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지리
파키스탄 북부의 K2 봉우리. 파키스탄은 지형이 매우 다양하며, 북부는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이 만나는 지역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산 지대를 형성한다. 카라코람 산맥의 K2(고드윈 오스틴, 8,611m)와 히말라야의 난가파르바트(8,126m) 등 8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 북서부에는 힌두쿠시 산맥이 뻗어 있으며, 아프가니스탄과의 경계를 이루는 카이버 패스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악 통로들이 있다  . 이러한 북부 산악 지역은 빙하와 만년설로 덮여 있어 인더스 강 등 주요 하천의 수원지가 되고, 몬순 계절풍을 막아주는 장벽 역할도 한다 .
파키스탄의 중부와 동부에는 인더스 강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광대한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인더스 강과 그 지류들(예: 젤럼, 체나브, 라비, 스틀레지 등)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펀자브와 신드 지역을 흐르며 비옥한 농경지를 형성한다 . 남동부 신드 주에는 타르 사막이 인도 국경을 따라 이어지고, 남서부에는 건조한 발루치스탄 고원 지대가 자리한다. 파키스탄은 남쪽으로 약 1,046km의 해안선을 따라 아라비아해와 접해 있으며, 해안과 평야 지대는 전반적으로 덥고 건조한 열대~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 일반적으로 고온 건조한 여름과 선선한 겨울로 구분되는 뚜렷한 계절 변화를 보이며, 6~9월에는 남서부 몬순으로 북부와 동부에 강우를 가져오는 반면 국토 대부분은 강수량이 적어 건조 기후가 지배적이다 . 이러한 강우의 지역적 차이로 파키스탄에서는 심한 가뭄과 홍수가 교대로 발생하기도 한다 .
인문 지리
2023년 기준 파키스탄의 인구는 약 2억 4천만 명으로 세계 5위권에 속하며 빠른 증가세를 보여왔다. 인구의 약 40%가 15세 미만의 청소년일 정도로 인구 구조가 매우 젊고 역동적이며 , 전체 문해율은 60%대에 머무르지만 남성(72.5%) 대비 여성(51.8%)의 교육 수준 격차가 크다 .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 여건이 개선되고 있으나, 농촌과 도시, 성별 간 교육 격차는 여전히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파키스탄 인구의 주요 모국어별 비중 (2023년). 파키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다양한 언어와 민족이 공존한다. 인구 구성은 펀자브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펀자브인이 약 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파슈토어를 쓰는 파슈툰족(18%), 신드어의 신드족(14%), 사라이키어 사용 집단(12%)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우르두어는 전체 인구의 810% 미만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이지만, 파키스탄의 **국어(공용어)**로서 전국에서 교육과 행정에 사용된다. 이밖에 발루치어, 힌디어계 언어, 브라후이어 등 소수 언어들도 존재하며, 영어 역시 식민지 유산으로 법률·교육 등 공식 부문에서 사용되는 사실상의 준공용어이다. 종교 측면에서는 이슬람교가 국민 다수를 차지하여 인구의 약 **96%**가 무슬림이며(대부분 수니파, 시아파 약 1015% 포함) , 나머지는 힌두교(1~2%), 기독교(약 1%), 소수의 시크교·파르시 등이 분포한다  . 파키스탄 헌법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명시하고 있으며, 법률과 사회 규범에도 이슬람적 가치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
파키스탄의 행정 구역은 크게 4개의 주(Province)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부의 펀자브 주는 인구 최대의 지역으로 수도 이슬라마바드와 인접하며, 역사적으로 문화·정치의 중심지인 라호르를 포함한다. 남동부의 신드 주에는 최대 도시인 카라치가 위치하여 경제·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북서부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구 북서변경주, KPK)는 파슈툰족 거주 지역으로 페샤와르 등의 도시가 있고, 2018년 이 지역에 병합된 부족자치지구(FATA)가 있다. 남서부의 발루치스탄 주는 국토 면적의 약 40%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적으며, 주도는 쿠엣타이다. 이와 별도로 연방 직할지인 이슬라마바드 수도권이 있고, 인도령 카슈미르와 분쟁 중인 지역에는 파키스탄 관할 하에 길기트-발티스탄과 아자드 카슈미르 두 개의 자치령이 존재한다 . 주요 도시로는 경제 중심지인 카라치(約1,500만 명 추산)와 펀자브 주도 라호르(約1,100만 명), 수도 이슬라마바드 및 그 위성도시 라왈핀디 연담지역, 산업도시 페살라바드, 항구도시 하이데라바드 등이 있다.
문화
파키스탄은 문화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별로 고유한 언어와 관습이 공존한다. 국민 대부분이 입는 전통 의상은 남녀 모두 샬와르 카미즈(무릎길이의 상의와 통 넓은 바지로 구성)로, 파키스탄의 국민복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 남성들은 공식 석상에서 무릎 길이의 셰르와니 코트를 걸치기도 하며, 여성들은 얇은 숄 형태의 두пат타를 머리나 어깨에 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 도시의 젊은 층에서는 서구식 복장과 전통복을 혼합한 패션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일부 보수적인 공동체에서는 여성들이 부르카로 전신을 가리는 등 엄격한 복장 규범을 따르기도 한다 .
음식 문화는 인도 아대륙의 풍미와 중동·중앙아시아의 영향이 어우러져 풍부한 종류의 요리가 발달해 있다. 지역과 가정별로 특유의 **향신료 혼합(마살라)**을 사용하며 , 커리와 함께 밀가루로 만든 난(nan)이나 차파티 같은 빵을 곁들이는 식사가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양고기나 소고기를 긴 쇠꼬챙이에 구운 시크 케밥, 향신료와 밥을 켜켜이 섞어 만든 비리야니, 렌틸콩 스튜인 달(dal) 등이 있으며, 펀자브 지역의 탄두리 치킨이나 사지(Baluchi sajji, 양 전체를 통구이한 요리)처럼 지역색이 강한 별미도 많다. 이슬람 국가이므로 돼지고기는 식용으로 금기시되며, 대신 소고기와 양고기, 가금류, 풍부한 해산물이 주 단백질 공급원이다. 또한 인접 인도와 마찬가지로 차 문화(특히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두드 파티 차이)가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파키스탄의 예술과 음악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문학에서는 우르두어와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풍부한 작품이 창작되어 왔으며, 특히 우르두 시와 펀자브의 수피 시 등이 유명하다. 음악 분야에서는 **카왈리(Qawwali)**로 알려진 수피 전통음악이 파키스탄을 대표하며, 고(故) 누스랏 파테 알리 칸 같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음악가들도 배출되었다. 이 밖에 펀자브 지역의 **민속음악(바융)**과 파슈툰의 전통음악 등 민족별로 고유한 선율과 춤이 전승되고 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 음악에 서구 팝, 록 등의 요소를 결합한 퓨전 음악도 인기를 얻고 있다. 건축적으로는 무굴 제국 시대에 지어진 라호르 성채와 바드샤히 모스크(라호르), 샤히 포르트(카라치) 등 웅장한 무굴 양식의 유산이 많고, 이슬람 사원의 우아한 돔과 미나렛 양식이 도시 경관을 특징짓는다. 현대 건축물로는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살 모스크(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 중 하나)와 카라치의 카이드-에아잠 묘소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축제와 생활 문화 면에서도 파키스탄은 이슬람권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지역적 특색을 보인다. 가장 큰 명절은 라마단 금식월이 끝난 후 맞는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 소이드)와 희생제를 기념하는 이드 알아드하(대이드)로, 이 시기에는 가족과 친지가 모여 축하하고 선물을 교환한다. 무하람 기간에는 시아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애도 행렬도 이루어진다. 비이슬람 소수 집단도 홀리(힌두교의 색채 축제)나 크리스마스 등을 기념하며, 8월 14일 독립기념일에는 종교를 초월하여 전국이 국기의 초록색으로 장식되고 불꽃놀이 등의 행사가 열린다. 또한 3월 23일 파키스탄의 날에는 군사 퍼레이드와 기념식이 거행된다. 그밖에 봄철에 펀자브 지역에서 열렸던 바산트(연날리기 축제)는 안전 문제로 한때 금지되었으나,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 개요
파키스탄 지역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기원전 2500년경 번성한 인더스 문명의 중심이었다. 오늘날 신드 주와 펀자브 남부에 해당하는 인더스 강 유역에서는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같은 계획도시들이 등장하였고, 벽돌 주택과 배수 시설, 문자 사용 등 고도로 발전된 도시 문명이 꽃피웠다  . 이 후기 하라파 문명은 기원전 1700년경 쇠퇴하였으며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아리아계 종족의 이주 및 정착으로 베다 시대를 거쳐 이 지역에 인도 문명이 지속되었다. 중세 초기에는 서북부로부터 아랍계 이슬람 세력이 들어와 8세기경 신드 지역을 정복한 것을 시작으로 이슬람 왕조들이 점차 북인도에 세력을 확장했고, 16세기에는 중앙아시아계 무굴 제국이 남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현재의 파키스탄 땅은 한때 무굴 제국의 중요한 일부였으며, 라호르 등지에 무굴 황제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9세기 중반 무굴 제국의 약화 후, 영국이 펀자브 등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파키스탄 지역은 영국령 인도 제국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약 90년간 이어진 영국 식민 지배 동안, 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힌두 다수에 밀려 사회·정치적으로 열세에 놓였고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 20세기 초 결성된 全인도 무슬림연맹(Muslim League)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시화되자 인도 아대륙의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별개 민족이라는 “두 민족 이론”을 내세우며 무슬림들의 독자적인 국가 건설을 요구하였다 . 결국 1947년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면서 인도가 분할되어 파키스탄이 독립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1947년 8월 14일 영연방 내 자치령 신분으로 출범하였으며, 초대 총독(총독 겸 총리로 국가원수 역할)에 무슬림 연맹의 지도자 모하마드 알리 진나가 취임하고 리아콰트 알리 칸이 초대 총리를 맡았다 . 그러나 국토는 서쪽의 파키스탄(현 오늘날 파키스탄 본토)과 동쪽의 벵골 지역(동파키스탄)이 약 1,600km의 인도 영토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분리된 두 개의 영토로 이루어져 있었고, 행정과 교통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 더구나 영국령 인도 시대의 경제적 중심지와 산업 기반 대부분은 인도 측에 남겨져 신생 파키스탄은 자원과 기반 시설이 매우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했다 .
독립 직후 인도와의 관계는 극도로 긴장되어,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의 인구 이동과 종교적 충돌이 발생했다. 특히 펀자브와 벵골 지역이 힌두교 인도와 무슬림 파키스탄으로 양분되면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상호 학살 사태까지 벌어져 역사에 남는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 또한 분할 직후 힌두교 군주가 이끌던 카슈미르 지역의 귀속을 둘러싸고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번째 전쟁이 1947~48년에 발발하여, 결과적으로 카슈미르 지방은 양국이 각각 일부씩을 통치하는 분단 상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후로도 파키스탄과 인도는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여 1965년에 다시 전면전을 치렀고, 1999년 카르길 충돌 등 여러 차례 군사적 충돌을 겪었다. 특히 파키스탄 동측의 벵골인들은 서파키스탄 중심부로부터 정치·경제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되어 독립을 요구하게 되었고, 1971년 선거에서 벵골 민족주의 정당이 승리하자 이를 계기로 내전이 발발하였다 . 이 내전에 인도가 개입하며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같은 해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 방글라데시의 분리는 파키스탄 역사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파키스탄은 서쪽 영토만으로 남아 현재의 영토적 틀을 이루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파키스탄은 정치적 불안정과 군부 개입이 계속되어, 민선 정부와 군사 정권이 교대로 집권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1977년과 1999년에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되어 군부 지도자(지아 울하크 장군,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 등이 집권)가 대통령을 겸임하며 통치한 시기가 있었고, 1988년과 2008년에 각각 민정이 이양되었다. 전체 독립 역사 중 절반 이상을 군부 통치 하에 보냈을 정도로, 파키스탄 정치는 전통적으로 군부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 한편 2008년 이후로는 명목상 민간 정부가 지속되어왔으나, 2010년대 후반에도 사법부와 군부가 배후에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가 많다. 2018년 총선에서 임란 칸이 이끄는 파키스탄 정의운동당(PTI)이 승리하여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나, 2022년 그가 불신임 투표로 실각한 이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임란 칸 축출 후 집권한 연립정부(셔바즈 샤리프 총리 주도)는 언론과 야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2023년 5월 임란 칸 구금 후 전국적 시위가 발생하자 PTI 관계자들을 대거 구속하는 등 강경 대응을 펼쳐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후퇴 우려를 낳았다 . 2023년 예정되었던 총선도 인구 조사 지연을 이유로 미뤄져, 동년 8월 샤리프 정부가 임기 종료와 함께 과도정부로 이양된 이후 2024년으로 선거가 연기된 상태다 . 주요 정당으로는 파키스탄 정의운동당(PTI) 외에도 전통적 거대 정당인 **파키스탄 인민당(PPP)**과 **파키스탄 무슬림연맹 نواز파(PML-N)**가 있으며, 두 당은 부토 가문과 샤리프 가문의 정치세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던 기간에도 크고 작은 부패 스캔들과 군부 개입으로 정부가 중도 붕괴되는 일이 잦았다.
정치 및 경제 상황
파키스탄의 정체(政體)는 이론상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한 이슬람 공화국이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의례적인 직위이며, 실질적인 통치는 국회의 신임을 얻은 총리가 행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독립 이래 군부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왔고,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10년 이상 통치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민선 정부 기간에도 국방·안보 분야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정보기관(ISI)의 국내 정치 개입설이 자주 제기된다. 예를 들어 2010년대 후반 언론 자유 지표의 악화와 야당 탄압은 군부와 현정부의 공조로 이루어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실제로 2024년 국제 언론자유지수에서 파키스탄은 전년보다 순위가 떨어져 180개국 중 152위에 그쳤는데, 이는 정부와 군이 언론을 통제하고 비판적 보도를 억압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 또한 신성모독법 등의 엄격한 법률이 반체제 인사나 종교적 소수자를 억압하는 데 악용되고 있어, 2023년에는 신성모독 혐의로 소수 종교인의 집과 교회가 군중에 의해 파괴되는 등 폭력 사태도 발생하였다 .
경제方面에서 파키스탄은 저개발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했으나,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파키스탄 경제는 농업·제조업·서비스업이 균형을 이루나 농업의 비중이 여전히 높다. 전체 **GDP의 약 2324%**를 농림어업 부문이 차지하고 약 **37%**의 노동력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 면화·밀·쌀 등의 재배와 목축이 주를 이룬다. 농산물 중 쌀은 세계적인 수출품으로, 2021년 기준 파키스탄은 인도, 태국, 베트남에 이어 세계 4위의 쌀 수출국이다. 산업 부문에서는 면직물·의류 제조업이 발달하여 섬유제품이 전체 수출의 핵심을 차지한다. 예컨대 침구류, 의류, 편직물 등 섬유류와 가죽제품, 스포츠용품 등이 파키스탄의 주요 수출 품목이며, 농산품인 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 반면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과 기계류, 전자제품 등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매년 막대한 비용의 수입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외환 부족을 겪고 있으며, 2010년대 후반부터는 재정 악화로 국가 부도 위기가 여러 차례 찾아왔다. 2019년과 2022년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고, 2023년에도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IMF로부터 3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자금 지원을 받으며 간신히 채무불이행을 모면했다. 그러나 IMF가 요구한 재정 긴축과 보조금 철폐 조치로 인해 연료비와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국민 생활고가 심화되었다 . 2023년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2030%를 웃돌았으며, 이러한 경제난은 사회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중국과는 긴밀한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데, 중국의 거대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이 2015년 시작된 이래 발전소, 도로, 항만 건설 등에 막대한 중국 자본이 투입되었다. 중국의 누적 투자는 2022년까지 약 650억 달러에 달하며 , 파키스탄의 교통·에너지 인프라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이로 인해 대중(對中) 채무가 증가하고, 일부 사업은 파키스탄의 재정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우방국으로부터도 유상·무상의 금융 지원을 받아 외환위기를 넘기고 있으며, 향후 경제 안정을 위해 수출 경쟁력 강화와 조세 개혁, 부패 척결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 사회
파키스탄 사회는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변화의 물결을 겪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족 중심 문화와 현대적 가치관이 뒤섞여 과도기적 양상을 보인다. 가족 구조는 농촌을 중심으로 여전히 대가족제와 가부장제가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보수적인 공동체에서는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제한하는 푸르다(여성 분리 관습)가 유지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에 대한 명예 살인과 조혼 같은 관행도 문제시된다 . 이에 반해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에서는 교육 수준 향상과 매스미디어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실제로 파키스탄에서는 역사상 여성 총리(베나지르 부토)와 여성 국회의장까지 배출되었고, 언론인·학자 등 전문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도 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젠더 격차는 여전히 심각하여, 세계경제포럼(WEF)의 2023년 성 격차 지수에서 파키스탄은 조사 대상 146개국 중 142위에 머물렀다 . 특히 교육 및 경제 참여 부문의 격차가 커서, 여성 문해율은 남성보다 20%p 낮고 , 여성의 휴대폰 보유율(51%)이나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21%)도 남성(각각 81%, 42%)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
인권 문제에 관해서도 국제사회의 우려가 적지 않다. 파키스탄은 법률상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슬람 다수파 이념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종교적 소수자(특히 아흐마디야 무슬림, 힌두교·기독교 신자 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언론인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보안 당국의 압력과 검열에 직면하고 있어 시민 자유가 제한된 상태이다. 2024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정부가 시위대를 진압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차단하는 등 인터넷 자유도 크게 제약되어 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사회운동가들과 인권 단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노동자 권리 신장, 표현의 자유 수호 등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예컨대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대도시에서 열리는 아우라트 행진(여성 행진)은 성평등과 가부장제 타파를 외치는 상징적인 시위로 자리잡았다.
정보화의 측면에서, 파키스탄은 인터넷 보급률이 아직 높지 않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2024년 1월 현재 소셜미디어 활성 사용자 수는 약 7,1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0%를 넘었고 , 특히 25세 이하 청년층에서는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 이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정치·사회 영역에서도 변화를 가져와, 인터넷을 통한 청년 운동과 온라인 캠페인이 새로운 현상으로 부상했다 . 다만 도시와 농촌 간 디지털 격차가 존재하고, 정부가 보안상의 이유로 소셜미디어를 일시 차단하거나 일부 콘텐츠를 검열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파키스탄 청년들은 글로벌 대중문화와 접촉하며 자국의 음악, 패션, 예술 분야에서도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 코크 스튜디오는 전통음악과 현대 팝음악의 융합으로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젊은 예술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공유하며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높은 청년 인구 비중에 비해 일자리와 경제 기회가 부족하여 청년 실업과 두뇌 유출도 사회적 과제로 대두된다. 정부는 직업 교육 강화와 스타트업 지원 등으로 청년층의 역량을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정치·경제 불안이 지속되는 한 인재 유출과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출처: 파키스탄 브리태니커 백과        ; HRW 월드 리포트 2024  ; Tribune (2025)   ; World Bank 기후포털 ; Al Jazeera (2013)  ; CIA 월드 팩트북 ; 기타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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