라(奈良) 시대에 고마노코니키시(高麗若光) 등의 칭호를 받고 정착한 사례가 그 예이다. 이처럼 《신찬성씨록》은 백제・고구려・신라계 이주민들이 일본 사회에 동화되어 형성한 씨족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한일 고대 교류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1차 자료가 되고 있다 .

5. 후대 문헌과의 비교 및 영향


《신찬성씨록》은 편찬 시기상 일본 육국사(六国史) 가운데 《속일본기》 (續日本紀, 797년) 완성 직후에 해당하며, 국가 편찬 역사서인 《고사기》 (古事記, 712)・《일본서기》 (日本書紀, 720) 등의 서술을 바탕으로 후대 계보 정보를 보완한 성격을 가진다. 기기(記紀)로 불리는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일본 신화와 초창기 왕실 역사를 담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미 천손인 천황가와 유력 씨족들의 신계 연결망이 언급되어 있다 . 《신찬성씨록》은 이러한 기존 신화계보를 종합 정리하여, 다수의 씨족들이 천황가와 동족 관계를 이루도록 재편한 것이다  . 예컨대 일본서기 등에 전하는 천손강림 설화 속 신들을 시조로 하는 가문들을 신별로 묶고, 황실의 조상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로부터 갈라져 나온 황별 씨족들의 목록을 명문화함으로써, 천황가와 귀족 사회 전체가 한 혈통적 지층에 속한다는 인식을 강화하였다 . 이는 곧 천황제 국가의 지배 원리를 정당화하는 이념 도구가 되었는데, 천황가와의 계보적 연결 정도에 따라 귀족들의 위계와 관직 임용이 영향을 받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씨족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을 황실의 먼 친척이나 신화적 신의 자손으로 계보 조작(개변된 본계장)을 하여 《신찬성씨록》에 등재되려 했다고 전해진다 .

이 계보서는 율령국가의 공식 역사서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속일본기》와 그 후속 편년사들(《일본후기(日本後紀)》 등)은 8~9세기 왕실 및 귀족사회를 다루면서, 종종 씨족들의 출자나 이주 기록을 남겼다. 《신찬성씨록》 편찬 과정에서 간무 천황이 799년에 씨족들로부터 본계장(本系帳, 족보 원고)을 제출받은 사실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 815년 완성본의 편찬 책임을 만타 신왕(萬多親王) 등이 졌다는 내용이 《일본후기》 등에 언급되어 있다. 또한 《신찬성씨록》 서문에는 일본서기 편찬 이후 나라 시대(8세기 초)에 실시된 중요한 신분 제도 개혁인 덴무 천황의 팔색성(八色姓) 제도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는데 , 이는 간무 천황 정권이 덴무계 통치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황통 중심의 질서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 한편, 《신찬성씨록》이 제시한 제번(도래) 개념은 이전 역사서들의 외국 인식과도 비교된다. 《일본서기》 등 8세기 사서에서는 한반도 각국이나 당나라 등을 번국(藩國), 즉 주변 속국처럼 보는 번국관이 드러나는데, 《신찬성씨록》에서는 당(唐)까지 제번에 포함시켜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였다  . 이는 곧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일본 중심 세계관 속에 주변국들을 포섭함으로써, 간무 조가 지향한 강력한 신왕조의 위상을 대내외에 천명하려 한 시도로 해석된다  . 요컨대 《신찬성씨록》은 이전 문헌의 신화·역사 내용을 바탕으로 귀족 계보를 재편성함과 동시에, 편찬 당시의 정치 이념과 국제 인식을 반영하여 편찬된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후대에도 학자들은 이 책을 고사기・일본서기 등과 대조 연구하며, 기술 내용의 차이점(예: 신의 계보 설정이나 씨족 연원)과 그 사상적 의도를 분석해왔다.

6. 현대 학계의 해석과 연구 동향


오늘날 학계에서는 《신찬성씨록》을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면서도, 그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선 계보의 신뢰성 측면에서, 이 책에 담긴 모든 계보 정보를 액면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지적된다. 실제 본문 조각들을 보면 동일 인물이 다른 한자로 중복 기재되거나, 증손을 4세손으로 잘못 쓰는 등 기술 오류도 존재하며, 일부 씨족 계보는 편찬 당시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구성된 흔적이 있다 . 예를 들면 많은 씨족이 앞서 언급했듯 황실 또는 신화적 시조와의 연관성을 과장하거나 위조하였고 , 한반도계 이주민 가문들이 출신지를 조작하여 일본 토착 귀족인 양 가장한 사례도 발견된다 . 따라서 현대 연구자들은 《신찬성씨록》을 해독할 때 각 항목의 사실성보다는 편찬 의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이 계보서가 천황가 혈통의 보편화를 통해 귀족 사회를 재편하려는 정치적 산물이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 천황의 조상신(천조대신)으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이 수많은 씨족과 동족 구조를 이루게 함으로써, 천황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족적 연대(Solidarity)를 만들어낸 것이 《신찬성씨록》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단순한 족보집이 아니라 계보 지배를 통해 천황제 국가의 질서 유지에 기여한 도구로 해석된다  .

동시에 《신찬성씨록》은 일본 고대사, 특히 한일 관계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반도계 도래인들의 존재와 역할을 구체적인 수치와 이름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한국 학계에서도 이를 통한 고대 이주민사의 복원에 관심이 크다. 2020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역주본 3권을 출간한 것도 그 일환으로, 해당 연구진은 앞서 소개한 대로 새로운 한반도계 씨족 150여 개를 추가 규명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 이처럼 최근 연구 동향은 《신찬성씨록》의 은폐된 정보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령 일본계나 중국계로 위장된 족보를 다른 사료들과 교차검증하여 실제 출신을 밝혀내거나 , 성씨의 어원과 한자 표기를 분석해 그 족속적 연원(예: 백제계인지, 고구려계인지)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대 일본의 다원적 구성과 민족통합 정책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연구자는 “《신찬성씨록》은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일본 고대사회 정착과 동화 과정을, 그리고 그 2세・3세들의 삶과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사료”라 평가하며, 현대의 재일한인·조선족 등 해외 교포 문제를 고찰하는 데에도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이렇듯 《신찬성씨록》은 고대 동아시아 교류와 통치의 양상을 담은 거울로서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도 사에키 아리키요(佐伯有清)의 10권짜리 연구서 를 비롯해 수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으며, 씨족별 계보 검토, 편찬 배경의 사상적 연구, 다른 사서와의 비교 연구 등이 지속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신찬성씨록》은 편찬 당대의 정치 이념과 사회 구조를 반영한 문헌인 동시에, 그 속에 함축된 방대한 계보 정보로 인해 현재까지도 해석과 활용 가치가 매우 높은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7. 전체 씨족 분포: 계통별 통계 표


다음은 《신찬성씨록》에 수록된 1182개 씨족의 계통별 분포를 정리한 표이다 . 각 계통 분류(황별・신별・제번)별 씨족 수와 전체 대비 비율은 아래와 같다. 미분류된 117개 씨족(미정잡성)도 별도로 표시하였다.

계통 분류 씨족 수 전체 비율
황별(皇別, 천황가 후손) 335씨족 약 28.3%
신별(神別, 신족 신계) 404씨족 약 34.2%
제번(諸蕃, 도래 외래계) 326씨족 약 27.6%
미정잡성(未定雜姓) 117씨족 약 9.9%
합계 1182씨족 100%

위 표에서 보듯 신별 계통이 404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황별 335개와 제번 326개가 비슷한 규모로 뒤를 잇는다 . 한편 분류되지 못한 미정잡성 117개도 전체의 약 10%를 차지하는데, 이는 편찬 당시 일부 씨족들의 계보가 불명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천손・신계 계통(황별+신별) 씨족이 약 62.5%로 과반수를 넘고, 인계 도래 계통(제번)이 약 27.6% 수준이며, 나머지가 불명 계통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반도계 등 외래 출신 씨족들도 약 1/4 이상이나 포함될 정도로 일본 고대 지배층이 다양한 혈통적 배경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 이러한 통계 자료는 《신찬성씨록》이 귀족 사회의 구성과 출신 성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편찬되었음을 다시 한 번 뒷받침해준다.

참고 문헌: 궁내청 서릉부 소장 필사본 《신찬성씨록》, 동북아역사재단 역주본(2020), 연민수 「신찬성씨록 편찬과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2019), 서보경 「『新撰姓氏錄』의 편찬과 목적」(2012) 등. 주요 내용 인용은 위 연합뉴스 보도 및 위키백과 항목을 참고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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