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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이즈모 풍토기(出雲国風土記) 원문, 해석, 의의 정리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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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전문 (고대 일본어/한문 원문)

출운국 풍토기(出雲國風土記) 원문 전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출운국 풍토기
國之大體、首震尾坤。東南西山。北属海。東西一百卅七里一十九歩。南北一百八十三里一百九十三歩。一百歩。七十三里三十二歩。得而難可誤。老細思枝葉裁定詞源。亦山野濱浦之處、鳥獸之棲、魚貝海菜之類良繁多、悉不陳。然不獲止、粗舉梗概以成記趣。所以号出雲者、八束水臣津野命詔「八雲立!」詔之。故云「八雲立出雲」 .

合神社參佰玖拾玖所:壹佰捌拾肆所在神祇官、貳佰壹拾伍所不在神祇官。玖郡、鄉陸拾壹〔里一百七十九〕、餘戸肆、驛家陸、神戸漆〔里一十〕。
意宇郡:鄉壹拾〔里卅〕、餘戸壹、驛家參、神戸参漆〔里六〕。
嶋根郡:鄉捌〔里廿五〕、餘戸壹、驛家壹。
秋鹿郡:鄉肆〔里一十二〕、神戸壹〔里一〕。
楯縫郡:鄉肆〔里一十二〕、餘戸壹、神戸壹〔里一〕。
出雲郡:鄉捌〔里廿三〕、神戸壹〔里二〕。
神門郡:鄉捌〔里廿二〕、餘戸壹、驛家貳、神戸壹〔里一〕。
飯石郡:鄉漆〔里一十九〕。
仁多郡:鄉肆〔里一十二〕。
大原郡:鄉捌〔里廿四〕。

右件郷字者、依霊亀元年式改里為郷。其郷名字者、被神亀三年民部省口宣改之。

意宇郡(おうぐん)
合郷壹拾壹〔里卅三〕、餘戸壹、驛家參、神戸参。
母理郷、本字文理。屋代郷、今依前用。楯縫郷、今依前用。安来郷、今依前用。山国郷、今依前用。飯梨郷、本字云成。舎人郷、今依前用。大草郷、今依前用。山代郷、今依前用。拜志郷、本字林。宍道郷、今依前用。以上壹拾郷、别里参。餘戸里。野城驛家。宍道驛家。出雲神戸。賀茂神戸。忌部神戸。

所以号意宇者、國引坐八束水臣津野命詔:「八雲立出雲國者、狹布之稚國在哉。初國小所作、故將作縫!」詔而、「栲衾志羅紀乃三埼矣、國之餘有耶見者、國之餘有。」詔而、童女胸鉏所取而、大魚之鰓(支太)衝別而、波多須々支穗振別而、三身之綱打挂而、霜黒葛閒耶閒耶尒、河船之毛曾呂毛曾呂尒、「國来、國来!」引来縫國者、自去豆乃折絶而、八穗米支豆支乃御埼。以此而堅立加志者、石見國與出雲國之堺有名佐比売山是也。亦持接引綱者、薗之長濱是也。

亦、「北門佐伎之國矣、國之餘有耶見者、國之餘有!」詔而、童女胸鉏所取而、大魚之鰓支太衝別而、波多須々支穗振別而、三身之綱打挂而、霜黒葛閒耶閒耶尒、河船之毛曾呂毛曾呂尒、「國来、國来!」引来縫國者、自多久乃折絶而、狹田之國是也。

亦、「北門良波之國矣、國之餘有耶見者、國之餘有!」詔而、童女胸鉏所取而、大魚之鰓支太衝別而、波多須々支穗振別而、三身之綱打挂而、霜黒葛閒耶閒耶尒、河船之毛曾呂毛曾呂尒、「國来、國来!」引来縫國者、自宇波(未詳)乃折絶而、闇見國是也。

亦、「高志之都都乃三埼矣、國之餘有耶見者、國之餘有!」詔而、童女胸鉏所取而、大魚之鰓支太衝別而、波多須々支穗振別而、三身之綱打挂而、霜黒葛閔耶閔耶尒、河船之毛曾呂毛曾呂尒、「國来、國来!」引来縫國者、三穗之埼。接引綱者、夜見嶋也。固堅立加志者、有伯耆國火神岳是也。

「今者、國者引訖。」詔而、意宇社尒御杖衝立而、「意惠!」登詔。故云意宇。〔所謂意宇社者、郡家東北邊田中在塾是也。囲八歩許、その上有一巌茂。〕

母理郷。郡家東南卅九里一百九十步。所造天下大神大穴持命、越八口平賜而還坐時、来坐長江山而詔:「我造坐而命國者、皇御孫命平世所知依奉。但八雲立出雲國者、我静坐國。青垣山迴賜而玉珍直賜而守。」詔。故云文理。〈神亀三年、改字母理〉

屋代郷。郡家正東卅九里一百廿步。天乃夫比命御伴天降来、社伊支等之遠神天津子命詔:「吾静將坐志社。」詔。故云社。〈神亀三年、改字屋代〉

楯縫郷。郡家東北卅二里一百八十步。布都怒志命之天石、楯縫直給之。故云楯縫。

安来郷。郡家東北廿七里一百八十步。神須佐乃袁命、天壁立迴坐之。尒時、来坐北處而詔:「吾御心者、安平成。」詔。故云安来也。即北海有毗賣埼。飛鳥浄御原宮御宇天皇御世、甲戌年七月十三日、語臣猪麻呂之女子、逍遥件埼、邂逅遇和尒、所賊不皈。尒時、父猪麻呂所賊女子、歛置濱上、大発若憤、号天踊地、行吟居嘆、晝夜辛苦、無避歛所。作是之間、経歴数日。然後興慷慨志、磨箭鋭鋒、撰便處居、即撎訴云:「天神千五百萬、地祇千五百萬、〈並〉当國静坐三百九十九社及海若等大神之和魂者静而荒魂者、皆悉依給猪麻呂之所乞。良有神霊坐者、吾所傷給。以此知神霊之所神者!」尒時、有須臾而和尒百余静囲繞、一和尒徐率依来、従於居下、不進不退、猶囲繞耳。尒時、挙鉾而刃中央一和尒、殺捕己訖。然後、百余和尒解散。殺割者、女子之一脛屠出、仍和尒者殺割而掛串立路之垂也。〈安来郷人語臣与之父也。自尒時以来至于今日、経六十歳。〉

山國郷。郡家東南卅二里二百卅步。布都努志命之國迴坐時、来坐此處而詔:「是土者、不止欲見。」詔。故云山國也。即有正倉。

飯梨郷。郡家東南卅二里。大國魂命天降坐時、当此處而御膳食給。故云飯成。〈神亀三年、改字飯梨〉

舎人郷。郡家正東廿六里。志貴嶋宮御宇天皇御世、倉舎人君等之祖日置臣志毗、大舎人供奉之、即是志毗之所居。故云舎人。即有正倉。

大草郷。郡家南西二里一百廿步。須佐乎命御子青幡佐久佐 丁狀 命坐。故云大草。  (原문 훼손으로 일부 판독 불가)

山代郷。郡家西北三里一百廿步。所造天下大神大穴持命御子山代日子命坐。故云山代也。即有正倉。

拜志郷。郡家正西廿一里二百一十步。所造天下大神命、将越八口為而幸時、此處樹林茂盛。尒時詔:「吾御心之波夜志。」詔。故云林。〈神亀三年、改字拜志〉即有正倉。

宍道郷。郡家正西卅七里。所造天下大神命之追給猪像、南山有二〈一長二丈七尺、高一丈、周五丈七尺;一長二丈五尺、高八尺、周四丈一尺〉。追猪犬像〈長一丈、高四尺、周一丈九尺〉。其形為石、無異猪犬、至今猶在。故云宍道。

餘戸里。郡家正東六里二百六十步。〈依神亀四年編戸、丈二里。故云餘戸也。他郡亦如此。〉

野城驛家。郡家正東廿里八十步。(依)野城大神坐。故云野城。

黒田驛家。郡家同處。郡家西北二里有黒田村。土体色黒。故云黒田。旧此處有是驛、即号曰黒田驛。今東属郡。今猶追旧黒田号耳。

宍道驛家。郡家正西卅里。〈説名如郷〉

出雲神戸。郡家南西二里廿步。伊奘奈枳乃麻奈子坐熊野加武呂乃命與五百津鉏猶所取取而、所造天下大穴持命二所大神等依奉。故云神戸。〈他郡等神戸且如之〉

賀茂神戸。郡家東南卅四里。所造天下大神命之御子阿遲須枳高日子命坐葛城賀茂社。此神之神戸、故云鴨。〈神亀三年、改字賀茂〉即有正倉。

忌部神戸。郡家正西廿一里二百六十步。國造、神吉詞奏參向朝廷時、御沐之忌里。故云忌部。即川辺出湯。出湯所在、兼海陸。仍男女老少、或道路駱驛、或海中沿洲、曰集成市、繽紛燕楽。一濯則形容端正、再浴則萬病悉除。自古至今、無不得驗。故俗人曰神湯也。


教昊寺。有山國郷中。郡家正東廿五里一百廿步。建立五層之塔也。〔在僧。〕教昊僧之所造也。〔散位大初位下上蝮首押猪之祖父也。〕
新造院一所。在山代郷中。郡家西北四里二百步。建立厳堂也。〔無僧。〕日置君目烈之所造。〔出雲神戸置君鹿麻呂之父。〕
新造院一所。有山代郷中。郡家西北二里。建立教堂。〔住僧一躯。〕飯石郡少領出雲臣弟山之所造也。
新造院一所。有山國郷中。郡家東南卅一里一百廿步。建立三層之塔也。山國郷人置部根緒之所造也。

神社 (意宇郡)
熊野大社、夜麻佐社、賣豆貴社、賀豆比乃社、由貴社、加豆比乃高社、都俾志呂社、玉作湯社、野城社、伊布夜社、支麻知社、夜麻佐社、野城社、久多美社、佐久多社、多乃毛社、須多社、真名井社、布辨社、斯保祢社、意陀支社、市原社、久米社、布吾祢社、宍道社、野代社、賣布社、狹井社、狹井高守社、宇流布社、伊布夜社、由宇社、布自奈社、布自奈社、野代社、佐久多社、意陀支社、前社、田中社、詔門社、楯井社、速玉社、石坂社、佐久佐社、多加比社、山代社、調屋社、調屋社。〈以上四十八所在神祇官〉

宇由比社、支布佐社、毛祢乃上社、那富乃夜社、支布佐社、國原社、田村社、市穗社、市穗社、伊布夜社、阿太加夜社、須多下社、河原社、布宇社、末那為社、加和羅社、笠柄社、志多備社、食師社。〈以上十九所不在神祇官。一石神祇、市〉


長江山。郡家東南五十里。〈有水精〉
暑垣山。郡家正東廿里八十步。〈有烽、蟒歟〉
高野山。郡家正東一十九里。
熊野山。郡家正南一十八里。〈有檜、檀也。所謂熊野大神之社坐。〉
久多美山。郡家西南廿三里。〈有社〉
玉作山。郡家西南卅二里。〈有社〉
神名樋野。郡家西北三里一百廿九步。高さ八十丈、周囲六里卅二步。〈東有松、三方並有茅。〉

(이상 언급된 산야의 초목) 麥門冬、独活、石斛、前胡、高梁姜、連翹、黄精、百部根、貫衆、白朮、薯蕷、苦参、細辛、商陸、蒿本、玄参、五味子、黄芩、葛根、牡丹、藍漆、薇、藤、李、檜(梧)、杉(椙)、赤桐、白梧、楠、椎、海榴(椿)、楊梅、松、栢(榧)、蘗、槻。禽獸則有:鵰、晨風(隼)、山鷄、鳩、鶉、鶬(離黄)、鵄・鴟(横致、功鳥)、熊、狼、猪、鹿、兔、狐、飛鼯(𤢹、蝠)、獼猴之族。至繁多不可題之。


伯太川。源出仁多與意宇二郡堺葛野山上、流経母理、楯縫、安来三郷。入于海。〈有年魚、伊久比〉
山國川。源出郡家東南卅八里枯見山、北海入伯太川。
飯梨川。源出郡家正南廿六里、南山出、東北流、入伯太川。
揖屋川。源出郡家東北七里、流経揖屋郷、入意宇川。
意宇川。源出郡家西南十五里山下、北流入海。〈有細魚〉
大野川。源出郡家西北五里峯山下、北入海。
參豆羅川。源出郡家東三十八里、北流至意宇郡楯縫郷界而闢、東枝入揖屋川、西枝入飯梨川。 (후략)

(이하 각郡별로 의우군과 유사한 구조로 섬네군, 추이가군, 다테누이군, 이즈모군, 신몬군, 한세군, 닛타군, 오하라군의 항목들이 이어지며, 각 지역의 郷(향) 이름과 유래, 사원, 신사, 산천, 도로, 당시의 관청 및 거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음.)

출처: 출운국 풍토기 원문 (Wikisource 등) 

2. 현대 일본어 번역본


이즈모 국 풍토기의 현대 일본어 번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일부 고유명사는 원문 표기 유지):

出雲国風土記 総記(현대語訳)
国のおおよその形は、東(震)を始点として南西(坤)を終点とする形です。東と南は山地이고、西と北は海に接합니다 。東西は137里19歩, 南北は183里193歩の広さです(1里は当時約500m強). 編纂者は細部まで考察하여、伝承の源流を正しく定め 기록했습니다 。また山野や海浜의 지형, 鳥獣の棲息地, 魚介・海藻の類が 매우 많아 모두는 기록하지 못하였으나, 부득이한 경우 대략적인 줄거리만を挙げて本文の 취지를 이루었습니다 。

「出雲(いずも)」라고 부르는 이유는, 八束水臣津野命(やつかみずおみづぬのみこと)께서 “八雲立つ”(여덟 겹의 구름이 인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八雲立つ出雲”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出雲国에는 神社가 모두 399개소 있습니다。그 중 184개소는 神祇官社(じんぎかんしゃ, 신기관에 등록된 신사)이며, 215개소는 神祇官에 속하지 않은 신社입니다 。 또한 출雲국은 9개의 郡(こおり, 군)에 나뉘며, 총 62郷(ごう, 향) , 그 외 余戸 4, 駅家 6, 神戸 7이 있습니다(余戸는 토지정비 후 남은 취락, 駅家는 역참, 神戸는 신에게 바쳐진 부락). 각 郡별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 意宇郡(おうぐん) – 11郷〔里合計 33〕, 余戸 1, 駅家 3, 神戸 3〔里合計 6〕
• 島根郡(しまねぐん) – 8郷〔里 24〕, 余戸 1, 駅家 1
• 秋鹿郡(あいかぐん) – 4郷〔里 12〕, 神戸 1〔里 1〕
• 楯縫郡(たてぬいぐん) – 4郷〔里 12〕, 余戸 1, 神戸 1〔里 1〕
• 出雲郡(いずもぐん) – 8郷〔里 23〕, 神戸 1〔里 2〕
• 神門郡(かんどぐん) – 8郷〔里 22〕, 余戸 1, 駅家 2, 神戸 1〔里 1〕
• 飯石郡(いいしぐん) – 7郷〔里 19〕
• 仁多郡(にたぐん) – 4郷〔里 12〕
• 大原郡(おおはらぐん) – 8郷〔里 24〕

(위에서 “郷”이라는 행정 구역 명칭은 **霊亀元年(715)**의 칙령에 따라 기존의 “里”를 “郷”으로 개편한 것입니다. 또한 각 “郷”의 명칭은 神亀三年(726) 민부성의 지시를 받아 길하고 좋은 한자 2글자로 고쳐 표기했습니다 .)

意宇郡(おうぐん) 조

**의우군(意宇郡)**에는 11개의 郷이 있으며 (총 33里), 그 외에 余戸 1, 駅家 3, 神戸 3이 속해 있습니다 . 각 郷의 이름과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 母理郷(もりごう) – 원래 글자는 文理였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대지(所造天下大神) 오오아나무치노미코토(大穴持命, 오오쿠니누시)가 네노쿠니(根の国)에서 지상으로 돌아와 이 땅에 이르러 “내가 건설하여 바친 나라(出雲国)는 천손(天皇家)이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八雲立つ出雲国은 내가 편안히 앉아 다스릴 나라이다. 푸른 산으로 성곽을 둘러 태평을 누리게 하리라.”고 하여 나라를 평정하고 편안히 다스렸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 이 전승에 따라 文理(글로 세상을 다스림)의 의미로 불렸고, **신귀 3년(726)**에 “母理”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 屋代郷(やしろごう) – 지금도 옛 글자 그대로 “社”를 사용합니다. 전하는 이야기로, **아메노후비노ミ코토(天乃夫比命)**가 이 땅에 내려왔을 때, **아마츠코(天津子命)**라는 신이 “내가 편히 머물 장소(社)가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에 “社”(야시로)라고 불렸습니다 . 신귀 3년에 “屋代”로 개칭되었습니다.
• 楯縫郷(たてぬい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토착 신인 후츠ヌシ노미코토(布都怒志命)가 하늘에서 가져온 바위인 아메노이시(天石)를 이 땅에 방패(楯)처럼 세우고 꿰매어 봉합(縫)했다고 하여 “楯縫”라 불렀습니다 .
• 安来郷(やすぎ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스サノオ노ミ코토(須佐之男命)**께서 이 땅에 내려와 야스기에 머무르시면서 “내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롭다(安来)”고 말씀하셨기에 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 (“安来”라는 지명은 현재 시마네현 야스기시(安来市)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땅 북쪽 바닷가에 비메사키(毗賣埼)라는 곶이 있는데, 덴무 천황 시대(아스카 시대)인 672년 7월 13일에 하타노 이마로(猪麻呂)의 딸이 그 곶에서 놀다가 해적을 만나 납치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 이마로의 딸이 살해되자, 그녀의 아버지 이마로가 딸의 시신을 해변에 안치하고 하늘의 신과 땅의 신, 출운국의 399곳 신사를 비롯한 온갖 신령들에게 원통함을 호소하였더니, 잠시 후 바다에서 백여 마리의상어(和爾)들이 몰려와 이마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이마로는 칼을 뽑아 상어들을 베어 죽였고, 흩어진 상어들의 시신을 길가에 매달아 경고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安来郷 사람들의 증조부대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이며, 그 후 약 60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
• 山国郷(やまくに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후utsu누시노미코토(布都努志命)가 나라를 두루 돌며 평정할 때 이곳에 이르러 “이 땅은 끝없이 보고 싶도다”라고 하여 머물렀다고 합니다 . 그래서 “山国”이라 부르며, 이곳에 정창(正倉, 조정의 곡물창고)이 설치되었습니다.
• 飯梨郷(いいなしごう) – 원래 글자는 云成였습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国魂命)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에 이르렀을 때 이곳에서 진수성찬을 베풀어 대접받았다고 합니다 . 그래서 “飯成(밥이 지어짐)”이라 불렸고, 신귀 3년에 “飯梨”로 개칭되었습니다.
• 舎人郷(とねり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지토 천황 시대(志貴嶋宮御宇天皇) 때 이 지방을 다스린 **히オ키노오미 시비(日置臣志毗)**가 궁중에 **대사인(大舎人)**으로 섬긴 적이 있었는데, 그 시비의 거주지가 이곳이라 “舎人”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여기에 정창(正倉)이 있습니다.
• 大草郷(おおくさ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스サ노오노 미코토의 자손인 아오하타사쿠사 치요노 미코토(青幡佐久佐<丁状?>命)께서 이 땅에 좌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울창한 풀과 같다는 뜻의 “大草”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원문 필사본 훼손으로 일부 글자는 불명확합니다.)
• 山代郷(やましろ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所造天下大神)의 아들 야마시로히코노 미코토(山代日子命)**가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山代”라 부릅니다 . 이곳에도 정창이 있습니다.
• 拜志郷(はやしごう) – 원래 글자는 林이었습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께서 여러 나라(八口)를 평정하여 순행하실 때 이 땅에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그 때 “내 마음이 편안하다(吾御心之波夜志)”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그래서 “林(はやし, 숲)”이라 불렸고, 신귀 3년에 “拜志”로 개칭되었습니다. 정창이 있습니다.
• 宍道郷(ししぢごう) – 지금도 전과 같은 글자를 씁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所造天下大神)가 멧돼지를 쫓던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이 고을 남쪽 산에 돌로 된 멧돼지 두 마리의 상(石猪像)과 멧돼지를 쫓던 개상(犬像)이 있는데, 크기와 모양이 실제 짐승과 다름없으며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 이 이야기에 따라 “宍道” (고기를 쫓음)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意宇郡에는 余戸里 1곳 (郡의 조세할당 후 남은 취락), 駅家 3곳 (노시로 역마을 등)과 神戸 3곳 (신사에 속한 부락)이 있습니다. 그 명칭과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 余戸里(あまるべ の さと) – 군청(郡家)에서 정동쪽 6리 260보 지점에 위치합니다. 신귀 4년(727)에 호구 조정 때 정원(定員) 외 인구가 생겨난 곳이라 “남는 집이 있는 마을(余戸)”이라 합니다 . (다른 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野城駅(のぎ の うまや) – 군청 정동 20리 80보 지점에 있습니다. 노시로 대신(野城大神)이 모셔진 곳이라 하여 “野城”이라 합니다 .
• 黒田駅(くろだ の うまや) – 군청과 같은 위치(野城驛과 같은 경로)에 있었으나 현재는 폐지되었습니다. 군청 서북 2리에 黒田村이 있는데, 땅의 흙빛이 검어서 “黒田”라 부릅니다. 원래 이 마을에 驛家(역참)가 있어 “黒田駅”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東郡(노시로 역에 통합)으로 편입되었습니다 . 지금도 옛 “黒田”라는 이름만 전합니다.
• 宍道駅(ししぢ の うまや) – 군청 정서쪽 30리 지점에 있습니다. 지명 유래는 宍道郷과 같습니다 .
• 出雲神戸(いずも の かんべ) – 군청 남서 2리 20보 지점에 있습니다. 이곳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두 신의 자손인 **쿠마노카무로노ミ코토(熊野加武呂命)**가 五百津鉏라는 삽을 들고 나라를 만든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를 도와준 인연으로 신에게 바쳐진 토지(神戸)가 된 곳입니다 . (다른 군의 神戸도 이와 비슷하게 붙여졌습니다.)
• 賀茂神戸(かも の かんべ) – 군청 동남 34리 지점에 있습니다. 오오쿠니누시노미코토(所造天下大神)의 아들인 아지스키타카히코노미코토(阿遅須枳高日子命)가 葛城賀茂 신사에 모셔졌는데, 이 神が 다스리던 토지라 “賀茂(鴨)의 神戸”라 부릅니다 . (신귀 3년에 “賀茂”로 표기를 변경). 정창(正倉)이 있습니다.
• 忌部神戸(いんべ の かんべ) – 군청 정서 21리 260보 지점에 있습니다. 옛날 出雲国造가 조정에 보고를 하러 갈 때, 이 고을을 몸을 정결히 하는 금욕의 마을(忌の里)로 삼았다고 합니다 . 그래서 “忌部”라 부르며, 근처 川辺 지역에 온천(出湯)이 솟는데 육로와 해로가 만나는 곳이라 남녀노소와 상인, 여행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신유(神湯) 온천에서 한 번 목욕하면 얼굴과 자태가 단정해지고, 두 번 목욕하면 온갖 병이 낫는다고 하여 예로부터 영험함이 알려졌습니다 . 그래서 속세 사람들이 “神の湯”라고 부릅니다.

意宇郡의 寺院 (사원) 기록

意宇郡에는 다음과 같은 寺院(寺)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 教昊寺(きょうこうじ) – 풍토기에 등장하는 유일한 寺号(사찰 명칭)입니다. 山国郷 안에 있으며 군청 정동 25리 120보 지점에 위치합니다. 5층탑(五重塔)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僧が在:승려가 주재함) **교호僧(教昊僧)**라는 승려가 창건한 절입니다 . (이 승려는 산위 대초위하 上蝮首押猪라는 현지 유력자의 조부에 해당합니다.)
• 新造院 (1소) – 山代郷 안, 군청 서북 4리 200보 지점에 있습니다. 엄당(厳堂)이라는 불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僧无:상주 승려 없음) 히오키노키미 메즈라(日置君目烈)가 세운 사원입니다 . (이 사람은 出雲神戸 소속 日置君 **카마로(鹿麻呂)**의 아버지입니다.)
• 新造院 (또 다른 1소) – 山代郷 안, 군청 서북 2리 지점에 있습니다. **교당(教堂)이 세워져 있고 (住僧一軀:승려 1명 상주) 飯石郡 소령(작은 영주) 이즈모노미 오토야마(出雲臣弟山)가 세웠습니다 .
• 新造院 (또 다른 1소) – 山国郷 안, 군청 동남 31리 120보 지점에 있습니다. 3층탑(三重塔)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山国郷 출신 오키베 노 네오(置部根緒)가 세웠습니다 .

意宇郡의 神社 (신사) 기록

意宇郡에는 총 67개의 神社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48所는 神祇官에 등록된 신사이고, 19所는 神祇官에 등록되지 않은 신사입니다  . 주요 신사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在神祇官社 (신기관 소속 신사) – 熊野大社, 夜麻佐社, 賣豆貴社, 賀豆比乃社, 由貴社, 加豆比乃高社, 都俾志呂社, 玉作湯社, 野城社, 伊布夜社, 支麻知社, (이하 생략: 총 48개 신사 이름) … 등 48社 .
• 不在神祇官社 (비등록 신사) – 宇由比社, 支布佐社, 毛祢乃上社, 那富乃夜社, 支布佐社, 国原社, 田村社, 市穂社, (이하 생략: 총 19개 신사 이름) … 등 19社 .

각 신사의 이름은 당시 한자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대 일본어로도 동일하거나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예: 賣豆貴社→売豆貴社, 支布佐社→布佐社 등). 신사의 상세 위치와 유래는 풍토기에 간략히 언급되며, 많은 신사들이 지역 지명이나 토착 신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意宇郡의 山野 (산야) 및 動植物

意宇郡 관내의 주요 산들과 그 자원도 언급됩니다. 예를 들어: 長江山 (군청 동남 50리, 水精/ 수정 산출), 暑垣山 (정동 20里 80보, 봉수대와 큰 뱀이 있다는 기록), 高野山 (정동 19리) 등 산들이 있으며, 熊野山 (정南 18리, 노송나무・박달나무 숲과 熊野大神社 있음), 久多美山, 玉作山 (온천과 玉作湯社가 있는 산)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산야에 서식하는 초목(薬草)으로는 맥문동, 독활(うど), 석곡(ラン), 전호, 수수 생강, 연교, 황정, 백부근, 관중(고사리), 백출, 마, 고삼, 세신, 상륙, 고본, 현삼, 오미자, 황금, 갈근, 모란, 쪽, 고비, 등나무, 오리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참나무, 층층나무 등 무수히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 또한 조수(鳥獣)로는 독수리(鵰), 매(隼), 꿩, 비둘기, 메추라기, 꾀꼬리(離黄), 올빼미・부엉이(鴟/ミミズク), 곰, 이리(늑대), 멧돼지, 사슴, 토끼, 여우, 날다람쥐, 원숭이 등이 매우 많아 다 기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

意宇郡의 河川・池 (하천과 호수)

意宇郡의 주요 하천으로는  :
• 伯太川 – 인근 仁多郡과 意宇郡 경계의葛野山에서 발원하여 母理・楯縫・安来 3郷을 거쳐 바다(宍道湖方面)로 흘러듭니다. 연어(年魚, 은어)와 잉어(伊久比)가 납니다.
• 山国川 – 군청 동남 38리의 枯見山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伯太川로 합류합니다.
• 飯梨川 – 군청 정남 26리 산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伯太川로 들어갑니다.
• 揖屋川 – 군청 동북 7리에서 발원하여 揖屋郷을 지나 意宇川로 들어갑니다.
• 意宇川 – 군청 서남 15리 山下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바다에 들어갑니다 (細魚, 전갱이 등이 납니다).
• 大野川 – 군청 서북 5리 峯山에서 발원, 북쪽으로 바다에 들어갑니다.
• 参豆羅川 – 군청 동쪽 38리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意宇郡 楯縫郷 근처에서 갈라져 동쪽 지류는 揖屋川로, 서쪽 지류는 飯梨川로 들어갑니다.

(이 밖에 意宇郡 내의 池(못)과 海岸地形, 交通の通道(도로) 등에 대한 기록도 상세히 나타나 있으며, 각 항목마다 해당 지명 유래와 특산물 등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같은 형식으로 島根郡, 秋鹿郡, 楯縫郡, 出雲郡, 神門郡, 飯石郡, 仁多郡, 大原郡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의우군 조의 번역을 중심으로 예시하였습니다.)

(현대 일본어 번역 출처: 시마네현 고대문화센터 등 공개자료 및 블로그 현대한역  )

3. 한국어 번역본 (일부 발췌 및 정보)

이즈모 풍토기의 한국어 완역본은 전문 학자가 번역하여 출판한 사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용자 교수는 일본 각지의 풍토기를 우리말로 옮긴 《일본 풍토기》(동아대학교 출판부, 1999)와 《풍토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등을 통해 출운국 풍토기를 번역・소개하였습니다 . 다만 이들 번역본은 출판물로서 온라인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한국어로 완역된 공신력 있는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관계로, 여기서는 이즈모 풍토기 서두와 주요 신화 부분을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 소개합니다:
• 국명의 유래 (八雲立 출운국): “나라의 이름을 이즈모(出雲)라 부르게 된 까닭은, 옛날에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 미코토(八束水臣津野命)께서 ‘八雲(여덟 겹의 구름)이 일어나는 고장’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八雲이 떠오르는 出雲’이라 부르게 되었다.” (출운국 풍토기 총기 )
• 국인기 신화 (국토 끌어당기기 신화): “옛날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 미코토는 출운국 땅이 너무 좁은 것을 한탄하여 ‘처음 만든 국토가 너무 작구나. 그렇다면 이제 만들어서 이어붙이리라.’라고 말했습니다 . 이에 먼 곳을 바라보며 ‘어디 남는 땅덩이가 없을까’ 하고 찾으니 신라(新羅)의 땅 끝에 남은 국토 조각이 보였습니다. 신은 어린 소녀의 가슴 같은 쇠스랑을 손에 들고 가서, 큰 물고기의 아가미를 찌르듯 그 땅을 도려내어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세 가닥으로 꼬은 단단한 밧줄을 걸고, 서리 맞아 말라버린 칡넝쿨을 감듯이 바짝 당기고 또 당겨서, 강의 배를 끌듯이 살금살금 ‘쿠니코, 쿠니코(국아 오너라)!’ 하고 외치며 땅을 이쪽으로 끌어다가 이즈모 국토에 꿰매 붙였습니다  . 이렇게 붙인 새로운 땅이 바로 去豆의 끊어진 곳부터 八穂米支豆支의 곶까지입니다. 신은 또한 그 국토가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동여매려고 이와미국(石見国)과 출운국의 경계에 있는 사히메야마(佐比売山)를 말뚝으로 삼고, 園の長浜 모래사장을 밧줄로 사용했습니다 .
이어 신은 다시 “북쪽 문(北門) 바깥의 사키노쿠니(佐伎の国, 隠岐 제도)에도 남은 땅이 있지 않은가” 하시며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땅 조각을 끌어와 붙였습니다. 이것이 多久의 끊어진 곳부터 狭田の国까지의 땅입니다 .
세 번째로 “북쪽의 에나미노쿠니(良波の国)에도 남은 땅이 있지 않은가” 하여 역시 땅을 끌어왔습니다. 이것이 宇波의 끊어진 곳부터 闇見の国까지의 새로운 국토입니다 .
마지막으로 “높은 북쪽 지방 고시(高志, 고시=越)의 츠츠노미사키(津々の三崎)**에 남은 땅이 있지 않은가” 하고 찾아가 그 땅을 끌어왔습니다. 이리하여 붙인 땅이 지금의 미호노세키(三穂の埼)이며, 그때 끌어온 밧줄이 요미섬(夜見島)**이고, 단단히 매어둔 말뚝이 호키노쿠니(伯耆国)의 히노카미다케(火神岳, 다이센산)입니다  .
이렇게 네 차례에 걸쳐 국토를 끌어온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 미코토는 “이제 국끌기를 끝마쳤다(今は国引きを終えた)”라고 선언했습니다 . 그리고 의우의 숲(意宇社)에 지팡이를 꽂고 “의에(意恵)!”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이 고장의 이름이 의우(意宇)가 되었다고 합니다 . (이 신화에서 신라국과 고시 지방에서 네 조각의 국토를 끌어와 현재의 시마네 반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밧줄로 사용한 것이園の長浜(이즈모 해안), 말뚝으로 삼은 산이 앞서 언급한 사히메산과火神岳(다이센산)입니다 .)

以上과 같이, 이즈모 풍토기에는 고대 출운국(이즈모 지방)에 전해지던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한문 산문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국어로도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이즈모 지역의 국인기 신화 등은 한반도 신라와의 관련성 때문에 한국 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

(한국어 번역: 강용자 『일본 풍토기』(1999) 등 참고 , 신화 부분은 상기 현대 일본어 번역과 오마이뉴스 등의 설명을 참조하여 번역)

4. 주요 내용 요약


편찬과 구성 – 이즈모 국 풍토기는 나라 시대(8세기 초)에 편찬된 지방 지리지로, 총 5권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중 이즈모국(출운국) 편이 와도 6년(713년) 명령에 따라 조사・집필되어 덴표 5년(733년) 2월 30일에 완성되었고, 쇼무 천황에게 바쳐졌습니다 . 이즈모 풍토기는 9개 군(郡) 아래 모든 고을(郷)과 지명들의 유래, 지역의 지세, 토산물, 호수・하천・산・신사 목록, 도로 거리, 당시 행정 단위 등이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즈모국 풍토기는 현존하는 풍토기 중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로서, 고대 지방 행정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1차 사료입니다  .

풍토기의 내용 – 이즈모 풍토기는 서두의 총기(総記)에서 이즈모국 전체의 모양과 크기, 지형과 자원 등을 개괄합니다. 예를 들어, 출운국의 동서 길이는 137리 19보, 남북 길이는 183리 193보로 기록되어 있고, 동・남쪽은 산에 접하고 서・북쪽은 바다에 면한 지형이라고 설명합니다 . 이어서 각 군(郡)별로 조를 나누어, 意宇(의우)・嶋根(시마네)・秋鹿(아이카)・楯縫(다테누이)・出雲(이즈모)・神門(칸도)・飯石(이이시)・仁多(닛타)・大原(오하라)의 순으로 기입되어 있습니다  . 각 군 조에서는 먼저 그 군의 총괄(해당 군의 속한 郷 수와 역참, 신전 숫자 등), 郷(향) 별 지명 유래 설화, 사찰(寺) 목록, 신사(社) 목록, 산야(山)와 출토자원, 하천・호수(川・池), 해안 지형, 교통로와 군관(郡司) 정보 등을 순서대로 서술합니다  .

지명 설화와 신화 요소 – 이즈모 풍토기의 가장 큰 특징은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현지 고유의 신화와 전설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는 중앙 정부가 편찬한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화와는 다른 또 하나의 일본신화”로 평가되며,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이즈모 신화라고 부릅니다 .
• 국인기 신화: 이즈모 풍토기 서두를 장식하는 국인기(国引き) 신화는 이즈모 국토의 기원을 설명하는 설화로, 야쓰카미즈오미즈누노 미코토가 주변 지역(신라국, 고시 등)에서 국토 조각을 밧줄로 끌어와 이즈모 땅을 확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이 신화는 《고사기》나 《일본서기》 등 기존의 중앙 신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독창적인 내용으로, 출운국 풍토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역사적・문학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됩니다 .
• 스사노오와 오오쿠니누시 관련 전승: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스사노오노 미코토는 폭풍신으로서 야마타노오로치 퇴치 등 출운국에서의 활약이 묘사되지만, 이즈모 풍토기에서는 스사노오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 다만 飯石郡 須佐郷 등의 지명에서 스사노오에 얽힌 토착 신앙의 흔적이 보이고, 意宇郡 安来郷의 이야기에서는 스사노오가 “마음이 평온해졌다(安来)”고 말한 일화가 등장합니다 . 이를 통해 이즈모 풍토기는 스사노오를 농경과 토지의 신으로 광범위하게 신앙했던 옛 이즈모 지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또한 오오쿠니누시(大国主)에 대해서도, 《고사기》 등에 없는 에피소드 – 이를테면 오오쿠니누시가 네노쿠니(황천)에서 돌아와 아내 스세리히메와 함께 宇賀郷에 궁을 지었다는 등의 기록이 나타나, 중앙 신화와 차이를 보입니다 .
• 기타 지명 설화: 각 향(郷)마다 신화적・전설적 사건이 지명 설명에 곁들여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野見郷 항목에서는 스모의 시조인 노미노 스쿠네(野見宿禰)가 이 땅 출신이라는 전설을 언급하고, 그가 스모 대결에서 승리하여 야마토 조정에 발탁되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인용합니다 . 宍道郷에서는 돌로 된 멧돼지와 사냥개 상이 현존한다고 언급하며 오오쿠니누시의 사냥 전설을 전합니다 . 또한 忌部神戸에서는 현재의 다마유 온천 부근에서 온천수로 병을 고치고 흥겨운 장이 서는 모습까지 묘사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이처럼 이즈모 풍토기는 지리 정보뿐 아니라 설화와 풍속을 함께 담아냅니다.

역사적 기록과 행정 정보 – 이즈모 풍토기는 단순한 신화집이 아니라 행정 보고서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 각 군별로 정확한 거리 측정을 통해 관청(郡家)으로부터의 위치를 기록하고, 정창(正倉)의 존재나 역참(駅家), 神戸(신사 공령지) 설치 여부 등을 밝혀두었습니다. 또한 712년~733년 사이 시행된 지명 개정의 내용을 직접 언급하여 (예: “神亀三年、改字○○”), 8세기 초 지명 개혁의 흔적을 전합니다  . 이 밖에도 사찰 건립에 대한 기록에서는 해당 사찰을 지은 인물의 관등과 가계까지 적시해 당시 호족 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예컨대 “教昊寺”를 창건한 교호僧는 지방豪族의 조상이었음을 밝히고, 다른 新造院을 지은 인물이 국조(国造) 이즈모노 오미 히로시마의 후계자임을 주석에 달고 있습니다 . 이러한 상세한 행정・사회 정보는 이즈모 풍토기가 당시 지방행정과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데 1급 사료임을 보여줍니다 .

토산물과 산업 – 각 지역의 특산물도 곳곳에 언급됩니다. 예를 들어 意宇郡 조에서는 약재와 목재, 짐승들이 열거되고, 섬네일 해안의 칠엽수, 곡물, 어류 등이 풍부함을 알 수 있습니다  . 다른 군의 기록을 보면, 島根郡에서는 바다와 섬에 인접한 특성상 해산물과 어로, 出雲郡에서는 광물(철)과 농경, 飯石郡에서는 고원 지대의 목축 등 각 지방의 환경에 맞는 생산물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 이는 일본 고대 각지의 생업과 환경을 이해하는 데 기여합니다.

고대 이즈모의 국제 교류 흔적 – 이즈모 풍토기에는 고대 출운국과 한반도 및 외부 세계와의 관련을 보여주는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국인기 신화에서 신라국(新羅)이 직접 등장하여, 한반도 신라의 땅을 끌어다가 이즈모 국토를 확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또한 安来郷에서 왜적(倭寇 또는 해적)으로 인한 사건 기록, 忌部神戸에서 신앙적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온천장과 시장 묘사는 이즈모 지방이 외부와 교류하고 물자가 집산되는 현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이즈모 풍토기는 일본뿐 아니라 한반도와의 관계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며, 실제로 여러 신라・백제 관련 요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한국 연구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

5. 학술적 해설 및 의의


역사적 의의 – 출운국 풍토기는 일본 고대사 연구에서 《고사기》(712)・《일본서기》(720)와 더불어 중요한 삼대 사서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 특히 지방 관청이 편찬한 풍토기 중 유일하게 거의 완본으로 남아있는 사례로서, 이를 통해 8세기 초 일본 지방사회의 모습과 문화를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 이즈모 풍토기에 기록된 733년 당시의 행정 구역, 관직, 토지 제도 등은 중앙사료에 부족한 현지 정보를 보완하며, 고고학 발굴 등과 대조하여 고대 이즈모 지역의 실상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 예컨대 풍토기에 언급된 정창(곡물 창고) 위치나 온천 이용, 시장(市) 등의 기록은 실제 유적・유물과 연결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편찬 배경과 지역적 시각 – 이즈모 국 풍토기는 겐메이 천황이 일본 각 지방에 명하여 편찬토록 한 풍토기 가운데 하나로, 20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 특기할 점은, 출운국 풍토기의 편찬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국사)가 아니라 현지 유력층이 적극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 이 책의 말미에 “天平五年二月三十日 勘造…”라 하여 완성 연월일과 함께, 秋鹿郡 사람 神宅臣 金太理가 집필하고 出雲国造(이즈모노 오미)廣島 등이 감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즉, 출운국조(出雲国造) 가문이 중심이 되어 편찬을 주도한 것입니다 . 이러한 지역 주도의 편찬은 풍토기 내용에도 반영되어, 이즈모 풍토기는 중앙의 관점이 아닌 지방 고유의 시각에서 쓰였다는 학계의 평가를 받습니다 . 중앙 신화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이즈모 지방 토착 신들을 상세히 다루고, 중앙에서 중요시 않는 지방 설화까지 수집한 것은 출운국 사람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그 결과 이즈모 풍토기는 일본 고대 신화의 다양성과 지역 문화의 독자성을 전하는 귀중한 문헌으로 자리매김합니다 .

문화・종교사적 가치 – 이즈모 지방은 고대부터 출운대사(出雲大社)를 비롯한 거대 신사를 품은 신앙의 땅이었습니다. 이즈모 풍토기에 기록된 399개 신사의 목록과 신화들은 이 지역이 일본 신토(神道) 형성에 큰 축을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즈모 신화는 《고사기》 등 아마테라스 중심의 기기신화(記紀神話)와 대비되어, 고대 일본에 다원적인 신화 전승 계보가 있었음을 뒷받침합니다 . 예컨대 스사노오가 이즈모 풍토기에서 현지 토지신으로 숭배되는 양상이나, 오오쿠니누시 관련 이야기가 지역적으로 변주된 모습은, 훗날의 국譲り 신화 (오오쿠니누시가 나라를 아마테라스의 손자에게 양보하는 이야기)의 전사(前史)를 엿보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학자들은 이즈모 풍토기를 고대 출운문화의 보고(寶庫)로 평가하며, 일본 신화・종교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자료로 다룹니다 .

한일 교류사 연구의 단서 – 이즈모 풍토기는 일본 서북부 지방이 한반도와 해상을 통해 교류하던 흔적도 담고 있어, 한국과 일본 양국 학계의 흥미를 끕니다 . 국인기 신화의 신라 언급, 스사노오 신화의 가라(韓)鍛冶 설 등은 이즈모 지역에 한반도계 이주민이나 기술 전파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실제 이즈모 대사 전설에는 신라계 신의 존재나, 이즈모 지방 여러 신사에 백제・신라에서 건너온 토착 신앙이 섞여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 이즈모 풍토기의 기록은 이러한 설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한반도와 이즈모의 문화적 연관성을 탐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1차 문헌입니다 . 예컨대, “韓神新羅神社” 등의 존재나, 出雲神話 속 渡来인에 대한 언급 등이 그것입니다 (풍토기 자체에도 “唐(から)” 등의 글자가 보임). 이러한 맥락에서, 이즈모 풍토기는 일본 고대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해양교류사의 퍼즐을 맞추는 한 조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보존과 연구 현황 – 출운국 풍토기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여러 시대에 필사된 사본들이 전합니다. 에도 시대에 필사된 고노에가(勧修寺家)본, 스가노(菅野)본 등 사본이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시마네현 고대문화센터 등이 이러한 사본 이미지를 공개하여 연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 일본 학계에서는 메이지 이후 수차례 교주(校注)와 현대한역 작업이 진행되었고, 주요 역주서로 秋本吉郎 교주 <風土記> (이와나미), 荻原千鶴 현대語訳 <出雲国風土記> (고단샤)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강용자 교수의 역주와 논문 등을 통해 관련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 이즈모 풍토기는 편찬 1300년을 맞은 2013년경 시마네현에서 대대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져, 고대 출운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과 다언어 해설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

요컨대, 출운국 풍토기는 일본 고대 지방사회와 신화, 그리고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아우르는 귀중한 문헌 자료로서,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연구・해설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문화적 의의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에 버금갈 정도로 높게 평가되며 , 특히 고대 이즈모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로써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

Sources: 출운국 풍토기 원문 및 현대역    , 시마네현 고대문화센터 해설  , 위키백과 및 강용자(2012)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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